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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보라” 이사야 48:1-11 (01/03/2021)

지난주일은 고흐의 그림 아몬드 꽃을 보여드리면서 설교를 시작하였는데 오늘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라는 그림을 보여드리면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벌써 한두번 말씀드렸지만 제가 결코 그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아닙니다.

언젠가 어느 교우님께서 “나이가 들면 다 우측뇌가 발달하게 됩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 분의 말씀에 깊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쓸쓸하고 높은 정신세계를 펼쳐보인 추사 김정희 세한도 - 국보 180호

김정희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제목이 ‘세한도’인데 ‘세’는 세월을 뜻하고 ‘한’은 ‘추운’이니 곧 ‘추운 세월에 그린 그림’이라고 직역할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제주도에서 그렸고 그것도 8월에 그려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결코 추운 겨울에 그린 그림은 아닌 것입니다. 계절로는 여름이었지만 ‘세한도’라고 붙인 이유가 있을줄 압니다.

김정희는 유배를 두번 가게 되는데 첫 번째는 제주도로 가게 됩니다. 이 때는 줄을 잘 못 서면 많은 경우 유배를 가게 될 때였습니다. 제주도에서 8년간 유배 생활을 합니다.

 

지난주에 고흐가 아몬드 꽃을 그릴 때는 동생이 자기 아들의 이름을 형 고흐의 이름을 붙인 것에 감동해서 그 그림을 그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세한도도 그리게 된 경위가 있습니다. 제주도로 유배가 있는데 ‘제자 이상적’이가 기회만 있으면 청나라에 가서 책을 사 가지고 보내드렸다고 합니다. 이 당시는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할 때도 아니고 직접 가서 사왔어야 했을 때입니다. 그리고 책 값이 엄청 비싼 때였습니다.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때는 이번만이겠지 했는데, 계속 책을 보내 옵니다. 결국 이상적에게 감동을 받습니다. 사실 이때 만일 책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 이상적도 큰 화를 당하게 되어 있는 때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한편 이미 8년간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데 감사의 마음을 표할 길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가 있었는데 8년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유명한 추사체를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추사체로서 ‘세한도’를 그리게 됩니다. 제자 이상적의 의리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그리게 됩니다.

 

그럼 의리에 대해서 감격해서 그렸는데 왜 ‘세한도’ ‘추운 세월의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이상적의 의리를 생각하면서 추사는 공자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울이 오면 그 때야 상록수가 구별이 된다는 공자의 말인줄 압니다. 곧 이상적은 바로 겨울이 와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상록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사는 소나무를 그렸습니다.

한편 그림을 해석하는 분들은 제일 오른쪽에 있는 노송이 추사 자신이고 바로 옆에 서 있는 젊은 소나무가 이상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곧 고흐에게는 동생 테오가 있었고 추사에게는 이상적이 있었습니다. 고흐나 추사나 모두 그들의 귀한 선물을 받은 결과 위대한 작품을 남기게 됩니다.

 

오늘 신년예배로 드립니다. 우리도 올 한 해 위대한 작품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최고의 ‘2021’이라는 인생 작품을 만들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막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려는 때로 생각하면 좋을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에서 해방시키려는 목적이 있었을줄 압니다. 당연히 최고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었을줄 압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

아마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실망하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아직도 더 고생을 해야겠구나.”

정말 최고의 삶을 살게 하시려는 의도가 계신지 의문이 되는 말씀이긴 합니다. 사실 1-5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야단치고 계심을 알수 있습니다. 아니 해방시키시려 하시면서 왜 야단을 치시죠? 한편 이렇게 한바탕 야단을 치신 후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6절 말씀입니다.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네가 들었으니”는 ‘네가 야단을 맞았으니’와 같은 뜻일줄 합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펼쳐질 놀라운 일들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녀에게 야단친 후 마음 편한 부모가 있습니까? 야단을 쳤기 때문에 더 잘해주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매한 가지이신 것 같습니다. 70년간 포로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민족에게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리고는 최고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선물을 주시되 전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최고의 선물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야단 자주 맞아 보신 분들 잘 아실줄 압니다. 야단치고 난 뒤 언제 야단쳤느냐는듯 잘해 주시는 부모님이 때로는 이해가 안 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도 이를 잘 아셨는지 계속 말씀하십니다. 8, 9절 말씀입니다.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야단친 후 잘 해주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은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야단치고 한편으로 최고의 선물을 주시는 이유는 당신과 이스라엘은 아주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아니 우리들과의 관계는, 김정희와 이상적 관계나 고흐와 동생 테오와의 관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관계임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배신자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고 계신 분이심을 알수 있습니다. 배신자 옆에 소나무 처럼 변하지 않는 존재로 서 계신 것을 보여주시고 게시는 것입니다.

테오나 이상적 아주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는 그들보다 더 위대한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잘한 것이 전혀 없고 진노의 대상이 되어야 할 배신자 옆을 떠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으로 인해 그들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십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고난의 풀무 불 속에 함께 거하셨음을 말씀하십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가운데 늘 옆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이 아니라 정금 아니 다이어몬드처럼 만드셨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했던지 배반자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진노의 풀무불에 함께 고난을 나누셨다는 것입니다. 다이어몬드가 될 때까지….

 

한편 꾀가 많은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대꾸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은처럼만 되면 족합니다. 그것도 감지덕지입니다. 다이어몬드까지 감히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힘드실텐데 적당히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하나님께 대꾸하지 않는가요? 저만 그런가요…?

 

이에 대한 하나님의 차가운 답변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나는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절대로 적당히 만드실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다이어몬드가 되게 하기 까지 안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당신도 풀무불에 함께 고생할지라도….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최고의 선물을 받습니다. 놀라운 그림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 그림은 바로 풀무불 속에서 함께 고난을 받으며 옆에 소나무 처럼 서 계신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 곧 당신의 자화상입니다.

 

처음 고집불통인 이스라엘 민족은 ‘이 모든 것을 보라’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화상을 본 후 놀라운 기대를 안고 미래를 바라 보게 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그런데 하나님의 자화상은 바로 십자가의 주님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보라.”

고집불통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배신을 밥먹듯 해도 상관없습니다. 지난해 형편 없이 생활했어도 상관없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자화상을 보여주시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보라.”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일들을 놀라운 기대 가운데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께 어떤 삶으로 보답해야 할까요?

 

공주가 병이 났습니다. 공주를 고친다고 하고는 못 고친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대신 공주를 고쳐준 사람에게는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습니다.

드디어 공주를 고쳐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왕이 소원을 물었습니다. 공주를 고쳐준 사람은 바둑판에 첫 번째 점에는 쌀 한 알, 그 다음 점에는 두 알, 그 다음 점에는 4알.. 이렇게 2의 배수로 쌀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쌀알을 합하면 어느 정도 될까요? 한 되? 한 가마? 두 가마? 계산을 해볼까요? 바둑판의 점은 19 곱하기 19입니다. 361이 됩니다. 마지막 점에 놓아야 하는 쌀알은 얼마나 될까요? 2의 360제곱입니다.

2의 제곱은 4…2의 세제곱은 8…네제곱은 16…8제곱은 16 * 16 = 256… .128 제곱을 하면 1800경 곱하기 1800경입니다. 더 이상의 계산은 단위를 모르겠습니다. 360제곱까지 가야하는데…. 결국 왕은 파산을 하게 되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왕은 대신 공주와 결혼시켜주고 왕위를 물려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오늘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올해 우리 하나님을 파산시키십시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오늘보다 내일 배의 축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모레는 내일의 배의 축복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날 것입니다. 바둑판에는 361개의 점이 있는데 우리에게는 365일이 있습니다. 엄청난 축복의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그건 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 같은데요?”

오늘 아침 교회 주변을 도는데 무궁화부터 시작해서 나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이 꽃나무들은 봄이 오면 하루가 다르게 커가지 않습니까? 매일 두배씩 자라지 않습니까? 이 겨울에 잔뜩 봄이 오면 하루 두 배씩 자랄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우리들은…?

 

오늘 신년 예배로 드립니다. 모두 어려웠던 한 해를 뒤로 하고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해의 시간에 들어 왔습니다.

새해에 들어 왔는데도 앞이 잘 안 보이지 않습니까?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십시다. 십자가의 주님 앞에 서십시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새 일 곧 우리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우리로 하여금 듣고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코로나의 많은 고통 가운데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저희 교회 표어로 삼고자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보라.”

 

저는 확신합니다. 새 해는 놀라운 일로 우리 개인의 삶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 안을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기대를 안고 큰 기도와 함께 한 해를 시작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이어몬드로 만들어 가실 것이고 당신의 귀한 영광을 아무에게 주시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 보는 자들에게 주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지난주 수요일은 르호봇 이야기 대신에 홍보위원회가 제작한 ‘한 해를 돌아 보며’ 동영상이 방영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셨을줄 압니다. 모두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왔을줄 압니다.

가장 감사하는 이유는 코로나 가운데 함께 하신 주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교우님들의 모습에서 교우님들의 섬김에서 주님은 늘 함께 하시고 계심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보라.”

작년도 코로나 가운데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데 새해에는 새롭고 놀라운 일을 펼쳐가시지 않으실까요?

새 일이 펼쳐지는 것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지난해 함께 하신 동영상을 보십시다. 그리고 감사하십시다. 그러면 어느덧 우리들 가운데서 새 일을 펼치시는 주님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신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보라.”

주님은 우리를 위해 이미 파산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래서 우리 모두 다이어몬드가 되는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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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이 모든 일을 보라III: 오네시모” 빌레몬서 1:8-22 (03/07/2021) webmaster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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