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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팬데믹 X: 네 아들과 자손에게 전하라.” 출애굽기 10:1-20 (09/26/2021)

먼저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라는 시를 소개해 드립니다. 제가 이번에 찾아 보니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시’ 하면 움추려 드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 마음 놓으시라고 중1 수준의 시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년 일제강점기 한창 때에 탈고한 시라고 합니다. 어떻게 일제 강점기 때 ‘새로운 길’이라는 시를 쓸수 있었는지 여러 궁금한 생각이 절로 듭니다.

조금만 설명해 드리면, 첫 연에서 ‘내’와 ‘고개’가 나옵니다. ‘내’와 ‘고개’는 어려운 상황을 상징합니다. 반면 ‘숲과 마을’이 나오는데 이는 가고자 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상징합니다. 곧 평화의 세계로 향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은, 두 번째 연을 보면,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내를 건너서 고개를 넘어서 숲으로 마을로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세번째 연을 보면,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그 길에서는 늘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바로 네번째 연을 보면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하염없이 중단하지 않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연에서 다시 첫 연을 반복합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매일 내를 만나고 고개를 만나지만 그때마다 건너고 넘어서 평화의 나라로 가기로 다짐하는 멋진 21세 청년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언제 했다구요? 1938년 일제 강점기 한 복판에서 했습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청년 윤동주와 같은 심성을 안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이것은 우리들의 소원이기 전에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을 향한…. 오늘 본문 말씀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출팬데믹 열번째 설교말씀으로 여덟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 모든 재앙마다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는데 여덟번째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근본적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1절 말씀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는 참 하나님임을 알려주시기 위해 일곱까지 재앙을 보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2절,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더 중요한 것은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조상들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 듣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출애굽한 후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로 향합니까? 가나안 땅으로 향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실제로는 40년간 광야 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430년 종살이도 힘들었지만 40년 광야 생활은 더 힘들면 더 힘들었지 결코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니 광야 40년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다가 후에 바벨론 포로 생활도 해야 했고 그후에는 전세계로 흩어져야 했습니다. 이 오고가는 후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430년의 종살이를 마치면서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단순한 해방이 목적이 아닙니다. 해방 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십니다.

지난주까지 7가지 재앙이 마쳤습니다. 우박 재앙이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는 예상대로 다시 완악해져서 해방을 주지 않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빙고! 이번에는 메뚜기 떼를 보내시기로 하셨습니다.

확실한 것은 자녀들을 위해서 8번째로 메뚜기 재앙이 필요했습니다. 왜 메뚜기 재앙인지는 주석가들도 자신 있게 말하고 있지 못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녀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다시 윤동주 시인의 시가 생각이 나네요.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윤동주의 새로운 길에는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앙과는 좀 다르네요. 우박, 가축의 죽음, 파리떼, 메뚜기 떼 등인데…. 윤동주는 아주 아름다운 전원의 길을 가는 것 같네요. 민들레, 까치, 아가씨…, 가장 비슷한 것은 바람인가요? 광야에서 만날수 있는 것은…?

윤동주 시인은 젊은 나이에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광야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고 바로 그것들은 민들레요 까치요 아가씨요 기껏해야 바람이라는 것을…. 왜?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들이기에….

윤동주 시인은 자신이 매일 겪는 고통과 아픔을 도리어 민들레요 까치요 아가씨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윤동주와 같은 멋진 축복을 누리게 하시는 계획이 있으신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이런 축복의 세계가 펼쳐질 것을 알았던지 바로는 아이들은 같이 가지 못하게 합니다. 11절,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바로는 장정들과 자녀들 관계를 끊으려고 합니다. 더이상 하나님께서는 참지 못하십니다. 부모와 자녀를 떼어내려는 바로에게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메뚜기떼를 오게 하십니다. 15절,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열번째 출팬데믹 말씀을 드리는데 우리에게 팬데믹을 허락하신 이유는 분명해졌습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윤동주처럼 새로운 길을 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메뚜기떼는 애굽인들에게는 저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광야에서 축복의 메추라기 떼가 임할 것을 미리 보게 하신 것은 아닐지요? 언젠가 광야에서 베풀어주시는….

저는 어릴 때 장남감 없이 자란 세대입니다. 그래도 저는 다행히 대광학교교정 안에 사택에서 살아서 넓은 대광학교가 저의 앞마당이었습니다. 잔듸밭이 넓었는데 저녁마다 나가서 메뚜기를 잡곤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일학교에서 10재앙 중에 메뚜기 재앙이 있다는 것을 듣고는 좀 실망을 했습니다. 친구처럼 지내는 메뚜기가 재앙을 일으키다니….

그런데 사실 작년 3월 팬데믹 시작과 더불어 동 아프리카에서 동남 아시아까지 메뚜기 떼가 모든 작물을 망쳐 놓았습니다.

참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을 즐겁게 해 준 메뚜기가 온 세상 작물을 모두 없앨수 있다는 생각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순간 저에게는 놀라운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메뚜기 재앙은 자녀들을 위해서 보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시려고 도리어 자녀들의 친구인 메뚜기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닌지…. 자녀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 자녀들의 친구인 메뚜기가 도리어 분노해서 온 세상을 망쳐 놓는 것은 아닌지….

어느 목사님이 최근 신문에 콜로라도주에 소재한 소아과 병원 상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는 것을 접해 보았습니다. 응급환자가 넘쳐나고 있는데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것이 아닌 청소년 정신과 환자 때문이라고 합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도시의 경우 2020년과 2021년 1월을 비교해 보았는데 자살시도율이 무려 145%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때가 바로 윤동주의 노래를 불러주는 때가 아닐까요? 팬데믹을 보내주신 이유는 새로운 길을 볼줄 아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일줄 압니다. 그리고 윤동주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새로운 길을 볼줄 아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팬데믹 가운데서 부모님들이 먼저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팬데믹에서 만나는 모든 것도 민들레요 까치요 아가씨요 바람임을….

제가 요즘 자주 럿셀 졍박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렸는데 이유는 럿셀 졍박사님 세미나에 많이 오시라는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그의 자서전이 200페이지가 넘는데 모든 페이지 마다 기가막힌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마음 먹으면 1년 내내 소개해도 모자를 정도입니다.

졍 박사님이 UC Berklee대학원생 시절 캄보디아 난민들이 주로 사는 빈민 아파트에 들어갑니다. Dan이라는 사람이 먼저 원 베드룸을 렌트해서 살고 있었는데 함께 살게 됩니다. 거실은 food pantry음식이 반쯤 차지하고 있고 카펫은 고양이 오줌 냄새가 가득차 있고, 밤마다 바퀴벌레가 대환영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밤마다 하는 일 중 하나는 졍박사가 불을 키는 순간 댄이 라이졸을 도망가는 바퀴벌레에 뿌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캄보디아 꼬마들은 놀러와서 집에 갈줄 모르고…, 그 좁은 방에서 아줌마들 영어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주머니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We were all poor. But we had fun. We had…… life.”

(우리는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삶이 있었습니다.)

졍박사님은 고백합니다.

“하늘 나라의 축복의 소나기를 맛보았습니다.”

좁은 아파트에는 도리어 민들레와 까치로 가득찼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함께 새로운 길을 가십시다. 새로운 노래를 부르십시다. 자녀들이 듣도록…. 출팬데믹은 시작되었습니다.

자녀들이 듣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힘차게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말씀을 거둡니다.

요즘도 윤동주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달 곧 8월말을 기해서 탈레반이 다시 아프간을 차지했습니다. 실은 그동안 어떤 보도에 의하면 아프간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빠르게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미군이 8월말로 철수하기로 확정이 되자 아프간 교회 지도자들은 큰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7월에 그들은 아프간 정부에 정식 종교로 등록하기로 합니다. 정말로 자멸 행위이지만 그들은 이런 용단을 내린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는 이런 희생을 치러야 다음 세대가 공개적으로 스스로를 예수님의 제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프간 지도자들은 닥아 오는 재앙을 준비하면서 어느 주일 아침에는 출애굽기 7-11장에 나오는 10 가지 재앙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들도 메뚜기 떼 재앙을 읽으면서 윤동주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요?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그들은 최고의 노래를 지금도 지하에서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노래가 바로 출팬데믹의 노래가 아닐까요? 이 노래를 듣는 자녀들은 어떤 광야의 삶에서도 이 노래를 부르며 십자가의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평화의 나라를 꿈꾸며 매일 매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우리도 남은 팬데믹 기간 자녀들의 귀에 최고의 노래를 들려 드리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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