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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팬데믹 XI: 흑암과 빛” 출애굽기 10: 21-29 (10/03/2021)

 

먼저 어둠을 사랑했던 한 기독교 영성가를 소개해 드립니다. John of the Cross라고 불리우는 16세기 스페인 출신 영성가입니다. 그는 유명한 여성 영성가인 Teresa of Avila와 함께 귀한 저서들을 남깁니다.

요한은 테레사와 함께 그 당시 타락해 가는 Camelite 수도회를 개혁하려고 합니다. 원래 카멜라이트 수도회는 절제와 개인 기도를 중요시하는 수도회이었는데 돈이 많이 생기면서 절제와 개인 기도를 등한시 하는 수도회가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수도회의 기득권 세력이 개혁을 좋아할리가 없습니다. 어느 날 밤에 깡패들을 동원해서 요한을 잡아서 감옥에 가둡니다. 매일 소량의 빵과 물만 지급됩니다. 목욕은 물론 옷도 갈아 입을수 없습니다. 감방에서 나올수 없었고 나온다면 잠시 채찍을 맞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두 달이 지난 후 독방에 갇히게 되는데 빛이라고는 방 벽틈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독방에서 놀라운 작품을 써내려 갑니다. 실은 간수의 도움으로 책을 써내려갈수 있었습니다. 도합 9개월을 감옥에 머무르게 되고 여기서 유명한 ‘The Dark Night of the Soul’이라는 책을 완성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고 오직 만날수 있는 ‘그 분’임을 밝힙니다. 어두운 독방에서 ‘무엇’인 하나님이 아니라 ‘그 분’이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두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는 그의 삶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출팬데믹 11번째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은 어둠의 재앙을 내리신 이야기입니다. 어둠이 영성에 그렇게 중요한데 어떻게 아홉번째로는 어둠을 재앙으로 내리셨는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궁금한 마음을 안고 본문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21절 말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여덟번째 메뚜기 재앙이 끝나고 시간이 지났는데 모세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음에는 모세가 찾아와서 무슨 재앙을 내리려나 노심초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곧 신하의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조마조마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또 찾아 왔다고 말할까 봐….

 

그런데 모세도 찾아 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어둠이 찾아 왔습니다. 보통 때 찾아 오곤 했던 어둠과는 전혀 다릅니다. 삼 일 동안 어둠이 깔렸습니다. 23절 말씀,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너무 어둠이 짙어서 서로 볼수가 없었고 그래서 아무도 집에서 일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스라엘인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고센 땅에만 빛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모세가 내린 재앙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24절,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바로는 큰 마음을 쓰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메뚜기 재앙 때 아이들은 놓아두고 장정만 떠나라 했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데리고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게 합니다. 이에 모세는 제사와 번제물이 필요하므로 가축도 남김 없이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순간 바로가 다시 마음이 완악해져서 안 보내기로 합니다. 28절,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더 이상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죽이겠다고 말한 것은 처음입니다. 아마 가축도 다 데리고 가겠다고 한 것이 바로의 심지를 크게 건드린 것 같습니다. 가축이 그렇게도 중요했나 봅니다. 이에 모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29절,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갑자기 살벌해집니다. 무엇이 이처럼 살벌하게 만들었을까요? 모세는 마지막 //하나가 남은 것을 알고 있었나요? 한편 3일간 암흑 속에 있으니 바로는 제 정신이 아니었을까요?

 

이집트의 신 이름은 ‘라(Ra)’인데 이는 한 마디로 태양신입니다. 그리고 어느 덧 바로는 태양신으로 신격화 되어 있었습니다.

Ra - Wikipedia

그런데 지금 3일째 애굽은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반면 고센 땅 이스라엘인들이 사는 곳에만 빛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바로는 가짜 신임이 증명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암흑이 거두어져야 신격화 된 자신의 체면이 섭니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구겨진 체면을 살리려고 이번에는 큰 맘 먹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대답하기를, 26절,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이 말이 또 바로의 급소를 찌른 것입니다. 바로는 모든 민족이 각자의 신을 섬길수 있게 합니다. 한 가지 조건은 모든 신 중의 신인 ‘라’ 곧 바로를 인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가 원하는 것은 바로인 자신을 인정해 주면서 각자의 신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바로는 신이 아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참 신은 지금도 빛이 비치고 있는 고센 땅에 거하시는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이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가축을 반드시 데리고 나가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는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더 이상 회복할수 없는 단계에 이르런 것입니다. 바로는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다 상한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를 조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서 알수 있는 것은 애굽에 내리신 암흑은 처음에 소개해 드린 John of the Cross가 체험한 암흑이 아닙니다. 그 암흑은 영성에 크게 도움을 주는 암흑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홉번째 재앙의 암흑은 바로가 태양신이 아님을 밝히는 암흑이었던 것입니다. 한편 암흑은 암흑입니다. 분명 이 암흑도 영성에 도움을 줍니다. 만일 고센 땅에만 빛이 있음을 신기해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 빛을 사모하게 된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홉번째 재앙은 두 가지 의미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바로가 태양신이 아님을 알려 줍니다. 아울러 고센 땅의 빛을 사모하는 마음을 일깨웁니다. 암흑으로 인해서 고센 땅에는 언제나 빛이 있었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암흑은 영성에 도움을 줍니다. 암흑은 빛을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계 성찬 주일을 맞아 함께 성만찬에 참여했습니다. 성만찬도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신들이 참 신이 아님을 선포하시기 위하심이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 안에 빛이 내재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빛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곧 성만찬은 우리로 하여금 암흑과 빛을 만지게 하는 것입니다.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떡과 잔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영성은 한 걸음 주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신을 섬길 때 떡과 잔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보지 못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처음에 소개해 드린 John of the Cross를 감옥에 넣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수도사였습니다. 이들은 거의 매일 성만찬에 참여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태양신을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만찬에 참여해도 떡과 잔에서 흘러 나오는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바로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루 아침에 태양신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을까요? 점점 물질적으로 부요해짐과 함께 어느덧 성만찬도 관습이 되어진 것이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아무런 마음의 자책감 없이 넙죽 넙죽 성만찬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 수도사들과 그렇게 다를까요? 이 때 수도사들에게 필요했던 것이 무엇일까요? 태양신을 한번도 섬기지 않았던 아이들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할 때 가축뿐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나가라고 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글을 쓰셨습니다.

“나의 큰 딸인 안나가 태어난 지 15개월 정도 되었을 때 나와 내 아내는 여름 청소년 집회 장소에 있었다. 나의 아내는 집회를 마친 후 안나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안나는 계속해서 가는 길을 멈추었고 인도 위에 눕는 것이었다. 아내는 안나를 일으켜 걸어가게 하였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시멘트 인도 위에 눕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짜증이 좀 나기 시작해서 그 자리에 서서 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무슨 일인지 안나와 함께 길에 누워 위를 보게 되었다. 그 때 내 아내는 그녀가 평생 볼 수 없었던 여름 하늘에 펼쳐지는 별들의 대 광경을 보게 되었다.”

 

작년 3월 팬데믹이 선포되면서 저희 교회도 이에 대처해야 했습니다. 저는 팬데믹을 통해 교회가 그토록 꿈꿔 왔던 3세대 예배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여러 회의를 거쳐서 3세대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시간들은 썬플라워 자녀들이 성경봉독을 하고 중고등부 자녀들이 기도하는 시간들입니다. 태양신을 섬긴적이 없는 자녀들과 함께 드린 예배 시간은 저의 목회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자녀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볼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는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고센 땅으로 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를 고센 땅으로 안내하는 안내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 팬데믹 기간 고센 땅에 비추는 빛을 볼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태양신을 섬겼을지라도…. 저희 자녀들의 눈에는 고센 땅을 비추는 빛이 항상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빛은 온 세계를 밝히는 평화의 빛입니다.

 

이 평화의 빛은 출팬데믹과 더불어 온 세계를 하나 되게 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오늘 또한 정의 평화 환경 주일로 지키는데 정의 평화에 앞장 서신 마틴루터킹 목사님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귀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인물이 될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삼 세대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6살이 되었을 때 어느 날 백인 친구가 자기에게 더 이상 함께 놀수 없다고 말한 것을 듣고 할머니께 말합니다.

아마 6살부터는 흑백이 같이 지낼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할머니가 자세히 설명하고는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You are somebody. (너는 특별해.)”

 

후에 인권 운동을 하던 중 다음과 같은 멋진 연설을 합니다. 오래 전 언젠가 소개해 드렸습니다.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Jr.) 목사님이 멤피스에서 암살당하기 바로 전 날 “나는 약속의 땅을 보노라”라는 유명한 연설을 합니다. 그 연설 서두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청중을 사로잡습니다.

“내가 만일 역사의 시작에 서 있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펼쳐질 역사의 파노라마를 보여주시면서, 나에게 어느 역사에 다시 태어나길 원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리고는 당신의 가슴에서부터 나오는 고백을 합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생각은 애굽에서 시작하여 홍해의 사건을 지나서 광야의 사건, 아니 그것을 넘어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펼쳐질 것입니다. 그 역사가 놀랍고 귀해도 나의 생각은 거기에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의 찬란한 역사 속으로 잠입하면서 플라톤 (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멈추지 않습니다. 화려한 로마를 지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역사를 맛볼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흑인 노예 해방 역사와 함께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을 잠시 주시하겠지만 거기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 후 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외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20세기 후반에 아주 짧은 시절 살게 하신다면 나는 행복하겠습니다.’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릅니다. 지금 이 세상은 너무나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둡지만 어두운 이때가 별이 가장 밝게 비추이기 때문입니다.”

 

이 연설을 하고 다음 날 총탄에 맞아 장엄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는 어둠의 세상에 아주 밝은 빛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20세기 고센 땅을 밝히는 빛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21세기 고센 땅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우리들의 자녀들과 함께…. 삼세대가 하나 될 때 우리는 태양신을 어둡게 할 것입니다.

 

오늘 성만찬에 참여한 교우 여러분은 태양신을 섬기는 자들을 위한 빛입니다. 세상은 고센 땅의 빛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서 계신 곳으로부터 온 세계를 위한 평화의 빛을 발하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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