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소개해 드린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을 다시 소개해 드립니다. 왜 이 시를 다시 소개해 드리는지는 잠시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이 시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면, 자주 말씀드리지만 반복이 중요합니다, 이 시는 1938년 일제강점기 한창 때에 탈고한 시인데 시인은 일제 강점기 때 매일 ‘새로운 길’을 가는 자신의 모습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첫 연에서 ‘내’와 ‘고개’가 나오는데, ‘내’와 ‘고개’는 어려운 상황을 상징합니다. 반면 ‘숲과 마을’이 나오는데 이는 가고자 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상징합니다. 곧 평화의 세계로 향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곧 시인은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내를 건너서 고개를 넘어서 숲으로 마을로 가고 있습니다. 매일이 새로운 날인 것입니다.
지난 1년반 동안 팬데믹 가운데 우리가 지내 왔고 아직도 얼마가 될지 몰라도 팬데믹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데 그동안 매일 새로운 길을 희망 중에 기쁘게 걸어 가셨다면 정말로 복된 삶을 사신 것입니다.
남은 팬데믹 가운데도 같은 새로운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물론 팬데믹 후에는 두말할나위 없구요. 그러면 어떤 분들이 이런 축복을 매일 누릴수 있을까요?
오늘 출팬데믹 12번째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바로 열번째 재앙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열번째 재앙은 잘 아시는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는 재앙입니다. 반면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유대인들의 집은 죽음의 천사가 건너 뛴 날입니다. 그래서 Passover, 건너 뛰었다고 해서 유월절이 된 것입니다.
사실 오늘 바로 이 유월절을 기념하게 된 이 재앙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궂이 다시 윤동주의 ‘새로운 길’을 소개해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열번째 재앙 곧 장자를 치는 재앙에 대해서 경고를 하고 나온 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출12: 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열번째 재앙이 있던 바로 그 달을 첫 달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새로운 달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실은 유대인들에게는 현재 세 가지 달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력, 바로 유월절로 시작되는 달력입니다. 그리고 민간력, 이것은 종교력과 6개월 차이가 납니다. 곧 7월이 1월이 됩니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지키는 양력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머리가 좋은 이유가 몇 가지 달력을 갖고 있어서 그렇지 않나 생각도 해 봅니다.
원래 민간력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제 민간력으로는 7월이 종교력으로 1월이 되는 것입니다. 곧 유월절이 있는 닛산월이 새해가 된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아직도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단기 달력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올해가 서기 2021년인데 단기로는 4354년입니다. 단군이 기원전 2333년에 단군조선을 세웠다고 생각해서 단기는 서기에 2333년을 더해야 합니다.
어느해부터 단기를 사용하지 않고 서기만 사용하게 된 것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그래도 그 때는 다행인 것은 월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늘식으로 하면 4354년이 졸지에 2021년이 된 것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월을 바꾸게 하십니다. 민간력으로 7월이었던 닛산월이 1월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늘 말씀드렸지만 10가지 재앙은 8개월에 걸쳐서 일어났습니다. 곧 9가지 재앙은 앞으로 올 재앙을 준비하는 정도였습니다. 10번째 재앙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온 인류 역사의 운명을 가름하는 위대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단기를 사용하다가 서기를 사용하는 것은 그래도 쉬운데 월을 바꾼다면 얼마나 혼동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새로운 시작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월을 바꾸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날 어떤 일이 일어났길래 새로운 시작의 날이 되었을까요? 출 12: 21, 22절 말씀,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가족수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피를 흘리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행해서 이를 유월절 제사라고 가르치라고 또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가족수대로 양을 잡은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일년의 시작으로 삼게 하시나요? 이는 잠시 후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그 밤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29절,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결국은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라고 합니다. 9가지 재앙까지는 견뎠는데 장자를 잃은 후에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애굽의 장자를 친 것으로 인해 해방이 되었기에 이제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시는 것일까요? 물론 연관은 있겠지만 애굽인과 많은 가축을 죽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것은 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답지는 않은 듯 합니다. 40, 41절 말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말씀은 놀라운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7절에 보면 장정 60만 가량이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은 ‘여호와의 군대’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최고의 명예입니다. 이 표현을 아무에게나 적용할수 있을까요?
성서에서 ‘여호와의 군대’라는 표현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알면 이 표현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곱이 여호와의 군대를 만납니다. 라반의 집에 거의 20년을 살다가 다시 귀향하면서 에서를 만나야 하는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창세기 32:1, 2절 말씀,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님이라 하였더라.”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출애굽을 한 장정 60만명을 하나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군대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60만 장정들은 애굽의 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만났던 신비한 군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무적의 군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을까요? 42절 말씀,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이 밤은 여호와의 밤이 되었는데 이 밤을 거치고 나니 애굽의 종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된 것입니다. 과연 어떤 일이 이 밤에 일어났었나요? 10번째 재앙의 밤인가요? 결코 이 재앙으로 인해 새로운 시대를 오게 하는 여호와의 밤이 된 것은 아닐줄 압니다.
이 밤에 이스라엘인들은 양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이 양은 하나님의 어린 양을 예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민족을 위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하나 뿐인 아들을 잡으신 밤인 것입니다.
바로는 9가지 재앙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자기의 장자를 비롯 모든 애굽인과 가축들의 장자를 잃자 이스라엘인들을 놓아준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보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모든 장자만을 치신 분이 아니라 당신의 장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치신 분이시라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당신의 아들까지 버리시면서 싸우시는 하나님을 과연 그 누가 이길수 있겠습니까? 이 하나님은 세상 그 누구도 감당할수 없는 분이신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까지 내 놓고 싸우는 사람도 이길수가 없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당신의 아드님도 내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곧 9가지 재앙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재앙의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밤을 여호와의 밤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바로는 이 놀라운 사실을 몰랐기에 나중에 다시 이스라엘인들을 잡으로 떠납니다. 다음주에 나누겠지만 그 결과 홍해의 재앙의 희생자가 된 것입니다.
곧 이로서 알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신 것을 믿는 자들은 여호와의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바로처럼 홍해의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여호와의 군대가 될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매일 밤이 여호와의 밤임을 믿는 자들은, 매일 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믿는 자들은 어느덧 하나님을 본받게 되지 않을까요? 이들은 하나님의 희생을 본받아 또한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의 사람들이 되어가지 않을까요? 당신을 본받는 자들과 하나님께서는 늘 함께 하시지 않으실까요? 그러니 이들은 하나님의 군대가 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밤은 여호와의 밤인 것입니다. 이 밤을 기점으로 세상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호와의 밤은 매일 우리에게 열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밤 하나님께서 엄청난 희생을 치루신 것을 믿고 고백한다면 우리에게는 매일 새로운 날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윤동주는 매일 하나님의 엄청난 희생을 믿고 여호와의 밤의 축복을 받았기에 일제강점기 그 어려운 시기를 매일 새로운 길을 가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남은 팬데믹 기간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키시는 하나님의 아픔을 느낀다면 우리는 여호와의 밤을 지내는 것입니다.
최근에 한류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얼마전부터는 자기를 위해서 삶을 포기하는 처음 만난 친구의 모습을…. 오징어게임이 네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90개국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드라마인가 보았는데 기독교를 비하하는 장면이 많아서 안타깝긴 했지만 잘 만든 드라마인 것 같습니다.
섬에서 되어진 이야기인데, 그래도 한 장면은 기독교적인 정신이 담겨져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친구 둘 중에 한 사람만 살고 한 친구는 죽을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한 친구는 자기는 이곳에서 나가도 갈 곳이 없다고 하면서 일부러 져줍니다.
안타깝게도 친구 덕분에 살았지만 다음에 죽게 되긴합니다. 그래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살아서 그 섬에서 나가서 가족을 다시 만나 살게 되었다면 자기 대신 죽어 주었던 그 친구를 과연 잊을수 있을까? 아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요?
이와 같은 새로운 길을 가는 축복은 팬데믹 가운데에도 우리 모두에게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날 새로운 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코 두려움 없이 하루를 시작합니다. 방금 여호와의 밤을 거쳤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키신 하나님의 심장의 박동소리를 밤새 듣는 자들입니다. 그리고는 새벽녁과 함께 새로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삶에 우리는 모두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초대를 받고 새로운 길을 간 한 소녀를 소개해드립니다. 1900년대 조선에서 헌신한 한 여선교사가 옥분이라는 한 아이를 소개합니다. 14살이 되던 어느 추운 겨울에 주인에게 이끌려온 옥분이는 손발에 온 통 동상에 걸려 거동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입원을 하여 정성껏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은 두 손과 한쪽 발은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옥분이는 가난에 찌든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남은 동생들의 양식을 위해 부잣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부잣집에서도 굶주림과 추위는 계속되었고 오히려 고된 일과 매질까지 덧붙여졌습니다. 날이 추워지자 손가락 발가락에 하나씩 동상에 걸려 힘겨운 삶의 무게에 고통마저 더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동상은 더욱 심해져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서야 주인은 옥분이를 데리고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병원에 데려와 ‘가능한 빨리 나아서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의사에게 부탁하곤 떠났습니다.
그해 연말 크리스마스가 되자 옥분이는 그동안 자신을 잘 돌봐주던 선교사의 방을 찾았습니다. 그 선교사는 새해가 되면 본국으로 되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옥분이는 본국에 되돌아가면 그곳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선교사에게 부탁합니다.
“옥분이, 사람들이 옥분이를 모를 텐데 너를 뭐라고 소개할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 옥분이라 전해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라고? 세상은 너무 크고 네가 가장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내 친구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쩌지?”
“그럼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라고 전해 주세요.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조선에선 오늘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래 네가 가장 행복한 이유를 말해 줄 수 있겠니?”.
“그럼요. 첫째는 제 모든 고통이 사라졌기 때문이고요. 둘째는 여기 있는 몇달 동안 매를 한 번도 맞지 않았어요. 셋째는 이곳에 온 후론 배고픈 적이 없어요. 넷째는 의사선생님이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여기 계속 있어도 된데요. 다섯째는 크리스마스 트리요. 그렇게 예쁜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이제 다 했니?”
“아뇨, 하나가 더 남았어요. 선교사님이 예수님께 기도하면 손발이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죄를 씻어주신다고 말했잖아요. 그래서 믿고 기도했더니 두 손이 없고 발이 하나밖에 없는 나 옥분이도 예수님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기도했더니 그 분이 정말 들어주셨어요. 내 죄를 다 가져가셨어요. 그리고 나를 자녀삼아 주셨어요. 나를 사랑하셔요. 나는 진심으로 그걸 알아요. 이만하면 충분하겠죠. 내가 가장 행복한 이유가.”
옥분이는 새로운 그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발이 하나밖에 없을지라도…. 왜냐하면 여호와의 밤을 지낸 자들에게는 새벽이 오기 때문입니다. 출팬데믹의 새벽이 우리를 매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윤동주의 ‘못 자는 밤’을 소개해 드립니다.
하나, 둘, 셋, 넷
……………
밤은 많기도 하다.
윤동주가 어떤 생각으로 이 시를 지었는지는 몰라도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여호와의 밤은 많기도 합니다. 매일 밤이 여호와의 밤입니다.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고 또 내어주는 밤…. 이를 믿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출팬데믹의 축복에 동참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