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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팬데믹 XIII: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출애굽기 14: 15-31 (10/24/2021)

카프카의 ‘돌연한 출발’이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고백입니다.

 

“나는 내 말을 마굿간에서 끌어내 오라고 명했다. 하인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몸소 마굿간으로 들어가 말에 안장을 얹고 올라탔다. 먼데서 트럼펫 소리가 들려오기에 나는 하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영문을 몰랐다. 그 소리조차 듣지 못했던 것이다. 대문에서 그가 나를 가로막으며 물었다.

‘어딜 가시나이까? 주인 나리.’

‘모른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나 내처 간다. 그래야만 나의 목표에 다다를 수 있노라.’

‘그렇다면 나리의 목표를 아시고 계시는 거지요?’

‘그렇다. 내가 여기를 떠난다고 했으렷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니라.’

‘나리께서는 양식도 준비하지 않으셨는데요.’

‘여행이 워낙 길 터이니 도중에 무얼 얻지 못한다면, 나는 필경 굶어 죽고 말 것이다. 양식을 마련해 가봐야 양식이 이 몸을 구하지는 못하지.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그야말로 다시 없이 정말 굉장한 여행이란 것이다.’”

 

솔직히 제가 카프카의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고 어느 책에서 인용한 것을 읽고 제 마음에 깊이 감명을 주었던 이야기라서 소개해 드립니다. 곧 전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이 대화가 오고 간 것인지는 제가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읽고 저는 이렇게 추측해 보았습니다. 현실을 예리하게 비판적으로 보곤 한 카프카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대충 이렇게 생각할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깊은 심층에는 놀라운 세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를 가려면 현재 있는 삶에서 떠날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떠나기에는 두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철저한 준비 없이는 떠날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를 하고 떠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철저한 준비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곧 이 글의 주인공은 과감하게 떠나는 사람입니다. 이는 모든 인간의 깊은 심층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반면 하인은 철저하게 현실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모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무조건 떠나려하는 주인을 말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하인이 이깁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굉장한 여행은 꿈의 여행으로 전락합니다.

 

이러한 꿈의 여행을 430년간 꾸어 왔던 민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30년간 꿈의 여행을 꿈꿀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애굽의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굉장한 여행은 정말로 꿈의 여행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430년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종살이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이젠 꿈의 여행이 현실이 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 심층에 자리 잡고 있었던 굉장한 여행은 실현될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동안은 바로가 가로막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더 이상 바로가 가로막고 있지 않다는 놀라운 증거가 출애굽기 13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3: 21, 22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에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렇게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주 말씀드린대로 이제 여호와의 밤을 거친 이들은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으니 당연히 대장되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드디어 굉장한 여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준비도 완벽합니다. 그동안 10가지 기적으로 함께 하셨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니 말입니다.

처음 카프카의 이야기를 빌리면 두 가지 조건이 다 채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보여준 인간 심층에 있는 굉장한 여행에 대한 꿈이 이루어지고 있고 한편 하인이 보여준 완벽한 준비도 갖추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완벽한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을까요? 외적인 준비는 완벽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은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출팬디믹 마지막 설교를 드립니다. 바로 완벽한 준비를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말씀을 통해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굉장한 여행을 하고 있는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닥칩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 왔는데 홍해 해변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진 좋은데 뒤를 보니 바로와 군대가 뒤쫓아 오고 있습니다. 결국은 함정에 빠진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은 오도가도 못할 곳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굉장한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생각하며 큰 실망에 빠졌을줄 압니다. 이에 백성들의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모세에게로 향합니다. 출 14: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 누구도 이런 상황에 빠진다면 당연히 이런 원망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무척 실망하셨을줄 압니다. 지난 8개월간 10 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이를 벌써 다 잊었던 것입니다. 한편 잊지 않은 한 사람은 있었죠. 14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는 10가지 재앙으로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능히 이 번에도 건지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만이 굉장한 여행을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 외침을 듣고 기뻐하셨을까요? 아니면…. 15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도리어 꾸짖는 말투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라는 말이 도리어 거슬리신 듯하십니다. 물론 모세는 하나님께서도 그동안 당신의 생각대로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으니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고 가만히 있는 것이 믿음이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믿음의 고백을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두 가지 면을 보여주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나는 가만히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하나님과 모세의 믿음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모세는 홍해 앞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무슨 일을 터뜨리실 것이라고 믿는 놀라운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알아서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셨던 믿음은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믿고 홍해에 발을 넣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홍해에 발을 넣는다는 것은 죽음에 한 발자국 다가서는 것입니다. 곧 모세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면 그 때 홍해를 건널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죽음에 한 발자국 다가서길 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여행에는 완벽한 준비라는 것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물가에 발을 내디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물가는 위험한 물가인 것입니다.

 

물론 출애굽기 기사에는 발을 먼저 담궜더니 홍해가 갈라졌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16절로 이어지는 것을 연이어 읽으면,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백성을 나아가게 하라고 하신 후 곧 바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갈라지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일 좋은 해석은 이스라엘 백성의 발이 홍해물을 밟은 것을 보았을 때 지팡이를 들고 손을 내밀라는 말씀입니다.

 

후에 요단강을 건너는 이야기를 보면 쉽게 알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3:15, 16a 말씀을 보면,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물에 잠겼을 때 요단강이 갈라진 것입니다.

 

우선 지난주 설교 말씀을 듣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반복을 하면 지난주 10번째 재앙에 대해서 나누었는데 이 밤을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밤이라고 부르셨고 그 이유는 어린 양을 잡으신 밤이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여호와의 밤을 거친 사람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서 모두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가는 곳에는 10가지 재앙을 내린 하나님의 능력이 늘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되기 전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행해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누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의 군대가 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것을 원하십니다. 믿고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광야가 오아시스가 된 후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발을 디딤으로 인해서 광야를 오아시스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군대에게 원하시는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홍해를 밟을 때 홍해를 가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나머지 일은 또 알아서 다 해결해 주십니다. 17, 18절 말씀,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나머지 어떻게 된 것은 모두 잘 아실줄 압니다.

 

출팬데믹 씨리즈 초반에 말씀드렸지만 출애굽은 모세의 순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독사의 꼬리를 잡으면 물려 죽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독사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그 때 다시 뱀은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순종의 지팡이로 인해서 10가지 재앙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순종은 뱀의 꼬리를 잡는 것이 아닙니다. 눈 앞에 보이는 죽음의 바다 홍해에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그 때 홍해는 갈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홍해를 밟는 순간 10가지 재앙을 베푸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홍해를 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른 땅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여호와의 밤을 거친 여호와의 군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후 거의 4천년이 지나면서 홍해에 발을 담그는 믿음의 사람들 곧 하나님의 군사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주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홍해의 물가에 발을 담그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사명이자 특권입니다. 4천년이 지나면서 오늘 우리가 여호와의 군사가 되기 까지 이미 여호와의 군사로서 홍해에 발을 내디딘 많은 분들 중에 한 분을 소개해 드립니다.

 

여호와의 군사가 되어 한국 땅을 개신교 선교사로서는 처음 밟은 분은 칼 귀츨라프 선교사입니다.

 

물론 이전에 카톨릭 신부 선교사들은 방문도 하고 순교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귀츨라프는 유대인으로 폴란드에서 태어나 후에 루터교 목사가 된 후 화란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선교사가 되었지만 일본 및 조선 선교를 시도합니다. 그는 충청도 고대도에 한 달 이상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주민들에게 감자 재배법을 가르치며 한문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한문 소책자를 나누어주고 전도했습니다. 그는 한달 정도만 섬에 머물렀기에 전도의 결실은 없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일기 기도문을 남깁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은혜로 주어질 것을 믿는다. 이것을 기대할 동안, 우리는 그 접근을 앞당기기 위해 매우 애써야만 하며, 힘을 다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십자가의 영광스러운 도를 전파해야 한다. 조선의 왕이 성경전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받기를 거절했는데, 지금은 읽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강경 주변의 모든 관리들과 많은 평민들은 성경을 받았다. ……. 성경은 비록 미약한 시작도 복 주신다고 약속했다. 조선에 더 나은 때가 곧 밝아 올 것이라고 희망하자.”

 

여호와의 밤을 거치면서 그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체험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군사가 되어서 주님을 본받아 먼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홍해와 요단강을 밟은 것입니다. 굉장한 여행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함께 굉장한 여행의 주인공이 되십시다. 주님 오실 때까지 이 굉장한 여행은 끝없이 진행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출팬데믹 13번째 설교 말씀을 전합니다. 벌써 출팬데믹 설교를 시작한지 넉달이 되었습니다. 주기도문 씨리즈를 마치면서 앞으로는 어떤 말씀을 전할까 기도 내지 묵상을 하고 있는데, “내 백성을 보내라”라는 말씀이 생각이 나면서 ‘출팬데믹’ 씨리즈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10가지 재앙을 나누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쪽으로는 한번도 10가지 재앙을 다룬적도 없고 매주 재앙 하나씩 다루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지우고 싶었지만 마음 속에 계속 남아 있어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주석을 보아도 거의 모든 재앙을 해석하는 것이 한 가지 관점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증거라는 멧세지만 주지 매번 특별한 자료는 주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또 망설였지만 그야말로 믿음으로 발을 담갔습니다. 10가지 재앙과 함께 전후 3 가지 본문으로 13번의 씨리즈 설교를 마칠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한쪽으로는 하고 싶은 굉장한 여행이었고 한쪽으로는 여러모로 자료를 찾기가 어려워서 망설일수 밖에 없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물론 홍해와 요단강과 비교할수는 없지만 매주 설교문을 작성하는 저에게는 홍해에 첫 발을 내디딛는 듯한 마음으로 시작한 순종의 여행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각자에게 홍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 가정과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교회를 위해서도 홍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B40, 곧 부르클라인 주민들을 비롯 한인들을 전도하는 것이 우리들의 홍해입니다. 아울러 인종문제 그리고 가난 등 사회문제들도 우리 앞을 가리고 있는 홍해들입니다.

 

이 거친 홍해에 발을 담그십시다. 어느덧 마른 땅을 거니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굉장한 여행을 늘 그리워 하며 사시는 김기석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길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넘실거리는 요단강 물에 첫 발을 내디딘 제사장들의 가슴 서늘한 결의를 떠올린다. 물론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걷겠다고 나섰던 베드로의 비상한 마음도 떠오른다. 길이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 걷는 이가 있어서 길이 생긴다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지도가 있어야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던 한비야가 참 고맙다.”

굉장한 여행의 길을 가는 자들은 완벽한 지도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밤을 통해 당신의 아들을 어린 양으로 희생시키시는 하나님을 매일 만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이 우리들의 완벽한 지도입니다.

 

어린 양과 함께 땅을 밟고 물을 밟을 때 기적의 땅 기적의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기적의 땅 기적의 바다가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은 여호와의 군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팬데믹이 완성되었을 때 여호와의 군대가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나아갈 때 출팬데믹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굉장한 여행은 우리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홍해는 갈라질 준비를 마쳤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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