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언젠가 저희 교회 강단에서 선포된 설교 말씀 일부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언제 어느 분이 하신 설교인지 추측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북두칠성과 같이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지는 몰라도 우리가 서로 단합하고 단결해서 힘을 합할 때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가 사는 세계는 종교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캄캄한 밤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어두운 밤을 비치는 하나의 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약 5년전에 저희 교회가 60년사를 발간했는데 그 때 수고하신 역사편찬위원들께서는 쉽게 짐작하실줄 압니다.
저희 교회가 68년전 바로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초대목사님이신 박대선 목사님께서, 후에 연세대 총장이 되신 분이죠, 마태복음 2:7-10 절 말씀으로 ‘보스톤 성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10절 말씀을 봉독해 드립니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박 목사님은 새롭게 창립되는 보스톤 한인 교회가 예수님 당시 어두운 유대 땅을 밝혔던 별 처럼 세상을 밝히게 될 것을 바라시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세월이 흘러 오늘 창립 68주년 기념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본문 말씀을 68주년 기념예배 설교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최소한 첫 절이 주는 느낌은 ‘보스톤 성좌’로서 68년을 지낸 보스톤 한인 교회 교우들께 드리는 설교와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마음에 두라.”
이제 68년이 지난 후 저희 교인들이 패역해졌다고 생각해서 제가 이 말씀을 본문 말씀으로 삼았을까요? 이럴 때는 이 말씀의 배경을 살피면 큰 도움이 됩니다.
주석가들은 오늘 본문 말씀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이스라엘민족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패역한 자’라고 시작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바사왕 고레스를 일으켜서 이스라엘민족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키는 계획인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 하나님의 뜻을 좋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다시 이방인의 힘을 빌어서 바벨론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차례 고레스를 하나님의 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시간상 소개해 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왕중왕인 고레스를 당신의 종으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해방을 완성시키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은 해방은 좋은데 고레스를 통한 해방은 달가와 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들 주제도 모르고…. 그러니 ‘패역한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요?
그런데 패역한 자들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패역한 자들을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온 세상에 단 하나이신 하나님으로 찾아 오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으로 만나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곧 이 말씀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옛적 일을 기억할 때 패역했던 생각이 사라집니다. 새롭게 하나님을 만납니다. 아울러 옛적 일을 기억하지 않을 때 패역한 자로 남아 있습니다. 아니 패역해 집니다.
패역해지고 아니고는 자기도 모르게 진행되는 사건입니다. 이는 옛적 일을 기억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오늘 박대선 목사님의 첫 설교를 소개해 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옛적 일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동안 패역해져 있었다면 옛적 일을 기억함으로 우리는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패역해져 있지 않았다면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하여 우리는 옛적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시작부터 미래를 알리셨다는 것입니다.
보스톤 남쪽에 Easton 타운에 저희 교단 교회 Good Shepherd교회가 있습니다. 두 부부 목사님들이 개척을 하였고 오래 전 저희 교회도 그 교회 건축기금을 위하여 자선 음악회를 열었던 교회입니다.
교회가 잘 성장하던 중 10년이 지나서 두 목사님은 교회의 장래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미래에 대한 열쇠를 어디서 찾을까 모색하면서 새 교우님들에게 있을까 아니면 이웃 교회에 있을까 고민하곤 하였습니다. 그 열쇠를 못 찾았던지 얼마후 다른 지역으로 떠나셨습니다.
이번주 설교 준비를 하면서 그 교회 목사님들이 떠올랐고 그 열쇠는 멀리 있지 않았고 바로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희 교회에도 여러 차례 오셨던 UCLA에서 교회사를 가르치시는 옥성득 교수님이 ‘첫 사건으로 본 초대 한국교회사’라는 책을 지으셨습니다. 45 가지 주제를 가지고 한국 교회에 있었던 첫 사건들을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몇 주 전에 첫 개신교 선교사로 귀츨라프를 소개해드렸는데 귀츨라프의 이야기가 제일 먼저 소개되어집니다. 그리고는 첫번째 세례 교인 , 첫 교회 등 소개되어집니다.
머릿말을 한 사자성어로 시작합니다. ‘음수사원’ ‘飮水思源’: 음수, 물을 마실 때는; 사원, 근원을 생각하라.
‘물을 마실 때는 근원을 생각하라.’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옥 목사님은 한국 교회사를 연구하시는 분이신데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근원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합니다.
“연어가 그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 최후를 맞이하듯, 근본 파종지에는 새 시대를 위한 종말이 잉태된다.”
곧 옛적 일을 기억하는 자들은 미래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미래를 위한 설계도가 축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해 저로서는 27번째로 창립예배 설교를 드리는데 처음으로 박대선 목사님의 첫 설교 말씀을 인용하게 되어서 송구스러운 마음 그지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이라도 이렇게 소개해 드릴수 있는 것은 60주년 역사 편찬 위원들의 수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교회는 ‘보스톤 성좌’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시작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가 첫 희년을 지나고 이제 제2의 희년을 향해 가는데 제3 제4 제5…. 오랫 동안 ‘보스톤 성좌’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되길 기원합니다.
그런데 미래를 위한 설계도는 근원 곧 시작에만 있을까요?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이 누구겠습니까? 처음에 말씀드린 바사왕 고레스입니다. 고레스를 통해서 해방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존심 강한 이스라엘민족에게는 큰 수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를 보내서 옛날 출애굽처럼 해 주시기를 바랬는데 고레스를 통해서 역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놀라운 교훈이 있습니다.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을 때 발생했던 모든 피하고 싶은 역사도 담대히 마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슬픈 역사를 없던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옛적 일을 기억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곧 옛적 일을 기억하는 삶은 시작만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중요한 사건들 특히 잘못 된 사건들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바로 잡기 위해 우리에게 불편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헨리 밀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으려는 모든 것, 그래서 피하려는 모든 것, 부정하고, 폄하하고 멸시하는 모든 것들은, 실은 아름다움과 기쁨과 힘의 근원이 될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마주한다면….”
우리가 피하고 싶은 과거 역사 안에 도리어 놀라운 지혜와 미래를 볼수 있는 안목이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늘 추수감사주일이자 68주년 기념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은 처음 시작에 대해서 새롭게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 안에 있는 보화를 찾아야 합니다.
아울러 지난 68년의 일들 특히 아픔을 주었던 일들에게도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미래를 향해 뻗어 갈수 있는 지혜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 거의 2년간 전세계는 코로나로 인해서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교회도 매한가지입니다. 아니 교회가 가장 크게 영향 받은 곳 중에 하나일줄 압니다.
이번 코로나를 계기로 많은 목회자들이 미래를 더욱 불안해 하고 있고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짧은 머리로 미래를 과연 내다 볼수 있을까요? 미래학자들의 책을 보고 또 본다면 알수 있을까요? 다음에는 코로나가 아닌 완전히 다른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압니까? 미래학자들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미래를 헤쳐 가는 길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옛적 일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들은 옛적 일 한 가운데 함께 하신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과거를 생각하며 감사하십시다. 과거 안에 미래에 대한 열쇠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감사의 마음으로 마주하는 자들에게는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십니다. 12, 13절,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내게 들으라. 내가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나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저희 교회로 하여금 ‘보스톤 성좌’로 삼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받으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박대선 목사님께서 귀국하신 후 오랜 후에 다음과 같은 서신을 쓰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생각하고 교회의 유지, 경영 등을 고려해서 그런 의견을 낸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섯 개의 감리교회에 또 하나의 감리교회의 간판을 다는 것에 대해선 절대로 반대합니다. 우리가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향에 와서 사는데 여기 와서까지 감리교다 장로교다 하고 경쟁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여기 와서는 교파 냄새를 내지 말고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와 조직을 만들면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교인 증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약 30년 후 곧 1985년에 미국 장로교에 속하게 되지만 박 목사님의 정신을 이어 받아 그 때까지 30년간을 초교파로 남아 있었습니다. 요즘은 장로교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박 목사님의 정신이 계속 저희 교회에 남아 있어서 지금도 초교파적인 사역에 앞장 서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매년 교회 협의회 장학금을 내고 있고 교회협의회 행사에 늘 찬양대가 섬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BNI에 저희 교우님들이 가장 많이 기여를 하기에 지금 7년째 초교파 사역을 지속할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기독실업인협회를 통해서도 수고하십니다. 교회밖으로는 한인회 시민협회 등을 통해서도 많은 분들이 수고하셨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노회와 총회 NCKPC까지 여러분들이 수고하시고 계십니다. 교회를 대표해서 국내선교위원회 해외선교위원회 정의 평화 환경 위원회등 대외 할동에 많은 분들이 수고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들을 포함해 전 교인 모두가 보스톤 성좌를 구성하였습니다.
초대 목사님 한 분의 생각이 이처럼 소중한 열매를 맺고 있는데 이제는 이 시대에 맞게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할 때입니다. 생각을 새롭게 하는 길은 하나입니다.
“옛적 일을 기억하라.”
우리를 위해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한편 앞으로 보스톤 성좌를 이룰 사람들은 지금 자라는 주일학교 썬플라워 자녀들입니다. ransome 중고등부 학생들입니다. 그리고 청년들입니다.
그러므로 삼세대가 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옛적 일을 기억하십시다. 옛적 일을 기억할 때 우리는 우리 자녀들 안에 거하시는 주님의 빛을 보게 됩니다. 아울러 자녀들은 우리들의 밝은 얼굴을 보며 어두움을 밝히는 새로운 별들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