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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군대” 사무엘상 22: 1, 2 (12/26/2021)

제가 고등학교 시절 교회 수양회가 김용기 장로님이 세우신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열린적이 있습니다. 늘 영락교회 기도원에서 하다가 아주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까지 종종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은 귀담아 듣곤 합니다.

한 번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방문하여 식사를 한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늘 습관처럼 박 대통령은 식기도를 안 하고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김 장로님이 자기가 운영하는 농군학교에서는 누구도 식기도를 하지 않고는 식사를 할수 없다고 해서 박 대통령도 기도를 받고 식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얼마전에는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 접했는데, 이 목사님도 가나안 농군학교를 방문했었습니다. 건물 뒤편에 밭이 있는데 거기에는 고구마가 거의 아기 머리통만한 고구마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이렇게 큰 고구마를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종자가 다릅니까? 무슨 특별한 비료를 사용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김을 맬 때마다 호미 날로 슬쩍슬쩍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고의로 고구마에 호미 날로 상처를 내고 아물면 또 상처를 주고 그렇게 하다보니까 고구마가 열 받아서 이렇게 커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송년예배를 드립니다. ‘이 모든 것을 보라’ 이사야 48장 6절의 말씀을 붙들고 시작한 한 해를 보내면서 함께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는 가장 큰 이유는 올해초 신년예배를 드릴 때는 온라인 예배로 드리고 아주 적은 숫자의 교우님들만 대면으로 예배를 드렸지만 이제는 아직 팬데믹은 끝나지 않았지만 원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대면으로 예배를 드릴수 있게 됨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좀 석연치 않은 마음도 있을줄 압니다. ‘이 모든 것을 보라’라는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지난 한 해 동안 놀라운 일이 펼쳐질 것을 기대했고 곧 팬데믹도 다 마치고 모두가 기쁨으로 전처럼 대면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것을 은근히 기대했을텐데 말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보라’라는 표어는 오늘 송년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에게 어떤 도전을 줄까요? 오늘 송년 예배를 맞이 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삼상 22:1절,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서 아둘람굴에 숨은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다윗의 생애를 간단히 정리해 드리면 다윗은 15살에 사무엘로 부터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서 사울왕을 만나게 되는데 그 때부터 다윗의 광야의 삶이 시작됩니다. 곧 20살부터 10년간 30살까지 사울왕에게 쫓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5년 후 왕이 된 것은 아니고 도리어 왕좌를 빼았길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울에게 쫓겨 다닙니다. 장장 10년간…. 어찌보면 10년간 허송세월한 것 같이 보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1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30살에 왕이 되어서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10년 간 광야 생활을 하던 중 있었던 사건중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사울에 쫓겨서 급기야 이른 곳이 아둘람 굴입니다.

 

저도 신학생 시절 이스라엘을 가 보았는데 그 때 아둘람 굴과 같은 곳을 가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지형은 특이해서 사람들이 살수 있는 큰 굴이 많이 있습니다. 다윗은 아둘람 굴에 들어가 숨은 것입니다.

그러면 아둘람 굴에 숨어서 다윗은 무엇을 했을까요? 어떻게 하면 사울을 이길까 궁리했을까요?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지은 시로 알려진 시가 두 편이 있습니다. 57편과 142편입니다. 이 시들을 보면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무엇을 했을 것인지 짐작이 갑니다.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저는 아마 142편을 먼저 짓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먼저 다윗은 자신의 사정을 아룁니다. 1-3절,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다윗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알수 있는 것은 다윗은 혼자 아둘람굴 속으로 피해서 아무도 듣지 않으니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 말씀,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습니다. 다윗은 홀로 아둘람 굴에서 외롭게 하나님께 외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홀로 이 고통을 이길수 있는 이유가 하나 있었습니다. 5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 약속 중에 하나가 물론 이 고백에는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왕으로 세우시겠다는 약속이었을줄 압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자기 머리에 기름을 부었으니 말입니다.

곧 다윗은 눈에 보이는 것은 왕의 길이 아니라 거지 중에 상거지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그의 마음에는 깊은 약속에 대한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거지 중에 상거지 라고 말씀드렸는데, 오늘 본문 말씀 바로 전 이야기는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가다가 이방인 곧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가는데 그 앞에서 침을 흘리며 미친 체합니다. 그래서 가드 왕이 죽일 가치가 없다고 해서 살려 둔 것입니다. 그 후 아둘람 굴로 도망 온 것입니다. 정말로 거지 중의 상거지가 되어서 아둘람굴로 도망 온 것입니다.

 

거지 중에 상거지가 되어서 아둘람 굴에 와서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백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약속은 더욱 자신 안에서 커져 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다윗은 두 가지를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과 아울러 주위에 의인들이 자기를 두를 것을…. 이는 곧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고백이 어떻게 이루어지죠? 고백의 첫번째 응답으로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아둘람굴로 모여 듭니다. 이 중에는 당연히 부모님 곧 아버지 이새와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든든해졌을까요? 그런데 가족만 모여든 것이 아닙니다. 본문 2절 말씀,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어떻게 소식을 들었던지 다윗에게로 몰려 든 것입니다.

사울왕은 이들을 거들떠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사울왕과 주위 사람들의 횡포로 인해서 많은 고통 가운데 거했던 자들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착실하게 살려고 해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이를 풀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보면 예비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곧 다윗의 군대가 됩니다. 아니 이들이 바로 다윗의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다윗이 무엇을 간구했죠?

“오늘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한편 이들은 어떤 자들이죠? 처음에 고구마 예화에 빗대어 보면 이들은 호미의 날로 슬쩍 슬쩍 긁힘을 당한 자들이 아닐까요? 물론 세상 권세자들로부터 당했겠지만 이를 허락하신 이는 분명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광야의 시간을 허락하신 이도 하나님이신 것처럼….

다윗이나 다윗을 따라 온 400명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호미로 슬쩍 슬쩍 긁힘을 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로 인해서 다윗의 마지막 기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다윗은 상처 투성이인 의인들로 둘러 쌈을 입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공신들이 된 것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 같지만 세계 미술사에 빼 놓은수 없는 화가 중 한 사람이 앙리 마티스입니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세잔느를 생각하고 있는데 세잔느의 영향으로 두 사람이 미술계를 이끌어 가는데 한 사람이 피카소이고 또 한 사람이 바로 마티스입니다.

그런데 마티스가 화가가 된 계기가 있습니다. 뒤늦게 화가가 되었는데 맹장염을 앓게 되었고 어머니가 그림 재료를 주어서 침대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부터 그림에 재미를 붙여서 야수파를 탄생시킵니다.

한참 활약을 하는데 갑자기 암에 걸립니다. 더 이상 전처럼 그림을 캔버스에 그릴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종이를 오래서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이도 유명한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곧 마티스가 그토록 크게 공헌할수 있었던 계기는 맹장염과 암투병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계적 미술계를 이끌어 갈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 세워졌는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나라인 이스라엘을 이끌어 갈 사람들을 여러모로 고통을 당한 자들로 가득 채우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다윗은 400명의 군인들 하나 하나 안에서 마티스와 같은 놀라운 재질들을 보게 되지 않았을까요? 물론 미술적 재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에서 필요한 재질들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윗은 아둘람 굴에서 또 하나의 시를 쓰는데 바로 57편입니다. 저는 이렇게 상상해 봅니다. 다윗은 400명의 상처받은 군사들을 보면서 더욱 큰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이 펼쳐질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드높으신 영광을 하늘 위로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8절 말씀입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역사의 새벽을 오게 할 것이라는 놀라운 고백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노래로 깨우겠다는 것입니다.

노래가 언제 파워가 있습니까? 악보에 맞추어서 좋은 기술로 음악이 완성되나요? 삶에서 나오는 확신 없이 훌륭한 음악이 나오지 못합니다. 다윗은 400명의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놀라운 약속을 믿고 노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그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벽을 깨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노래는 이루어졌습니다. 사울과 다윗으로 나뉘어졌던 이스라엘은 통일국가가 되었으며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물론 거의 10년 후에…. 그러나 혼자 한 것이 아닙니다. 400명의 상처 투성이의 군인들과 더불어 물론 후에는 600명이 되었구요….

 

지난 1년간 기도 제목이 이루어진 것도 많이 있습니다. 각자의 삶에서 또한 교회적으로…. 이 시간 다시 나열할수는 없습니다. 한울타리와 연례보고서를 통해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나눌수 없었던 것들이 있는데 바로 우리가 당한 억울한 일들입니다. 여러 가지 상처입니다.

 

저에게도 1년간 늘 반복되었던 상처가 있습니다. 교회에 오면 교회 전체를 둘러 봅니다. 그런데 팬데믹 후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ECC Chapel입니다. 저는 교회를 둘러 볼 때 꼭 들리는 곳이 두 군데가 있는데 중고등부실과 ECC Chapel입니다. 다행히 이젠 팬데믹이 좀 풀려서 중고등부실은 중고등부와 함께 청년2부가 사용합니다.

ECC Chapel은 감사하게도 요즘 청년1부가 금요 모임을 그 곳에서 갖고 있지만 주일에는 썬플라워 자녀들이 아직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Chapel에 앉아서 잠시 기도드리곤 합니다. “속히 저희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벌써 거의 2년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기도드렸습니다.

채플에 들어 갈 때마다 마음이 상합니다. 하나님께서 호미로 슬쩍 슬쩍 긁고 계심을 느낍니다.

 

제가 쉐마의 밤에 자주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삼 세대 교회의 특징은 숫자가 아니라 인물을 키우는 것임을…. 인물이 자라나려면 호미로 슬쩍 슬쩍 긁혀야 하는 것 같습니다.

 

교우 여러분,

일년간 받은 축복으로 인해 감사드리십시다. 특히 일년간 받은 호미 날의 긁힘으로 인해 감사드리십니다.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긁힘을 많이 받은만큼 더 놀라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제야 지난해 표어를 ‘이 모든 것을 보라’라 주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다윗의 군대가 되어 있는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보라.”

 

말씀을 거둡니다.

미주 크리스챤 신문 발행인이신 김성국 목사님께서 당신의 글에 어느 교우님의 대중 기도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기도를 멈추지 마라

눈앞의 상황이 마음을 눌러도

원망치마라 너의 입을 지켜라

저들은 너의 입을 보고 있다

마음을 뺏기지 마라

내가 널 도우지 않는단 소리에

너의 모든 게 모든 게 불리해도

너는 기도를 계속해라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너의 그 모든 상황을

바로 역전시키리니

저들의 힘이 너를 압도해도

저들의 힘이 네 숨을 조여도

너는 보리라 기도의 능력을

내가 역전시키리라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잠시도 쉬지 않고

모든 것 지켜보고 있으니

바로 역전되리라

이제 역전되리라.”

 

오늘날 다윗의 군대의 기도가 아닐까요? 우리들의 기도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해 모두 다윗의 군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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