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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 시편 110:1-7 (10/23/2022)

먼저 1916년 10월 12일 아틀란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한 분의 유언을 소개해 드립니다. 혹시 누구일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쇠약한 몸으로 소파에 앉아서 옆에 있는 도우미에게 말합니다.

“나는 여행할 수 있어. 갈수 있어.”

도우미가 묻습니다.

“한국으로요?”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날 하나님 품에 안깁니다.

 

이 분의 유언을 들으면 얼마나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 땅을 다시 밟기를 원하셨는지 알수 있습니다. 바로 최초 한국 선교사 중에 대표적인 분이신 언더우드 선교사님이십니다.

그후 100년이 지난 2016년 언더우드 선교사의 서거 100주기를 맞이하여 언더우드의 자손들이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3, 4, 5대 후손까지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증손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한국이 의료및 학교와 함께 일본 중국으로 뻗어나가고 전 세계로 뻗어나갈 거라고 하셨죠. 한국이 의료, 교육, 기독교를 전세계에 전파할 것이라고는 비젼을 갖고 계셨어요.”

 

요즘 한류라고 해서 K-Pop, K-Drama, K-Food 최근에는 K-classic이라는 말들이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을 미리 내다 보신 분이 언더우드 선교사님이신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은 전 세계가 한글을 배우기 위해서 무진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쉽게 접할수 있습니다. 몽골에서는 한글이 영어와 나란히 제2 외국어가 되어 있고, 이란과 같은 나라에서도 한글을 배우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려 한글 학원에 등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한국 사람인 저도 종종 깜짝 깜짝 놀라곤 합니다. 우리는 미국에 살고 공부하면서 영어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도리어 많은 사람들이 한국말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느덧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를 미리 보셨습니다. 아니 그 분의 꿈이셨습니다. 물론 그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을 때는 1916년 곧 일제 강점기가 막 시작될 무렵입니다. 일제의 한국문화 말살 정책이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이럴 때 하늘 나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때 꿈을 꾸었습니다. 일제의 한문화 말살 정책을 넘어 온 세계가 한 문화를 쫓아 올 때가 올 것을…. 그가 부르심을 받은 후 그가 뿌린 씨앗들은 험한 일제 강점기를 뚫고 자라 열매를 맺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기적과 같은 일들이 한국 땅에서 일어날수 있었을까요? 또한 어떻게 이런 위대한 일들이 새롭게 펼쳐지게 될까요? 오늘 청년회 헌신 예배를 드리는데 저희 교회 청년들이 이런 놀라운 주님의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길 바랍니다. 1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다윗은 아직 육신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누구인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들의 특징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잘 아는 자들이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됩니다. 다윗도 위대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울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성부 성자 하나님을 성령 하나님을 통해 이미 만났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당신의 오른쪽에 앉게 하셨음을…. 오른쪽은 권능의 자리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능을 성자 그리스도에게 주시고 계심을 다윗은 성령을 통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편 위대한 지도자 다윗의 고백은 계속 이어집니다. 2절 말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이제 다윗은 하나님께 아뢰지 않습니다. 메시야로 오시는 주님께 바로 아룁니다.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이 표현에도 위대한 신학적 통찰력을 느낄수 있습니다. ‘원수들 위에서’가 아닙니다. ‘원수들 중에서’입니다. 어떤 주석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enemies around you’. 곧 ‘둘러싸인 원수들 사이에서’입니다. 주님은 원수들 한 가운데 들어 오셔서 권능의 규를 가지고 다스리실 것을 다윗은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 곧 사람들 중에서 다스리십니다.

 

그런데 원수들 가운데 들어오셔서 다스리기 위하여는 한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사람으로 오셨어야 했습니다. 곧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시고 사람들 사이에 보이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곧 사람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는 세상 통치를 사람이 되신 성자 그리스도께 맡기셨습니다.

 

이제 성자 그리스도는 어떻게 세상을 다스릴까요? 다시금 다윗의 놀라운 신학적 통찰력을 기대해 봅니다. 3절,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주님께서 권능으로 역사를 하실 때 많은 성도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겁게 헌신합니다. 그런데 특히 눈에 띄는 그룹이 있습니다. 새벽 이슬 처럼 보이는 무리가 있습니다. 바로 주의 청년들입니다.

 

주님은 권능의 날에 천사들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은 주의 백성을 부르십니다. 그럴수 밖에 주님께서는 지금 사람들 사이에 와 계십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주님은 당신을 닮은 거룩한 당신의 백성들에게 권능을 나눠 주시고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에게….

 

제가 오늘 설교 준비를 위해서 3권의 주석책을 참고해 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세 책 모두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을 세상 나이로 구분하지 않고 모든 믿는 자들 안에 있는 나이를 초월한 새벽 이슬 같은 모습이라고 해석합니다.

 

아마 독자들 중에 청년들이 별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썼나 잠시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물론 일차적으로 동의합니다. 참 신앙인들은 늘 새벽 이슬 같은 모습을 유지합니다. 곧 주의 권능의 날에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는 자들은 평생 새벽 이슬 같은 청년의 정기가 흐르는 자들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에 더해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더우드를 통해서 이루셨던 그런 세상을 뒤흔드는 일들은 그야말로 육신적 나이가 젊은 청년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해 줍니다. 처음 소개해 드린 언더우드는 26살에 한국 선교사로 자원했습니다. 아울러 그와 쌍벽을 이루는 감리교 아펜젤러 선교사님은27살에 한국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한 분이 또 생각나네요. 지난주에 오셔서 은혜롭게 말씀을 전해 주신 박수진 학장님의 어머니도 백인으로 한국 선교사였습니다. 한국 선교를 시작할 때 나이는 23세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모든 신앙인은 새벽 이슬과 같은 청년들입니다. 그러나 그중에 나이가 젊은 청년들을 통해서 세계를 뒤흔드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면 새벽 이슬과 같은 젊은이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4절 말씀부터 새로운 단락이 시작됩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곧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은 다윗처럼 주님을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으로 믿는 자들입니다.

 

멜기세덱은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인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기름진 땅 소돔을 택해 거기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돔이 전쟁에 패하면서 조카 롯도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롯을 구해 돌아 옵니다. 이 때 살렘 왕이라고 불리우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맞이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전리품의 열의 하나 곧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사실 창세기 저자도 이미 멜기세덱을 살렘왕이요 제사장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누구를 위해 있습니까? 죄인들을 위해 있습니다. 그러면 쉽게 이런 결론을 내릴수 있습니다. 주님의 권능에 날에 새벽 이슬과 같은 청년들의 모습은 바로 회개하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자기는 늘 자기를 위해 피를 흘리실 제사장이 필요하다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눈에 늘 눈물이 고여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주님의 권능의 날에 쓰임을 받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죄인입니다.”

 

언더우드의 이야기를 말씀드렸는데, 언더우드는 한국을 위한 새벽 이슬이었음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편 한국의 부흥이 있기까지 곳곳에 새벽 이슬과 같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1907년도 평양에서 일어났던 평양 대 부흥 운동에 대해서 아시는 분도 많이 계실줄 압니다. 그런데 이보다 4년전 1903년에 원산에서 부흥 운동이 먼저 일어납니다. 원산 부흥 운동의 열매로 평양 대 부흥 운동이 일어 났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원산 부흥 운동의 시작은 선교사님들의 회개 간증이었습니다. 하디라는 선교사가 원산에서 열리는 선교사들의 성경공부 겸 기도회에서 강의를 부탁 받았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수년간 전도했으나 사역의 열매는 거의 없었고 개종한 자들도 교회를 떠나고 있음을 보며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연구하며 기도하던 중 자신의 영적 능력의 부족이 사역의 실패 원인임을 발견합니다.

하디 선교사는 자신의 영성 부족과 교만을 고백했고 인종주의에 사로 잡혀 한국인들을 무시하고 깔보았던 잘못을 솔직히 가슴으로부터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에 한국 교인들은 진정한 회개를 눈으로 보게 되었고 교인들도 공개적인 회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원산 부흥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늘 고백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죄인입니다.”

하디 선교사는 새벽 이슬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제사장되시는 당신을 의지하여 회개하는 자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자들을 새벽 이슬과 같은 청년으로 부르십니다.

 

한편 제가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십일조를 드렸겠습니까? 멜기세덱은 왕임을 보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자신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에게서 왔고 아울러 스스로 제사장이 필요한 죄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돈으로 바꿀수 없는 체험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 번 나타나셨습니다. 멜기세덱을 아브라함이 만난 후와 그 전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멜기세덱을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을 만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처음으로 대화를 하셨습니다.

 

눈에 눈물이 고인채 십일조를 드리며 주님의 왕권을 인정했을 때 하나님과 대화자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결과는. 5, 6절 말씀입니다.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제사장이신 주님께서 대장이 되셔서 온 세상의 원수들을 무찌르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승리의 주님과 늘 대화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았던 이유입니다.

 

설교 서두에 언더우드가 한민족의 미래 특히 한류가 온 세상으로 뻗어 갈 것을 예견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단지 꿈이었을까요? 저는 확신합니다. 언더우드는 주님과 대화를 하는 분이셨습니다. 다윗처럼…. 주님과 대화를 통해 주님께서 하실 일을 보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의 눈으로는 조선 땅에서 온 세상의 원수들을 무찌르시는 것을 보시지 못했습니다. 해방이 1945년도인데 언더우드는 거의 30년 전인 1916년에 하나님 품에 안겼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손들이 보았습니다. 사실 원더우드의 아들과 세 명의 손자는 후에 한국 전에도 참여합니다. 이들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본 셈입니다.

한편 언더우드는 자녀들이 보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언더우드가 본 주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7절,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말씀드린대로 언더우드는 26세 때 와서 31년간 사역을 하고 아틀란타에서 57세의 일기로 마칩니다. 그러나 혼신을 다해 일하셨기 때문에 57세로 일찍 부르심을 받습니다. 31년간을 견딜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시냇물을 마시며 그의 머리를 드시곤 하셨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힘들 때마다 시냇물을 마셨고 머리를 들곤 하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청년 여러분,

주님은 왕이요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피곤하실 때마다 시냇물을 마시며 그의 머리를 드셨습니다. 당신을 위해 즐겁게 헌신하는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이 주님을 바라 보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정현종 시인의 ‘비스듬히’라는 시입니다.

 

비스듬히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시냇물을 마시며 고개를 드시는 주님의 모습을 저는 이 시에서 엿볼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시고 사람들 중에 오셨습니다.  비스듬히…. 주님은 비스듬히 서신채로 비스듬히 서 있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당신께 비스듬히 기대는 자들과 함께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새벽 이슬과 같은 청년들에게 비스듬히 기대십니다. 청년들에게 기대신채 오늘도 내일도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청년들이여,

주님께 기대십시다. 주님도 당신께 기대는 청년들에게 기대십니다. 이 때 온 세계를 뒤집는 일들이 시작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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