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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을 부르소서” 다니엘 5:1-12 (2025/3/2)

저의 친구 중 의사이자 시인이 있는데 최근의 자신의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전세계의 의사이자 문학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은 ‘글 짓는 의사들’입니다. 한 사람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뉴욕에서 태어나서 의사가 되고 후에 문학의 길도 함께 간 외과의사 리차드 셀저입니다. 이 분이 제 눈에 띈 이유는 실은 이분이 문학가가 되는 과정에 한국이 큰 역할을 합니다.

의사이지만 이 분은 젊은 시절 군인으로 징집을 받습니다. 원래 미국은 징집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징집되어 와서 전사를 하였습니다. 다행이라 할까 이 분은 한국전이 끝난 후 징집을 받습니다. 그래서 1955년도에 한국에 미군 군의관으로 와서 군복무를 합니다.

후에 쓴 소설 중 하나가 ‘칼의 노래 한국(Knife Song Korea)’입니다. 이 소설은 한국전이 막 끝난 후 시골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면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해서 쓰여졌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자그마치 문학상을 세 차례 받게 됩니다.

이후로 두 권의 좋은 소설을 또 쓰게 되는데 이 세권의 소설은 현재도 의대생들에게는 권장도서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늦은 나이에 쓰긴했어도 ‘칼의 노래 한국’이 셀저를 훌륭한 소설가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추측도 해 봅니다.

본의 아니게 한국에 가서 군대 생활은 하였지만 도리어 그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우연히 이런 남다른 축복을 누렸을까요? 이 분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인종의 벽을 넘을 때 오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축복의 세계가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분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일줄 압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다니엘서 강해를 이어갑니다. 1절,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느부갓네살 왕 이야기는 4장 까지고 이제 5장에는 벨사살 왕이 등장합니다. 주석가들은 실은 4장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의 손자가 벨사살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의상 아들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시록과 같은 장르이니 그래도 전혀 상관이 없는줄 압니다. 오늘은 당연히 5장에 기록된대로 아들이라고 간주하고 말씀을 드립니다.

벨사살 왕이 천 명과 함께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노략한 금 은 그릇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금 은 그릇에다가 술을 담아서 마시기 시작합니다.

자, 그야말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 용으로 만든 거룩한 그릇을 가지고 술잔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술잔치로 흥에 겨워하는데 악은 악을 낳는다고…, 4절,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술에 취한채 왕은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하나님이 자기들이 만든 신 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벨사살은 예루살렘의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5절,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갑자기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자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놀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6절,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천 명과 함께 술자리를 즐겼지만 손가락이 나타나 글을 쓰는 것을 보고 난생 처음 공포가 무엇인지를 경험한 것 같습니다. 얼마나 겁이 났으면 무릎이 부딪칠 정도였습니다.

이에 어떻게 합니까? 공포 가운데서도 일단 손가락이 쓴 글의 내용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당연히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에게 이 글을 해석하면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겠다고 공포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왕은 크게 두려워하며 얼굴색까지 변합니다. 얼마나 어둡게 변했는지 옆에 있는 귀족들도 놀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이를 왕비가 듣고 벨사살 왕께 진언합니다. 12절,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었나이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왕비는 선친 느부갓네살왕이 키운 다니엘을 소개합니다. 벨사살왕은 다니엘에 대해서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실은 선친이 아니라 조부 곧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왕비의 진언입니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이다.”

 

왕비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포로로 끌려 왔고 지금은 먼 나라에서 이민자로 사는 다니엘이 바벨론에 그 누구도 갖지 않은 지혜와 명철과 세계관과 신관을 갖고 있음을….

그동안 바벨론 제국이 느부갓네살왕의 영도 아래 오늘까지 번성할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숨은 공로가 있었음을 왕비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젊은 이민 차세대들로 인해 오늘의 바벨론제국이 번성하고 있었음을….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 내용이고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왕비는 다니엘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래서 왕께 진언한 것입니다.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래도 왕이 무슨 글자를 보았는지 궁금하실테니 먼저 잠시 살피면, 25절을 보면,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내용은 바벨론 나라가 멸망할 것과 메대와 바사 사람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유는 느부갓네살왕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 덕분에 국가의 번성을 누렸지만 벨사살은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게는 더 이상 번성의 기회는 없고 멸망의 길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대로 이루어짐을 통하여 누가 영광을 받습니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습니다.

 

곧 다니엘은 두 가지 면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먼저는 세 친구와 함께 느부갓네살의 바벨론을 왕성케 하였습니다. 두번째로는 다니엘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벨사살의 바벨론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였고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모든 사람이 보게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그런데 자주 말씀드리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는 이민자들의 자녀였습니다. 1.5세 내지 2세 자녀들이었습니다. 이 이민자들이 거대한 바벨론의 흥망성쇠를 좌우하였고 이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진면목을 누가 알고 있었습니까? 왕비입니다. 그래서 왕에게 진언한 것입니다.

“이민자의 자녀 다니엘을 부르소서.”

 

이처럼 지금도 미국 주류 사회가 우리 자녀들을 부르고 있지 않을까요?

 

제가 두 주 전에는 Maryland주에 소재한 솔즈베리한인장로교회에 집회를 다녀 왔는데, 그 교회는 얼마전 30주년을 지냈는데 30주년 문집을 발간하였습니다. 그 중 오늘 이민자들의 모습을 느끼게 하는 좋은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심리학 교수님이 쓴 글이었습니다. 제목은 ‘한인 이민자의 행복감.’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이민 1세들이 행복감을 느끼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소속감이라고 피력합니다. 그래서 종교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교우분들, 그저 주일예배만 참석하시지 말고 소그룹 성경공부나 구역 혹은 부서에 참여하시길 이 기회를 통해 다시 부탁드립니다.

한편 두 번째로는 소속감과 깊은 연관이 되는 건강한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다음의 글로 마칩니다.

“미국과 한국의 문화를 모두 경험한 1세대가 양 문화의 좋은 점을 취사 선택하고 유연하지만 견고한 정체성을 확립한다면 본인과 자녀의 행복감과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니엘이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양쪽 문화를 꿰뚫고 있었으며 그래서 유연하며 견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바벨론인들의 지도자가 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처음 소개한 의사이자 소설가인 셀저 박사도 양쪽 문화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유연하며 견고한 정체성을 소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자녀들도 위대한 지도자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에게는 다니엘뿐 아니라 유길준 선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유길준 선생을 소개해 드릴 시간은 없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그는 메인 주에 있는 당시는 Dummer Academy, 이제는 이름이 바뀌어서 The Governor’s Academy를 잠시 다녔습니다. 그후 귀국합니다.

짧은 서양세계를 맛 보았지만 이를 토대로 서유견문이란 책을 발간합니다. 거의 600페이지가 되는 책으로 서양문화를 소개하는 첫번째 중요한 책이 됩니다. 후에 공립 및 사립 학교에서 교과서로 채택까지 됩니다. 곧 오늘의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이르게 했던 첫 작업을 수행한 분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가 이런 과업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확실한 정체성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및 서양 세계와 연결되는 조국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꿈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조선인이었고 아울러 세계인이었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다니엘과 같은 정체성이 확고한 자녀들이 되도록 우리가 먼저 소중한 정체성의 소유자가 되십시다.

우리 자녀들은 유길준을 닮은 크리스챤 Korean American이 되어 갈 것입니다. 아니 유길준 보다 더 귀한 공헌을 하게 될줄 압니다. 이유는 우리들의 자녀들은 온 인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그야말로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전 인류가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K-Culture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것 갈 아실줄 압니다. 이제는 K-Christianity 아니 KA(Korean American)-Christianity가 세계를 이끌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일에 삼세대 교회인 저희 교회를 그리고 저희 자녀들을 부르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이미 유길준 기념관을 위한 사역에 대해서 들으셨지만 이 사역의 일환으로 줌 콘퍼런스가 열렸었습니다. 5분의 연사가 차례로 나왔는데 그 중 Middlesex County District Attorney, -검사장이라고 할까요-이 분도 연사 중 한분으로 나오셨습니다. 백인 여성입니다. 백인 여성으로 검사장인데 왜 Peabody Essex Museum 행사에 참여하시나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로 시작하셨습니다. 한국전에 참전하셨고 큰 부상을 입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상당한 아버지를 짊어지고 후퇴를 한 한국 군인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이 한국 군인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아버지와 한국 군인은 계속 연락을 하며 좋은 교제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이 모습을 보면서 인종의 벽을 뛰어 넘어 온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결국 검사장이 되었고 지금도 자신이 관리하는 county에서 인종의 벽을 뛰어 넘는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PEM에서 계획하는 유길준 기념관 사역은 너무도 소중한 사역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들으면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군으로 징집되어 한국에 갔지만 도리어 한국의 경험이 이 분과 자녀들에게 귀한 보화가 되었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백인도 한국문화를 접한 후 이런 인물이 되어갔는데 하물며 한인 크리스챤 자녀들이 미국 땅에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질 때 놀라운 인물들이 되어 가지 않을까요?

서로 다투어 우리 자녀들을 부르지 않을까요?

“아무개를 부르자!”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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