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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같은 이” 다니엘 7:9-14 (2025/3/23)

오래전 안식년을 가졌을 때 터키를 방문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의 자취를 비롯해서 초대교회 교인들이 신앙생활했던 배경을 공부하기 위하여 갔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주는 여행이었습니다.

그 중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서 쇼크를 받았다고 할까요. 잠시 혼자 어리 벙벙한 느낌을 가진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디지털 카메라 초기 시절이라 저는 구식 카메라를 들고 다녀서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하여튼 제가 어리 벙벙한 느낌을 가졌던 곳이 어디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 안내인과 대화를 나눈 것은 또렷이 기억합니다. 어느 유적지를 방문했는데 아래 기반만 남았고 윗 건물은 다 없는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유명한 신전이었을지 모릅니다. 안내인이 말하길 여기 원래 있던 건물은 지금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왜 영국 정부에 말해서 다시 가져 오지 않냐고…. 대답은 물론 자기네는 약소국이라서 감히 다시 내어 놓으라고 말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어리 벙벙한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아 이게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구나…!’

 

저와는 비교가 안 되게 어리벙벙한 느낌을 받고 있는 다니엘의 모습이 오늘 다니엘서 7장에 두 번 나옵니다. 15절과 28절. 28절만 봉독해드립니다.

“나 다니엘은 중심에 번민하였으며 내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느니라.”

다니엘은 무엇 때문에 두 번씩이나 번민하며 결국 얼굴빛까지 변했을까요?

 

지난번에 어느 젊은 부부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다니엘을 무척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릴적부터 아마 다니엘을 좋아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하길, 지난 6장 까지는 흥미로운 스토리라서 내용도 쉽고 감동을 받기 좋았는데, 다음번, 곧 오늘부터 하는 7장은 환상이 많이 나와서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도 앞으로 몇 장이 더 남아 있나 뒷장을 넘겨 보면서 “주님, 도와주세요” 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다니엘서 하면 생각나는 것은 왕의 음식을 먹지 않아도 혈색이 더 좋아진 이야기부터, 풀무불에 던져진 세 친구 이야기, 지난번에 나누었던 사자굴에 던져진 이야기 등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왕들의 꿈을 해석해서 일약 통치자가 되어 갔던 이야기들입니다. 그 동안 세 왕이 등장하는데 제일 먼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그리고 바벨론의 벨사살, 마지막으로 지난번 사자굴 사건은 메대 왕국 다리오 왕이 다스릴 때 이야기입니다. 6장까지 펼쳐집니다. 그런데 7장부터는 달라집니다. 어느 왕 시절인지 왕의 이름을 눈여겨보시며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1절,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언제 꿈을 꾸었느냐 하면,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꿈을 꾸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사자굴에 넣은 왕은 누구였죠? 다리오 왕인데, 다리오 왕은 바벨론을 무찌른 메대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바벨론 벨사살 왕 때 꾼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곧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곧 다니엘은 이 환상을 벨사살 왕 원년에 꾸었고 한참 세월이 지난 후 다리오 왕이 다스릴 때 사자굴에 들어갔다가 살아 나온 것입니다. 7장이 6장 보다, 아니 실제로 5장 보다도 앞선 이야기인 것입니다. 5장에는 손가락이 나와 글씨를 쓴 장면이 나오죠. 이로서 알 수 있는 것은, 다니엘서 기자는 시간 순으로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곧 다니엘서는 역사서보다는 예언서, 아니 더 정확히는 계시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일을 자료로 삼아서 미래 일을 알리는 책인 것입니다. 과거 일을 자료로 미래에 되어질 일을 상징어를 사용하여 쓴 계시록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이야기가 복잡합니다. 그러니 혹시 설교가 이해 안 되시면 후에 교회 웹사이트를 통해 원고를 천천히 읽으셔도 큰 도움이 되실줄 압니다.

 

자, 오늘 본문 말씀인 7장의 시작 부분에는 다니엘이 꿈에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단 어떤 환상을 보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시간상 간단히만 요약하면….

큰 바람이 불며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첫째는 사자, 둘째는 곰, 셋째는 표범, 네번째 짐승은 전에 나온 세 짐승과는 비교도 안되게 무섭습니다. 저는 Star Wars같은 영화는 좋아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런데 나오는 무시무시한 짐승들과 같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곧 이 무시무시한 짐승들이 인간 역사를 부서뜨리려고 바다에서 나와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쳐들어 오고 있는듯 합니다. 곧 무시무시한 짐승들이 세상 역사를 다스리는 자들로 보입니다.

먼저 이런 무시무시한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환상은 180도 바뀝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장면입니다. 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왕좌에 앉으셨는데 하나님은 하얀 옷과 양의 털로 치장되어 있지만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지금 하나님께서 흰 옷을 입고 왕좌에 좌정하시고 계신데 주위는 온통 불로 가득 차있고 도리어 불이 강처럼 보좌에서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는데 심판주 앞에 책들이 펴 놓여 있습니다.

곧 첫번째 환상은 세상 역사 가운데 일어나는 장면이었는데, 갑자기 하늘 보좌로 바꾼 것입니다. 곧 세상 역사가 건드릴수 없는 하늘 나라의 역사는 묵묵히 진행되고 있는듯 합니다. 그러면 정말 세상 역사와 하늘 보좌 앞에서 펼쳐지는 위대한 역사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일까요?

 

그런데 여기서 또 한번 다니엘의 환상은 바뀝니다. 세번째 환상입니다. 11절, “그 때에 내가 작은 뿔이 말하는 큰 목소리로 말미암아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체가 상한 바 되어 타오르는 불에 던져졌으며.”

여기서 말하는 ‘작은 뿔’은 8절에 나오는 ‘작은 뿔’입니다. 네 짐승 중에 제일 무서운 네 번째 짐승에게서 나오는 ‘작은 뿔’인데, 앞으로 역사 속에 나타나서 믿는 자들을 괴롭히는 무시무시한 세력을 가진 자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작은 뿔’은 불에 내던져졌습니다. 이 제일 무서운 짐승이 죽은 것입니다. 조폭의 두목이 죽은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12절, “그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남은 짐승들 곧 처음 세 짐승들은 겨우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아니 생명만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잠수하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곧 세상의 왕들이 벌을 받는 장면입니다. 이 땅을 다스리던 짐승들도 결국 더 큰 권세를 가진 이 앞에서 무릎을 꿇을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번째 환상을 보게 됩니다. 13절,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인자 같은 이’는 당연히 예수님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곧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는 장면을 봅니다. 아울러 이 인자 같은 이에 대해서는 놀라운 말씀을 듣습니다. 14절,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모든 나라와 백성들이 이 인자 같은 이를 섬기고 그는 영원한 권세를 소유한다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땅에서 되어지는 환상을 보았고, 두번째로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 되어지는 일을 보았고, 세번째로는 다시 땅에서 되어지는 일을, 네번째로는 다시 보좌 앞에서 되어지는 일을 본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본 환상입니다. 그런데 이 환상을 보고 다니엘은 어떻게 되죠? 15절,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도리어 큰 번민이 생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말씀드린대로, 6장까지는 다니엘은 남의 환상을 듣고 해석하는 자였는데 이제는 환상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상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천사일텐데, 곧 옆에 선 자에게 환상에 대해서 묻게 됩니다.

그 천사의 해석을 요약하면, 인자 같은 이가 짐승들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인자 같은 이가 세상에 내려와 짐승들을 이기고 온 세상을 회복하셨고 성도들로 하여금 더 이상 짐승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기뻐해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인자 같은 이로 인해서 무서운 짐승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는데…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를 깨달았는데도 다니엘의 번민은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28절,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나 다니엘은 중심에 번민하였으며 내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느니라.”

설명을 듣고 해답을 얻었는데 번민은 멈추지 않은 것입니다. 말씀드린대로 다니엘이 두번 번민하였습니다. 15절과 28절에 나옵니다. 그런데 첫번째 번민과 두 번째 번민은 다른 것 같습니다.

첫번째 번민은 아직 천사의 해석을 듣기 전의 번민입니다. 곧 눈 앞에 펼쳐진 환상에 압도되어서 번민하게 된 것입니다. 짐승도 그렇고 또 이어지는 인자 같은 이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통찰력으로는 한계를 느낀 것입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의아한 것은 두번째 번민입니다. 두번째 번민은 천사의 해석을 들은 후입니다. 해석을 들으면서 ‘인자 같은 이’를 새롭게 만납니다. 그런데 번민합니다. 왜 번민했을까요? 인자가 승리하셔서 온 세상 권세를 포함해 모든 성도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계신데?

 

이 때 번민 중에 다니엘은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요? 금방 떠오른 사건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세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의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기에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 안에 한 분이 먼저 와 계셨습니다. 인자 같은 이가…. 곧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세상 가운데 내려 오신 후 세상 권력에 참패를 당하셨습니다. 세 친구들처럼…. 그래서 먼저 풀무불에 던져진 것입니다.

다니엘은 깨닫게 됩니다. 과거이자 미래일을 보게 됩니다. 과거를 통하여 미래를 본다고 할까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가운데서 먼저 네 짐승들에게 참패를 당하실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세상 가운데서 참패를 당할 때까지….

참패를 당하신 후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서 세상과 하나님의 보좌는 연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참패를 통해서….

이것이 구체적으로 약 500년 후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직접 인류 역사 속에서 참패를 당하십니다. 예수님이 잡히실 때 한 제자가 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 자릅니다. 이 때 제자가 왜 잘랐겠습니까?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던 주님께서 능히 제사장 부하들은 물론이거니와 로마군대도 무찌를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무참히 참패를 당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곧 보게 됩니다. 실은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6: 52-53,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주님은 스스로 참패를 당하신 것입니다. 이에 다니엘은 번민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못된 짐승들에게 참패를 당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번민 중에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참패를 통해 승리하셨던 것처럼 자기의 세 친구도 그 길을 간 것을…. 결국 승리자가 된 것을…. 이를 깨달았기에 그는 후에 자신도 사자굴에 내던짐을 당하는 참패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는 사순절 세번째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다니엘의 환상을 보는데 우리도 어리벙벙해지지 않습니까? 짐승들에게 참패를 당하실 수밖에 없는 주님을 생각하면 번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주님께서는 이미 이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셨습니다. 인자 같은 이 곧 승리자가 되셔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번민할 필요는 없을까요? 승리의 찬가만을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순절을 힘들게 지킬 필요가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13장이 우리에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1절,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다니엘서에도 바다에서 나온다고 하였죠.

더 중요한 것은 2절입니다.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여기에 보면 곧 계시록에는 표범, 곰, 사자의 순서로 나옵니다. 반면 다니엘 7장에는 순서가 거꾸러 되어 있습니다. 사자, 곰, 표범. 주석가들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어서 소개해드리지 않습니다. 대신 죄송합니다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세대이든 사자, 곰, 표범이 나타나는데 순서는 하나님 마음대로라는 것이 아닐까요? 역사는 반복되는 듯하지만 다릅니다. 그러나 짐승은 짐승입니다. 그러면 이 짐승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나요?

 

한편 오늘 본문 12절 말씀이 실마리를 줍니다. “그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정한 시기가 이르기까지 그 생명은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잠수했던 이들이 다시 살아난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지만 그 짐승들은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21세기에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바로 옆에…. 그래서 오늘도 우리를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제가 터키에 방문해서 소중한 유적이 대영박물관에 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모든 일이 주님께서 오신 후 이 땅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마도 16세기 이후에 있었던 일일줄 압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지금도 계속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짐승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짐승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아니 오늘날 이 짐승들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요? 저는 1552년 불란서 정치철학자 Boétie의 글에서 이와 관련된 놀라운 통찰력을 보았습니다. 짐승의 뿔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는 단지 당신이 당신을 부수라고 그에게 준 능력만을 소유한 자이다. 당신이 주지 않았으면 그가 어떻게 당신을 스파이할 수 있는 눈을 가졌겠는가? 당신이 그들에게 빌려 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그들이 당신을 때릴수 있는 수많은 팔을 가졌겠는가?… 당신을 통하지 않고 그가 어떻게 그런 힘을 소유할수 있었겠는가?”

물론 세상 권력자를 두고 쓴 글이지만, 한편으로는 온 세상에 가득 퍼져 있는 악의 세력은 다른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해결되지 않은 죄성이 세상을 더욱 무섭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악한 짐승들의 먹이는 우리들의 죄입니다. 죄성입니다. 우리들의 죄를 맛있게 먹으면서 짐승은 세력을 더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번민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살아 있는 한 우리들의 죄성으로 악의 세력을 도와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기간 번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라는 무서운 기계로부터 생산되어 나오는 악을 근절하는 피나는 노력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번민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도 전에 하던대로 참회와 절제와 구제의 삶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주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이번 사순절을 준비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Global Day of Unplugging’이라고 해서 이 하루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날이라고 합니다. 다행한 것은 날짜가 3월 첫 금요일이라고 합니다. 올해는 지났네요. 실은 디지털 세상에서 절제하자는 의도로 쓰여진 책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놀랍게도 40% 이상의 성인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협박을 당한다고 합니다.

한 학생이 법대에 합격하였고 그의 친구는 합격을 하지 못했습니다. 시기로 인해서 합격하지 못한 친구가 합격한 친구에게 여러가지 못 할 말들을 인터넷을 통해 퍼뜨렸습니다.

친구 안에 있는 짐승을 만난 것입니다. 이 때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경찰에 고발했을까요? 악을 악으로 갚을 때 좋아하는 것은 세상의 악한 세력들입니다. 도리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협박을 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친구의 악한 모습을 보면서 자신 안에 있는 악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도리어 참회하고 절제하고 결국 이웃을 구제하는 아름다운 사순절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남은 사순절 번민하십시다.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아파하고 우리들의 욕심으로 인하여 괴로워하십시다. 반면 이웃을 힘껏 섬기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온전히 마치셨습니다. 아니 십자가에서 참패를 당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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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Title Writer Date
389 “성소가 정결케 되리라” 다니엘 8:9-14 (2025/3/30) webmaster 2025.03.31
388 “인자 같은 이” 다니엘 7:9-14 (2025/3/23) webmaster 2025.03.24
387 “전에 하던 대로…” 다니엘 6:10-18 (2025/3/9) webmaster 2025.03.11
386 “다니엘을 부르소서” 다니엘 5:1-12 (2025/3/2) webmaster 2025.03.07
385 “거룩한 낭비 (II)” 다니엘 4:28-37 (2025/2/9) webmaster 2025.02.10
384 “거룩한 낭비” 다니엘 3:13-27 (2025/2/2) webmaster 2025.02.03
383 “손대지 아니한 돌” 다니엘 2:31-45 (2025/1/26) webmaster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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