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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빌립보서 1:12-21 (06/08/2025)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빌립보서 1: 12-21

                                                                                                                            이영길 목사

요즘 한국에 재미있는 카페가 있다고 합니다. 1년후에 오늘 쓴 편지를 보내 주는 카페입니다.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일년후 받고 싶은 편지를 미리 적어서 맡겨 놓을수 있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곧 오늘의 내가 일년후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한번쯤 생각해 볼만합니다. 1년후 받을 편지를 쓴다면 어떤 편지를 쓸지…. 실은 최진영 소설가의 ‘내가 되는 꿈’이라는 소설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하였었습니다.

‘내가 되는 꿈.’

한 챕터는 직접, 물론 소설 속에서지만, 주인공이 주인공에게 쓴 편지가 나옵니다. 첫 부분만 소개해드리면,

“태희에게,

1년 뒤 편지를 보내준다는 카페에 앉아 이 편지를 쓴다.

너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만약 네가 여전히 김선우를 만나고 있다면 이 편지를 읽지 마. 너는 읽을 자격이 없어.”

주인공은 여자인데 남자 친구와 머리로는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머리를 못 쫓아가니 1년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신을 향해 편지를 쓰고 있는듯 합니다.

한편 편지 마지막은 이렇게 마칩니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수 없다.

미래의 내가 이 편지를 아주 우습게 여기기를 바랄 뿐이다.”

곧 1년후에는 머리가 이겨서 왜 이런 편지를 썼냐 생각하면서 웃어버리면 좋겠다는 의미로 편지를 마칩니다. 그러나 이런 편지를 쓰는 것은 자신이 없어서 입니다. 아무래도 1년후에도 김선우에게 미련을 갖고 있는 자기가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곧 내가 되고 싶은데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고민하는 흔적이 담겨 있는 편지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남에게는 보낼수 없으니 자기 자신에게 보냅니다. 1년후에 편지를 보며 참 ‘나’를 찾기 원하는 마음에서….

이 소설책이 좀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손에도 들어 오게 된줄 압니다. 그만큼 많은 한국인들이 참 ‘나’를 찾기를 애쓰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중고등부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어찌 보면 사춘기 소녀가 쓴 편지인듯 하지만 소설가는 이미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이나 청소년이나 참 ‘나’를 찾아 간다는 것은 삶의 큰 과제인 것 같습니다.

한편 청소년들이나 어른들이나 공통된 참 자아 ‘나’가 있지 않을까요?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잠시 말씀을 상고하며 살펴 보고자 합니다.

먼저 결론을 말씀드리면, 설교 제목에 잘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사도바울에게는 일팽생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는 것입니다. 이 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참 자아를 소유한 모습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는 이런 꿈을 가진 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모습일까요? 12절,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사도바울은 두 가지 자신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무슨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한 일이 복음 전파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당했기에 이런 고백을 하는지 더욱 궁금해집니다.

한편 13-17절 말씀에 세번 씩 사용된 문구가 있습니다.

‘나의 매임’.

곧 사도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세번 씩이나 연거푸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당한 일 중에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감옥에 갇힌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냥 감옥에 갇힌 것만이 자신이 당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사도바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감옥에 갇힌 사도바울을 괴롭히려고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참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것이 사도바울의 아픔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면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헛된 자아를 소유한 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일단 사도바울의 반응을 살펴 보겠습니다. 18절,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사실 사도바울의 사역을 방해하려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 곧 자기가 전도한 것의 효과를 과시하려는 사람들 같으면, 이런 분들을 질책하기 바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자기가 뿌린 씨앗이 헛수고가 되었다고 한탄하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더 기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동기이던 복음이 전파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제가 직접 가 보지 않은 것이라 이런 말씀드리기가 좀 죄송스러운데, 남한 올림픽이 성대하게 열린 뒤 북한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세계대회를 열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에 교회가 없다는 것을 세계에 내 보일수가 없어서 어쩔수 없이 봉수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찾아 보니 첫 예배가 1988년 11월 6일이었습니다. 정확히 88올림픽이 마친 후였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매번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건성으로라도 읽고 듣다 보니 성령께서 역사해서 믿는 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알고 북한 당국은 자꾸 교인들을 바꿔가며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기뻐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기에게 괴로움을 주려고 복음을 전파하지만 어느덧 성령의 도움으로 말씀이 전파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기뻐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감옥 안에서도….

곧 사도바울에게는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면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는 최고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자아를 소유한 자의 모습입니다.

 사도바울은 1년 후에도 아니 죽을 때까지 바로 이 모습이 더욱 견고해지길 원하고 있는듯 합니다. 이를 20절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그리고는 간략하지만 정말 파워풀한 말을 남깁니다. 21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것이 사도바울의 꿈이었습니다.

아마 바울도 1년후 보내는 편지를 써 놓았다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요?

“바울아 1년전에 한 말 기억하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렇게 1년을 멋지게 살았니…?”

참 자아를 소유한 자는 한 가지 꿈을 가지고 삽니다. 거짓 자아를 소유한 자는 시간과 환경에 따라 꿈이 변합니다.

사도바울은 한 가지 꿈을 갖고 참 자아의 소유자로 살았습니다. 이 자신의 모습을 늘 디모데와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과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빌립보서를 통해 우리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들을 통해 우리 자녀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이 견신식을 마쳐서 정식 교우들이 되었는데, 우리 모두 자녀들이 최고의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자녀들이 되고자 하는 꿈이 오고 가는 세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이 아닐까요? 대표적으로 이런 꿈을 사도바울이 빌립보서를 통해 우리들에게 아니 우리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아직도 콤맹이지만, 그래도 여기 저기 주워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오늘 설교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아마 1년후 편지를 보내는 App이 이미 나와 있지 않을까…?” 뭐 구태여 카페에 가서 돈내고 맡기느니, app을 하나 설치해서 1년후 2년후 5년후 아니 10년후 편지를 받게 되면 어떨까…?

우리 자녀들이 10년후에 이런 자신이 쓴 편지를 보게 되면 어떨까요?

“아무개야 10년전에 쓴 이 글 생각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아마 우리 자녀들은 사도바울처럼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도 생각이 날줄 압니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서 도리어 더 크게 기뻐하게 될줄 압니다.

그렇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19절,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중보의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에게 중보의 기도를 올리는 빌립보 교인들이 있듯이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 때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성령강림주일에 견신식을 갖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어느 작은 이민 교회에 방송실을 섬겼던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늘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송 시스템을 다루곤 하였던 분인데, 물론 목사님이 오디오 시스템에 일가견이 있으셨고….

그런데 어느 날 초청장을 주시면서 목사님께 참석을 정중히 부탁하셨습니다. 놀랍게도 Grammy Awards 시상식 초청장이었습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후보로 오른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숨기고 교회에서는 뒷것(김민기 씨의 표현)이 되어서 조용히 섬기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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