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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여호와를 믿으니(창세기 14장 21절-15장 6절)

중국의 장자가 백골과 대화를 나눈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을 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장자가 초나라에 가던 중 백골이 된 해골이 형상만 남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자가 말 채찍으로 해골을 치면서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도대체 너는 왜 그런 꼴이 되었느냐? 병으로 죽었느냐 아니면 전쟁터에서 죽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나쁜 짓을 하다가, 아니면 나이가 들어 이렇게 되었는가?”

이렇게 말을 마치고 해골을 당겨 베게 삼아 누었습니다. 한밤중에 꿈에 해골이 나타나 말을 겁니다.

“조금전에 그대가 한 말은 변사 같았소. 그대가 말한 것은 모두 살아 있는 자에게는 괴로움이지만 죽은 즉 그런 것이 없소. 그대는 죽음에 대해 듣고 싶습니까?” 장자가 말했습니다.

“그렇소.” 해골이 말합니다.

“원래 사람이 죽으면 위로는 군주도 없고 아래로는 신하도 없으며, 또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며 바삐 일할 필요도 없소. 편안한 마음으로 하늘과 땅에 몸을 맡긴 채 그저 세월을 보내면 그만이지. 산 사람들의 군주도 이보다 더 즐거울 수는 없다오.”

장자가 믿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에게 말하여 그대 형상을 다시 만들어 그대의 골육과 살갗을 입히고 그대 부모와 처자가 있는 마을을 알도록 정신을 돌이켜 주기를 그대는 바라는가?”

해골이 심히 눈을 부릅뜨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였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군주보다 더한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인간 세상의 고통을 겪으려 하겠소?”

 

장자가 정말로 꿈에 해골과 대화를 한 건지 아니면 장자가 꿈처럼 이야기를 꾸민 건지는 알수는 없습니다. 장자는 해골의 말을 통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저 세상과 아울러 이 세상의 삶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자가 본 죽음의 세계는 군주와 같은 세계이고 반면 이 땅의 삶은 고통의 연속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장자의 멧세지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장자가 기독교의 진리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쩌면 요즘 우리들의 모습이 기독교의 진리는 커녕 장자의 멧세지에도 못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풍조에 밀려서 이 세상에 너무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진리도 천국을 바라며 살게 하는데 장자의 생각과 같은 맥락일까요? 기독교인으로서 천국을 바라보며 이 땅에 사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장자가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요?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15:1절 말씀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1절 말씀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이 땅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께서 몸소 아브라함의 방패와 상급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위한 방패가 되시기 원하십니다. 또한 상급 아니 큰 상급이 되시기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삶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브라함은 이런 축복을 받았을까요? 1절 말씀이 “이 후에”로 시작을 하니 그 전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를 알면 어떻게 아브라함이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았는지 알수 있게 될줄 압니다.

 

본문은 소돔왕과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실은 그 전 이야기부터 알아야 합니다. 오래 전 아브라함의 하인들과 롯의 하인들이 사이 좋게 지내지 못하니 헤어졌습니다. 롯은 기름져 보이는 소돔 땅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소돔땅이 이웃 나라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조카 롯도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자기 하인들을 데리고 쳐 들어가 소돔왕과 더불어 조카 롯을 구합니다.

그런데 소돔왕도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승리케 했으니 취한 물건을 모두 아브라함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서 그랬을가요? 14:21절을 보면,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사실 전쟁에 승리한 사람이 사람도 갖고 물품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소돔왕은 사람이 탐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품을 아브람에게 양보하는 듯 보인 것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어떻게 반응하나요? 23절 말씀을 보면,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아브람은 사람도 거절합니다. 물품도 거절합니다. 이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사람도 다 돌려 보냈습니다. 물건도 다 돌려 보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것 같습니다. 방패가 될수 있는 사람도 보냈고 또 물건도 돌려 보낸 것을 보시고 하나님 스스로 방패와 상급이 되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서부터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당신의 택한 자들의 이 땅의 삶을 축복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늘 기회를 엿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결단력 있는 삶을 보고는 이 때다 하시고 축복하신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도 기회를 엿보고 계시지 않을까요?

 

1960년대 어려운 시절 한국에 어느 한센병 환자들이 사는 마을에 하형록이라는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한센병 환자 마을에 살게 된 이유는 아버지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목회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친구들은 문둥이라고 놀려대곤 하였습니다. 학교 가려면 30분을 걷다가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정거장까지 가는 길에 조그마한 동네를 지나가야 했고, 그 동네 아이들이 형록이에게는 큰 공포였습니다. 그 아이들은 놀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돌을 던지면서 자기 동네에 들어 오지 말하고 했습니다. 거의 매일이 전쟁이었습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는데 그 때 초등학교에 갓 들어가 귀여워 보였는지 차장이 어느 동네에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한센병 환자촌에 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차장의 표정이 바뀌더니 낸 돈을 받지도 않고 그냥 내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후 50년의 세월이 흐른 2012년 어느날 하형록씨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미국 국립건축과학원 이사 후보가 되었다는 전화였습니다. 그는 그동안 미국으로 선교사의 도움으로 온 가족이 이민을 오게 되었고 유수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였고 큰 건축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국립건축과학원은 미국의 모든 건물을 총괄하는데 여기서 건축 정책을 정하고 이에 근거해 건물을 심사한 뒤 건물 코드를 부여해 주는 기관입니다. 건축 관련 기관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 기관들이 모두 이 국립건축과학원 소속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대통령이 추천하고 국회가 인준하는 자리입니다. 더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는 종신직입니다.

하형록씨는 2년전 오바마 대통령의 추천을 받고 국회의 인준을 거쳐서 종신직 국립건축과학원 이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의 주된 직업은 자기가 세운 큰 건축 회사 사장이고요…. 그런데 그가 세운 건축회사는 주차빌딩 전문 건축회사입니다. 그가 만든 주차장 하나를 스크린으로 볼까요?

 

사실 얼마전 어느 교우님께서 하형록씨의 책 P31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P31이라는 것은, P는 Proverbs, 곧 잠언31장이라는 의미인데 회사를 잠언31장의 말씀대로 운영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말씀드리면, 그는 잠언 31:20절을 가지고 회사의 정신을 만들었습니다. 잠언 31:20절은,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이에 따른 그가 정한 회사의 정신은,

‘우리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We exist to help those in need.)

 

저는 경제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만 말씀을 근거해서 말씀드리면 요즘 경제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봅니다. P31과 같은 회사 정신을 갖고 경영한다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방패와 상급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현재 하형록씨는 10여개의 구호 단체의 이사로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회사원들 대부분 구호단체 한두 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주장하기를 이웃을 돕는 것도 삶을 통해 훈련하고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경적인 뜻을 품은 자들에게 방패와 상급이 되십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경영자들이 많아질 때 좀 무식한 표현 같지만 불경기는 전혀 우리를 찾아 오지 않을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하형록씨를 축복하시길 원하셨습니다. 드디어 그의 높은 뜻의 회사 정신을 보시고 축복하신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그의 방패와 큰 상급이 되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러한 축복을 누리십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을 위해 방패와 큰 상급만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이 험한 세상에 살게 하실까요? 이 보다 더 놀라운 축복을 예비하고 계시지 않으실까요? 2절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라함의 현재 나이는 75에서 85세 사이입니다. 그냥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75세에 만민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는데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육신적으로도 갈수록 불가능해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에 75세가 넘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합니까? 6절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었고 이미 75세가 넘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만민의 아버지 영적인 아버지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여러가지 교훈을 줍니다. 오늘은 특별히 그가 영적인 아버지가 된 것에 촛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와 상급이 되시는 것 중요합니다. 꼭 받아야 합니다.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큰 축복 정말로 누려야 하는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아버지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와 상급이 된 것만으로 만족해 더 이상 바랄 것이 있을까…?” 그러나 진정 하나님이 인생의 방패와 상급이 되신 분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실수 없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처럼 물어야 합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영적인 자식이 없사오니.”

“나는 영적 자녀가 없다”고 고백하는 분들을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약속을 해 주십니다.

얼마전 저의 친구가 이 지역을 다녀 갔습니다. 아주 신앙이 좋은 친구입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을 했던 친구입니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이 지역에서 일하다가 모교인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저에게 하는 간증이, “그동안 남들처럼 연구에만 몰두하지 않고 시간을 내어 학생들에게 신앙 교육을 시킨 것이 나의 남은 재산이야”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 친구는 영적 재생산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인해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의 친구처럼 교수가 되어야지만 영적 자녀가 생길까요? 영적 자녀는 누구에게도 주시는 축복입니다. 아니 누구에게는 아니죠. 조건이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영적인 자식이 없사오니.”

이에 하나님은 이렇게 축복하시지 않으실까요?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을 통해 하늘의 뭇별과 같은 영적 자녀를 생산하시기 원하십니다. 이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은 당신의 의로 여기십니다.

 

요즘 우리는 두 가지 불경기를 맞이 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경제적 불경기 이것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성경적 정신을 되찾을 때 이 불경기는 사라질 것입니다. 두번째 불경기는 영적인 불경기입니다. 모든 통계가 기독교인들이 줄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마다 그 이유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그 이유를 다른 사람 내지 사회 구조에 두고 있습니다.

저는 감히 주장합니다. 영적인 재생산은 바로 ‘나’ 개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나로부터 영적인 재생산이 시작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영적인 호경기가 찾아 올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21세기의 의인들이지 않을까요? 이런 사람들이 바로 여호와를 믿는 자들입니다. 여호와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은 이 땅에 필요하기에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고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영적인 자식이 없사오니.”

 

말씀을 거둡니다.

저희 집 가까이 작은 산이 있습니다. Trail을 따라 빨리 걸으면 약 40분이 걸립니다. 요즘 같이 더운 날에도 산속에 들어가면 훨씬 시원합니다. 시원할뿐 아니라 푸른 나무 숲을 바라보면서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곤 합니다. “멋지다.”

그래서 40분 걷는 시간이 마냥 즐겁습니다. 그런데 더 즐거운 순간이 있습니다. 파킹랏이 눈앞에 보일 때입니다. 즐거운 짧은 등산이었지만 더 즐거운 시간은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우리 교회 시내산 동우회가 있는데, 어제도 등산을 다녀 오신줄 압니다만, 같은 심정일줄 압니다. 등산의 시간 좋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등산을 다 마칠 때 오는 기쁨 더 말할나위 없을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여정의 방패가 되십니다. 아울러 인생 여정 곳곳에서 깜짝쇼를 하십니다. 상급을 베푸십니다. 그것도 큰 상급을…. 그리고 우리들의 인생 여정 가운데 영적 재생산의 축복을 아울러 허락하십니다. 얼마나 즐거운 삶입니까?

천상병 시인의 말을 빌리면 정말로 우리의 인생은 즐거운 소풍입니다. 그런데 이 소풍을 마칠 때 더 놀라운 소풍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이 모든 축복을 주시려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교우 여러분,

하늘나라의 삶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 땅의 삶도 하늘 나라의 삶 못지 않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방패와 상급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영적 재생산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하나도 빠짐없이 마음껏 누리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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