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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준비된 자들”

 

본문: 디모데 후서 2장 14-21절

이 지역에서 목회하시는 유경렬 목사님의 아버님 유동형 목사님께서 80세를 맞이하여 기념 문집을 내셨습니다. 그 중에 손주를 생각하면서 쓰신 시 한편을 소개해드립니다.

 

‘그림 그리는 손주’

 

네 살 박이

내 손주 재우

티 없이 맑은 얼굴

초롱 초롱 눈동자

방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린다

고사리 손에 꼭 쥔 크레용

기차를 그린다

토마스, 고든, 퍼시….

 

그래 그려라

네 미래의 꿈을 향해 힘차게 달릴

기차를 그려라

영롱한 꿈

사랑스런 꿈

위대한 꿈을 향해 달려갈

기차를 그려라.

 

재우 어린이는 정말로 행복한 어린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릴 때 최고의 선물을 할아버지로부터 받았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네 살인데 조그만 더 크면 종종 할아버지가 주신 최고의 선물을 기억하면서 그의 삶은 위대한 꿈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가 될줄 압니다.

 

오늘 진급주일로 지킵니다. 저희 자녀들이 한 학년씩 진급을 합니다. 물론 진급한 자녀들에게 따로 선물을 준비하진 않습니다. 대신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교역자님들과 교사분들이 정성스런 마음으로 새 학기를 마련하고 자녀들을 맞이 합니다.

대신 선물은 우리들이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 목사님께서 손주에게 주신 선물 같은 것을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런 멋진 선물을 어린이들에게 주실수 있을까요? 남의 시를 표절한다고 진정한 선물이 될수 있을까요?

이미 손주가 있으신 분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놀라운 축복의 선물을 손주들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손주를 가지시기에 시간이 더 필요하신 분들은 언젠가 손주가 생겼을 때 이런 멋진 선물을 줄수 있는 분들이 되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준비되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의 아버지 바울이 믿음의 아들 아니 손주 디모데에 쓰고 있는 편지입니다. 아마 사도바울도 유동형 목사님과 비슷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사도바울 당시는 기차가 없었죠. 만일 기차가 있었으면 기차를 비유로 해서 디모데에게 말씀하셨을지 모릅니다.

한편 이 시를 받은 재우와 디모데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재우는 4살 짜리 어린이입니다. 반면 디모데는 최소한 30남짓한 청년입니다. 그리고 벌써 오래 전부터 바울을 도와 교회를 섬겨 온 일꾼입니다. 그동안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수 없이 많이 겪었던 것 같습니다. 14. 15절 말씀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먼저 14절 말씀입니다.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사도바울은 말다툼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말다툼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듣는 자들도 망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섬기는 교회에 말다툼이 심했던 모양인 것 같습니다. 말다툼이 심한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칫 거기에 휘말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도망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사도바울은 권고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운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말다툼이 많고 시끄러운 교회를 섬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달리는 기차가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건은 바로 부끄러운 것이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달려가는 기차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편 계속해서 사도바울은 부끄러운 사람들을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16, 17절 말씀입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요즘 건강을 아주 중요시 여기는데 병 중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병이 무엇입니까? 암이지 않습니까? 사도바울 당시에도 암이 잘 알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암의 원인을 의학적으로 여러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미 그 원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암은 얼마나 무서운지요…? 18절 말씀입니다.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다투는 사람들은 먼저 암에 걸리는데 결국은 스스로 진리에서 떠나게 됩니다. 곧 영적으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암과 육신적 암의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육신적 암은 전염되지는 않습니다. 암 환자를 만났다고 암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암환자에 심방을 가도 아무런 위험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헛된 말의 암 환자들은 자신이 죽을뿐 아니라 남도 죽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말36개 줄행랑을 쳐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믿음이 여린 사람들은 말다툼이 있고 헛된 말이 풍성한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 곳에 무서운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겁이 나는 것은 이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암이 왜 무섭습니까? 일단 자신이 걸린지 모르니까 무서운 것 아닙니까? 암 세포가 생기는 순간 아니 아주 초기에라도 아프기 시작하면 그래서 암이 걸린줄 알게 되면 뭐 그리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초기에 치료하면 많은 경우 완쾌를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암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영적인 병도 매한가지 입니다. 헛된 말로 인해 생긴 악성 종양도 매한 가지입니다. 전혀 알수 없습니다. 죄로 인해 생긴 질병은 전혀 느낄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무서운 종양이 전염까지 된다니 그러면 36개 줄행랑밖에 별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사도바울도 지금 디모데에게 36개 줄행랑을 치라고 하나요? 1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아무리 말다툼을 많이 하고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지라도, 또한 그들이 무서운 암의 파괴력을 가졌을지라도 확실한 것은 이미 하나님의 터는 견고히 서 있음을 바울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헛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미 서 있는 하나님의 터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후메내오와 빌레도도 이 하나님의 견고한 터를 흔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견고한 터가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터 안에서는 어떤 죄도 어떤 영적인 암도 견딜수가 없습니다. 불의한 자도 그 터 안에 들어 오면 깨끗해집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죄는 암보다 더 무섭습니다. 그러나 그 죄가 고양이 앞에 쥐가 되고야 맙니다. 하나님의 터에서는…,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그 터를 깨끗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터는 든든히 서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도 디모데도 또한 우리 모두도 이 터 위에 서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녀들에게 멋진 선물을 줄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터 위에 바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터는 그리스도의 피로 견고해진 터입니다. 이 터 위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멋진 선물을 줄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죄에서 깨끗해 져 있고 더욱이 망령된 말이나 헛된 말에 넘어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면 이 터 위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기차처럼 마냥 달리면 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터는 기차가 달릴만큼 든든히 서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귀절에는 가정을 비유로 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달리던 분위기에서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왜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을까요?

결론부터 내립니다. 우리는 귀하게 쓰는 그릇만 되면 됩니다. 기차처럼 신나게 달리게 하는 일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관사가 되십니다. 우리는 기관사를 위한 그릇입니다. 폭풍우를 뚫고 어떻게 달리나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몫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릇입니다.

 

사도바울이 살던 당시 집에는 네 가지 그릇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 그릇. 집에 네 종류의 그릇이 있듯이 교회에도 네 종류의 부류가 있다고 비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어떤 종류의 그릇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귀하게 쓰는 그릇이냐, 천하게 쓰는 그릇이냐…?

금 그릇이 되던지 질그릇이 되던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금 그릇이지만 천하게 사용될수도 있고 질 그릇이지만 귀하게 사용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금그릇이던 질그릇이던 귀하게 사용되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하게….

 

얼마전에 한국의 유명한 석학 한태동 박사님이 보스톤을 방문하셨고 저희 교회 예배에도 참석하셨습니다. 함께 점심 식사를 나누면서 많은 좋은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버님은 한 에녹 장로님이신데 늘 말씀하시길 “모든 사람은 다 자기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단다.” 말씀하시곤 하셨다고 합니다. 한 박사님이 대학원장을 하실 때인지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주 불성실해서 늘 저 사람을 어떻게 하나 고심을 많이 하셨다곤 합니다. layoff시키고 싶은 마음은 자꾸 생기지만 그럴 때마다 아버님 말씀이 생각이 나곤 하셨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단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자꾸 물건이 없어지는 일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책임자로서 고심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 들어 오시는데 불성실한 그 일꾼이 한 학생을 붙잡고 혼을 내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도서관에 물건 없어지는 일이 그쳤습니다.

자 이 사람이 귀하게 사용되었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천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천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물건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어떻게 사용되길 원하십니까? 한 영혼을 구하는데 사용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도적을 잡는데 사용되길 원하십니까? 둘 다 사용된 것입니다. 한 사람은 귀하게, 한 사람은 천하게…. 2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아마 사도바울 당시 천하게 사용되는 그릇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흔하지 않은 그릇은 귀하게 사용되는 그릇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 때뿐일까요? 언제나 교회에는 귀하게 사용되는 그릇이 부족하진 않을까요? 왜 부족할까요?

어떤 사람들이 귀하게 쓰여진다구요?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곧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자가 적어서가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헛된 말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시다. 귀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귀한 그릇이 되기 위해 하루 세번 기도드렸습니다. 오전 오후 그리고 밤에…. 하루 세번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곤 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루 세번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해지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그릇을 깨끗게 한 것입니다. 이에 기관사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귀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기도만 할수 없지 않습니까? 오래 전 들은 이야기입니다. 발명왕 토마스 에드슨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시험에 들지 않고 그렇게 훌륭한 발명을 많이 해 내셨습니까?” 안경을 내리면서 말하기를, “시험에 들 시간이 어디 있어.”

헛된 말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많은 후손들에게 축복의 시를 써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스런 꿈

위대한 꿈을 향해 달려갈

기차를 그려라.”

 

교우 여러분,

귀하게 사용될 곳이 없어서 귀하게 사용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늘 정켤케 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귀하게 사용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 맞는 일꾼이 되십시다.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십시다. 우리의 인생의 기차는 폭설을 뚫고 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관사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그릇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저희 교회를 오래 전 목회를 하셨던 김갑동 목사님이 계십니다. 김 목사님은 신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고 한국 신학교에서 교수로도 섬기셨던 목사님이십니다. 춘추는 80안팎일줄 압니다. 그런데 시간만 나면 도서관에 가셔서 공부를 하십니다. 특히 독어로 성경을 읽곤 하십니다. 그래서 젊은 목사님들이 여쭤보았습니다.

“왜 지금도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십니까? 독일어 성경을 왜 읽으시죠?”

목사님 답변은, “내가 준비를 하고 있으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쓰실지 알아?”

저는 요즘도 김 목사님을 뵈면 그 말씀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는가?” 자책을 하곤 합니다.

이미 김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귀히 사용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많은 후배 목사들이 도전을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편 그렇게 공부하시는데 언제 말다툼이나 불의한 일을 하실 시간이 있겠습니까? 김목사님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으로 여기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합당하게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귀하게 사용받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터 위에서 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입으십시다. 그리고 겸손히 귀하게 사용될 준비를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운전하시는 기차를 타고 신나게 달릴 것입니다. 우리 그 안에 탄 귀한 그릇입니다. 기차를 타고 자녀들을 위하여 노래를 부릅시다.

“사랑스런 꿈

위대한 꿈을 향해 달려갈

기차를 그려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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