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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군대(출애굽기 12:37-42) 9/20/15

 

성 프란시스가 아시시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둥근 보름달이 두둥실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온 세상이 공중에  떠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문밖으로 나와서 그 위대한 기적을 즐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교회로 달려가 종탑으로 올라가서는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종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사람들은 불이라도 난 줄 알고 옷도 제대로 못 입은 채 교회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프란시스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종을 치는 거요? 무슨 일이라도 났소?” 종탑 꼭대기에서 프란시스가 대답합니다.

“여러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하늘에 떠 있는 저 달 좀 보시라고요!”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선한 도전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일 내가 어느 달 밝은 밤에 우리 교회 첨탑에 올라가서 교회 차임벨을 크게 울리면서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될까?’

“여러분, 고개를 들어 여기를 보세요. 부르클라인 한 복판에 있는 우리 교회를 보시라고요, 우리 교우들을 보시라고요.” 생각만으로 그쳐야할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생각만으로 그치기에는 좀 아쉽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성 프란시스와 비슷한 경험을 이스라엘 민족은 오래 전에 공동체적으로 체험하였습니다. 그들도 잊지 못할 밤이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 마지막 절인 42절 말씀입니다.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길게 설명해 드릴 시간은 없습니다. 사실 성 프란시스가 체험한 것과는 사뭇 다르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체험한 밤은 하나님께서 죽음의 사자를 보내서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인 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에서 해방되게 됩니다. 하여튼 성서 기자는 이 밤을 ‘여호와의 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밤은 성 프란시스가 체험한 밤과는 많이 다르기도 하지만 또한 같은 점도 많이 있습니다. 프란시스는 너무나 황홀한 보름달을 보면서 환상의 세계에 빠져 들어 갔던 것처럼  성서 기자는 여호와의 밤을 지낸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황홀한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전 귀절인 41절 말씀입니다.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자,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군대.’ 출애굽기 기자는 얼마나 황홀했겠습니까? 여호와의 군대를 보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성서기자가 본 여호와의 밤을 거친 여호와의 군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어떠했길래 여호와의 군대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까요? 사성 장군이 말병거를 타고 앞장 서고 그 뒤를 수많은 말을 탄 군인들이 위풍당당 나오는 모습일까요? 다시한번 37절부터 봉독해 드릴텐데 한번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수 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여호와의 군대의 모습을 느끼십니까? 글자 그대로 생각하면 결코 느낄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60만의 피난민들이 겨우 무교병을 등에 지고 나오는 초라한 모습만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을 기록한 성서기자는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여호와의 밤을 지낸 후 성서기자는 지난밤까지 노예생활을 하였던 그래서 군더더기를 입고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오고가는 모든 인류들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군대라!”

 

자 그러면 제가 한번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만 아니라…. 밤2시에 첨탑에 올라가서 종을 치면서 “여기를 보세요. 보스톤 한인 교회는 여호와의 군대입니다.”

사실 우리가 소리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군가 매일 우리를 향해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누군가가 여호와의 군대라고 외쳤듯이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처음에는 이 음성을 믿지 않습니다. 그 결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40년을 광야 생활을 합니다. 이 음성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서…. 40년 후에야 그들의 귀가 트인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장로님이신 이무석 박사님이 쓴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가정하고 글을 쓰신 것입니다.

“당신은 일생 동안 마음만 연구하였고, 여러 곳에서 학회장도 했고, 의과 대학 정신과 교수로 30년이나 일했고, 눈문도 100편 이상 썼는데, 그렇다면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키워드는 무언가요? 하나만 말해 줄수 있겠습니까?” 박사님 대답은 이럴거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존감입니다.”

그는 계속 말하기를 스스로 자기를 막 내려쳐서 깎아 놓는 사람은 남들이 자기를 한심하게 볼 거라 생각하기에 도망가고 피할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자존감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30년의 노예 생활을 마친 후 광야 40년을 지내게 된 이유는 자존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40년 후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그때야 그들은 알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군대라.”

그들에게는 깊은 자존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교회의 새로운 일꾼을 뽑아 안수하여 새로운 직책을 맡기는 날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안수받으시는 분들에게 친분이 있으신 분들이 선물을 드리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이 좋다 나쁘다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은 항상 좋은 점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새로이 안수받은 분들에게 드려야 할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깊은 말이 담긴 눈길입니다. 어떤 말이 담겨 있어야 할까요?

“여호와의 군대라.”

 

사실 모든 교인들은 여호와의 군대입니다. 이유는 교회는 이미 여호와의 밤을 거쳤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이신 주님께서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이미 교회는 여호와의 밤을 거친 것입니다. 교회는 여호와의 밤을 거친 놀라운 공동체입니다. 곧 여호와의 군대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스스럼 없이 서로를 향하여 외치는 자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군대라!”

이런 고백을 자주 자주 자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자주 자주 하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스스로 자존감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속한 이 위대한 여호와의 군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펼쳐 나가게 될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보게 될 것입니다. 결국 황홀해질 것입니다. 하나님도 황홀해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서기자가 “여호와의 군대”라고 외칠 때 어른들만을 생각하면서 이런 외침을 하였을까요?

장정 60만을 비롯 남녀노소를 바라 보면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성서기자가 ‘여호와의 군대’라고 외칠 때는 어른들만을 생각하면서 외친 것이 아닙니다. 3세대를 바라보면서 외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서로를 향해 여호와의 군대의 눈길을 보내고 있노라면 어느덧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까지 이 자존감을 불어 넣어줄 것입니다. 조금 전 언급해 드린 이무석 박사님은 다음과 같은 글로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자신을 못난이로 평가하는 낮은 자존감은 유아기 때 시작돼요. 어릴 때 어느 날부터 갖게 된 거예요. ‘나는 예쁜 아이가 아니야. 나는 사랑받는 아이가 아니야.’ 그 원형을 따라가 보면 어릴 때 엄마가 아가를 예뻐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귀찮고 싫은 아이 취급을 당한 거죠. 그래서 남들도 자기 엄마처럼 자기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게 된 거고요. 자기를 싫어하는 부모 이미지가  무의식에 살아 있어요.”

이 무석 박사님은 개인적 자존감을 언급하고 있지만, 교회에 대한 자존감도 언제 생겨야 하겠습니까? 어릴 때가 아닐까요?

중고등부만 졸업하면 90% 가량이 교회를 떠난다고 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에 대한 자존감 결여가 아닐까요?

이를 누가 심어주어야 하겠습니까? 어른들이 심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향하여 늘 외친다면 우리 스스로 자존감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들의 자녀들이 자존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들이 언젠가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요?

 

교우 여러분,

저희 교회 자녀들을 바라 보면서 외치십시다. 저희 교회에 청년들이 많은데 청년들을 바라 보면서 외치십시다. 교회 제직과 어른들을 향하여 외치십시다. 특별히 오늘 안수를 받은 제직들을 향해 외치십시다.

“여호와의 군대라.”

이 외침은 언젠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장 서시고 계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대단히 어려운 바이올린 연주곡 하나를 썼습니다. 제대로 연주만 되면 너무나 아름다운 곡입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 중 하나에게 그 곡을 주고 연습하여 연주토록 했습니다. 곡을 받은 제자는 자신에게 위대한 작곡가의 곡을 처음 연주하는 특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너무 감격했고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런데 몇 주간의 연습 끝에 그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서 자신은 도저히 그 곡을 연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곡이 너무 어렵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같다고… 자신이 이 곡을 연주했다가는 선생님의 작품을 더럽히는 것이 될 거라 했습니다. 선생님의 영광을 가릴까봐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스트라빈스키가 대답했습니다. “이해하네. 자네의 고민을 이해해. 그런데 내가 이 곡을 쓰면서 의도한 바는 완벽한 연주를 기대한 것이 아니네. 다만, 어떻게든 연주해 보려고 애쓸 때 나오는 그 소리라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의 군대가 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군대라는 자존감을 갖고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늘을 우러러 보십시다. 우리를 향하여 들려 오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여호와의 군대라.”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외치십시다.

“보라. 여호와의 군대라!”

우리 대장 되시는 그리스도깨서 앞장 서 가고 계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백삼십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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