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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하나님 (창세기 3:8-21) 12/04/2016

지난 추수 감사절 다음날 아침에 저는 올해 대강절 선물을 일찍 받았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아침에 이멜을 열어 보니 두 이멜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한 분은 저희 교우님이 보낸 이멜이었고 또 하나는 BNI와 관계된 이멜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이멜 모두 희망의 멧세지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먼저 저희 교우님이 보낸 이멜을 소개해 드립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밤새 모두들 10파운드쯤 체중을 늘렸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전엔 40~50명의 3, 4세대의 가족멤버가 시끌벅적 대던 thanksgiving dinner였었고
껴안고 부비고 서로의 안부와 다독거리는 등 인사가 오랜동안 지속되던 정겨운 풍경이 있었는데, 요즘엔 뭐가 그리들 바쁜지 그저 몆명의 어른과 아이들뿐인 조금은 씁슬한, 하지만 거듭되는 포도주 잔에 추억과 희망을 담아 보았던 밤이었습니다. 식사 전 조카 손녀의 감사기도는 짧았지만 모든 희망이 담겨 있어 좋았었습니다.”

감사절마다 증조 할머니로부터 증손주까지 모인곤 하던 가정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올해 감사절은 적은 수의 가족이 모여서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식사 전 조카 손녀의 짧은 감사기도를 통해서 희망을 보았다는 마지막 글이 저의 마음에 따뜻한 빛으로 와 닿았습니다.

다음 이멜은 제가 섬기고 있는 BNI 사역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BNI 비전 중에 하나가 북한선교인데 그동안 3년이 되도록 북한을 위해 섬기지 못해서 얼마전 북한을 위한 작은 섬김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현재 남한은 정치적으로 대폭풍이 불고 있고 북한은 얼마전 대홍수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북한을 섬기고 계신 영국시민권자인 지니신 한국 목사님을 알게 되어서 그 분과 연락이 되었었는데 다음과 같은 이멜을 받아 보았습니다.

“희망은 계절을 넘어섭니다!
샬롬! 11월초 사리원, 봄부터 진행 중이던 온실 건설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여름 장마를 피하면서 공사를 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오랜 시간이 말해주듯 잘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땅 위에 벽이 쌓아지고 굵은 철근 구조물이 오르고 마침내 천장에 비닐이 씌어진 광경을 보며 왜 이리도 기쁜지! 한 평의 공간이라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몇 번이고 설계도면을 고치며 까다롭게 공사한 흔적 속에는 구슬땀을 흘린 일꾼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수고했고 감사합니다.” 이들의 수고와 고생이 이제 계절을 넘어 어떤 날씨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먹는 즐거움을 줄 채소와 버섯, 돼지와 오리들이 잘 자라기를 소망합니다.”
홍수의 아픔이 가시지도 않은 북한을 다녀 온 후 보내신 첫 멧세지가 또 저의 가슴에 깊게 와 닿았습니다.
“희망은 계절을 넘어섭니다!”

참 아이러니칼합니다. 어떤 분은 줄어드는 축제의 분위기에서 도리어 희망을 느끼고 또 어떤 분은 늦어지는 공사현장을 바라 보면서 희망을 느끼고 있습니다.
두 분의 글을 통해 희망의 신비를 느끼지만 한편 ‘희망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마저 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희망의 신비를 나누고자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8절만 읽으셔도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모두 짐작하실줄 압니다. 그 유명한 선악과를 따먹은 바로 그 날입니다. 인류의 운명이 한 사람으로 인해 뒤바뀐 날입니다. 본문 말씀 전 절인 7절 말씀을 보면 이날 선악과를 따 먹고는 눈이 밝아져서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어서 치마를 만들어 입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7절 부터 삼아도 좋을듯 싶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죄를 지은 후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죄의 특징은 그동안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쓸데 없는 일을 하게 됩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드는 수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은 다음에 지진이 일어나고 천둥번개가 친 것이 아닙니다. 온 천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지 않았습니다. 제일 먼저 생긴 일은 아담과 하와 자신들에게 생겼습니다. 눈이 밝아졌습니다.

얼마전에 제가 시력검사를 하였습니다. 저의 의사가 시력검사를 한지 꽤 된 것 같다고 한번 하는게 좋겠다고 권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2년전에 혈당이 갑자기 높아졌다고 했었는데 그 후로 한번도 시력 검사를 안 해서 궁금도 해서 시력검사를 위해 optometrist에게 4년만에 찾아 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지난 4년동안 시력도 전혀 나빠지지 않았고 혈관이나 다른 모든 데 이상이 없다는 진료 결과를 받아 보았습니다. 사실 4년전에 cataract가 시작된 것 같다고 해서 열심히 썬글래스를 쓰고 다녔는데 그나마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서 마음이 좋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저처럼 일반 시력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시력이 발달이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보게 되는 시력이 발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서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나무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낮에 이렇게 부끄러움의 눈으로 인해서 괴로움이 닥쳐 왔는데 밤에는 어떨까요? 깜깜한 밤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것 같지만 부끄러움의 눈도 쉬게 될까요? 아마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부끄러움의 시력을 안고 첫 밤을 맞이 하게 되는 것을 차마 볼수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다시 8절 말씀 봉독해 드립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부끄러움의 시력이 20/20가 된지 얼마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직 어둠이 덮질 않았을 때인 것 같습니다. 눈은 이상해졌지만 아직 귀는 이상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찾아 오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습니다. 온 세상이 부끄러움으로 덮혀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과 아담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9절 이하 말씀 중 가장 가슴 아픈 대화만 말씀드리면, 12절 말씀입니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께서 밤이 오기 전에 아담을 찾아 오신 이유를 잘 알고도 남습니다. 아담의 말을 들으면 아주 살벌합니다. 모든 핑계를 첫번째로는 하와에게 돌립니다. 아니 사실은 감히 하나님께도 돌립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한 마디로 아담은 제 정신이 아닙니다. 제 정신이 아닌 아담 그리고 부끄러움의 시력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아담을 밤에 그냥 놓아 두실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밤이 되기 전에 아담을 찾아 오신 것입니다.

하여튼 하나님은 아담에게 꾸지람을 받았습니다. 왜 하와를 주셨냐고…? 꾸지람을 들었으니 하와에게 묻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의 갈비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달까봐인지 하와나 아담이 똑 같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주신 하와에게 핑계를 돌린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하와는 하나님이 만드신 뱀에게 핑계를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밤은 쉬는 시간입니다. 하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로운 하루를 기대하면서 평안히 쉬는 축복된 시간입니다. 곧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부끄러움의 눈을 가진 이들에게는 더 이상 밤은 희망을 잉태하는 밤이 아닌 것을, 그래서 하나님은 밤이 되기 전에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두 가지 선물을 주십니다. 그 다음 말씀에 보면 어떤 선물들을 주셨는지 알수 있습니다. 첫번째 선물은 미래를 내다 보는 눈입니다. 이는 험한 세상을 살아 가는데 꼭 필요한 선물입니다. 물론 달가운 선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의 시력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담에게는 꼭 필요한 선물입니다. 미래를 보는 역사관을 주신 것입니다.
곧 앞으로 되어질 일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여자는 임신의 고통을 갖게 될 것이고 남자는 땅이 저주를 받아 평생에 수고하여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일깨워주십니다. 언젠가는 부끄러움의 시력을 가진 아담 곧 흙에서 온 아담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부끄러움의 눈만으로 세상을 볼수밖에 없던 아담에게 현실을 보게 하는 눈을 띄게 해 주신 것입니다. 곧 아담은 두 가지 눈을 소유하게 됩니다. 부끄러움으로 세상을 보는 눈, 아울러 현실을 보는 눈…. 이 두 가지 눈을 소유하게 된 아담은 심한 고민에 빠질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러면 부끄러움의 눈과 현실을 보는 눈을 가지고 밤을 맞이한다면 그 밤은 정말 어떨까요? 과연 잠을 청할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를 너무도 잘 아셨을줄 압니다. 그래서 그 밤을 마음 놓고 잘수 있는 최고의 선물 두번째 선물을 주십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그 가죽옷을 입고 두 사람은 단잠을 청합니다. 손수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가죽옷을 입고는 차가운 현실보다 더 가까운 현실을 느끼게 됩니다. 눈으로 볼수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피부로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가죽옷이었습니다. 그 가죽 옷으로 인하여 도리어 온 세상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어느덧 부끄러움의 시력은 사라지고 희망의 눈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죽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죽옷은 부끄러운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찾아 오심을 일깨워주는 최고의 선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편한 잠을 청하게 됩니다.

결국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물론 현실은 보입니다. 하와가 임신의 고통을 겪어야 하고 아담은 땀을 흘리고 수고를 해야 하고…. 이러한 현실 가운데서도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사랑하는 친구 희망을 만납니다. 희망은 하나님께서 찾아 오신 흔적입니다.

설교 서두에 두 사람의 이멜을 소개해드렸습니다. 모두 희망을 친구로 삼고 있는 분들입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찾아 오신 선물의 소유자들이 아닐까요?

말콤이라는 청년이 약혼녀와 단 둘이서 깊은 숲속을 거닐다가 어미 곰과 새끼 곰들 사이에 끼게 되었습니다. 어미 곰은 새끼들을 보호하려고 그의 약혼녀를 붙잡았습니다. 가까스로 약혼녀를 구해냈지만 자신의 온 몸의 뼈가 박살이 났습니다. 8년간 원상회복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결국 흉한 얼굴로 살수 밖에 없었습니다.
말콤은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재활센터의 10층 옥상으로 올라가 그 끝에서 몸을 던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서 아들을 만나 보라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 온 것입니다.
“얘야, 기다려라!”
휠체어를 탄 말콤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버지?”
“말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깊숙한 곳 어딘가에 상처 입은 조직 세포를 갖고 있단다. 그것을 미소나 화장, 그리고 멋진 옷차림으로 감추고 있는 거지. 너는 상처를 바깥에 갖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똑 같단다.”
놀라운 것은 말콤은 매일 자신의 외모를 사람들에게 노출시켜야 하는 보험 영업직을 얻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박아 놓은 명함을 사람들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의 외면은 흉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나에 대해 한번 알아보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저의 내면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1978년 말콤은 뱅쿠버에서 최고의 보험 외판원이 됩니다. 말콤이 이런 훌륭한 삶을 살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 바로 그를 찾아 온 아버지를 보았을 때였을줄 압니다. 아버지는 그의 상처가 도리어 축복이 되게 하는 길이 될수 있음을 일깨워 준 것입니다.
부끄러운 가운데 살수밖에 없었던 아들을 아버지가 찾아 오셔서 준 선물은 희망이었습니다.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런 소중한 선물을 주셨는데 우리 하나님은 이 보다 훨씬 소중한 영원히 손상되지 않는 희망을 주시지 않으실까요? 부끄러운 눈을 겸연쩍게 하는 사랑의 가죽옷 말입니다.

이처럼 부끄러운 눈으로 현실을 바라 보던 아담에게 하나님은 최고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그 선물을 대강절 두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희망의 눈으로 온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셨습니다. 온 세상에는 희망이 꽃 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죽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주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금주간 희망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새롭게 보십시다. 주님께서 가죽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Elizabeth Kelly라는 분이 대강절 묵상집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수년전 한 쪽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단번에 안 보이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나빠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력이 필름처럼 움직이더니 칼라가 사라지고 드디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몇 주 후에는 전혀 그 눈으로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놀라운 깨달음이 임합니다. 두 가지 눈을 소유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나는 육안으로 보는 눈, 또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눈. 육안으로 보는 눈도 소중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눈이 더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로 육신의 눈을 보살핌과 아울러 더 소중한 눈 세상 안에 희망을 찾는 눈을 보살피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이 눈을 주시기 위하여 아기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고 또 찾아 오시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로서 우리를 찾아 오심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마음껏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평범하고 진부한 세상 일 안에서도 희망이 담겨 있음을 느끼십시다. 온 세상에는 희망의 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온 세상은 희망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숨겨진 희망을 어디서나 찾을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가죽옷을 입히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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