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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부활

날짜 : 2014.04.20
예배명 : 부활주일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이스라엘의 부활
성경본문 : 역대하 22: 10-23:4a, 24:1-3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40420.wmv

2천여년전 마게도니아의 국왕인 알렉산드리아 대왕이 인도를 정복하기 위해 출정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여정은 험난했고, 설상가상으로 물까지 바닥났습니다.
병사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헤맸으나 그들이 찾은 물이라고는 겨우 한 잔에 불과했습니다.
그 한 잔의 물을 전해 받은 대왕은 군대를 집결시켜 놓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드디어 수원을 찾았다. 계속 전진하면 물을 마실 수 있다!”
그리고는 병사들이 어렵게 구해 온 물을 과감하게 땅 바닥에 뿌려 버렸습니다. 순간 침묵이 흐르는 것 같더니, 곧이어 지축을 뒤흔드는 환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자신감으로 똘똘뭉친 그의 말 한 마디와 카리스마 넘치는 행동은 병사들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한 희망의 멧세지였던 것입니다.

사실 병사들은 수원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왕의 모습에서 수원 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은 것입니다. “드디어 수원을 찾았다” 외치는 대왕에게서 승리의 수원을 그에게서 찾은 것입니다. 이런 지도자를 갖고 있는 백성은 복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알렉산더 대왕보다도 불굴의 희망을 소유한 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제사장 여호야다입니다. 여호야다는 아하시야왕과 아달랴 그리고 요아스왕이 통치하던 시절의 제사장입니다. 여호야다는 130세를 살면서 세 왕을 거친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여호야다가 유다왕들 계보에 어느 시절에 섬겼는지 스크린을 통해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스크린: http://blog.daum.net/osi1031/11703336 )
가운데 쯤에 아하시야가 나오고 아달랴 그리고 요아스가 나옵니다. 아하시야는 다윗을 1대로 생각하면 8대 왕이 됩니다. 물론 사울 왕을 빼고 계산한 것입니다. 옆에 각 왕을 평가하는 항목이 나옵니다. 아하시야는 ‘악’, 아달랴는 ‘극악’, 요아스는 ‘선’으로 나옵니다. 물론 이것은 주관적 평가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좋은 참고는 됩니다.
그런데 아하시야 다음에 아달랴가 왕이 되었는데, 오늘 첫번째 본문 말씀 10절을 보면 좀 고개가 갸우뚱하게 됩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아하시야가 여덟번째 왕이고 아달랴가 아홉번째 왕인데 아달랴가 사실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아들이 죽자 어머니가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까지는 그럴수 있지 않습니까? 아들의 뒤를 이어 어머니가 왕이 될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그 다음 표현입니다.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좀 이해가 안 되죠. 아들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것까지는 좋은데, 왕이 된 후 유다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아들의 자녀들까지도 곧 자기 손자까지도 죽였다는 것입니다. 아달랴는 손자들을 죽이고 아들에 이어서 여왕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수 있을까요?
숨겨진 사실을 알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아달랴는 사실 북왕국의 사악한 왕 아합의 딸입니다. ‘아합’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자기 왕궁에 가까이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얻기 위하여 나봇을 모함합니다.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해서 그를 돌로 쳐 죽입니다.
곧 아달랴는 이러한 아합의 딸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사악합니다. 그러니 그 딸이니 얼마나 악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러면 더 궁금해지실줄 압니다. 어떻게 이 아달랴가 남왕국의 왕의 가족이 될수 있었겠는가?
이 당시 북왕국이 강대해지니까 아하시야의 할아버지가 북왕국과 사둔을 맺은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든다면 남한의 대통령이 자기 아들을 북한의 주석의 딸과 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다지파 곧 남왕국이 쉽게 멸망할리가 있겠습니까? 11절을 봉독해 드리면,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
그런데 한 가지 희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아스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누구일까요? 배 다른 공주 여호사브앗-여호사브앗의 어머니는 아달랴가 아닙니다-여호사브앗이 자기의 아들은 아니지만 자기 조카인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숨깁니다. 계속해서12절 말씀을 보면,
“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6년 동안 요아스는 성전에 숨어 있고 아합의 딸 아달랴가 무려 6년간 남왕국의 여왕이 됩니다.
상상해 보십시요. 북한 주석의 딸이 남한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5년도 아니고 6년간, 사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아니었으면 남은 평생 여왕의 자리를 지켰을지도 모릅니다. 5년도 길다면 긴데 6년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달랴가 여왕이 되면서 실질적으로는 다윗 왕국은 멸망한 셈입니다. 더 이상 다윗의 혈통을 잇는 왕은 나타날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 사이 여호야다는 1살 난 아이를 아내와 함께 숨어서 키웁니다. 얼마나 매일 매일 속이 타 들어 갔겠습니다. 아이가 아차 하면 아달랴 앞에 나타날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숨겨 키운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여호와의 전이라도 그렇지 알지 못하는 아이 소리가 들리면 아달랴가 가만히 두었겠습니까? 아달랴도 눈이 뚫어지라고 요아스를 찾았을텐데 말입니다.

제가 지난 주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최근 읽었던 책을 찾으려고 하는데 찾아지지 않습니다. 바로 지난주 설교에 인용했던 책인데 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서재를 찾고 또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10번쯤 뒤진 것 같습니다. 서재에 들어 갈 때 찾아 보고 나올 때 찾아 보고…. 드디어 포기했습니다. ‘올해 사순절은 다 지났는데 내년 사순절 전에는 보이겠지.’ 단념했습니다. 한편 단념하면 보이지 않을까 기대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얇은 책이니 더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단념하고 새벽기도인도도 해야 되니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교회에서 귀가한 후 또 서재에 들어가서 찾아 봅니다. 아무리 새벽기도회를 갔다가 왔어도 별 진전이 없었습니다.
한 나절을 보내고 서재에 들어가는데 책 받침대 위에 젊잖게 자리 잡고 있는 성경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순간 생각이 스쳐가기를 성경책 아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책을 드니 그 아래 얌체처럼 숨어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받침대 아래는 여러번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책 밑에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틀만에 얇은 책을 찾고야만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그 책이 아무리 숨으려고 해도 뜻을 갖고 있는 저에게 이틀만에 탄로가 난 것입니다.
아달랴도 요아스를 찾으려고 무지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드디어 잊어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을까요? 한편 여호야다는 6년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윗 왕국은 결코 멸망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23장 말씀을 보면 쉽게 알수 있습니다. 1절 시작 부분을 보면,
“제칠년에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백부장 곧…( 다섯 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등과 언약을 세우매.”
칠년째가 되었습니다. 이는 아달랴의 칠년째 통치가 들어 간 해를 뜻합니다. 많은 따르는 자들을 부르더니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3, 4절을 보면,
“이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 이제 너희는 이와 같이 행하라.”
두 가지가 눈에 띄입니다. 첫번째는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 한 순간도 이스라엘의 멸망을 믿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이스라엘이 부활할 것을 믿은 것입니다. 여기서의 이스라엘은 유다왕국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두번째 눈에 띄는 것은, 그는 확신 가운데서 선포합니다.
“너희는 이와 같이 행하라.”
이에 여호야다의 명령을 듣고 추종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아달랴를 죽입니다. 곧이어 요아스가 왕위에 오릅니다. 24: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칠 세라 예루살렘에서 사십년 동안 다스리니라.”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 물을 땅에 부으면서 “수원을 찾았다.” 외쳤을 때 모든 병사가 환호했듯이 여호야다가 “너희는 이와 같이 행하라” 외쳤을 때 모든 따르는 자들은 환호한 것입니다. 6년간 숨겨 두었던 요아스를 왕위에 세우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나라 이스라엘은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외침으로 한 나라가 부활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들 한 사람의 외침도 한 나라를 부활시킬수 있지 않을까요?
왜? 자신이 없으십니까?
그러면 알렉산더 대왕과 여호야다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가능성을 타진해 보겠습니다. 사실 여호야다의 외침은 알렉산더 대왕과 비슷하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왕은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그의 카리스마는 아마도 천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카리스마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태어나길 놀라운 카리스마를 안고 태어난 것 같습니다.
반면 여호야다의 카리스마는 좀 다릅니다. 그의 카리스마는 약속을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6년간 아슬아슬한 시간을 보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그 약속을 철저히 믿었습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이 그의 카리스마가 된 것입니다. 그가 외쳤을 때 한 나라가 부활한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감히 근접할수 없는 사람임을 잘 압니다. 그러나 여호야다는 우리가 근접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오래 믿음으로 우리도 카리스마의 사람이 될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 저는 확신 가운데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외침이 놀라운 역사를 이룹니다. 특히 하나님의 약속을 오래 믿은만큼 놀라운 역사를 이룹니다.
이를 주님이 증언하시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믿음이 우리처럼 왔다 갔다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올해 저희 교회 표어가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 보다 큰 일도 할수 밖에 없는 이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아버지께로 가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부활 후 제자들은 당신 보다 큰 일을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니 당신의 부활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보다 큰 일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으십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외침은 놀라운 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십니다. 1년이 되던 2년이 되던 계속해서 믿으십시다. 우리는 그만큼 카리스마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올해 감사한 것은 새롭게 두 단기선교 프로그램이 시작됩니다. 첫번째 프랑스 단기선교를 떠납니다. 현재 프랑스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2%안팎이라고 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들의 끝없는 외침일줄 압니다.
아울러 오랫만에 원주민 선교를 위해서 비젼trip을 떠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활의 주님을 끝없이 믿는 자들의 끝없는 섬김의 삶일줄 압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보다 큰 일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2세기 중반, 로마제국에서는 예수를 믿는 것은 불법이었고 온 나라의 신자들은 투옥 고문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집사였던 상투스도 체포되어 그 자신의 믿음을 부인하라고 위협당했지만 그의 결심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로마 관리 앞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짧은 대답을 제외하고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고소한 사람들은 그가 말문이 막히거나 자신의 신앙고백을 철회하기를 기대하며 그를 계속해서 압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 더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이러한 카리스마의 사람들로 인해서 그 후 로마제국은 기독교 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그보다 큰 일을 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외침으로 한 나라의 운명이 좌우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세상을 향하여 카리스마를 가지고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외칠 때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시지 않으실까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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