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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고 함께 울자

날짜 : 2012.07.16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함께 웃고 함께 울자
성경본문 : 로마서 12:14-15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20715.wmv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13명의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는 Katie Davis라는 분이 있습니다. 사실 이 분은 그냥 엄마라기 보다는 처녀 엄마입니다. 결혼도 안 한채 13명의 고아들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테네시의 어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하나님의 강렬한 부르심에 이끌려서 아프리카로 갑니다. 아프리카의 고아들이 하나 둘 씩 엄마라고 부르며 좇아 옵니다. 어느덧 13명의 고아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전혀 아이를 낳아 보지도 않은 처녀가 13명의 어린이,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고아가 된 어린이들의 엄마 역할을 하려니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어려운 일 가운데서도 아이들의 질문을 많이 받는데, 아이들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 볼 때면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일일이 답할 힘이 어디선가 솟다난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합니다.
“엄마, 우리가 잘 때 해는 어디에 가 있는 거예요?”
“엄마, 저는 죽으면 어디로 가요? 물고기도 거기로 가요?”
“엄마, 물고기는 왜 물 밖에서 숨을 못 쉬어요?”
“엄마, 왜 하늘은 파래요?”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질문은 “엄마, 예수님이 제 마음에 들어 와 사시면 저는 폭발하는 건가요?”
이 질문은 나일강으로 자녀들을 세례받게 하려고 데려가다가 받은 질문이라고 합니다. 순간 스무살 난 엄마는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아!”
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대답합니다.
“아니야. 예수님이 마음에 들어오시면 폭발하는 게 맞아.”

Katie는 자서전에서 계속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춤과 노래와 웃음과 울음이 터져 나온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격스러워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 뜻에서 그날 내 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맞아, 얘들아. 예수님이 너희 마음속에 들어와 사실 거야, 폭발할 준비들 단단히 하렴.’”

교우 여러분, 얼마나 멋있습니까? 예수로 인해서 폭발하는 삶, 이런 삶을 사시길 원하시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이런 삶은 어떤 삶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로 인해서 폭발하는 삶에 대해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로 인해서 폭발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그러한 사도바울의 모습을 찾아 볼수 있습니다. 먼저 14절 말씀입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자신을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는 것 쉽지 않죠. 그러나 사도바울은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할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예수로 인해서 폭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줄 압니다. 곧 사도바울은 예수의 축복탄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박해하는 자에게 까지 축복한 사람입니다. 아울러 로마 교인들에게 축복탄의 소유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도시에 경쟁관계에 있던 상인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가게는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망하게 할까 하는데만 마음을 썼습니다.
보다 못한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한쪽 상인에게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큰 선물을 내리실 것이오. 그대가 재물을 원하면 재물을 장수를 원하면 장수를, 자녀를 원하면 자녀를 주실 것이오. 단 한가지 조건이 있소.”
천사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무엇을 원하던 그대 경쟁자는 두 배를 얻게 될 것이오. 그대가 금화 10개를 원하면 그는 금화 20개를 얻게 될 것이오.”
천사가 웃음을 지으면서,
“이제는 화해하시오.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그대에게 교훈을 주시려는 것이오.” 하고 말했습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상인은 한참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하면서 어쩔수 없이 이웃을 사랑할수 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그러더니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가 무엇을 바라든 다 그렇게 이뤄진다는 말씀이지요?” 천사가 그렇다고 하자 상인은 크게 한숨을 쉬고는 결심한 듯 말합니다.
“그럼 제 한쪽 눈을 멀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뛰는 지혜를 넘어서 날으는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느낄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폭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저주하는 저주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이웃이 더 큰 손해를 보면 그것을 취하고야마는 자들이 바로 무서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도바울도 사실은 저주탄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곧 저주하려고 다메섹으로 향했던 사람입니다. 그 길에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나서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 안에 있던 저주탄은 축복탄으로 변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후로는 이웃을 축복하는 재미로 살았을 것입니다. 특히 자기를 박해하는 자를 마음껏 축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바울뿐이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도 같은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저주탄의 소유자였습니다. 예수를 믿은 후 저주탄은 축복탄으로 변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로마교인들에게 명령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사도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자기처럼 이웃을 축복하는 삶을 살자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축복의 폭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를 향해서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잘 알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축복의 폭탄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동안 이웃을 축복한 경험이 없다고 생각이 듭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요. 여러분도 놀라운 폭탄의 소유자들이십니다. 축복의 폭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 빼서 던지면 됩니다.
특히 사도바울은 박해를 받을 때 이 폭탄을 사용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이 폭탄은 예수를 믿음으로 받은 폭탄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 폭탄을 주신 예수님이 바로 박해를 받으실 때마다 이 폭탄을 터뜨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멋지게 그 폭탄을 사용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나는 이웃을 축복하는 믿음은 없지만 최소한 이웃을 저주하는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박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는 축복할 필요도 저주할 필요도 없습니다.”
참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아무도 저주하거나 박해하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의 이 축복의 폭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궁금해집니다. 이 폭탄을 사용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박해를 받을만한 일을 벌일수도 없고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이에 사도바울이 말씀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우리는 박해를 받지 않아도 이웃을 축복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입니다.

오래 전 일입니다. 제가 중학교1학년 때입니다. 그러니 까마득할 옛날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희 형님이 대학교 합격 통지를 받은 날이었습니다. 온 가족은 아주 행복한 분위기였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에 입학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요즘만 같애도 그런 일들이 있으면 온 가족이 파티를 열고 난리를 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만하더라도 파티를 열수 있는 여유로운 가정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희 가정도 그랬구요. 그냥 감사한 분위기가 온 집에 은은히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저희 집에 찾아 왔습니다. 사촌누이가 찾아 왔습니다. 형님의 합격 소식을 듣고 찾아 온 것입니다. 이 사촌누이는 사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분이었습니다. 이 당시 홀로 되신 어머니와 함께 사는 따님의 모습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무척 가난한 생활을 하는 사촌누이였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 오면서 형님에게 하는 말이,
“엄마가 너의 합격을 축하하라고 나에게 돈을 주셨어.”
가난한 가정이었지만 이들은 마음은 부유한 가정이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는 가정이었습니다.
물론 애석하게도 이 잔치에 저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합격 통지를 받은 형님과 바로 위 누님과 사촌누이가 나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것은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난한 사촌누이가 좀더 나은 가정의 즐거운 일에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은 아직도 저의 기억에 아름답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폭탄을 사용할줄 아는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폭탄을 소유한 자들은 이처럼 즐거워하는 자들을 찾아가 함께 즐거워합니다.
골프 치는 사람들이 hole in one을 하면 함께 즐거워하기 위해 파티를 여는데 이것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곧 여기에서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생겼는데 파티를 할수 없는 경우를 더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면 함께 즐거워할 사람이 없을 경우를 더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게 하시려고 주님은 저희 마음에 축복탄을 주셨습니다.

지난번 한국 방문 중에 한국에서 병원을 하는 친구를 만난적이 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저보고 기왕 한국에 왔으니 건강진단을 받고 가라고 하면서 자기가 목사 친구에게 해줄수 있는 선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저도 위내시경을 한번쯤 찍고 싶었지만 위내시경은 미국에서는 특별한 증세가 없이는 안 찍어줘서 늘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하고 어느 날 건강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갔습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더니 병원에 가까이 오니까 점점 더 긴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이상한 것이 발견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도착하자마자 혈압을 재니 좀 높게 나왔습니다. 잠시 후 긴장이 좀 가라앉은 다음에 다시 재었는데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이것 저것 검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위내시경 차례가 되었습니다. 혹시나 나쁜 게 발견되면 어떡하나 생각하면서 의사와 간호사의 지시대로 따라 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의사가 말해주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일단 모든 게 괜찮다는 임시 결과를 알고 병원을 나오는데 참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아무도 저의 즐거움에 함께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친구는 이미 출장차 미국으로 간 상태였습니다.
저 혼자서 자축하기 위해서 저는 택시를 탔습니다. 그리고는 교보문고로 향했습니다. 보통 때는 지하철을 타는데 이번에는 택시를 타며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즐거운 일에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한편 축복의 폭탄을 소유한 자들의 세번째 모습이 무엇일까요? 15절 후반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축복의 폭탄을 소유한 자들은 즐거워하는 자들에게만 찾아가지 않습니다. 우는 자들에게도 찾아갑니다.

첫번째 말씀드린 스무살 난 엄마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Katie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우는 고아들과 함께 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이런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 아닙니까? 울던 아이들이 이런 귀여운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되게 한 것이 아닐까요?

“엄마, 우리가 잘 때 해는 어디에 가 있는 거예요?”
“엄마, 저는 죽으면 어디로 가요? 물고기도 거기로 가요?”
“엄마, 물고기는 왜 물 밖에서 숨을 못 쉬어요?”
“엄마, 왜 하늘은 파래요?”
가장 재미있고 놀라운 질문은, “엄마, 예수님이 제 마음에 들어 와 사시면 저는 폭발하는 건가요?”
아이들의 울음에 함께 동참했을 때 이처럼 멋진 대화를 나누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Katie는 축복의 폭탄을 소유한 아가씨입니다. 그 축복의 폭탄이 고아의 울음을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의 노래로 뒤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 저희는 니카라과 단기 선교단 파송예배를 드립니다. 특히 감사한 것은 올 해 해외선교위원회 표어가 ‘함께 웃고 함께 울자’입니다. 아주 딱 어울리는 표어입니다.
선교는 바로 축복의 폭탄을 안고 가는 것입니다. 축복의 폭탄을 소유한 자들은 즐거워 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입니다.
니카라과 사람들에게는 자기만 아는 즐거움이 있을 줄 압니다.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곳에 계시는 동안, 그들의 즐거움은 배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의 울음이 있습니다. 그 울음에 함께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울음은 노래가 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이미 단기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함께 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그곳에 가서 1주일간 그들의 즐거움과 아픔을 끝까지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축복의 폭탄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웃음은 주님의 웃음입니다. 여러분의 눈물은 주님의 눈물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한번더 Katie Davis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Katie가 우간다에서 아이들을 돌보다가 잠시 미국 집에 와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간다가 이미 자기의 고향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다시 우간다로 향했습니다.
우간다 집에 돌아와서 두번째 날 아침입니다. 엄마는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아그네스라는 딸이 엄마를 보며 말합니다.
“보인다! 이제야 돌아왔어요!”
엄마는 잠이 떨 깨 휘청거리며 물었습니다.
“뭐가 돌아왔다는 거야?”
아그네스는 기쁨을 주체할수 없다는 듯 환히 웃으며 대답합니다.
“빛이요. 엄마 눈 속에 살아 있는 빛 말이예요!”

고아들과 함께 웃고 우는 가운데, Kate는 놀라운 빛을 소유했던 것 같습니다. 웃는 자들과 함께 웃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자들의 눈에는 이런 신비스러운 빛이 흘러나오나 봅니다.

선교단원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신비스러운 빛의 소유자입니다. 웃는 자들과 함께 웃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때 아름다운 주님의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이 빛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소유한 축복의 폭탄입니다. 이 빛을 발하십시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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