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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눈물

날짜 : 2008.03.21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마리아의 눈물
성경본문 : 요한복음 19:25-27

3월 21일(금) : 성금요일 설교

엄마와 두 살난 딸이 신발을 사러 신발가게에 왔습니다. 엄마가 진열된 신발을 하나씩 들어 보면서 딸에게 물어 봅니다. “이게 좋아, 저게 좋아?” 딸은 이미 마음으로 결정한듯 보였습니다. “이게 내 신발이야” 딸은 빨간 가죽 신발을 내 보였습니다. 엄마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한나(Hannah), 엄마는 신발 하나 밖에 사줄수 없어 그 신발이 예쁘긴 해도 별로 신을 기회가 적을 것 같애. 너의 옷들과 어울리는 신발을 사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엄마, 빨간 색은 어떤 색과도 잘 어울려요.” 한나는 자기 발 싸이즈보다 세 싸이즈나 큰 신발에 자기 발을 넣어보면서 말합니다. “게다가 이 것은 나에게 꼭 맞아요.” 옆에서 듣고 있던 세일즈워먼도 웃으면서 말합니다. “맞는 싸이즈가 재고에 있나 볼까요?” 딸의 표정을 살피더니 어쩔수 없이 “yes”합니다. 한나는 좋아서 껑충껑충 뜁니다. 세일즈워먼이 가져 온 신발을 신어 보니 정말로 꼭 맞습니다. “한번 테스트해 봐야지” 말하곤 가게 밖으로 나갑니다. 가게 밖에서 눈을 감더니 손을 벌리고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빙빙 돌기도 하고 사뿐사뿐 스텝을 밟기도 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나를 쳐다봅니다. 나이든 사람에서 아이들까지 쳐다 봅니다. 장바구니를 손에 가득 든 어느 여인은 옆에 사람에게 말합니다. “나도 언제나 빨간 신을 신기 원했거든요.” “저도 그래요.” 어느 순간 한나는 마지막 스텝을 멋지게 밟으며 춤을 마칩니다. 구경꾼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냅니다. 박수 소리를 받으며 한나는 엄마에게 달려 옵니다. “엄마, 이 신발이 내 신발이지, 그렇지?”

한나는 예쁜 신발을 몇번 신어보지도 못한채 3살이 되기 전 암으로 진단을 받습니다. 형용할수 없는 고통의 늪으로 엄마는 빠져 들어 갑니다. 깊은 고통의 늪에서 지낸지 7년, 엄마는 한나는 생각하며 책을 펴냅니다. 책 제목은 “한나의 선물”, 엄마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한나는 저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정직하고 재미있고 용감하게 한나는 하루 하루를 살았고 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한나는 저에게 더 깊은 지혜와 기쁨으로 가득찬 담대한 삶이 무엇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이러한 책을 펴내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눈물과 아픔의 7년을 보낸 것입니다. 그의 눈물은 한나를 새롭게 만나게 한 것입니다. 아직도 그의 눈물로 인해서 엄마는 계속 새롭게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 그 고통은 새로운 지혜의 샘으로 엄마에게 남아 있는 것같습니다.

오늘 낮에 정확히는 오전 9시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오후 세시경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6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고통 당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라아가 섰는지라.” 네 여자가 십자가 옆에 서있었습니다. 그 중에 누가 가장 큰 고통을 느꼈을지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마리아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지금 십자가 옆에 서 있습니다. 마리아의 고통은 경험하지 않고서는 가히 안다고 말할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갑자기 암으로 귀여운 딸을 잃는 것도 말할수 없는 고통일텐데, 지금 마리아의 고통은 그것과도 비길수 없는 고통임에는 두 말할 나위없습니다. 한편 마리아는 하나님을 향하여 많은 질문을 하였을 것입니다. 많은 원망을 하였을 것입니다. 사실 마리아는 원망을 하고도 남습니다. 그 누구도 나무랄 수 없습니다.

저는 감히 마리아의 고통과 비교할수는 없지만, 저의 아들 준석이가 4살 때인가 다리가 뿌러진 적이 있습니다. 기브스를 하고 집에 왔는데 앞으로 3개월을 기브스를 하고 지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말이 3개월 기브스지 제 아들이 어린 나이에 3개월간 기브스를 하고 지낸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원망까지는 안했지만 눈물을 흘리며 속히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적을 베풀어서 몇주 안에 기브스를 풀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물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구요.

마리아도 십자가 아래서 기적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이 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모두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누구나 다 경험한 듯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한 어느 분의 절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등산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어느 청년의 아버지가 다음과 같은 절규를 하나님께 하였습니다.

“아, 하나님, 우리를 조각내고 찢어놓는 이런 일들을 허락하실 때 우리가 견뎌야 할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은 피바다가 흐르고, 고통의 산더미가 쌓이고, 오열이 인간의 노래가 되는 것을 허락하셨을 뿐 우리가 볼 수 있는 그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의 줄이 고통스럽게 끊어지는 것을 수도 없이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우리가 이해할수 있게 해명해 보십시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답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침묵하셨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절규에도 침묵하셨던 하나님은 늘 침묵하십니다.

저는 이 설교 준비를 하면서 한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지만…. 그런데 이 수 많은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면 첫번째로 하나님께 질문할 것입니다. 앞을 다투어 질문할 것입니다. “하나님 왜 그때 침묵하셨습니까?” 이 수많은 질문을 받으며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저는 아마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를 보여주실 거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온 인류들의 고통이 마리아의 고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Be quiet’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눈물이 바로 하나님의 눈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아들의 죽음을보며 눈물을 흘릴 때 바로 하나님이 마리아 안에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마리아가 아무도 대답할수 없는 원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하나님도 아무도 대답할수 없는 원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가 인간 예수를 사랑한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하나님은 예수를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실 때 하나님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 그 누구를 향하여 외쳤을지 모릅니다. “당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우리가 이해할수 있게 해명해 보십시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눈물은 바로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해서만 마리아의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하나님에게는 두 가지 눈물이 있으십니다. 첫번째로는 사랑하는 아들 예수의 죽음을 보시면서 흘리신 눈물입니다. 두 번째로는 죄가운데 있는 인간들을 보면서 흘리신 눈물입니다. 우리들이 쓰러질 때, 우리들이 우리들의 죄로 인해 죽어 갈 때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마리아의 눈물을 흘리십니다. 하나님은 미칠 정도가 되셔서 괴로워 하십니다. 우리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은 절규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외치십니다. “당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해명해 보십시오.”

이 하나님의 고통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내려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두 가지 눈물중 어느 눈물을 먼저 흘리셨는지 자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통해서 인간이 죄를 범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눈물을 보시고 예수님이 이 땅위에 내려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시는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은 두 번째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괴로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그 하나님은 마리아의 눈물을 흘리시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으니 하나님은 눈물을 더 이상 흘리지 않으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갈 때만 하나님은 눈물을 닦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위로를 받으셨을까요? 누가 이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만 하나님은 위로를 받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들의 죄가 사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우리들의 구세주이십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너무나 극진히 사랑하시는 아들이십니다. 이 메시야를 찬양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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