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도 지난 겨울에 New England Patriots이 기적적으로 Super Bowl Champions이 된 사실을 잘 아실줄 압니다. 저도 물론 그 경기를 보았는데 처음 14점을 지기 시작하자마자 아나운서들이 자주 한 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10점 이상 지고 있다가 역전한 적은 없었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14점도 아니고 한 때 25점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이 때는 모든 사람들이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을 줄 압니다. 25점을 뒤지고 있을 때 역전승할 확률은 0.1%였다고 합니다. 곧 1천 게임 중에 한번 이길수 있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슈퍼볼만 생각한다면 천년이 지나야 한번 이길수 있는 확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지지 않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Patriots선수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Edelman이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0.1%의 확률을 믿은 사람이 바로 Edelman선수였습니다. 경기 중에 Edelman이 Tom Brady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Let’s go score and win this thing, baby. For your mom. For your mom, bro.”
(“우리 이겨 보자. 너의 엄마를 위해서 너의 엄마를 위해서”)
사실 Brady의 어머니가 경기를 참관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암 말기의 환자였습니다. 그래서 Edelman은 “For your mom. For your mom.” 했던 것입니다. 이 말이 Tom Brady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결국 99.9% 질수밖에 없다는 확률을 깨고 우승 트로피를 걸머 쥐게 된 것입니다.
한편 앞으로 천 년이 지나야만 또 수퍼볼에서 이런 경기를 볼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역사적인 경기가 아니었나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에델만의 말을 각색해 보았습니다.
“Let’s make a history for your mom.”
이 말을 듣고 Tom Brady는 역사를 만들어 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게임이 끝나자 마자 누구나 다 Tom Brady를 G.O.A.T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Goat는 염소인데 왜 염소라고 부르나 자세히 들어 보니 Greatest of All Time의 약자였습니다. 정말 Tom Brady는 역사적인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로 인해서? 에델만 때문에….
“Let’s make a history for your mom.”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지난주일이 추수 감사주일이자 저희 교회 창립 64주년 기념 주일이었는데 두 주제를 한 설교에 다룰수가 없으니 지난주에는 교회 창립에 관계된 말씀을 드리고 오늘 감사절 설교를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Tom Brady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아마 Tom Brady는 올해 최고의 감사절을 맞이했을줄 압니다. 그러면 감사절은 Tom Brady처럼 그야말로 천 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하는 축복을 받은 자들을 위한 절기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참 감사란 무엇인지, 감사절은 누구를 위한 절기인지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감사제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드리는 노래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도 예배 첫 입례송으로 찬송가 ‘감사하는 성도여’를 불렀는데 바로 그런 입례송이었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곧 이 노래를 부르며 성전으로 들어 오고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시인은 감사하는 이유를 고백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면 좀 애매하게 감사의 내용이 전개됩니다. 먼저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인해 주의 이름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을 보면,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가슴으로는 느껴지는데 머리로 분석하려니 좀 앞 뒤가 안 맞습니다. 주의 이름에 감사할 때는 언제고 곧 바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다는 것은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인의 삶을 뒤집어 놓은 것 같습니다. 얼마나 크게 뒤집어 놓았던지 한 때는 주의 이름보다도 더 크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당신의 이름 위에 올려 놓아도 상관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말씀의 놀라운 위력을 체험한 것입니다. 한편 그 다음 절에 시인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전체 문맥을 보면 주께서 응답하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가 일어난 것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영혼에 힘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곧 Tom Brady와 같은 기적이 생겨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말씀으로 인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임한 것이 기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영혼에 힘을 얻게 되어서 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말하다’는 ‘다바르’입니다. 반면 광야는 ‘미드바르’입니다. 곧 ‘말하다’와 ‘광야’는 같은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신 곳이 어디입니까? 미디안 광야 떨기나무입니다. 떨기나무는 광야에 있는 나무이죠. 광야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모세가 광야로 쫓겨가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 있었을까요? 곧 말씀과 광야는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로서 알수 있는 것은 시인은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의 광야에서 간절히 기적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이 말씀이 시인의 영혼을 강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인해 환경을 이기고도 남는 강한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감사제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의 시는 시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곧 수천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이 된 것입니다. 시인의 감사제의 시작은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에 덩달아 듣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4, 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은 그들이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 혜택이 세상 왕들에게까지 임했습니다. 세상 왕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을까요?
사실 광야 40년간 세상의 왕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없앨려고 가진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 남았습니다. 말씀으로 인해…. 살아남은 결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온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음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입니다.
이진희 목사님이 ‘광야를 읽다’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광야에서는 성공이 목표가 아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 목표다.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광야에서는 살아남기만 해도 성공하는 것이다.”
곧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살아남은 것입니다. 무엇 덕분에…? 광야에서 들려오는 말씀 때문에…. 이를 보고 온 세상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듣게 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사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넌 사람들입니다. 천년에 한번 있는 일이 아니라 수 천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을 맛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홍해의 사건을 통해서 온 왕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홍해를 건넌 자들을 기회만 있으면 죽이려 했습니다. 자기들이 죽이지 못 할 것을 알자 어떤 방법으로도 광야에서 죽어 가게 되도록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 결과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온 세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곧 홍해의 사건이 세상 왕들을 놀라게 한 것이 아닙니다. 40년간 광야를 버틴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들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 없이 광야를 버틸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도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큰 일을 안 해도 됩니다. 광야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됩니다. 이 때 온 세상 왕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러면 온 세상 왕들을 깜짝 놀라게 한 광야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한 이야기가 시인의 노래를 잘 이해하게 합니다. 아키바라는 랍비가 먼 길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보기 위한 등잔과 시간을 알리는 수탉, 먼 길을 위한 나귀와 유대 경전인 토라를 가지고 떠났습니다. 여행 도중 날이 저물어 한 마을에 들어가 잠을 청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거절하였습니다. 언제나 감사하는 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좋게 하시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하실 거야.’
그는 오히려 감사하며 마을 한 모퉁이에 천막을 치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길에서 노숙하려니 잠이 오질 않아서 토라를 읽으려고 등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람에 등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하실 거야’ 하면서 또 감사했습니다.
다시 잠을 청하며 누우려 하자, 이번에는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에 나귀가 놀라 멀리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쯤되면 불평이 나올 법도 한데 그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하실 거야’라고 감사했습니다. 나귀가 도망치는 바람에 수탉도 놀라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토라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유익하게 해주실 거야’하며 또 감사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날이 밝아 그는 짐을 챙겨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전날 밤 도적 떼가 습격하여,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만일 등잔이 켜져 있었다면 그리고 나귀나 수탉이 울부짖었다면 그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아키바는 시인의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환경에도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인은 끝으로 고백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시인은 어떠한 환경에도 감사했습니다. 이런 감사시를 쓰게 된 것만으로도 알수 있습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감사하는 시인은 또 다른 확신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그 보상은 영원한 보상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천년에 한번 있는 성공이 보상이 아닙니다. 영원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언제 주어진다구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감사할 때 주어집니다. 감사할 때 광야 가운데서도 살아남게 됩니다. 영원한 축복의 세계로 언젠가 들어가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Tom Brady는 될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될수 있습니다. 우리의 광야에서 감사제를 드린다면 우리로 인해서 온 세상 왕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함께 감사제를 드리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감사절마다 생각나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6-18절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광야 교회였습니다. 개척한지 1년 될까 말까 할 때 큰 환난이 교회에 닥쳤습니다.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그 곳을 떠날수 밖에 없었습니다. 떠난지 얼만 안 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마지막 부분에 이 말씀을 적은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하며 살아 남으라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 왕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천년에 한번 오는 성공이 아니라 영원한 성공이 주어집니다.
교우 여러분,
살아 남읍시다. 감사하십시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십시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