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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으로 가서…” (누가복음 2:8-20) 12/24/2017

 

Simon Anholt라는 분이 ‘Good Country Index’를 2015년도에 발표했습니다. 한 마디로 전 세계적으로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려주는 표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수년 동안 여러 기관을 위해 자문해 오다가 드디어 이런 Index를 발표하게 되었는데, 좋은 나라라는 기준을 35개의 종목으로 구분해서 점수를 매겨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 몇 개만 소개해 드리면…, 첫번째로는 국가 경제력에 비해서 외국 유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보스톤에 유학생들이 많이 와 있죠-, 두번째로는 좋은 상품을 얼마나 많이 만드는지 –아마도 건강 식품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세번째로는 평화를 위해서 군인사절단을 얼마나 보냈는지, 네번째로는 공해 물질을 얼마나 적게 뿜어 내는지…. 물론 이것 말고도 31개 종목이 더 있습니다. 그러니 꽤 신빙성이 있는 자료인 것 같습니다.

하여튼 이것을 발표한 Anholt씨는 자신은 제일 좋은 나라에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015년도 제일 좋은 나라는 163개국중에 네델란드가 1위, 다음으로 스위스, 다음으로 덴마크라고 발표합니다. 본인은 한 마디로 네델란드에서 살고 싶다는 뜻입니다.

자 그러면 궁금하죠.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몇 등인지 그리고 우리의 조국 한국은…? 미국은 아쉽게도 25번째 좋은 나라라고 합니다. 한국은, 미국 보다 조금 뒤쳐진 29번째 좋은 나라라고 합니다. 좀 안심이 되나요?

반면 제일 안 좋은 순으로 말씀드리면, 1위가 아프가니스탄, 그 다음으로 리비아, 그 다음으로 이락 순서가 됩니다. 2015년도 가장 좋은 나라는 네델란드이고 반대인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오늘 성탄 주일 예배로 드리는데 만일 주님께서 오늘 태어나신다면 주님은 어떤 나라에 태어나시길 원하실까요? 가장 좋은 나라인 네델란드에…? 아니면 정반대인 아프가니스탄에…?

 

본문 배경인 2:1절을 보면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통치할 때 베들레헴에 태어나십니다. 이로써 첫번째 생각할수 있는 것은 로마와 같은 강대국에 태어나시지 않으실까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11절 말씀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다윗의 동네는 바로 베들레헴인데 주님은 강대국도 아니고 좋은 나라 나쁜 나라도 아니고 약속의 땅에 태어나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도 됩니다. 이를 확증해 주는 것이 미가서 5:2절 말씀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러면 이제 확실해 졌습니다. 주님은 좋은 나라나 나쁜 나라를 구별하시지 않으십니다. 약속하신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렇다면 약속의 땅에서 태어나시도라도 어짜피 누군가는 처음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시길 원하셨을지가 궁금해집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당신의 탄생을 알려주셨죠?

성경 말씀을 보기 전에 Massachusetts가 낳은 대통령 John Quincy Adams의 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이런 사람에게 처음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으셨을까요?

“만일 당신의 행동이 이웃으로 하여금 꿈을 더 꾸게 하고 더 배우게 하고 더 훌륭한 일들을 행하게 하고 더 자신을 세우게 한다면, 당신이 리더이다.”

 

자, 그러면 누구에게 처음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셨는지, 곧 누가 이웃을 위한 참 리더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양 떼를 지키더니.” 밤에 양떼를 지키고 있었던 목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목자들의 모습에서 참 리더의 모습을 보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셨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목자가 아닙니다. 밤에 양떼를 지키는 목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저보다 나이는 좀 어리지만 제가 무척 아끼고 존경하는 현재 연세대 신과대학원 부원장으로 수고하시는 방 연상 교수님이 계십니다. 그 분과의 일화가 있습니다.

방 교수님과 제가 함께 전도사로서 필라 연합 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였습니다. 함께 섬기던 어느 전도사님이 고혈압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어느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함께 교역자들이 모여서 병원 기도실에서 합심 기도를 하고는 병실 앞에 모였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일단 24시간을 교역자들이 병실 앞에서 지키자고 하시면서 누가 밤에 병실을 지키겠냐고 물으셨습니다. 방 교수님 물론 그 때는 방 전도사님이 제일 먼저 자원하셨습니다. 저에게는 그 모습이 늘 저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어느덧 저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저보다는 한참 젊어도….

 

생각해 보십시다. 주님은 낮에 병실을 지키는 사람에게 더 당신의 모습을 제일 먼저 보이시길 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밤입니까? 왜 밤일까요?

 

이들은 새벽별을 기다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깜깜한 밤에 언젠가 떠오르고야 말 새벽 빛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빛을 기다리면서 양떼를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밤에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을 택하신 이유가 이해가 됩니다. 이들의 모습 안에 온 인류를 이끄는 리더의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밤에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가 밝아올 새벽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새벽빛을 기다리는 목자들에게 어떤 일이 나타나나요? 9절 말씀입니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주의 사자는 목자들을 온 인류의 리더로 임관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에 온 인류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깜깜한 밤에 새로운 빛을 기다리는 자들을 제일 먼저 만나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결국 목자들을 온 인류의 리더로 임관시키신 것입니다. 당신이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계속 천사가 말합니다. 10절 이하 말씀입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강보에 싸여 뉘어 있는 아기가 바로 앞으로 오는 놀라운 세계에 대한 확증이요. 바로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목자와 같은 온 인류의 리더들이 기다리는 놀라운 세계가 바로 아기 예수로 인해 펼쳐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선언과 더불어 하늘에서는 사상 최대의 에어 쇼가 펼쳐집니다. 13, 14절 말씀입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아기가 앞으로 오는 놀라운 세계의 확증이요 그 자체임을 축하하기 위하여 하늘 나라 천사들이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이제 에어쇼는 끝났습니다. 목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 봅니다. 아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겸연쩍은 느낌도 받았을지 모릅니다. 밤마다 서로 서로 어느 나라가 좋은 나라고 어느 나라가 나쁜 나라고 자주 싸우다시피 토론했던 모습이 떠올랐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함께 새벽을 기다렸던 자기들의 모습도 서로의 모습 안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세상 나라들에 대한 평가는 달랐지만 기다림에는 항상 서로의 힘이 되었음을 새삼 느껴 봅니다. 그리고 함께 새벽을 기다린 우정을 기리면서 베들레헴으로 가 보자고 합니다.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를 만나고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들의 이야기를 다 전한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다시 양떼가 있는 곳으로 돌아 갔습니다. 돌아온 그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요? 아기 예수를 뵙기 전과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얼마전 제가 매일 한번씩 들어가 보는 goodnewsnetworksite에 아주 예쁜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MIT연구진들이 개발한 것인데 nano-technology를 사용해서 나무에 아주 미세한 입자를 넣어서 밤에도 빛을 발하게 하는데 성공을 하였다고 합니다. 앞으로 잘 개발이 되면 가로등 대신에 가로수가 밤에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평범해 보이는 나무가 밤에는 빛을 발하는 가로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저는 목자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그냥 밤을 밝히는 가로등의 역할이 아니라 영혼의 밤을 밝히는 가로등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좋은 나라 나쁜 나라를 구분을 잘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갈증이 있던 자들입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가 차고 넘쳤던 자들입니다. 이들은 좋은 나라에 살던 나쁜 나라에 살던 상관이 없이 있는 곳에서 최고의 세계를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차고 넘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납니다. 천사는 아기 예수가 계신 곳을 알려줍니다. 결국 아기 예수를 만나고 아기 예수의 빛으로 세상의 가로등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이 세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좋은 나라 나쁜 나라를 구분하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좋은 나라에 가서 살려고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지금 어떤 나라에 있던 영적인 밤을 느끼는 자들입니다. 아울러 영혼의 새벽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2년간 북한에 억류되었던 케네스 배 선교사님을 잘 아실줄 압니다. 요즘 한국에서 활동하시는데 북한 주민을 위한 100만명 기도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웹싸이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새벽을 기다리는 고백문입니다.

제목은 ‘그날이 오리라.’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있는 곳에서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위해 기도에 힘쓰시는 동역자님들의 기도가 있기에 지금의 평화가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남북간에  전쟁의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이 시기에 남 북이 하나되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그 어느때보다 팔요한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의 하나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하늘에 전달되어 하나님을 감동시킬때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이 그치고 통일의 그날이 오리라 확신합니다.  기도는 국경이 없음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국경을 초월하여 역사하심에도 감사드립니다.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우리가 통일을 준비하며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교우 여러분,

새로운 세계는 도래하고야 맙니다.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날이 도래하고야 맙니다. 우리 가운데 태어나시는 아기 예수가 그 표적입니다. 아기 예수와 더불어 찾아 오는 새벽을 간절히 기다리십시다. 세상의 가로등이 되어 가십니다. 함께 베들레헴으로 가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랍비 주시아의 ‘도둑에게서 배울 점’이라는 글입니다. ‘도둑’ 대신에 ‘목자’로 바꿔 놓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도둑’으로 읽겠습니다.

“도둑에게서도 다음의 일곱 가지를 배울 수 있다.
그는 밤 늦도록까지 일한다.
그는 자신이 목표한 일을 하룻밤에 끝내지 못하면
다음날 밤에 또다시 도전한다.
그는 함께 일하는 동료의 모든 행동을
자기 자신의 일처럼 느낀다.
그는 적은 소득에도 목숨을 건다.
그는 아주 값진 물건도 집착하지 않고
몇 푼의 돈과 바꿀 줄 안다.
그는 시련과 위기를 견뎌낸다. 그런 것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잘 안다.”

 

목자로 바꿔도 너무나 어울립니다. 그런데 도둑과 목자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목자에게 한 가지를 더합니다.

“그는 새벽을 기다린다.”

 

교우 여러분,

21세기의 리더가 되십시다. 확신을 가지고 새벽을 기다리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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