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세상을 떠난 한 남자에게 신이 여행 가방을 끌고 닥아 오고 있었습니다. 신이 말했습니다.
“자, 아들아, 떠날 시간이다.” 남자가 놀라서 말합니다.
“이렇게 빨리요? 난 계획들이 많았어요.”
“미안하다. 하지만 떠날 시간이야.” 남자가 물었습니다.
“그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요?”
“너의 소유물이 들어 있지.”
“내 소유물이요? 그 말은 내 물건들…… 옷과 돈, 이런 것들인가요?”
“그런 것들은 너의 것이 아니었어. 그것들은 이 지구에 속한 것들이지.” 남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추억들인가요?”
“아니야. 그것들은 시간에 속한 것이지.”
“내 재능들인가요?”
“아니, 그것들은 환경에 속한 것이지.”
“그럼 내 육체인 게 틀림없군요.”
“아니, 아니야. 그것은 흙에 속한 것이지.” 남자가 말합니다.
“그럼 내 영혼인 게 확실해요!” 신이 말합니다.
“슬프게도 넌 잊었구나, 아들아. 네 영혼은 나에게 속한 거야.”
남자는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두려움에 떨며 신의 손에서 여행 가방을 받아 안을 열어 보았습니다. 가방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남자는 비통해하며 눈물이 뺨을 적셨습니다. 그는 신에게 물었습니다.
“난 아무것도 소유한 적이 없나요?”
“그렇다. 넌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어.”
“그렇다면 내 것은 뭐였죠?”
“너의 가슴 뛰는 순간들, 네가 삶을 최대한으로 산 모든 순간이 너의 것이었지.”
숨쉰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사는 것은 가슴 뛰는 순간들이라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맞습니다. 모든 것을 놓고 가는데 우리가 가지고 가는 것이 있다면 가슴 뛰는 순간들일줄 압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한 평생 가슴 뛰는 순간들로 가득찬 삶을 살아 갈까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제일 처음으로 듣는 음악 멜로디가 있습니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엄마의 심장 소리입니다. 엄마의 가슴 뛰는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게 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항상 목적이 있는데, 엄마의 심장 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가슴 뛰는 삶을 살게 하는 응원가인 줄 압니다.
요즘 봄이 왔는데 나무들이 햇빛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듯 합니다. 그런데 식물에 관한 어느 책을 보니 나무는 당연히 햇빛을 향하여 움직이지만 동시에 소리로 향하여도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한 음반 회사에서는 식물의 생장 촉진용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곧 식물도 빛 뿐 아니라 소리의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식물도 소리의 자극이 필요한다면 동물 아니 사람은 어떠하겠습니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당연히 엄마의 심장소리입니다. 그래서 엄마 뱃속에서는 모두가 이 심장 소리를 다 들으면서 자랍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장한 후입니다. 성장한 후에는 엄마의 심장 소리가 필요 없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 룻은 성장한 후에도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었던 여인인 것 같습니다. 룻은 모압 여인입니다. 곧 이방 여인입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시어머니인데 나오미는 유대여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말씀드리면, 유대 땅 베들레헴에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기근이 와서 어쩔수 없이 온 가족이 이방 땅 곧 모압지방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모압지방으로 가서 두 아들이 결혼을 합니다. 모압 여인들을 며느리로 얻게 됩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십 년이 지난 후 두 아들마저 세상을 떠납니다. 세 여인만 남게 된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
그런데 그 때 드디어 유대 땅에 기근이 해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남편의 고향 땅인 베들레헴으로 돌아 가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큰 마음을 먹고 고향으로 떠납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서 나오미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8, 9절 말씀입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나오미는 대단합니다. 두 며느리가 따라 오고 있는데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그 나이에 혼자서 유대 지방에 가서 어떻게 살 것인지 아무 보장이 없는 여인입니다. 그래도 두 며느리와 함께 가면 뭔가 의지할 데라도 있지 않겠습니까?
한편 두 며느리 다 착합니다. 둘 다 울면서 떠나지 않고 같이 가겠다고 합니다. 나오미는 다시 두 며느리를 강하게 권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나오미가 룻에게 다시 말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이 때 나오미의 심장이 얼마나 뛰었을까요? 이에 룻이 대답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도 나오미 못지 않게 대단합니다. 사실 모압에 친 어머니가 계십니다. 그리고 아직 새 남편을 맞이하면 살기에 적당한 나이입니다. 편한 삶이 보장이 됩니다. 유대로 간다고 하면 그것도 혼자 가는 것이 아니고 시어머니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온 여인을 어느 총각이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룻의 결심은 대단합니다.
고부지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뿐 아니라 어느 민족에서도 다 똑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룻은 아주 특별한 여인입니다. 세상과는 거꾸러 가는 여인입니다. 무엇이 룻으로 하여금 세상과 거꾸러 가는 여인이 되게 했는지는 사실 오늘 본문 말씀으로는 정확히 알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들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 추정해 보는 것뿐입니다.
성서해석에 가장 중요한 원리 내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이 나의 신앙 생활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뛰는 가슴으로 읽는 것입니다. 그렇게 읽으시는 분이 최고의 성서해석자입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통달한 학자들이 결코 최고의 성서해석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최고의 성서해석자가 되어 보십시다.
룻은 나오미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동안은 자기의 남편을 통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남편이 나오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자랐기에 너무도 훌륭한 청년으로 자란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나오미와 생활하면서 나오미의 심장 소리를 느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매한 가지입니다. 두 며느리를 데리고 유대로 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 가라고 하는 나오미의 심장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평소에도 들었겠고…. 그래서 룻은 나오미의 심장 소리를 계속 듣기를 원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고백한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식물들이 아름다운 소리로 향하듯이 룻도 시어머니의 심장 소리로 향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자기의 죽은 남편처럼 자신도 경외감을 가지고 시어머니의 뱃속에서 심장소리를 듣는 경험을 원한 것입니다.
룻의 경외감은 다음의 표현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일원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되어서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통해 들은 그 심장 소리를 들으며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결국 나오미가 어떻게 합니까? 18절 말씀입니다.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룻기의 결론을 아시는 분들은 아실줄 압니다. 이방 여인 룻은 결국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룻의 증손자로 최고의 유대왕 다윗이 탄생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됩니다. 룻이 나오미의 심장소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다윗 왕도 없었을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심장 소리를 경외함으로 갚았습니다. 곧 부모를 공경함으로 갚았습니다. 이에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간 것입니다. 나오미의 심장 소리는 어머니의 내리 사랑의 외침입니다. 이 외침과 룻의 부모 공경이 만나 멋진 역사를 이뤄낸 것입니다. 한편 룻은 어머니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기에 남은 평생 가슴 뛰는 나날을 보낸 것입니다.
어머니 주일 설교 주제를 엄마의 심장 소리로 정하고 엄마의 심장 소리를 경외함으로 들으신 분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금방 한 시인이 떠 올랐습니다. 잘 아시는 이해인 시인입니다. 저에게 이해인 시인의 시집이 몇 권 있는데 눈에 띄는 시집을 먼저 손에 들었습니다. 목차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엄마’에 대한 시 두 편이 실려 있었습니다. ‘엄마의 사랑’이라는 시를 소개해 드립니다.
“엄마는 오래도록
무덤 속에 계신데
엄마의 사랑은
죽지도 않고
날마다 새롭게 부활하여
나에게
살이 되고
뼈가 되고
피가 되네
엄마의 사랑을
새 옷으로 입고
나는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네.”
이해인 수녀가 암투병 하신 사실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 암투병에서 이길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가슴에 담겨 있는 엄마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케 하는 시입니다. 어머니는 이미 하늘나라에 가 계시지만 수녀는 매일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고 사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이해인 수녀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암투병에서도 이겨낸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엄마의 심장 소리를 귀담아 들었기에 그는 위대한 역사의 한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경외의 마음으로 듣고 있고…. 매일 매일 가슴 뛰는 삶을 살면서 멋진 시를 짓고 계시지 않을까요?
어떤 분은 이런 생각을 하실지 모릅니다. 나오미나 이해인 수녀의 어머니는 특별한 분들이시기에 그런 멋진 심장 소리를 갖고 있었겠죠. 아무나 그런 심장 소리를 소유할까요?
류시화 시인이 편집한 시집 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원래 시는 이렇게 됩니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말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두 번째 줄이 눈에 띄입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그 제목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런 사랑이 있을까? 쉽게 그런 사랑을 찾을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닐까요?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수 있다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 말고 있을수가 없습니다.
사실 모든 어머니의 사랑은 이런 사랑이지 않을까요?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는 사랑. 나오미뿐 아니라 이해인 수녀의 어머니뿐 아니라 모든 어머니의 사랑은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모두 같은 심장 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 멋진 심장 소리가 경외감으로 듣는 귀를 만났을 때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룻과 이해인 수녀는 이런 귀를 소유했던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어머니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인정하는 마음이 만나는 곳에서 가슴 뛰는 삶이 펼쳐집니다.
얼마전 조선일보에서 나온 기사를 보았습니다. 올해 한국 청소년 인구가 90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불과 4년전에 1000만명대로 떨어졌는데, 4년만에 100만명이 더 줄었다는 것입니다.
통계청은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져 2020년 852만명, 2030년 699만명, 2050년 596만명 수준으로 청소년 인구가 급감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비관적인 통계입니다. 그렇다고 자녀 더 많이 낳기 운동을 벌이자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대한 역사는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부모 공경이 있는 곳에서 비로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수요 여성 공부를 마치고 어느 교우분이 참석하신 분을 대접한다고 해서 근처 Mall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하면 저는 조금이라도 걷곤하는데 Mall을 걷다가 교우 두 분을 만났습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교우님이 생일이라서 남편이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보고 하루 자유시간을 줘서 좋을 시간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편 분이 아주 대단한 분입니다. 남자이지만 룻과 같은 분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인정하는 아름다운 마음의 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도 쉼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자녀들도 배울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들이 공경을 받게 되면 더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어머니의 심장 소리가 더 커질 것입니다. 이를 듣는 자녀들도 멋진 심장 소리로 화답하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위대한 일의 주인공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클링톤 대통령 당시 미국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Janet Reno장관이 임명비준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에게 과연 법무장관에게 요구되는 결단력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네 형제는 모두 연년생이었습니다. 우리가 커감에 따라 집은 점점 더 좁아져 이사를 가야 했지만, 아버지 월급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조차 너무 빠듯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우리 어머니가 학교로 우리를 데리러 오셔서는 느닷없이 ‘내 손으로 직접 집을 짓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였어요. 우리는 놀라서 ‘집 짓는 방법을 알고 계세요?’라고 물었죠. 어머니는 ‘배우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고는 어머니는 정말 벽돌공, 전기공, 배관공을 직접 찾아가 집짓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워 오셨어요. 그리고 곡괭이와 삽을 들고 손수 연뭇을 파고, 벽돌을 쌓고, 전기 배선을 깔고 배관을 설치했죠. 혼자서 하시기에 벅찬 일은 아버지가 밤늦게 퇴근하셔서 도와 주셨고요.
그 후로 우린 계속 그 집에 살고 있습니다. 전 힘든 문제에 부딪치거나 곤경에 빠졌을 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입구에 서서 우리 집을 봅니다. 그 집은,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일이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해낼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산 증거인 셈이거든요.”
엄마의 자녀를 향한 사랑과 부모 공경이 미국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일들이 위대한 인류 역사를 이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들이 이 일의 주인공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공경으로 응답한다면 말입니다. 룻의 놀라운 고백을 다시 들으십시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