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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청지기” 누가복음 12:13-21 (11/04/2018)

 

5년 전 저희 교회가 창립 60주년 행사를 하였는데 행사의 일환으로 이민신학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그 때 초청한 강사 중에 현재 콜롬비아 신학교 교수이신 케빈 박 교수님이 계십니다. 최근에 저희 교단 뉴스레터에 한 article을 기고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

“저는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이민자의 자녀로 성장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제가 틴에이저일 때입니다. 모두가 교회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책상에 앉아서 여러 봉투에 깨끗한 돈을 넣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봉투마다 무엇인가 적고 계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계시냐고….

어머니는 신나게 말씀하시기를 주일 헌금을 준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봉투 하나 하나를 보여 주셨습니다. 십일조, 선교헌금, 건축헌금 등…. 마지막으로는 감사헌금 봉투를 보여주셨습니다. 지난 주일이 아버님 생신이었기 때문이라고 감사헌금을 준비하셨습니다.

저는 좀 신경질이 났습니다. 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신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돈 중에 얼마는 우리 가정을 위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말을 하려고 하는데 이미 어머니는 기쁜 마음으로 소리를 높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이처럼 축복해 주시니 얼마나 놀랍고 감사하냐…!”

어머니의 표정은 가식이 없는 순수한 표정 그 자체였습니다. 빛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의 빛 앞에서 제 비판의 눈초리는 금방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빛 앞에서 아들의 비판의 눈초리는 사라졌는데 사실 이 어머니의 빛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오늘 청지기 헌신 주일로 지킵니다. 1년에 한번 청지기 헌신 주일로 지키는 이유는 지난 1년을 돌아 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녹이고 있는가 아니면 더 무겁게 하고 있는가 살펴 보기 위함입니다. 물질로 인하여 빛을 발하였는가 아니면 세상을 더 어둡게 하였는가 살펴 보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 보면서  나의 현 주소가 어떠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주님의 마음을 녹일수 있는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주님께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요구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참, 기가 막힌 사람입니다. 주님을 언제 봤다고 주님께 다짜고짜로 찾아 와 요구합니다. 형에게 말해서 유산을 나누게 해 달라고…. 아마 아버지가 유산을 형에게만 주도록하고 세상을 떠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주님께 찾아 와서 형께 한 마디를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감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24년째 본 교회 목회를 하는데 돈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찾아 온 가정은 없었습니다. 물론 해결할 수 없어 보여서 아예 찾아 오시지 않으시기도 하셨겠지만…. 하여튼 이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그 속 마음은 무척 아프셨을줄 압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요? 내가 놓친 유산으로 인해 울고 불며 주님께 매달리지는 않나요?

 

하여튼 이 사람은 주님을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여긴 것입니다. 주님은 젊잖게 말씀하셨지만 주님의 마음은 꽤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을 아프게 한 사람일지라도 당신을 찾아 온 사람을 그냥 돌려 보내지는 않으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위대함입니다. 우리 같으면 더 이상 상대도 안 할텐데…. 15절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사실 주님은 당신을 찾아 온 사람을 그냥 돌려 보내시지 않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찾아 온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어떤 웃읍지도 않은 이유로 왔든지…. 어떻게 보면 웃읍지도 않은 이유를 가지고 온 것은 바로 그들은 치유가 필요한 것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그냥 돌려 보내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이 사람을 치유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시나요?

먼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말 자주 들어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주님은 너무도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특이한 특기가 발동이 됩니다. 16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비유는 주님께서 자주 쓰시는 천재적 문학 기술입니다. 주님께 찾아온 그 사람이 귀담아 듣기 시작합니다. 16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갑자기 늘 자기가 즐기던 백일몽 (daydream)에 잠깁니다. 잠시 부자가 되어 갑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것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정말로 자신이 늘 즐기던 백일몽 그대로입니다. 풍년이 들었는데 쌓아 둘 창고가 부족할 정도입니다. 기분 좋게 듣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주님은 자기의 백일몽을, 자기 안에 들어와 함께 즐겼던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계속 흥미진진하게 듣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주님도 함께 백일몽을 나누고 계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은 백일몽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었는데 이젠 그 부끄러움도 다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갑자기 즐기던 백일몽에서 깜짝 놀라 깨어납니다. 그야말로 일장춘몽, 꿈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영혼을 도로 찾아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판장도 아니요. 돈을 나눠주시는 분도 아니요. 하나님은 영혼을 시간이 되면 찾아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드디어 눈을 뜹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동안은 보이는 물질로 인해 안타까워 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이 형에게 다 가고 자기 손에는 없어진 것을 보고 슬퍼했습니다. 그가 볼수 있는 세계는 물질의 세계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주님은 어떻게 치유하고 계십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주님은 물질만 보고 살고 있는 이 사람에게 시간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주관하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임을 보게 합니다. 시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시간에 영혼을 도로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물질 위에 시간이 있음을 보게 하십니다. 시간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 때 치유가 시작됩니다.

 

주님을 찾아 온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치유가 시작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가 이 복음서를 쓸 때는 관심이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서를 읽을 독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 말씀을 읽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합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치유가 안 되어 시간 보다는 물질에 매여 있는 사람은 바로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치유가 된 사람은 정 반대가 될줄 압니다. 곧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됩니다. 바로 처음 소개한 박 교수님의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박 교수님의 어머니가 그토록 기쁜 마음으로 물질을 하나님께 드릴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어머니는 하나님을 재판장이요 돈을 나눠주시는 분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시간이 되면 영혼을 찾아 가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시간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펼쳐 가시는 분임을 믿은 것입니다.

물질은 시간의 흐름을 막을수 없음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 가운데 물질을 잘 사용하는 삶이 지혜로운 삶임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하신 것입니다.

 

저희 조카가 축구를 시작하였는데, 속한 축구 팀 이름이 ‘Dominators’ ‘완승자’라고 할까요? Dedham에 있는 축구 팀인데…, 그래서 그런지 응원 구호가 재밌습니다.

“Dedham dominates.”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구호입니다.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구호를 가지고 살아 갑니다.

“Money dominates.”

이들은 오늘 주님을 찾아 온 사람과 같습니다. 치유가 안 된 자들입니다. 반면 주님의 비유를 듣고 치유가 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Time dominates.”

이들은 언젠가 당신의 영혼도 찾아 가실텐데 그 전에 당신에게 맡기신 것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바치곤 합니다. 왜냐하면 ‘time dominates.’

 

사실 시간은 두 가지 면에서 dominate합니다. 하나는 물질을 가만 놓아 두면 시간은 모든 물질을 썩게 만듭니다. 녹이 슬게 만듭니다. 모든 물질은 언젠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time dominates.’

두번째로는 올해 저희 교회 표어가 ‘겨자씨를 심는 공동체’인데 겨자씨가 사실 ‘time dominates’를 온 세상에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 31, 32절 말씀 봉독해 드립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일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 정말로 얼마나 작고 하찮습니까? 그런데 시간 안에서 놀라운 나무가 되어 간 것입니다. 이런 겨자씨를 창고에 넣어 둔다면 얼마나 큰 손해가 되겠습니까?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 안에서 둘 중에 하나의 길을 갑니다. 썩어지든가 열매를 맺던가…. 박 교수님 가정은 열매 맺는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사실 처음 소개한 박 교수님의 글이 저의 가슴에 더 깊게 다가 온 이유가 있습니다. 박 교수님이 저희 교회에서 강의를 하실 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어느 한인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에 다니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어린 박 교수는 일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회사에 찾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좋은 방들을 다 지나고 제일 구석진 곳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그래도 아버님은 사랑하는 아들이 왔으니 점심을 함께 먹으려고 나갑니다. 나가는 길에 주인에게 가서 잠시 다녀 온다고 허락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때 주인의 표정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 시간 안에 꼭 들어 오라고 아버지께 말합니다.

순간 아버지가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자기들을 위해 뼈빠지게 고생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나면서 박 교수님이 쓴 글을 읽으니 더 저의 가슴에 깊게 다가 올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여튼 이렇게 번 돈을 가지고 어머니는 기쁘게 헌금을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도 일을 하셨겠지요….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그들은 기쁘게 바칠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의 영혼을 찾아 가실 분에게….

그들은 ‘Money dominates’가 아니고 ‘Time dominates’의 지혜를 갖고 살아 갔기에 그들의 삶 중에 제일 기쁜 시간은 바로 헌금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아니 준비된 헌금을 드리는 시간이었을줄 압니다. 이 시간은 그들에게는 최고의 시간이 된 것입니다.

 

최근 한국의 예배학자들이 한결 같이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아주 의미있는 말입니다. 예배는 사회자를 보는 것도 아니요 성가대를 보는 것도 아니요 설교자를 보는 것도 아니요. 그들과 함께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드린다는 관점에서 보면 예배 시간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 어느 시간이겠습니까? 당연히 헌금 시간일줄 압니다.

 

저는 상상해 봅니다. 박 교수님의 어머니는 일주일 내내 바로 이 헌금 시간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 시간을 위해서 일하셨고, 이 시간을 위해서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헌금을 봉투에 넣으셨습니다. 흥분된 마음을 안고…. 가슴이 터지는 기쁨으로 주일 예배시 헌금을 드리지 않으셨을까요…? 언젠가 당신의 영혼을 찾으실 주님께….

 

교우 여러분,

지금은 최고의 시간 헌금 시간이 지난 설교 시간입니다. 저희 교회는 최고의 시간인 헌금 시간 후에 설교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주일 예배 시간 중 모든 시간이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시간이 있지 않겠습니까? 예배는 드리는 것이기에 드리는 시간이 바로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드리는 시간을 최고의 시간으로 여기는 자들에게 놀라운 축복의 세계가 펼쳐질줄 압니다.

 

우리 손에 있는 겨자씨를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십시다. 물질과 시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들의 영혼을 도로 찾으실 하나님께서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의 열매를 거두실 것입니다.

아니 우리들의 영혼을 도로 찾으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부터 우리들의 삶에서는 빛이 나게 하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Time dominates.”

30배 60배 100배의 삶을 사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남 아프리카 공화국의 Tutu 대주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기쁨의 저수지가 되시고 평화의 오아시스가 되시고 맑음의 호수가 되세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귀한 복의 근원이 되세요.”

 

아무나 이런 사람이 될수 있을까요? 언젠가 영혼을 찾아 가실 분에게 최고의 것을 주일마다 기쁨으로 드리는 자들만이 이런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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