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휴가시 뉴욕에 가서 며칠을 지냈습니다. 뉴욕을 가 보고 싶었던 이유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Ground Zero를 가 보고 싶었습니다. 한 두번 뉴욕에 갔지만 회의차 가곤해서 Ground Zero를 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한 군데를 가 보고 싶었었는데 MOMA라고 Museum of Modern Art에 가 보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제가 안식월에 파리를 다녀 와서 Van Gogh그림을 좋아 하게 되었는데, 그의 대표작 Starry Night이 MOMA에 소장 되어 있습니다.
비오는 토요일 아침 집사람과 함께 박물관에 들어 갔는데 저희 집사람은 가방 검사를 해야 해서 뒤늦게 들어 올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서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진열된 책 중에 제 눈에 띄는 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수채화 그림과 함께 짧은 글들이 옆에 담겨져 있는 예쁜 책이었습니다. 무심코 책 한가운데를 폈는데 글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한쪽 페이지에는 예쁜 수채화 그림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목은,
‘Thinking large, building small’
글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In a world that rewards size, Seattle architect Tom Kundig like to build small.”
(큰 싸이즈를 선호하는 세상에서 씨애틀 건축가 Tom Kundig는 작게 짓는 것을 좋아한다.)
이 표현이 너무 좋아서 덥썩 사들고 왔습니다.
사실 요즘 저희 집에서 교회로 오는 길에 보면 작은 집을 허물고 크게 집을 짓고 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아마 제가 늘 이런 것을 보면서 지내다가 이 글을 접하니 더 가슴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글을 마칩니다.
“Building small doesn’t guarantee great architecture, but it doesn’t prevent it, either.”
(작게 짓는다고 훌륭한 건축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훌륭한 건축이 되지 않는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사실 저자는 이미 제목을 통해서 원하는 모든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게 짓지만 큰 생각을 하면서 짓는다면 바로 훌륭한 작품이 된다.”
세상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크게 지을수 있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러나 크게 짓는다고 다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우리 모두는 작게 지을수는 있습니다. 물론 작게 짓는다고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작게 지어도 크게 생각하면서 짓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작게 짓지만 큰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삶을 어떤 것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사도 바울과 함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등장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사도바울의 사역을 도운 모범적인 부부로서 아주 잘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이 부부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오늘은 부부 청년부 헌신예배이기에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이 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바울과 이 부부가 언제 어떻게 처음으로 만났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사도바울이 세 차례 선교 여행을 하였는데 지금 이 장면은 2차 선교 여행중입니다. 1차 선교 여행은 사도바울이 안디옥에서 떠나서 소아시아만 돌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
2차 선교 여행은 사도바울이 실라와 함께 1차 선교여행지를 돌아 보기 위해 떠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단지 소아시아를 돌아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소아시아 건너편으로 바다를 건너 마게도니아 지방에 선교하길 원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계획은 소아시아만 돌아 보길 원하는 것이었고 하나님께서는 마게도냐 선교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2차 선교 여행은 처음부터 많은 어려움이 생깁니다. 바울이 원하는 길을 갈수 없게 하시니 어려움이 생길수 밖에….
한편 어려움 중에서 하나님은 두 가지 큰 선물을 주십니다. 하나는 디모데를 만나게 하는 것이고 하나는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를 만나게 하신 이유는 지금 실라와 함께 가고 있는데 실라는 유대인 1세였습니다. 실라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헬라권인 마게도냐에서 선교하려면 바울에게 필요한 일꾼은 2세권 일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2차 선교가 시작하자마자 디모데를 만나게 하십니다.
이제 디모데와 실라와 함께 마데도냐로 건너가 2차 선교 여행을 하던 중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는데 왜 만나게 하셨을까요? 2절 말씀입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는데 이들은 로마에서 왔습니다. 아굴라는 로마 이름으로 독수리 eagle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브리스길라는 부유한 로마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이름입니다. 아마도 유대인이지만 로마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로마 황제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몰아 낼 때 어쩔수 없이 로마를 떠나서 고린도에 와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곧 디모데를 통해서 헬라권 선교를 돕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2차 선교여행이 무르익어 갈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부부를 통해서 바울의 선교는 완숙해집니다.
사실 사도바울의 서신이 쓰여진 때를 보면 거의 모두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난 후입니다. 곧 이들과의 만남이 단순히 세계 선교뿐 아니라 기독교 신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문화를 뛰어 넘는 세기적인 신학자요 선교사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서 ‘Pax Romana’ ‘모든 길은 로마로 향한다’를 몸소 체험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의 꿈은 로마에 가서 선교하는 것이었는데 아마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로 인해서 로마 선교의 꿈을 키워 갔을 것입니다.
곧 디모데를 만나 헬라권인 마게도냐에서 선교케 하십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전 세계 선교를 꽃피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단지 바울에게 로마라는 큰 나라를 소개해준 것이 아닙니다. 더 놀라운 세계를 보여 주게 됩니다. 3절 말씀입니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이 부부를 만나는데 자기와 같은 천막 만드는 사업가였습니다. 주석가들은 아굴라는 천막을 만드는 기술자였다고 생각하고 있고 부인인 브리스길라는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사업을 도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로마에서 사업을 하였고 가는 곳마다 천막을 만드는 사업체를 연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들의 사업체에서 천막을 만드는 일을 시간 날 때마다 했을줄 압니다. 한편 바울은 전도를 해야 하니 많은 시간 일을 할수 없으니 물질적인 도움도 당연히 받았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물질적 도움 보다 더 귀한 것을 보고 배웠을줄 압니다. 물론 로마라는 세계를 보게 된 것을 포함해서….
제가 처음 서두에 ‘Thinking large, building small’이라는 글을 소개해 드렸는데, 사실 천막은 집 보다 더 작은 것입니다. 아마 이 두 부부는 천막을 만들지만 그들의 생각은 전 세계를 향하고 있었을줄 압니다. 사업적으로도 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복음 전파를 위해서 큰 꿈을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앞으로 자기들이 만드는 천막을 사용할 분들을 축복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크게 생각하며 작은 것을 가꾸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도바울도 ‘Thinking large, building small’의 삶의 귀함을 보고 배우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부부가 함께 천막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사실 사도바울의 원래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은 ‘크다’라는 뜻이로 이에 주님을 만난 후 바울이 되는데 바울은 ‘작다’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바울은 작은 자가 된 후 놀라운 하나님 지극히 높고 크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도바울은 놀라운 세계를 또 보게 된 것입니다. 크신 하나님을 부부가 하나가 됨으로 만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가 되어 ‘Thinking large, building small’하고 있는 부부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대로 지난번 뉴욕에서 Ground Zero를 방문하였는데 지하철을 탔습니다. 문득 다음과 같은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My words to you
Jean Valentine
My words to you are the stitches in a scarf
I don’t want to finish
maybe it will come to a blanket
to hold you here
love not gone anywhere
‘당신을 향한 나의 말’
Jean Valentine
“당신을 향한 나의 말은 손수건을 만들어가는 바느질
하지만 완성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언젠가 당신을 안을 담요가 되겠죠.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요.”
모든 문학 작품이 그렇지만 한번 작품이 되면 그 후로는 저자의 의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조금 더 제 생각을 넣어 봤습니다.
‘부부 간의 말들은 함께 만들어 가는 손수건입니다. 서로의 땀을 닦아 줍니다. 아니 언젠가는 담요가 됩니다. 그 담요로 서로를 안아 줍니다. 끝내 이웃의 땀을 닦아 줍니다. 이웃을 안아 줍니다.’
하나님은 세계 선교를 위해서 바울을 택하셨습니다. 바울의 꿈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은 훨씬 컸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붙여 주셨습니다. 이제 바울의 꿈은 커졌습니다. 소아시아에서 마게도냐로, 한편 바울은 마게도냐 선교로 만족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 보다 더 훨씬 컸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붙여 주셨습니다. 로마로 향하라고…. 아니 로마를 넘어 세대를 넘어 선교하라고….
소아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 갈 때는 젊은 디모데가 필요했습니다. 이제 마게도냐에서 로마로 아니 전 세계로 꿈을 펼쳐 가기 위해서는 부부가 필요했습니다.
부부는 함께 손수건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담요를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가정을 넘어 오고 가는 세대를 위해서…. 사도바울이 할수 없는 그 무엇을 이들은 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장막을 만드는 이 부부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부부가 함께 하나님의 크심을 높이며 장막을 만들어 가는 삶에서 위대함을 보며 함께 장막을 만들면서 큰 꿈을 키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Thinking large building small.’ 세계 선교의 시작은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헌신 예배를 드리는 부부청년 여러분,
두 분의 삶의 말과 행동을 가지고 아름다운 손수건을 만들어 가십시요. 이웃을 덮어주는 담요가 되게 하십시요.
크게는 안 만드셔도 됩니다. 작게 만드셔도 됩니다. 그러나 큰 생각을 안고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 때 새로운 하나님의 선교 역사는 시작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존 비비어라는 분이 많은 좋은 책을 쓰고 있는데 ‘결혼’이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해 줍니다.
존은 결혼 후 하루에 한 시간 반 정도 기도를 하며 경건 시간을 가졌습니다. 반면 아내는 풀타임으로 일을 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샤워를 하거나 운전을 하면서 잠깐씩 기도하는게 다인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결정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 자기가 아내보다 기도하는 시간이 더 많으니 가정의 머리로서 자기의 판단에 따르게 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아내의 생각이 옳았던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존은 좌절하기 시작해서 하나님께 푸념을 했다고 합니다. 기도는 자기가 더 많이 하는데 왜 아내가 더 맞는 결정을 하게 되냐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원을 하나 그려 보아라. 원 안에 X자를 가득 채워 넣어라. 그리고 가운데 위에서 아래로 선을 그려라.”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선을 가운데 그리라는 뜻은 원 안에 절반은 아내고 절반은 자기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문제는 너는 너의 절반의 정보만 가지고 모든 결정을 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너는 내가 네 아내에게 보여 주는 것을 아내에게서 이끌어 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가정의 머리로서 내가 주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누가 기도를 많이 하건 안 하건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에게 모두 정보를 곧 X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서로 바느질을 잘 할 때 서로의 X를 교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 바른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가정이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과 더불어 세계 선교에 귀한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독신자도 필요합니다. 아울러 부부도 필요합니다. 함께 바느질을 잘 하는…. 서로의 것을 바느질을 하면서 나눌줄 아는….
주어진 사명 기쁘게 감당하십시다. 큰 생각을 품고 바느질을 하나 하나 작고 섬세히 하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