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 목화(cotton)을 가져 온 고려의 문익점 선생이 있습니다. 한국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익히 아시겠지만 저희 교회는 3세대 교회라 잘 모르시는 분도 계실줄 압니다. 때는 서기 1363년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650년전입니다.
지금부터 거꾸러 한국역사를 살펴 보면 현재가 대한민국이고 그전이 일제강점기, 이 두 시기가 약 100년 가량 됩니다. 그리고 그 전이 조선시대로 약 500년이 됩니다. 바로 그 전 곧 지금부터 600년전이 고려시대인데 문익점은 바로 고려말 사람입니다.
문익점은 문과시험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오릅니다. 마침 중국 원나라 북경에 파견됩니다. 원나라 정부는 문익점을 이용하여 고려의 왕을 바꾸려고 하지만 문익점은 넘어가지 않습니다. 괴씸죄로 원나라 정부는 문익점을 시골로 곧 운남이라는 지역으로 유배시킵니다.
운남 지역은 지금까지도 중국의 오지로 남아 있을 만큼 시골 중에 시골입니다. 더구나 무더위와 열병이 유행하는 그곳에서 문익점이 겪어야 했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3년을 지냅니다.
그런데 문익점이 유배생활했던 운남 지역은 광활하게 펼쳐진 목화밭이 있었습니다. 목화꽃이 필 때면 그 하얀 색깔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졌습니다.
당시 고려는 중국에서 많은 면포를 수입하고 있었지만 값이 비싸 일반 백성들은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추운 겨울에도 삼베옷을 입은 채 추위에 떨면서 지내야 했으며, 더욱이 솜이불은 꿈조차 꿀수 없었습니다.
“이 목화를 우리나라에 가져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우리 동포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지낼 수가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익점은 어떻게 해서든 이 목화 씨앗을 고려에 가져가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사실 그동안 중국을 다녀간 적지 않은 고려인들이 이 목화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오직 문익점만 고려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목화 씨앗을 국외로 반출시키는 것을 엄격히 금지시켰습니다. 만약 발각 되면 즉각 처형시킬 만큼 중죄로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문익점은 사람들의 제지를 무릅쓰고 목화 몇 송이를 땁니다. 그리고 여러모로 궁리한 끝에 목화 씨앗 열 알을 붓두껍 속에 숨깁니다. 이렇게 하여 목화 씨앗을 숨긴 그는 유배지에서 북경으로, 그리고 다시 고려까지 수만리 길을 가는 기나긴 시간 동안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고려에 도착했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대환영이 아니라 왕을 폐위시키려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문익점은 그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기에 중국에서 유배를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 음모에 가담한 것으로 고려왕궁에서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자마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목화 재배에 성공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3년 동안 정성을 다해 가꿔서 목화밭을 이루게 됩니다.
한국 역사에 대해서 잘 아시고 특히 요즘 한일 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은 좀 의아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광복절을 기념하는 예배인데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만족할까말까 하는데 독립군과는 거리가 먼 그것도 조선의 이야기도 아니고 먼 고려인의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하시나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한 달전 쯤에 주보를 작성하면서 오늘 곧 8월 11일 주일 예배는 광복절 기념 예배로 드린다는 것을 알림난에 기록했습니다. 물론 이 때는 이미 한일 관계가 복잡해지기 시작한 후입니다.
한달전부터 이미 이번 광복절 설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반 조바심반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펼치시려나 기대반으로 지내 왔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저희 교회는 3세대가 함께 하는 교회인데 2세 3세들에게는 광복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질문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유관순 안중근 안창호 윤봉길 김구 이들은 어떠한 존재들인가? 광복절을 통해서 우리는 2, 3세대 자녀들에게 항일정신을 심어 주어야 하는가?
사실 제가 생뚱맞게 광복절 설교 서두에 문익점을 소개해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문익점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당연히 위에 나열한 그룹들에 속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관순이 고려시대에 문익점 처럼 중국 운남으로 귀양 갔더라면 목화씨를 몰래 가져 들어 왔을 것입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매한 가지입니다. 이들에게는 시대를 초월한 그 무엇이 있는 사람들일줄 압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만일 일본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들은 일본을 정의로운 나라가 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약한 나라를 침공하는 나라가 되지 않게 하려고 몸과 마음을 쏟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곧 이들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 태어 났어도 위대한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요? 감사한 것은 이들은 한민족으로 태어 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이들의 항일정신을 자녀들에게 가르칠 때 참으로 우리 자녀들도 미국 땅에서 미국의 정의를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요?
광복의 정신은 일본을 증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온 세상에 정의와 자유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바라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의 벽을 넘어서….
그렇다면 참 애국자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정의와 자유를 위한 삶을 사는 자들이라는 결론을 내릴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광복절도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몸부림친 사람들로 인한 결과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수 있습니다. 한민족의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이 참으로 애국자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한민족을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은 민족의 범주를 넘어서 인류의 자유를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곧 정의와 자유의 삶은 민족의 틀을 넘어서 온 세계 민족을 향한 사랑의 표현으로 꽃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세상의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19, 20절 말씀입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먼저 알수 있는 것은 저자는 자기를 괴롭히는 나라에 대한 원한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저자를 예레미야 선지자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모든 신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바벨론 포로와 같은 어려운 시절을 지내고 있는 저자의 고백인 것만큼은 틀림이 없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 오는 그 모든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울러 매일 매일 언제 돌아 갈지 모르고 시키는대로 행하면서 살아야 하는 하루 하루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바벨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 대신에 그가 갖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애통할줄 아는 자였습니다. 원망과 애통은 다릅니다. 애통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합니다. 21, 22절 말씀입니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저자는 아픈 일을 무조건 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애통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담아 두었는데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담아 두면 둘 수록 새로운 소망이 생깁니다. 이에 저자는 고백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기 때문임을…. 애통의 신비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익점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문익점은 억울하게 중국 관리들에게 잡혀서 운남으로 유배를 갑니다. 얼마나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겠습니까? 사실 문익점은 고려 왕을 위해서 지조를 지켰기에 유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목화 밭을 만납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어떻게 하든 유배를 잘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 갈까 궁리만 했을텐데, 문익점은 달랐습니다. 또다시 유배를 당할지언정 아니 즉시 처형을 당할지언정 사랑하는 고려 민족을 생각하면서 목화씨를 빼 내 옵니다.
도리어 민족을 위한 애통이 새로운 소망을 신비롭게 체험하게 한 것이 아닐까요? 따뜻한 솜이불과 솜옷을 덮고 입지 못하는 민족을 향한 애통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그런데 애통 가운데서 소망이 생겼고 그 소망이 목화씨를 빼 내 오게 한 것이 아닐까요?
애통하면 할수록 절망에 빠질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른 애통은 도리어 소망에 이르는 축복의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계속 고백합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참으로 애통하는 자는 아침마다 신비한 축복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문익점은 힘든 유배생활 가운데서도 아침마다 신나는 마음으로 일어납니다. 언젠가 한민족도 따뜻한 솜이불을 덮고 잘 것을 생각하면서….
이와 같은 놀라운 체험을 한 저자의 삶은 한 단계 올라 섭니다. 24절 말씀입니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담대한 자가 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어려운 일들은 애통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애통을 통해서 새로운 소망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되니 그는 담대해집니다.
한편 저자는 자신의 이 놀라운 체험을 자신 혼자 갖고 있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놀라운 삶에 젊은이들을 초대합니다. 2세 3세들을 초대합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25-28절 말씀입니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유관순, 안중근, 김구 이런 분들이 문익점에 대해서 몰랐을까요? 이 당시만 해도 목화로 만든 옷을 많이 입었을줄 압니다. 모두 면으로된 옷을 입으면서 문익점의 용감한 영웅적 삶에 대해서 듣고 또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도 어떤 부조리하고 불의가 가득찬 세상에서 애통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애통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소망으로 꽃이 피웠습니다. 그 소망은 아침마다 새롭게 꽃이 피웠습니다. 아침마다 다른 색상으로 예쁘게 꽃피웠습니다. 그래서 늘 새 아침을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자들이 진실로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던 삶의 현장에서 정의를 구현하며 살아가는 충성된 애국자들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 2세, 3세들이 광복절을 맞이하여 들어야 할 깃발이 무엇인지 확실해 졌습니다. 한 손에는 정의와 자유의 깃발입니다. 그리고 남은 한 손에는 만국기를 들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자녀들이 세워야 하는 나라는 어느 한 민족만을 위한 정의와 자유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한 나라가 있다면, 온 인류의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깃발을 드는 새로운 나라를 이끄는 우리 자녀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문익점과 유관순과 안창호 등 이런 분들의 삶에서 이러한 모습이 담겨져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온 인류의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깃발을 드신 분들입니다. 시간적으로 한민족의 어려운 시절에 태어났기에 한민족의 영웅이 된 것뿐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입니다. 안중근은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다 못 끝냅니다. 그러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양평화론이란 한·중·일 3국이 각각 독립을 유지하면서 서로 상호 부조하여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에 대응하는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방법론까지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멸망을 바란 것이 아닙니다. 동양의 평화를 바란 것입니다. 깊숙히는 세계의 평화를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자들만이 자기가 속한 나라를 위해서 피를 흘릴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 안중근 의사는 불의하게 당하는 한민족을 생각하며 애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소망을 가지고 일어선 사람입니다.
그는 아침마다 고백을 하였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말씀을 거둡니다.
일제 강점기에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이 계십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순교를 당하였는데, 그래서 자주 감옥생활을 하셨습니다.
따뜻한 솜옷을 입으면 좋을 것 같아서 사모님께서 솜옷을 만들어 가져 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은 솜옷을 거부하셨다고 합니다.
이유는 솜옷을 입고 매를 맞으면 피가 묻어 더 아프시기에….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은 평소에는 솜옷을 보면서 문익점 선생께 늘 고마워하지 않았을까요? 문익점 선생으로 인해서 주 목사님도 아침마다 새로워지는 소망의 축복을 늘 누리시지 않으셨을까요?
우리들에게는 이런 위대한 선배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본받아 우리가 사는 미국 땅에서 자유과 정의를 위하여 살아 가십시다. 아울러 소망의 노래를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들려 주십시다. 우리들의 자녀들도 언젠가 외칠 것입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