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저우의 한 은행을 턴 두 형제의 강도사건 이야기입니다. 두 형제 은행 강도는 당당하게 은행에 들어가서 이렇게 소리칩니다.
“움직이지 마시오! 이 돈은 정부의 돈일 뿐이고 목숨은 여러분의 것이니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오!”
모든 사람들은 강도의 말에 예상 외로 마음이 편해져서 조용히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한 늙은 여성이 갑자기 도발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자 강도는 그녀에게 차분하게 말합니다.
“어머님~! 교양있게 행동 하십시오! 말씀 드렸듯이 당신을 해칠 이유도 생각도 없습니다!”
그들은 평소 연습하고 훈련한 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돈을 가져오는 목적에만 집중하며 냉정함을 유지합니다. 그 결과 두 강도는 무사히 돈을 갖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돈다발을 들고 무사히 집에 돌아와 MBA출신 동생 강도가 중학교 졸업인 형 강도에게 말합니다.
“형님 우리 얼마 가져왔는지 세어 봅시다!”
“이런 바보 같은 놈! 이 돈을 세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오늘 밤 뉴스에서
알려줄테니 기다려 봐라!”
역시 경험이 학벌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강도들이 은행을 떠나고 은행은 정신없이 요란합니다. 은행 매니저는 상관에게 경찰을 부르자고 합니다. 그러나 상관은 침착하게 말합니다.
“잠깐! 경찰 부르기 전에, 일단 10억은 우리 몫으로 빼놓고 지금까지 우리가 횡령했던 70억을 이번 기회에 메꾸도록 하자.”
상관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강도가 매달 들려주면 좋겠구만…”
다음날 뉴스에 100억이 강탈되었다고 보도됩니다. 강도형제는 하도 이상해서 결국 돈을 세어 봅니다. 아무리 세어 봐도 20억입니다.
강도 형제는 땅을 치며 말합니다.
“우린 목숨 걸고 고작 20억 벌었는데 저놈들은 손가락 하나로 80억을 버는구나!”
이런 것을 보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일까요? 물론 fiction이길 바랍니다만, 아무리 fiction이래도 이런 이야기를 상상한다는 것은 세상 어느 구석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 숫자의 차이뿐이지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이런 일들이 항상 일어나고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사회에서 저희 청년들이 살고 있고 또 언젠가 학업을 마치고 이런 세상으로 들어가게 될줄 압니다. 이런 사회 가운데 살고 있고 또 언젠가 이런 사회를 접하게 될 청년들을 향하여 주님은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는 태양과 달을 멈추는 놀라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사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을줄 압니다. 그래서 이 시간 오늘 아침 신문기사에 나왔다고 생각하고 오늘 설교를 이어 가겠습니다.
오늘 신문 일면에 큰 글자가 써 있습니다.
“태양이 멈추다.”
이 기사를 보고 안 읽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물론 shopping mall에 나도는 주간지에 나왔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Boston Globe에 나왔다면 당연히 눈여겨 읽게 될줄 압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6절 말씀을 보면 기브온 이라는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여호수아를 찾아 옴으로 시작됩니다.
사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오기까지 여러 족속들을 무찌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미리 이스라엘의 하인들이 되겠다고 무릎을 꿇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당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한 강한 족속이 있었는데 바로 아모리 족속입니다. 이들이 기브온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에게 알린 것입니다. 구해달라고…. 이에 기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다음과 같이 기사를 써내려 갑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완벽한 승리를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증 서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 길갈이라는 곳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브온까지는 거리가 좀 됩니다.
스크린을 보시면…, 아모리 연합군이 위치한 지도입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한편으로 제일 걱정했던 민족이 아마도 아모리족이었을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완승을 약속하십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9절에 보니 길갈에서 기브온까지 밤새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셨으니 밤새도록 올라간 것입니다. “승리는 내 것일세….” 아마 이런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승을 거둡니다. 그런데 이 때 어떤 일이 일어나죠? 11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다시 신문 기사로 생각한다면, 사실 태양이 머물러 선 기사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박이 내려서 이스라엘 민족을 도운 이야기를 읽게 된 것입니다. 독자는 아주 궁금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우박은 뭐고 태양이 머문 것은 뭐야? 제목을 잘 못 붙인 것 아냐? 아니면 다른 기사와 엇갈린 것 아냐?”
그러면서 계속 읽어 내려 갑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사실 태양만 멈추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박도 내리게 하신 것입니다. 제목을 ‘태양이 멈추다’라고 적은 이유는 우박은 종종 내리지만 태양이 멈춘적은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여튼 이 기사를 읽는 독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좀 냉철한 사람들은 이런 질문도 들었을줄 압니다.
‘아니 우박만으로 부족해서 태양을 멈추게 하셨다는 건가..?
결국 지혜로운 독자는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될줄 압니다. 우박으로는 숨어 있는 사람들은 죽일수 없습니다. 우박은 어떻게 보면 공군입니다. 공군만으로는 완전 승리는 불가능합니다. 숨어 있는 사람들을 속속들이 찾아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께 외친 것입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그런데 이 기사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둘로 나뉘어집니다. 한 그룹은 “도저히 말이 안 된다. 어떻게 한 사람의 말로 태양이 멈춘단 말인가” 하면서 신문을 쓰레기통에 쳐 넣습니다.
다른 한 그룹은 자세히 기사를 읽고 또 읽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태양을 멈추게 할수 있었는지 살펴 봅니다. 아마 이 독자들은 태양이 멈추는 기적이 필요한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이 독자들은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찾아 냅니다. 하나는 여호수아는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무찌르게 하셨다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더 크게는 여호수아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큰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갑자기 쏟아진 우박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서든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더 확고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우박의 도움만으로는 아모리 족속을 다 무찌를수가 없었음을 알았습니다. 순간 아마 여호수아는 모세의 도움으로 광야에서 아말렉 족속을 무찌른 생각이 떠 올랐을지 모릅니다. 모세가 아론과 훌의 도움으로 손을 들고 있었기에 승리했던 날이 새삼 떠 오릅니다.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꽂은 날 말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모세가 현재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모세 역할도 다 해야 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꽂습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이 외침이 하나님의 마음을 녹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말에 어떻게 보면 순종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어떤 일도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태양이라도 멈추실 하나님이심을 확신한 것입니다.
결국 태양이 머물러서 우박에 피하는 자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죽입니다. 이에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사를 마무리 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이제 이 기사를 끝까지 읽는 독자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위해 우박을 내리시고 태양을 멈추게 하신다는 것을…. 그래서 처음의 강도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이 아무리 악해져도 약속의 자녀들은 모두 잘 되게 되어 있음을…. 왜냐하면 약속의 자녀들을 위해 우박을 보내시기도 하고 태양을 멈추게 하시기 때문에…. 정말 약속의 자녀들은 복된 자녀들입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이 살아야 하는 세상은 처음 말씀드린 이야기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곳입니다. 아모리 족속으로 가득차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박과 같은 도우미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 믿음의 외침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외침은 태양을 멈추게 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외침을 듣고 태양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러면 태양을 멈춘다는 것은 오늘 우리들의 삶에는 어떤 뜻일까요? 물론 태양이 멈추는 기적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나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이 필요할 때마다 태양을 멈추어 달라고 기도드려야 할까요? 14절 말씀이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태양을 멈추게 하는 것은 더이상 기대하지 말라는 요지로 기자는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태양이 멈추는 것과 같은 기적은 남아 있음을 은연 중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과 하나로 태양을 멈추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화가 세잔느입니다. 세잔느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길 좋아 했지만 아버지는 법률가나 은행가가 되어 가문을 빛내 주기를 바랬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미술 학교에 응시하는데 두 번 다 실패합니다. 그 후 살롱전에도 작품을 세 번 출품했지만 모두 낙선하고 맙니다. 실패의 연속입니다. 간신히 인상파 전시회에 작품을 내긴 하는데 도리어 언론과 미술계에서 무시받고 심한 공격과 혹평에 시달립니다. 그 충격과 아픔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며 세잔느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나는 사과 한 알로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다.”
세잔느는 사과를 100번이 넘도록 관찰하고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세잔느가 그린 사과를 보고 피카소가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피카소에 대해서는 모두 잘 아실줄 압니다. 한편 미술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은 마티스라는 화가도 잘 아실줄 압니다. 피카소와는 평생 라이벌로서 마티스는 야수파의 거장이 되고 피카소는 입체파의 거장이 됩니다. 그러나 두 분의 공통점은 세잔느의 사과를 보면서 각자의 미술 세계가 새롭게 열려 갔다는 것입니다.
세잔느는 바로 매일 사과를 그렸습니다. 그 그림들이 야수파와 입체파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아니 마티스와 피카소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사과 하나가 역사를 바꾼 것입니다. 태양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약속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하는 모든 평범한 일들은 태양을 멈추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의 자녀들이 하는 일을 끝까지 쫓아 다니시면서 이루시고야 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박을 쏟아져 내리게 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외침을 듣고 태양을 멈추게 하십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청년 여러분,
세잔느에게도 이런 놀라운 축복의 세계를 허락해 주셨는데, 주님을 믿는 여러분들을 위해 놀라운 약속의 땅을 허락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낙심치 말고 여러분이 할수 있는 것 단순한 것을 하십시요. 세잔느의 마음을 갖고….
“나는 사과 한 알로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우박을 내리시고 태양을 머물게 하면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주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믿는 자들을 위해 오늘도 우박을 내리시고 태양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처럼 외쳐야 합니다.
“태양아 머무르라.”
이 외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이는 바로 여호수아의 ‘여호와 닛시’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지난주 저희 교회에서 저희 교단 NCKPC소속 젊은 목사님들의 모임 3040 모임을 가졌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부족한 제가 멘토의 자격으로 강의를 하였습니다.
주최측이 저에게 부탁한 주제는 이민신학이었습니다. 제가 늘 이민신학을 말하다 보니 교단 후배들도 이를 알고 저에게 의뢰해 온 것입니다.
사실 저는 본교회 목회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면서 이민신학의 소중함을 알았고 이에 이민신학 개발을 위해서 늘 노력했었습니다. 한 가지를 말씀드리면, 설교 준비를 위해서 읽는 책말고 두 가지 책을 가급적 하루에 한번씩 읽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민신학과 교회사에 관계된 책을 늘 번갈아 가면서 매일 읽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후배들에게 이민신학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난 8월 총회 콘퍼런스인 Big Tent에서도 제가 웤샵을 인도할수 있었던 것도 이민신학의 열매였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 가지를 파다 보니 여러모로 공헌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새삼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민신학은 저에게는 세잔느의 사과였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사과가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과 하나를 열심히 그리는 자들을 위해 때로는 우박이 도와주고 때로는 태양이 멈출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인 청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오늘을 사십시다. 우박이 오늘 내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태양을 향해 외치십시다.
“태양아 머무르라.”
태양이 오늘 멈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