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소설가라고 요즘 한국에서 많은 작품을 펴내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정식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에는 온라인 서점에서 일을 했습니다. 서점에서 일하면서 두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가을이 독서의 계절인 건 가을에 책이 제일 안 팔리기 때문이라는 것, 두번째로는 서점 직원에게 가장 부족한 건 정작 책 읽을 시간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 깨달음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독서는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결단이 필요하다.’ 곧 가을이라고 독서가 저절로 되어지는 것도 아니고 책에 둘러 싸여 있다고 절로 되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소설가의 깨달음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는 저희들에게 귀한 도전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서가 결단이 필요하듯 감사도 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하나님도 감사에는 결단이 필요한 것을 잘 아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크게 세 절기를 지켰습니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이 세 절기 중 초막절은 추수 감사절로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13절을 보면 쉽게 알수 있습니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추수한 후 초막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추수 감사절인 것과 다름이 없다고 봅니다.
한편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감사절을 지키면 지키는 것이지 왜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셨을까요?
감사절 대신 초막절이라고 붙인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후 40년동안 광야에서 지내면서 이들은 초막에서 살았습니다. 초막에 살다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따라서 움직이고 멈추면 따라서 멈추었습니다.
곧 이스라엘 민족에게 원하시는 것은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에도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던 때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1주일간 지내는 동안 과거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간 겪은 고난을 조금이나마 맛보면서 참 감사의 삶을 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매해가 새로운 축복의 해가 되어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냥 1주간 초막에서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족뿐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자와 함께 초막에서 먹고 자면서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15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어디서 지키라구요…? 집에서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지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은 예루살렘입니다. 온 가족뿐 아니라 노비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초막을 짓고 초막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평민들에게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습니다. 특히 하루벌어 하루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꿈도 꿀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니 어떻게 합니까? 그대로 지켜야죠. 이 말씀을 듣고 평민들은 암담했을 것입니다. 암담해 하고 있는 평민들의 귀에 계속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16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온 가족이 함께 가지 못하면 대표로 한 사람만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곧 부자는 큰 돈을 들여서 모든 가족이 주변에 있는 가족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초막절을 지키고, 평민들은 가족과 초대한 손님들은 집에서 지키지만 가장은 혼자 예루살렘에 올라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해서 어느 평민 가족의 가장은 이웃을 불러서 초막을 지어줍니다. 물론 가족의 것도 함께….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혼자서 감사의 예물을 갖고…. 힘들게 초막절을 지낼 준비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떠나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가장 없이 1주일을 잘 버티려나…. 오고 가는 길이 무사하겠나….’ 그리고 밀린 농사일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감사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걱정이 밀려 올 때마다 감사로 걱정을 밀어냅니다. 밀어내고 밀어내고 밀어내고 또 밀어냅니다.
감사로 걱정을 밀어내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15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은 사실 초막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자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지난 일년 간 한 모든 일들을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먼저 지난 일년을 뒤돌아 봅니다. 지난 해 얻은 소출 곧 농사 지은 것을 생각합니다. 농사지은 소출이 얼마 안 되었다고 걱정했던 사람은 눈이 번쩍 뜹니다. 전에 보다 소출은 적었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면 30배 60배 100배로 늘어 갈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울러 지난 해 손으로 행한 많은 일들이 그냥 지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지난 행위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해서 생각지도 못하는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이 떠난 곳에 하나님의 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축복을 생각하며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초막절은 과거와 미래를 오고 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래의 축복을 현재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감사입니다. 오늘 감사하는 자들에게는 과거의 모든 일들이 미래의 축복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힘든 초막절의 여정을 즐겁게 마쳐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여기에서 미래는 이 땅 위의 삶의 미래뿐이 아닙니다.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초막절을 지키는 미래의 축복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땅위에서의 승리와 더불어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승리를 내다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올해 저희 교회 표어가 ‘여호와 닛시’ 곧 ‘여호와 승리’인데 감사의 결단을 하신 분들은 여호와 닛시의 축복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미래의 축복을 오늘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든 사람들은 항상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잘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하나만 주실까요? 두 깃발을 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왜 두 개의 깃발이냐구요?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의 모든 소출과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한 일이 무엇입니까? 노비와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섬긴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본인과 가족을 위해서 깃발 하나를 주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들이 섬기는 소외된 자들을 위한 깃발을 주시지 않으실까요?
미국 프로 야구에 보면 major 리그와 minor리그가 있는데 한국에도 비슷한 구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minor 리그에 두 개 구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름이 아주 특이합니다.
고양 원더스, 고양시에 있는 기가 막힌 선수들의 팀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또 한 구단은 연천 미러클, 연천군에 있는 기적의 선수들로 구성된 팀인 것 같습니다. 아주 정신이 좋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좀 막막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프로야구 개막 후 20년간 은퇴한 투수는 총 750명인데 그중 10승 이상 거둔 투수는 126명뿐이라고 합니다 1승 이상 거둔 투수는 431명, 거의 절반인 327명은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야구계에서 물러났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구단은 이처럼 패자들을 위한 구단입니다. 그러나 구단주는 이들 안에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원더스’와 ‘미러클’이라는 깃발을 만든 것입니다.
어쩌면 잘 나가는 구단주보다 훨씬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들은 소외된 자들 안에 소중함을 본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진심으로 감사절을 지키는 자들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들을 위하여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들고 집으로 향하지 않을까요? 16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그들은 하나님을 뵈오면서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자기의 삶에 임함을 느낍니다. 자기로 인해서 가족들에게 임함을 느낍니다. 자기로 인해서 가족들과 함께 거하는 소외된 자들에게 임함을 느낍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오는 동안 만난 사람들에게 아니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함을 느낍니다.
곧 감사절은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고 이웃을 넘어 오고가는 모든 세대를 위해 지키는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이제 말할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합니다. 감사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저절로 입에는 감사와 함께 찬양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 영광.”
“잘 되고 있습니다. 잘 될 것입니다.”
그들 손에는 두 개의 깃발이 들려 있습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 승리.”
금주간 놀라운 감사주간을 보내십시다. 감사 위에 감사 또 감사 또 감사를 하십시다. 원더스와 미러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작년부터 northern California에 극심한 산불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뉴스를 접해 보셨을줄 압니다.
Mercer라는 분도 자신의 집을 잃었는데 부모님 집도 화재로 잃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잿더미 틈에서 집 열쇠를 찾아 내는 모습을 보면서 한 아이디어가 생겼습니다. 화재를 만난 집 열쇠를 모아서 희망의 싸인이 되는 작품을 만들기로 생각합니다.
결국 14,000 개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영원을 상징하는 불사조 phoenix 새를 만들었습니다.
Mercer씨는 집은 잃었지만 평생 최고의 해가 되었을줄 압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작품을 만들었으니….
사실 저희 교회가 오늘 66주년 기념 예배를 드립니다. 사실 많은 한인교회들이 세워졌지만 꽤 많은 교회들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저희 노회 백인 교회들도 여러 교회 문을 닫았습니다. 한편 저희 교회는 44주년에 본 교회를 인수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보면 많은 한인교회가 40주년을 눈 앞에 두고도 예배당 없이 예배드리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참으로 struggle 교회들에 희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의 아픔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웃 교회들을 위해서도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때 진정 감사의 제단을 쌓는 교회가 되지 않을까요?
이번 감사주간 초막절을 지키십시다.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아울러 이웃을 위해서 이웃 교회를 위해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