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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두라” 레위기 19:9, 10 (11/01/2020)

어떤 사람이 새 자전거를 닦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 물었습니다.

“아저씨, 이 자전거 비싸죠?” 자전거 주인이 대답합니다.

“몰라, 이 자전거는 우리 형님이 주신 거란다.”

그러자 아이는 부럽다는 듯 “나도…”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합니다.

“너도 나처럼 좋은 형이 있으면 좋겠구나.”

아이가 대답합니다.

“아뇨, 나도 그런 형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 동생은 심장병이 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숨을 헐떡여요. 나도 내 동생에게 이런 멋진 자전거를 사 줄 수 있는 형이 되고 싶어요!”

 

아저씨는 당연히 이 아이가 자기처럼 훌륭한 형을 갖고 싶어 할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 청지기 헌신 주일로 지킵니다. 청지기 헌신 주일로 지키는 이유는 물질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를 새롭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물질은 받는 것인지 주는 것인지…?

 

오늘 본문 말씀은 레위기 말씀인데 이 말씀은 모세가 40년 이스라엘민족이 광야 생활시 하나님께 받은 말씀입니다.

광야 생활시 이스라엘의 양식은 두 가지였습니다. 아침에는 만나가 내렸고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내렸습니다. 이 음식을 먹으면서 힘든 광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어느 날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해 줍니다. 9절,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이 말씀을 들으며 이스라엘민족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 우리가 언젠가 우리 땅을 차지하게 되는구나.”

그들은 하루 하루 힘든 광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희망이 생겼을줄 압니다.

“언젠가는 우리 땅에서 우리가 농사지은 음식을 먹게 되겠지….” 흥분 가운데 있는데 그 다음 말씀이 의외입니다.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한 마디로 적당히 하라는 것입니다. 좀 게을러도 좋다는 것입니다.

 

지금 광야에서 늘 할 일 없이 빈둥빈둥 지내는 것이 지겨워서 땅을 차지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등골이 빠져라 하고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으로 있는 이들에게 엉뚱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가난한 자들과 거류민 곧 나그네들을 위하여 남겨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민족에게 조금 전에 소개해 드린 이야기의 아이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받는 자의 마음을 갖지 말고 주는 자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시면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자기 땅에 들어가게 되면 광야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거져 받던 습관 때문에 주는 자가 아니라 계속 받는 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을 너무도 잘 아셨기 때문일줄 압니다.

 

제가 필라델피아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을 때 담임목사님과 목회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담임 목사님께서 하신 이야기가 자주 생각이 납니다.

어느 피크닠에 갔었는데 한국에서 재벌급의 부자와 식사를 함께 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피크닠이니 오신 분들에게 수건과 같은 간단한 선물을 다 나눠 드렸다고 합니다. 그 식탁에도 주최자들이 찾아 와서 재벌과 목사님에게 선물을 드렸습니다.

목사님은 순간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재벌에게 이런 초라한 선물을 드리다니…. 당연히 안 가져 가실거야….”

그런데 웬걸 식사를 마치자 당신 선물을 챙겨 가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가지로 분석할수도 있겠습니다만, 손에 주어진 것은 일단 가져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요? 재벌일지라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친히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신 이유가 이해가 됩니다. 주는 것 보다 받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스라엘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남겨두라.”

 

저희가 일년에 한번은 청지기 헌신 주일로 지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잃어갔던 주는 자의 축복을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를 말씀하셨음을 사도바울도 강조합니다. 사도행전 20:35,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주님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스라엘인들은 아마 오늘 본문 말씀인 레위기를 생각했을줄 압니다.

 

최근 몇 번 인용해 드린 미국의 C. S. Lewis라는 평가를 받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얼마전 작고하셨는데, 이 분은 교회 개척도 하신 분이고 신학교 교수도 하신 분이라 목회 현장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목회할 때 많은 분들이 새해 결심으로 성경통독을 하곤 하는데 상당수 교우님들이 얼마 못 가 포기하는 것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어느 분과 대화를 나눴는데 이 교우님도 성경통독을 결심했던 분입니다. 그 분과 만나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고 합니다.

“6주만에 포기했습니다.”

“레위기에서 멈추셨죠?”

“예, 저는 아무래도 부족하네요. 그런데 어떻게 아셨죠?”

“많은 사람이 그럽니다. 기도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레위기를 건너 뛰세요. 곧장 민수기로 넘어가세요. 그런데 한 절만 꼭 읽고 기억하세요. 19:18절 말씀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성경 전체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동사로 나온 것은 여기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한편 오늘 본문 말씀은 어디라구요. 19:9, 10절 말씀입니다. 우연일까요?

 

그런데 유진피터슨 목사님은 더 놀라운 이야기를 하십니다. 레위기가 유대인들 자녀들을 위한 히브리 교과서라고 합니다. 가장 기본적은 히브리어를 유대인들은 레위기를 통해 배운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못해도 우리 나라 식으로 하면 초등학교 3학년 늦어도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가 레위기가 아니었겠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히브리어를 배우면서 이웃 사랑을 배웠고 나그네들에게 곡식을 남겨두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레위기를 통해 유대인 자녀들이 히브리어를 배우게 하셨고 아울러 레위기를 공부하는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청지기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청지기 삶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래서 그런지 전 세계에서 제일 자선사업을 많이 하는 민족이 유대인인 것은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왜 자선사업을 많이 하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웠는지는 다음 이야기가 잘 설명해 줍니다.

 

어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 시제를 연습시키기 위해 시험문제를 냈습니다.

“나는 준다’의 미래형은 무엇일까요?”

많은 학생들이 “I will give”로 답했습니다. 한 학생은 이런 답안을 제출했습니다.

“나는 받는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남겨두라”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래를 위한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레위기를 통해 유대인들을 청지기 훈련을 시키셨는데 히브리어를 모르는 우리에게는 어떻게 청지기 훈련을 시키실까요?

요즘 전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큰 고통 중에 있는데 아마도 레위기를 모르는 전 세계인들에게 청지기 훈련을 시키시기 위하여 코로나를 보내신 것은 아닐까요? 사실 코로나 폭풍 가운데서 이웃 사랑과 나그네를 위해 곡식을 남겨두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우리가 얼마나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지 느끼실줄 압니다.

 

저는 건강을 위해서 자주 산책을 나갑니다. 제가 사는 데담 타운을 자주 가는데 요즘은 타운을 갈 때 먼저 집에서 화장실을 들린 후 타운으로 나갑니다.

전에는 도서관이 열려 있어서 자주 도서관을 책 때문이 아니고 애용을 하곤 했는데 이젠 도서관 화장실을 사용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당들도 꽉꽉 문들이 닫혀져 있습니다.

 

그럴 때면 종종 저희 교회를 생각합니다. 때로는 우체부들도 저희 교회 화장실을 사용하곤 합니다. 물론 홈레스들도….

그래도 저희는 두 분이 사무실에 있던가 남자 교역자가 계실 때는 교회문을 열어 놓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도 토요일 종종 혼자 있을 때가 있는데 문을 잠가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좀 안타까운 현상은 최근에는 홈레스들이 거의 오지 않습니다. 두 가지 중 하나일텐데 하나는 병들었거나 또 하나는 거리에 다녀도 화장실이 없으니 잘 못 다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는 우리들의 가까운 이웃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얼마전 저희 교회 정의평화환경 위원회에서 교단 선교국에 자선 기금을 보내드렸습니다.

저희 교단 소식지에 난 기사를 보았는데, 구 소련권에 속한 알메니아라는 작은 나라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기독교 국가이고 전통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 바돌로메와 다데오가 복음을 전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도 기독교인이 많은 나라입니다. 오래전 세계 1차 대전시 genocide(집단학살)을 당한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 끼여 있는데, 그동안은 그래도 서방 강대국들이 도와줬는데, 팬데믹으로 인해서 그 도움이 거의 끊겼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요즘은 주위 이슬람 나라들이 군사도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팬데믹이 약한 나라를 더 약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려주는 기사였습니다. 다행히 저희 교단에는 알메니아를 위한 프로젝트가 있어서 교단으로 기금을 보내 드린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어려워졌지만 특히 가난한 자들과 나그네들 약한 자들이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그런데 이들이 인류의 미래가 아닐까요?

 

가난한 자들과 나그네를 위하여 남겨두는 것은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 축복의 삶입니다.

 

곡식을 거둘 때에 남들처럼 다 거두지 않고 떨어진 이삭을 남겨두고 포도원의 열매를 남들처럼 다 따지 말고 떨어진 열매를 줍지 않고 남겨두는 평범한 삶을 사는 자들이 참 청지기의 삶을 사는 자들이 아닐까요?

 

코로나 기간 온 인류의 미래는 가난한 자들과 나그네들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주는 자가 되는 것이 평범한 청지기가 아닐까요?

 

말씀을 거둡니다.

알래스카 원주민 이누이트 족의 토착어에는 ‘훌륭한’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훌륭한 사냥꾼도 없고 훌륭한 남자도 훌륭한 여자도 없습니다. 시시한 인생도 훌륭한 인생도 없습니다.

평범한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참 인생이 아닐까요?

큰 부자가 되어서 크게 공헌하는 훌륭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사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남길 것은 남겨두는 평범한 사람이 되십시다. 이 때 우리는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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