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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명의 떡이라” 요한복음 6:22-35 (04/14/2024)

아동문학가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이라는 그림동화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강아지 흰둥이가 돌담 모퉁이에 똥을 싸 놓았습니다. 강아지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더럽다며 냉대를 받았습니다. 수레에서 떨어진 흙덩이가 울고 있는 강아지똥을 위로하지만, 그 훍덩이는 주인의 도움으로 다시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강아지똥은 외로움에 사무칩니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텐데….”

봄이 왔습니다. 병아리를 데리고 나온 어미 닭도 “암만 봐도 먹을 만한 건 아무것도 없어. 모두 찌꺼기뿐이야”라며 강아지똥을 지나쳐 가버립니다. 더욱 시름에 젖은 강아지똥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났습니다.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야.”

민들레 싹은 강아지똥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니?”
“그건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시고 따뜻한 햇빛을 주시기 때문이야.”

강아지똥은 민들레가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바로 영양분이야. 네가 거름이 되어 나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꽃을 피울 수 있어.”

민들레는 강아지똥의 가치를 인정해주면서, 거름이 되어줄 수 없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필요한 존재란 말이야?”

강아지똥은 기쁜 마음으로 민들레를 힘껏 껴안았습니다. 비가 며칠 동안 내렸습니다. 빗물에 몸이 녹아 땅으로 스며든 강아지똥은 거름이 되어 민들레의 몸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민들레의 뿌리와 줄기를 타고 올라가, 마침내 하늘의 별처럼 고운 민들레꽃을 피웠습니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울던 강아지똥은 별처럼 빛나는 꽃이 되고, 싱그러운 꽃향기가 되어 바람을 타고 세상 멀리 멀리 퍼져 나갔습니다.

드디어 보스톤에도 봄이 왔습니다. 개나리 꽃이 만발하였고, 곧 이어 질세라, 민들레들이 노란 꽃들로 온 세상을 생동력 있게 만들줄로 압니다.

기왕 민들레 이야기가 나왔으니,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입니다. 누가 지었는지 정말 잘 지었습니다. 민들레는 감사의 축복을 너무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들은 민들레처럼 세상 어느 곳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환히 빛나는 존재가 됨을 온 세상에 알려 주고 있는듯 합니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해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민들레처럼 아름다운 똣을 피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부터 요한복음 강해를 나눕니다.
요한 복음에는 7가지 “I am…”으로 시작하는 곧 주님 스스로 자신을 기술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오늘의 주제인 “I am the bread of life.” 다음주 주제인 “I am the light of the world.”

저는 ‘I am’ 씨리즈로 요한복음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은 첫번째 ‘I am’인,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아마 저처럼 영어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우기 시작하셨을줄 압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런 것들을 제일 먼저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I am a boy.” “I am a woman.”
그래서 ‘I am’은 친근하게 느껴지지만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흔한 느낌을 받게됩니다. 결국 주님께서 “I am the bread of life”라는 말씀도 친근하게 느껴지고 소박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신학자들은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그런 뜻으로 주님께서 7차례 말씀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이니 좀 딱딱한 신학적인 관점을 먼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신학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I am”은 구약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름을 여쭈우니 하나님께서 답하십니다.

“I am who I am.”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곧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는 당신의 이름을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의 이름은 ‘I am’이다.”

곧 ‘I am’은 우리들에게는 특히 영어권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표현이지만 실제로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의 권위가 담겨져 있는 표현인 것입니다. 이를 주님께서 모를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요한이 모를리가 없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께서 하신 이 표현을 7번 사용하면서 요한복음을 구성한 것입니다.
곧 요한은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 주님은 바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신 분 아니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에 ‘I am’씨리즈를 나누는데, 7번의 ‘I am’ 씨리즈에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바로 “나는 생명의 떡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본문 봉독은 22-35절까지만 했지만 실은 6장 전체를 본문으로 삼아야 이해가 되는 내용입니다.

6장 처음에는 잘 아시는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조각으로 남자 어른만 5천명- 어린이와 여자들은 포함되지 않은 숫자입니다-이 먹고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러니 왜 주님께서 스스로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그 배경이 느껴지시죠? 그런데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4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주님께서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다 생각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Fast forward를 하면 언젠가 당신의 살로 된 떡을 수많은 무리에게 먹이실 것을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가까운 때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22절,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이튿날’로 시작하는데 곧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다음 날에 다시 무리가 찾아 온 것입니다.

한편 오늘 본문 말씀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입니다. 두번 나옵니다. 26절과 32절에 나오는데 ‘진실로’는 원어로는 ‘Amen’입니다. 정말로 진리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강조하고 싶을 때 ‘Amen Amen’하시고는 말씀하시곤 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그토록 강조하고 싶어하셨을까요? 먼저 26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주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 찾아 오는 무리들에게 꾸짖으십니다. 그들이 당신을 찾는 것은 오병이어가 의미하는 진정한 뜻을 모르고 그저 먹을 것으로 배를 채우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곧 오병이어의 기적을 왜 베푸셨는지 좀 생각 좀 하면서 살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꾸짖는 것입니다. 주님과 옥신각신하다가 무리들은 자기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고 말합니다.
곧 무리들은 조상들은 매일 만나를 먹었는데 당신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어제 오병이어의 사건을 베풀었는데 오늘도 베푸실 것을 기대하고 찾아 온 것입니다. 곧 당신도 그런 기적을 행하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3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주님은 또다시 “Amen Amen”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곧 과거에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셨는데 앞으로는 만나가 아닌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 참 떡을 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이 너무 중요하기에 ‘진실로 진실로,’ 원어로는 ‘아멘, 아멘’입니다. 과거 일도 확실하지만 미래 일도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떡의 특징을 설명하십니다. 33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과거의 만나와 차별하십니다. 과거의 만나는 먹어도 죽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지금 내려지는 하나님의 떡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고 말씀합니다.

하여튼 무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깨달았을까요? 34절,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가 매일 아침 내려 왔는데 아침에 한번 내려 올 것이 아니라 항상 내려와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제 주님께서는 처음으로 “I am…”을 말씀하십니다. 의역하면, “나 하나님이 인간이 된 나는 바로 너희들이 필요한 생명의 떡이다.” 이를 듣는 자들이 이해했을까요?

처음 강아지똥과 민들레 이야기로 돌아가서 민들레가 감사의 화신이 되어 온 세상을 아름답게 할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강아지똥 덕분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떡이 되신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우리 인간들이 꽃 피게 하시려고 스스로 생명의 떡이 되셨습니다. 강아지똥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민들레 처럼 잠깐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이 아닙니다. 영원히 피어 있는 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강아지똥이라는 표현을 하냐고…. 떡은 좋은데 어떻게 거름으로 표현하냐고….

여기서 하나님께서 만나를 하늘에서 내리신 계기를 살펴 보면 이해가 되실줄 압니다. 언제 왜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시기 시작하였죠?

출애굽후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이스라엘 민족은 체험을 합니다. 그런데 사흘간 물을 얻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물이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물이 써서 먹을수가 없었습니다. 무리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마라.” ‘쓰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첫번째 원망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물을 달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잠시 후 먹을 것이 보이지 않자 또 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입니다. 어쩔수 없이 만나를 내려 주십니다. 만나는 꿀 섞은 과자와 같은 맛이 나는 음식이었습니다.
원망의 열매가 도리어 단 만나로 변한 것입니다. 인간은 제 아무리 원망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쓴 것을 주실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단 떡을 주신 것입니다.

왜 물도 음식도 달게 만들어서 주셨을까요? 원망을 하면 마음뿐 아니라 입에도 쓴 맛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쓴 입맛 가운데 있는 당신의 백성의 마음과 입을 달게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달게 만드실수 있었을까요? 사람의 원망은 하나님의 마음과 몸을 찢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몸이 찢기셨기에 하나님의 살은 단 떡 곧 만나가 되어서 하늘에서 내려 온 것입니다. 맛있는 강아지똥이 아닐까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님은 무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무리들의 원망이 만나를 내리게 한 것처럼 오병이어의 떡을 구하는 자들에게 당신이 바로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당신이 바로 유월절 어린 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원망을 했을지라도 이제 믿음으로 당신을 먹고 생명의 선물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선물을 받는 자들은 하늘나라에서 빛나는 영원한 꽃이 되는 것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빛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매일 매일 쓰디쓰던 인생이 단맛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이러한 삶을 미리 보여준 대표적인 예가 구약에 나오는 엘리사입니다.

흉년이 들었을 때 엘리사는 제자 백명과 함께 거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한 사람이 보리떡 이십 개와 자루에 담은 채소를 엘리사에게 가져 왔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이를 제자들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합니다. 사환이 어떻게 이것을 백 명에게 줄수 있냐고 하니 엘리사는 말합니다.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결국 먹고 남았습니다.

엘리사를 통해 이런 기적을 베푸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첫째는 언젠가 메시야가 와서 같은 기적을 행하실 것을 미리 알려 주시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예수님의 생명의 떡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엘리사의 기적은 이어 갈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 아닐까요? 쓰디쓴 인생등의 달콤한 인생으로 돌변하는 삶의 축제가 온 세계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은 생명의 떡이 되셨고 이 떡을 먹는 자들을 통해 세상에는 생명의 역사가 이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그 분이 몸소 생명의 떡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대해 많은 분들이 잘 아실줄 압니다. 명의 허준이 지은 책이 동의보감입니다. 후에 이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동의보감이라는 소설이 나옵니다. 허준소설 동의보감에 의하면-소설임을 강조합니다. 역사적으로 확인되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스승 유의태는 허준에게 자신의 몸을 해부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깁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소설입니다.

“나의 문도 허준이가 세상의 어떤 병고도 마침내 구원할 만병통치의 의원이 되기를 빌며 병든 몸이나마 너 허준에게 주노라.”

소설이지만 인간의 머리에서 이런 생각이 나왔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떠실까요? 스스로 거름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I am the Bread of Life.”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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