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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그를 기억하리라

본문: 마태 26: 6-13

제목: 그를 기억하리라

1953년부터 4년간 Christian Herter씨가 매사츄세츠 주지사로 봉직했었습니다. 저희 교회가 탄생하는 해에 주지사로 당선이 된 것입니다. 재선을 위해서 열심히 캠페인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하루는 아침부터 점심도 걸르고 열심히 뛰어 다니다가 어느 교회에서 열리는 바베큐 모임에 오후 늦게 도착했습니다.

주지사는 라인에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례가 되었을 때 음식을 서브하는 여인 앞에 섰습니다. 여인은 닭고기 하나를 접시에 담아주고는 다음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주지사가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닭고기 하나를 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인은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한 분에게 하나씩만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주지사는 말합니다.

“저는 지금 무척 배가 고픕니다.”

“Sorry, only one to a customer.”

주지사는 원래 젊잖은 사람인데 어쩔수 없이 좀 자기를 나타낼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누구인줄 모르세요? 나는 주지사입니다.” 여인은 대답합니다.

“당신은 내가 누구인줄 모르세요? 저는 닭고기를 책임 맡고 있는 여인이랍니다. 미스터.”

 

주지사가 당신의 자서전에 기록을 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주위 사람이 듣고 감명을 받아 기록한 이야기인지는 알수는 없습니다만, 어느 사순절 묵상집에 나오는 한 편의 이야기입니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을 통하여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됨을 상기시키는 예화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듯 합니다. 아니 확신 가운데서 주어진 일을 하고 있는듯 보입니다. 요즘 처럼 주위 환경에 묻혀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도전을 주었기에 어느 묵상집에 이 여인의 이야기가 소개되어진 것 같습니다.

곧 사순절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더 깊게 알아가는 절기입니다. 아울러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또한 새롭게 알아가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참 자신을 회복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묻혀 사는 삶에서 벗어나 도리어 자신이 비추어야 할 빛을 마음껏 발하며 사는 삶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남은 사순절 기간 함께 누리시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사순절의 축복을 그 누구보다더 깊게 누린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6, 7절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예수님께 고침을 입은 나병환자 시몬이 예수님을 위해서 식사를 마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한 여자가 나타나서 향유 한 옥합을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읍니다. 8, 9절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놀랍게도 누가 분개하고 있습니까? 제자들이 분개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예수님과 3년씩이나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 분개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이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더 유익하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제자들도 이해는 갑니다. 옥합에 담긴 향유의 값은 이 당시 일반인의 연봉이었습니다. 일년 벌어서 하나도 쓰지 않고서만이 모을 수 있는 액수의 향유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10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제자들은 칭찬을 받을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고맙구나. 지난 3년을 너희와 함께 지낸 일이 헛되지 않았구나. 맞다.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이다.” 그러나 도리어 주님은 여인을 칭찬하고 계십니다. 11, 12절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제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곧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잘 알고 이 이야기를 읽으니 주님의 말씀이 쉽게 이해가 되는데, 제자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례에 대한 언급이 이해가 될리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앞으로 계속 예수님을 중심으로 큰 일을 할 생각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그 동안 많은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곤 했는데 당신들의 두목이신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는 두목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큰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라면 정말로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도 그 위대한 일에 쓰임을 받게 될 것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제자들은 어리벙벙해집니다. 예수님이 죽으면 자기들이 그동안 모든 것을 버리고 쫓았던 것이 다 허망하게 날라가게 되니 말입니다. 장례에 대한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에 아랑곳 없이 어리벙벙해진 제자들에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더 깜짝 놀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핀잔을 받아야 마땅한 여인이 칭찬을 받는 것뿐 아니라 상상도 못할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행한 그 일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그 여인이 기억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마더 테레사와 비교를 하면 이 여인에게 주신 주님의 축복이 얼마나 위대한 것임을 더 실감나게 느낄수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아직 Saint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자가 되기 전 단계가 시복이라고 beatification이라는 단계가 있는데 마더 테레사는 2003년에 시복을 받아서 이제는 이름 앞에 ‘Blessed’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성자가 되려면 더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안 될수도 있구요.  

그런 반면에 이 여인은 옥합의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림을 통해서 말씀에도 기록이 되었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의 한 일과 함께 그가 기억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보다 훨씬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을 한 것 같은데 어찌 이 여인은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을까요?

운이 좋아서…? 마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에 향유를 붓는 행운 때문에…? 물론 그런 면도 무시할수는 없겠죠.

 

그러면 여인의 입장이 되어서 오늘 되어지는 장면을 재연해 볼까요? 여인은 어쩐 일인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처음에는 섬짓했을줄 압니다. 아무리 예수님으로 인해 나병이 나았다고 해도 나병환자의 집에 들어 간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행한 생각도 듭니다. 나병환자의 집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 오기를 꺼려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자들만 동석한 것 같습니다.

여인은 옥합을 들고 그 집에 들어섰습니다. 아무도 누구냐고 묻지를 않습니다. 이 당시는 나병환자가 얼씬 거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또한 알지 못하는 여인이 주변에 오고가는 것을 꺼려했던 때입니다.

여인은 빨리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내빼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였던 시몬과 제자들과 더불어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남자들만 둘러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의를 갖춘다면,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에게 부탁해서 자기가 향유를 예수님께 붓기를 원한다고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함이 마땅할줄 압니다. 그랬다가는 당장 쫓겨 날 것을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여인이 곧 부정한 여인일지도 모르는데 주님을 만진다는 것은 허락할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 비싼 향유를 왜 허비하느냐고 질타를 받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것을 잘 아는 여인인지라 허락을 받을 것은 생각도 못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기회가 포착했을 때 재빨리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붓고 도망 나오는 일입니다. 이제 여인은 가슴이 두근 두근 뛰기 시작합니다. 쫓겨나기 전에 속히 향유를 붓고 내빼야 하니 말입니다.

순간 예수님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잠시 볼 일을 보러 자리를 비킨 것 같습니다. 아직 예수님은 식사 중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달려 가서 머리에 향유를 붓습니다. 식사 중에 계신 분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니….

순간 멀리서 제자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가난한 자”, “비싼 것” 등등 예상했던 단어들이 열거되면서 들려 오지만 별로 크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심장소리였습니다. 한편은 두려움 또 한편으로는 기쁨과 흥분의 심장 소리가 요란하게 느껴집니다. 그 소리에 제자들의 아우성은 점점 더 희미해집니다.

사실 이 날이 있기까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푼푼이 모은 돈을 다 털었습니다. 아니 다 털어도 향유를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달 간은 돈을 모으느라 안 먹고 안 쓰면서 온갖 궂은 일은 다 도맡아가면서 돈을 벌어 왔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향유를 산 것입니다. 향유를 주님께 붓고 나면 더 이상 기력이 쇠하여서 일을 계속할수 없을지 모를 정도로 일을 한 것입니다. 곧 목숨을 다 해서 벌어서 향유를 산 것입니다. 향유는 자신의 목숨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과 같은 향유를 손에 들었을 때 가슴에서 더 큰 확신찬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숨과 같은 향유를 받아 마땅한 분이라는….

곧 여인의 가슴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세상의 규범과 규례와 관습의 소리를 이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규범과 규례와 관습의 매임에서 해방이 된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느끼니 자신의 가슴은 더 뛰기 시작함을 느낍니다. 뛰는 심장의 거친 박동 소리 사이로 온화한 음성이 들려 옵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이 여인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미리 알았는지 몰랐는지 확실히는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여인이 당신을 위하여 행한 모든 행위는 바로 당신의 죽음을 위한 선물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위한 선물로 받기에 너무도 합당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인은 단순히 향유로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 전체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향유가 돈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여인의 향유는 목숨이었습니다. 여인의 전 삶이었습니다. 여인의 뛰는 가슴과 함께 바쳐지는 여인의 삶이었습니다.

나병환자 시몬도 음식은 잘 차렸지만 예수님께 드린 것은 여인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 운운하지만 아직 사람이 될려면 멀고 멀었습니다.

여인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여인만이 자신의 뜨거운 가슴이 이끄는대로 최고의 삶을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여인만이 가슴의 심장 소리가 세상의 온갖 규례와 규범과 관습의 소리를 이기는 축복을 누리는 주인공이었습니다. 여인만이 주님이 누구인지 알고 참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영웅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인간에게 줄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주님은 여인에게 주신 것이 아닐까요?

이제 주님께서 이 여인의 이야기가 복음과 함께 전 세계에 퍼지기 원하신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여인처럼 되라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이 여인처럼 규례와 규범과 관습에서 해방되어 가슴 속에서 울리는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참 자신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를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닐까요?

 

김구 선생이 하루는 고당 조만식 선생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내 일도 알지 못하는데 너의 일을 어찌 알겠느냐. 처음에 마음 먹은 것을 버리지 않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목적했던 곳에 이를 것이다.”

 

조만식 선생과 김구 선생이 한국인을 위한 사표가 된 이유를 알듯합니다. 처음 가슴에 품은 뜻을 주위 환경으로 인해 포기하는 많은 사람을 보아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가슴에 품은 뜻을 굽히지 않은 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슴에서 뛰는 심장소리를 느끼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목숨을 내 놓고….

바로 오늘 말씀의 주인공 향유를 부은 여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누구인지 왜 이 땅에 오셨는지 너무도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가슴에는 늘 세계 구원을 향한 심장의 강한 박동 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 소리를 잠재울수 없었습니다. 율법을 내새우는 바리새인도 종교적 행위를 내세우는 제사장들도 권력을 앞장 세운 빌라도도 아니 가장 가까이 있던 제자들도 그 소리를 잠재울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심장소리는 로마군병들의 창에 뚫림을 당할 때 비로서 멈출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창에 찔림을 받는 순간 복음은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오늘 사순절 넷째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사순절 기간 기도와 절제와 구제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기도와 절제와 구제를 하는 이유는 참 자신의 심장 소리를 강렬하게 듣기 하기 위함입니다. 규례와 규범과 관습으로 인한 두려움의 심장소리는 사라지고 우리를 부르는 하나님의 새로운 소명감으로 불타오르는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함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참 자신의 삶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참 자신의 삶을 살았던 자들의 삶을 주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주님은 여인을 향하여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이 사람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말씀을 거둡니다.

키가 134cm곧 4.4feet의 작은 키의 김해영이라는 분이 국제사회복지사가 되어서 세계적으로 기억에 남는 많은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어릴 때부터 불우한 시절을 보냅니다. 첫 아이가 여자라고 기분 나빠한 아버지는 아기를 벽으로 밀쳐버립니다. 이로 인해 척추 장애인이 됩니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을 앓고 이후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아이는 척추장애인이 되었고 집안의 모든 짐을 책임졌습니다.

월급 3만원부터 시작을 합니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부정의 하다고 믿던 아이는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나갑니다. 전국기능대회와 국제장애인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가난과 장애를 뛰어넘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대학에 입학하는 길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 후 자원봉사자로 살기 위해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보츠와나로 떠납니다. 선교사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 후 한국에서 대학문 가까이 가지도 않았던 김해영씨는 콜롬비아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졸업후 계속해서 남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위해 국제사회복지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성경을 많이 읽는 크리스챤입니다.

얼마전에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글을 담았습니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의 참된 가치를 찾아왔다. 세상이 보는 나와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나도 역시 내 인생의 나머지를 계속 살아가야 한다. 내 인생의 참된 가치를 계속 만들어 가면서. 쓸데 없이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난 덕분에 장애인이 되었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 온 덕분에 컬럼비아 대학원까지 마쳤다. 지금은 책도 쓰고 공부도 하고 월급을 안 받으면서도 잘 먹고 잘 살면서 보람 있게 일하고 있다. 국제사회복지전문가로서 여러 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일하고 있다. 지나온 세월을 공짜로 살지 않았다는 증거다. 공짜로 살지 않은 세월 덕분에 진짜 세월을 살고 있다.”

 

그가 공짜로 살지 않을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의 책 제목이 아닐까요?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누가 가슴 뛰는 일을 찾을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신을 찾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삶의 이야기는 하늘 메아리와 더불어 아름답게 울려나가지 않을까요?

 

교우 여러분,

우리로 하여금 옥합의 여인처럼 참 자신의 삶을 누리게 하시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심장소리를 새로이 듣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사순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통하여 주님의 깊어가는 고난을 체험하며 아울러 참 자신을 찾아가십시다.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여인에게 하신 말씀으로 응원하십니다.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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