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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깃발을 세우리라

날짜 : 2014.06.15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우리 깃발을 세우리라
성경본문 : 시편 20:1-9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40615.wmv

요즘 수요여성 공부시간에 역대하를 배우고 있는데, 제가 참고하는 주석책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주석가가 수년 전에 TV를 통해 재미있는 것을 본 것 같습니다. 막 컴퓨터 도박이 시작되었을 때입니다. 카지노에 가지 않아도 컴퓨터 앞에서 black jack을 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TV프로그램에서 한 노부부의 도박하는 모습을 스크린에 담았습니다. 이들은 자랑스럽게 자기들은 오락삼아 도박을 한다고 대답을 합니다. 노부부는 도박으로 돈을 잃어도 괜찮을만큼 여유가 있는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방송에서 도박을 하는 모습을 찍은 장면을 후에 보면서 깜짝 놀랍니다.
“이건 우리가 아니지.”
(That’s not who we are.)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방송국에서 촬영을 할 때는 자신들의 취미며 놀이라고 생각하고 떳떳하게 촬영을 하였습니다. 촬영할 때는 돈을 걸면서 심각해 하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곤 하였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습니다. 막상 스크린에 나오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에 젖은 것입니다.
“이건 우리가 아니지.”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도 사실 하나님의 CCTV에 늘 촬영이 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CCTV로 보여주신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요?
“이건 우리가 아니지.” 아니면….
우리가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전 생애가 담긴 CCTV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 때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요? 종종 생각해 볼만 합니다.

200년전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열 살 된 소녀가 가정교사와 함께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공부는 왕위 계승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소녀는 왕가의 계보를 공부하다가 깜짝 놀랍니다. 자기가 바로 영국의 왕위를 이어받은 후계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소녀는 울기 시작합니다. 그가 영국의 왕위를 이어받는 후계자라는 사실을 안 순간 첫 반응이 우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울던 소녀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합니다.
“이제부터 좋은 사람이 될 거예요.”
이 소녀가 바로 빅토리아 공주였습니다. 빅토리아 공주는 7년이 지난 후 영국 왕위를 계승했고 자신이 결심한 대로 살아 갑니다.
빅토리아 여왕 전까지 영국은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여왕이 되고 나서 세계 최강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에 맞게 살아간 빅토리아로 인해 새로운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도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그에 맞게 살아간다면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되지 않을까요? 어떤 분은 질문하실지 모릅니다.
“빅토리아는 여왕이니 그러한 역사를 이루었죠. 우리야 평민인데 어떻게 빅토리아와 비교합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평민들이 살아야 하는 모습이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평민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평민답게 살게 되는지 살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의 시편은 평민들이 왕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문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드리는 자가 바로 평민 답게 사는 특권을 누리는 자라고 생각됩니다.
1절에서 4절까지는 평민들이 왕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봉독해 드립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교우 여러분,
이 시편은 평민들이 성전에 들어가면서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평민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왕을 축복한 것입니다. 성전에 들어가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 자신들의 모습이 CCTV에 찍혔다고 생각해 봅시다. 평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이건 우리가 아니지…?” 아니면 “왜 나는 왕이 못 되었을까?”
왕을 축복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행복했을 것입니다. 바로 참 자신이 되어 있음에 흡족해 했을 것입니다.
평민은 평민이 되어야 합니다. 달리 표현해서 평민은 평민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이야기를 빌리면, 가정교사는 빅토리아 공주를 왕으로 대했습니다. 평민으로 그를 왕으로 대한 것입니다. 후에 여왕이 되어 멋지게 영국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고 가정교사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러면 오늘날 왕은 누구일까요? 신학적으로는 여러가지로 생각할수 있습니다만 저는 좀 우리 생활에 가까운데서 찾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연약한 사람으로도 나타나시지 않습니까? 저는 우리의 축복이 필요한 자들이 바로 우리의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우 여러분,

누가 여러분의 축복을 필요로 하십니까? 그 분이 바로 여러분의 왕입니다.

지난주 수요성경공부에서 제가 낸 첫번째 질문이 ‘얌체’ 하면 떠오르는 사람을 말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쏜살 같이 어느 교우분이 자신을 늘 괴롭히는 얌체를 말씀하셨습니다.

하이웨이를 달리다 보면 종종 교통체증과 함께 lane이 merge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Lane을 따라 오지 않고 옆으로 와서 끼어드는 사람이 제일 얌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특히 남편이 더 화를 낸다고 합니다. 교우님도 그 때마다 불평을 털어 놓곤 하신 것 같습니다.

한참 다른 교우님들의 반응을 들은 후 말을 이읍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사람을 보면, “God bless you,”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교우님들이 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수요성경 공부를 열심히 나오시다 보니 이웃을 축복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서로 말씀을 재미있게 나누었습니다.

만일 끼어든 얌체를 향하여 짜증을 내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모습을 보시면서 어떻게 생각하셨겠습니까? 틀림없습니다.

“이건 내가 아니지.”

반면 축복하시는 모습을 보시면서는 행복해 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로 우리의 왕은 우리 주변에 늘 있는 바로 이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특별히 우리의 축복이 필요한 자들…, 때로는 얌체로 나타납니다.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던 그들이 바로 우리들의 왕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이웃을 축복하는 자들은 어떤 특권을 누리게 될까요? 이웃을 위한 축복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놀라운 축복을 받는 것 같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웃을 축복하는 것보다 더 멋진 모습이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이미 이웃이 받은 축복으로 인해서 승리한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축복한 이웃 곧 왕이 승리하였기에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깃발을 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곧 이웃과 함께 먼 미래에 될 일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멋진 평민은 이웃과 더불어 최고의 미래 속으로 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축복한 그 이웃과 함께 미래의 세계를 탐방하는 것입니다.

Panasonic일본회사를 잘 아실줄 압니다. 창시자가 마쓰시다라는 일본인인데 16살에 전기회사에 취직합니다. 전기기구발명에 힘쓰다가 끝내 자신이 24살에 전기회사를 창설합니다. 이 때가 1918년입니다. Panasonic이라는 거대한 회사를 만들어 갑니다.

후에 기자가 마쓰시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마쓰시다 전기의 비전을 정할 때 얼마를 멀리 보고 정했습니까?”

“250년입니다.”

마쓰시다가 그토록 훌륭한 회사를 건설할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보는 모습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혼자서 미래를 탐방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에 대해서 어느 분은 다음과 같이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점차 커지면서 고용인들에게 최대한의 혜택을 줄뿐 아니라 고객에게도 남달리 최고의 서비스로 일관하였다.”

이웃과 함께 미래를 탐방하는 마쓰시다의 모습이 바로 오늘 시편의 주인공들인 평민들의 모습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먼 미래를 내다 보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 먼 미래를 내다 보는 순간 오늘 나의 삶의 차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100세만 살아도 아주 장수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250년 후를 내다보면서 100세를 살아 갑니다. 어떤 사람은 100년만 내다 보면서 살아 갑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100년을 살수밖에 없다고 해도 250년을 내다보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요?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해도 기도의 확신이 없어서 늘 괴로워하고 안절부절 못하시고 계시는줄 압니다. 치료법은 250년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250년을 내다보면서 가정사를 꾸려나가시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회 생활, 교회 생활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의 가장 큰 약점은 내가 살아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자 하는 욕심일줄 압니다.

반면 시편 기자는 미래를 내다 보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기도의 폭도 다릅니다. 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미래를 보는 사람들이 기도의 확신 가운데 살아 갑니다.

이웃을 축복하고 또 축복하십시다. 끝까지 축복하십시다. 250년을 내다보면서 축복하십시다. 어느덧 놀라운 기도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기도의 폭이, 깊이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고 오늘의 우리의 기도에 대한 확신이 있는 모습이 CCTV에 찍혀 있다면, 이들이 바로 최고의 평민의 삶을 사는 자들이 아닐까요?

이들의 마지막 CCTV에 찍혀 있는 모습을 살펴 볼까요? 7, 8절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기도 제목이 당장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 바로 서 있습니다.

가까운 퀸지 영생 교회에 현재 정재흥 목사님께서 시무하고 계십니다. 그 목사님의 아버님도 목사님이시고 씨애틀에 사시고 계신데 95세입니다. 요즘도 건강하시다고 합니다. 저는 최근에 그 목사님이 왜 그렇게 건강하시게 사시는지 한 가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추측입니다만…. 얼마 전에 워싱톤 DC에 방문 오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40년전에 워싱톤에서 목회하실 때 워싱톤에 한인 봉사 쎈타를 설립하셨다고 합니다. 현재는 아주 커졌는데 40주년을 맞이 하여 한인 봉사 쎈타에 방문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목사님은 100년 후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설립한 봉사 쎈타를 위해서 기도하며 지내셨을줄 압니다. 처음 시작할 때 얌체와 같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별 사람을 다 만났을 줄로 압니다. 그런데 40년만에 크게 성장한 쎈타를 보면서 더욱 감회가 깊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덕분에 그토록 건강하게 오늘도 지내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인의 고백이 그에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정 목사님은 이웃을 왕처럼 섬겼습니다. 그래서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한인 봉사쎈타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을 왕처럼 섬긴 결과 당신도 든든히 서 계신 축복을 누리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의 축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바로 서 있는 가운데서 계속 기도드립니다. 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생각해 보십시다. 이웃을 축복하고 그 이웃과 함께 미래의 세계를 탐방하는 자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러한 평민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벌벌 떠시면서 기도 응답을 해 주실 것입니다.

오할레스비라는 분이 ‘기도’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긴장하면서 벌벌 떨면서 귀를 기울이신다고….

교우 여러분,

이러한 평민이 되십시다. 어떤 이웃도 축복하십시다. 이웃과 함께 미래의 세계를 탐방하십시다. 아울러 늘 굳건히 서서 기도드립시다.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우리는 우리 왕들과 더불어 언젠가 우리의 깃발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꿈꾸시길 바랍니다. 평민에게 주어진 최고의 꿈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웹스터 사전으로 유명한 다니엘 웹스터의 청년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는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려는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말렸습니다. 이미 변호사의 수가 너무 많고 법률 계통에서 성공하려면 집안에 돈이많거나 좋은 가문 출신이 아니면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웹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맨 위에는 늘 자리가 남아 있는 법입니다.”

저는 조금 말을 바꾸고 싶습니다.

“250년 후 미래를 탐방하는 자들에게는 자리가 남아 있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100년을 넘지 않게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웃을 축복하며 이웃과 함께 먼 미래를 탐방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언제나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오늘이라는 시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든든히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민의 축복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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