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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 시내들 같이…

날짜 : 2013.08.11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남방 시내들 같이…
성경본문 : 시편 126:1-6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30811.wmv

조선 태종 때 윤회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무더운 여름철, 날이 저물자 윤회는 하룻밤 묶기 위해 어느 여인숙에 들었습니다. 저녁상을 물린 다음 마당에 나오니 주인집 아들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구슬을 갖고 혼자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슬 장난을 하는 아이 옆으로 거위가 지나가다가 무엇인가를 날름 삼켜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바람을 쐬며 마당을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안채에서 주인여자가 호들갑스럽게 뛰어 나오며 소리쳤습니다.

“아이고, 내 진주가 없어졌네!”

주인여자는 손님들 중에서 누군가가 진주를 훔쳐 갔다며 펄쩍 뛰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방금 전에 거위가 삼킨 것이 아이가 가지고 놀던 구슬이 아니라 진주였던 모양입니다. 주인여자는 윤회를 의심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밖에 나온 손님은 당신뿐이니 당신이 내 진주를 훔쳐 간 게 틀림없다고. 어서 내 진주를 내놓지 못해!”

주인여자가 다그쳤지만 윤회는 그저 잠자코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변명을 해도 믿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밖에 나갔던 주인남자가 돌아왔습니다. 자기 부인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남자는 윤회에게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런 도둑놈 같으니라고! 빨리 내놓지 않으면 나무에 묶어 버릴 테다.”

그래도 윤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인은 안 되겠는지 정말 윤회를 나무에 묶으려고 일꾼들을 불러냈습니다.

“저 도둑놈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당장 나무에다 묶어 버려! 날이 밝는 대로 관가에 넘겨 버릴 테니까!”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꾼들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윤회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결백하오. 하지만 나를 꼭 묶어 둬야겠다면 저 거위도 내 옆에 다 함께 묶어 주시오.”

주인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윤회의 말대로 거위도 기둥에다 함께 묶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주인남자가 다시 일꾼들을 거느리고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일꾼 중의 하나가 거위가 있는 자리를 보고 소리쳤습니다.

“진주를 찾았다!”
“그게 정말이야?”
주인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 친 일꾼에게 달려갔습니다. 정말 거위가 싸놓은 똥에 하얀 진주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윤회에게로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왜 어제 거위가 진주를 삼켰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윤회가 나직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저 거위는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일 내가 어제 거위가 진주를 삼켰다고 하면 당신은 분명히 그 자리에서 거위의 배를 갈랐을 게 아니오? 아무리 하찮은 짐승이라도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오.”

거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밤새 거위와 함께 묶여 있었던 윤회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한편 더욱 가슴이 아파 오는 것은 우리들의 선조들 중에 이런 훌륭한 분들이 계신데 어떻게 오늘 한반도는 이렇게 되었나 생각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미천한 동물의 생명을 아끼던 선조들이 살던 땅이 이제는 세계에서 제일 잔혹한 사람들이 사는 땅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때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한인 이민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고 계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잠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의 시편 말씀은, 주석가들마다 견해 차이가 있지만,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이 즐겨 부르던 시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이 시편을 잘 이해하시려면 간단한 배경을 아시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후 전혀 아무런 재앙을 맞이하지 않았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후 계속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늘 이웃민족과 싸워야 했고, 또 자연의 재해가 종종 찾아오곤 했습니다. 곧 바벨론이라는 큰 고비는 겪었지만 계속 산 너머 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점을 염두에 두시고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당연히 바벨론 포로 해방을 뜻합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저희 민족도 이런 축복을 68년전에 맛보았습니다.

(슬라이드1, 2, 3)

스크린에 이 날의 기쁨을 누리는 우리 민족의 모습이 나옵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이웃 나라들까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큰일을 행하셨다고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해방도 이웃나라들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슬라이드4)

기쁨의 태극기를 꼽는 모습이 나옵니다. 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그런데 갑자기 내용이 바뀝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포로들을 생각하면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하고 있나요? 신학적으로는 그것도 배제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더 큰 가능성은 처음 배경설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루살렘에 귀환한 후에도 계속되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곧 3절까지는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4절부터는 현재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는 8/15 해방을 회상하며 기뻐하는 우리 한 민족을 위한 시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8/15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포로된 자들이 있습니다. 북한의 주민들입니다.

북한의 주민들은 36년간의 일제 압박에서 해방된 기쁨을 잠시 누렸지만 곧바로 공산주의 체제의 독재 권력에 시달린 지가 벌써 68년이 지났습니다. 36년과 68년을 합하면 104년이 됩니다. 약 100년간 북한 주민들은 포로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언제 끝날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이러한 때 8/15 광복 축하예배를 드리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4절 말씀 다시 봉독해 드립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남방 시내들 같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남방 시내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소위 ‘와디’(Wadi)라고 불리는데 와디는 가뭄이 오면 풀 한포기도 날수 없을 정도로 바싹 마릅니다. 그러다가 우기가 되면 물이 넘쳐흐릅니다. 그러면 왜 시인은 남방시내들과 같이 돌려 보내달라고 하나요?

건기 때 보면 도저히 다시는 물이 흐를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언젠가 물이 넘치는 때가 오고 또 오곤 한 것을 시인은 너무도 잘 아는 것입니다. 바싹 마른 와디가 언젠가 물이 넘쳐흐르듯이 민족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기원하는 것입니다.

하여튼 시인은 와디를 생각한 후 한 단계 발전시킵니다. 마지막 5, 6절 말씀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남방 시내 곧 와디가 언젠가 물이 흐르듯이 뿌려진 씨는 반듯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히고 추수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이 확신이 시인으로 하여금 밭으로 나가게 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마음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와디에 물이 다시 흐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나의 몫은 그 하나님을 믿고 씨를 뿌리는 것이다.”

놀라운 시인의 지혜와 결단이 엿보입니다. 와디에 물이 채워진 다음에 씨를 뿌리러 나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자신의 책임을 다 하겠다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이 자신의 책임입니다. 와디를 빗물로 채우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자기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면 언젠가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을 믿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에 와디를 채우실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8/15광복주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깊은 회개를 해야 할 줄 압니다. 북한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 맡기기만 했던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진 않으셨나요?

“김일성이 죽으면 김정일이 죽으면….” 곧 하나님께서 와디를 채우시면 무슨 역사가 벌어질 줄 알았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 했었고요. 우리들의 이러한 생각 때문에, 아니 우리들의 게으름 때문에, 윤회와 같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던 한 민족이 이제는 세계에서 제일 잔혹한 민족이 되진 않았을까요?

그런데 절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아직도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실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오래 전에 이미 시인과 같이 민족을 위하여 눈물로 씨를 뿌리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의 인물로는 모세입니다.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죄를 지니 모세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출애굽기 32장 33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한편 신약에서는 사도바울이 다음과 같이 자기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로마서 9:1- 3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예수님은 온 인류가 당신의 민족이셨습니다. 그래서 온 인류를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한편 한민족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신 분이 계십니다. 잘 아시는 고당 조만식 장로님이십니다.

1946년 1월5일입니다. 그러니 해방된 지 6개월쯤 지나서 입니다. 미국이 남한을 소련이 북한을 신탁통치하기로 결정이 될 무렵입니다. 조만식 장로는 공산당에게 소련의 신탁 통치를 반대한다는 최후의 통첩을 전한 후 평양 고려호텔에 억류됩니다. 그 해 5월 4개월 후 부인 전선애 여사가 두 아이들과 함께 고려호텔을 찾아가 면회합니다. 조만식 장로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양손으로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들을 돌봐 주시옵소서. 어디서든지 신앙을 지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이 아이들의 앞길을 인도해 주소서. 민족과 교회에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게 하소서. 일생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슬라이드5)

눈물겨운 기도를 마친 후 조만식 장로는 부인에게 두툼한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단기 4279년 3월 10일
서기 1946년 3월 10일
두발.”

누런 봉투에 당신의 머리카락을 담아 넣은 것입니다. 곧 자기의 마지막 유품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두발을 손에 받아 든 부인은 마치 남편이 이런 편지를 쓴 것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나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터이니 마지막 유품이라 생각하고 잘 보관해 두시오. 그간 고생 많았소. 아이들을 잘 부탁하오. 그러나 하나님이 지켜 줄 테니 조금도 낙심하지 마시오….”

그 후 1년간 면회가 사절되었고, 급기야는 그의 생사조차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조만식 장로는 남한으로 내려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둘째 사위와 남한에서 이승만 박사의 전갈을 가지고 올라온 한양섭과 함께 남한으로 가기로 계획을 하였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한양섭과 사위는 조 만식 장로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선생님,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제 서둘러 나가셔야겠습니다.
“……”
“선생님?”
“나, 여기 있기로 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반문했습니다.

“예?”
“아무래도 북한 민중을 버리고 나 혼자 떠날 수가 없다. 지금 그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나 혼자만 어떻게 가겠느냐. 내가 평양에 머물러 있어야 공산당이 이 민중을 마음대로 못한다. 나는 일천만 북한 동포와 생사를 같이 하겠다. 나는 여기서 희생을 당해도 괜찮다.”

사실 밤새도록 기도한 후에 새벽녘에야 최후의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기도 중에 확신을 얻은 것입니다.

“민족과 동포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지리라!”

조만식 장로님은 북한의 해방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것입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수확케 하실 것입니다. 조만식 장로님은 하늘에서 기뻐하며 그 열매를 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부터라도 조만식 장로님이 뿌린 씨를 계속 뿌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 때 언젠가 북한에는 윤회와 같은 사람들로 꽉 차는 시절이 올 것입니다.

사실 우리 민족에게도 훌륭한 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 근대사의 인물을 몇 명만 나열해 드리면, 안중근, 안창호, 이준, 윤봉길, 김구, 서재필, 이상재 등 여러분이 있습니다. 이번 광복절 설교 준비를 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분들 모두는 일제 강점기와 싸우면서 위대한 길을 걸어 간 분들입니다.

북한의 동포를 위해서 희생하신 분은 제가 아는 분 중에서는 유일하게 조만식 장로님이십니다. 곧 시인의 고백을 끝까지 하신 분은 조만식 장로님뿐입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조만식 장로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이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자들을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요?
북한의 동포를 위하여 씨를 뿌리는 자들을 기대하시지 않을까요?

말씀을 거둡니다. 어떤 분들은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런 씨는 남한에 사는 사람들이 뿌려야지…?’ 과연 그럴까요?

조만식 장로님의 전기를 읽으면 너무도 훌륭한 삶을 사신 분임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중에서 이민 교회 목회자인 저에게 강하게 들어온 것이 있습니다.

조 장로님은 일본에 유학을 갔었습니다. 유학 생활중 학업과 더불어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습니다.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종일 공부에 몰두하다가도 잠시 캠퍼스를 거닐면서 기도에 전력하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면 잔디밭에 누워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조국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곤 했다.
‘전능하신 아버지, 조선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지혜를 주시어 일본인에게 뒤지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실력을 쌓아 하나님과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젊어서부터 이런 기도를 했기에 아니 외국에 나가서까지 이런 삶을 살았기에 그는 끝내 북한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썩어가는 하나의 씨앗이 되게 한 것입니다.
곧 조만식 장로님은 한국에 있는 분들뿐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그 분을 본받아 작은 기도를 북한을 위해서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뿌려야 할 씨를 뿌려야 하지 않을까요? 언젠가 우리가 뿌린 씨도 놀라운 열매가 되어 이 세상을 밝히게 될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서 시인의 기도를 드리십시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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