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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날짜 : 2013.07.07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성경본문 : 욥기 23:1-14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30709.wmv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실의에 잠긴 어떤 사람이 고명하다는 랍비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매사에 절반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지혜를 내려주십시오.” 랍비는 그에게 말합니다.
“뉴욕타임스 1970년도 판 930면을 찾아 읽어보세요.” 그 사람은 부리나케 집에 돌아와 신문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런데 랍비가 읽으라고 한 면에는 그해 야구선수들의 타율이 나와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지혜가 되는지 몰라 고민하던 그는 다시 랍비에게 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랍비가 묻습니다.
“최강 타자의 타율이 얼마로 나와 있습니까?”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3할 6푼 7리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자 랍비가 “바로 그거요, 최강 타자라 해도 3타석 1안타에 불과합니다. 세 번 나와서 한번만 성공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하는 일의 반 정도는 이루어진다니 5할대가 아닙니까! 만약 야구선수들의 타율이 10할대라면 무슨 재미로 야구를 하고 또 무슨 재미로 야구 구경을 하겠소? 인생도 야구와 같은 것입니다. 모자람이 있어야 세상을 살아가는 의욕도 생기고 재미도 있는 법이라오.”

야구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좀 죄송합니다만, 너무 좋은 이야기라서 소개해 드렸습니다. 제 아무리 잘 치는 선수도 3번 나와서 두 번은 아웃 됩니다. 세 번 나와서 한번 안타 치는 것을 볼 때 느끼는 스릴 때문에 야구를 보는 것이 아닐까요?

작년도 프로야구의 제일 잘 친 선수의 통계를 살펴보았습니다. 3할 3푼6리였습니다. 세 번 나와서 한번 치면 3할3푼3리입니다. 3리 정도 높았습니다. 곧 작년도 제일 잘 친 선수가 10번 나와서 안타를 쳤고, 반면 7번쯤 아웃되었습니다. 아마 올 해도 매한 가지가 될 줄 압니다.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났습니다. 올해 여러분의 삶을 타율로 계산한다면 얼마가 되겠습니까? 6개월이 지났으니 6번 타석에 섰었다고 가정해 볼까요? 6번 중 몇 번 안타를 친 것 같습니까? 어떤 분은 3번 친 것 같다고 생각이 드시는 분도 계실 줄 압니다. 5할의 성적입니다. 불가능할 정도로 좋은 성적입니다. 그러나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6개월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분은 2번, 그렇다면 3할 정도의 성적입니다. 정확히는 3할3푼3리. 야구식으로 생각하면 아주 훌륭한 성적입니다. 어떤 분은 1번, 1할 6푼쯤 되나요…? 좋은 성적은 아니죠. 그러나 아직 6개월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분은 0…, 제가 드리고픈 말씀은 희망은 언제나 살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욥은 어쩌면 항상 홈런을 쳤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올 때마다 홈런을 쳤습니다. 무엇을 하던지 잘 된 사람입니다.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둔 다복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소유물도 많아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고 종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재산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거기에 못 미치는 사람이 많은데 욥은 달랐습니다.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자, 그야말로 그는 홈런왕입니다. 자녀 복에다가 부자이고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이것이 인생인줄 알았을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 잘 쓰는 말이 있습니다.
“This is Life.”
이처럼 매일 홈런을 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완전히 운명이 뒤바뀌었습니다. 자녀도 잃고 재산도 잃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욥은 심한 병에 걸리게 됩니다. 재 가운데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습니다. 끝내 아내에게마저 버림을 받습니다.
늘 홈런만 치던 욥이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나올 때마다 아웃을 당합니다. 야구식으로 하면 No Hit No Run game을 당합니다. 그것도 부족한지 세 친구가 찾아 와서 욥을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삶의 실패를 몰랐던 욥 늘 홈런만 쳤던 욥이 처음으로 아웃을 당합니다. 아니Perfect game을 당합니다.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맞이합니다. 매일 매일이 새로운 아웃 새로운 고통의 시작입니다. 고통 가운데서 욥은 당신의 아픔을 고백합니다. 3절부터의 말씀입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욥은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생의 고통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늘 의롭게 살았는데 이런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입니다. 아니 무수히 “왜?”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전혀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자기에게 매번 홈런을 치게 하셨던 하나님이 이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으니 안 계신 건가요? 그동안 자기에게 홈런을 치게 하셨던 분은 하나님이 아니셨나요? 다음 고백이 이에 대한 답을 줍니다. 9절 말씀입니다.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는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계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단지 자기가 만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지금도 일하시고 계심을 믿는 데는 전혀 요동함이 없습니다. 전에 늘 홈런을 치게 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항상 아웃이 되게 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욥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원망 섞인 고백을 한 후 어떻게 되었나요? 훨씬 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늘 홈런만 치던 욥은 놀라운 인생의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인생은 타율인줄 알았습니다. 자신은 매번 홈런만 쳤고 이것이 인생인줄 알았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고 부자가 되고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존경받는 것이 인생인줄 알았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타율이 올라가는 줄 알았습니다. 3할이 아니라 항상 홈런을 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고난 후 깨닫습니다. 인생은 타율이 아닌 것을…. 그러면 무엇일까요? 다시 한 번 봉독해 드립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순금이 되는 과정이 인생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손에 순금을 쥐는 것이 인생인줄 알았습니다. 거기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매번 홈런을 쳤습니다. 손에 순금을 쥐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니 늘 홈런을 친다고 그래서 손에 순금이 가득하다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향한 뜻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손에 순금이 놓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순금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금, 금은 왕을 상징하죠. 하나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곧 순금같이 된다는 것은 왕 같은 존재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뜻이 아닐까요?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순금이 되게 합니다. 고난의 비밀은 곧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천주교인인데 이 분도 욥과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남편을 사별한 뒤 불과 1년도 안 되어 외아들을 잃게 됩니다. 마취과 전문의 과정 중에 있던, 미래가 창창했던 26살밖에 안 된 외아들이 죽자 발작하다시피 되어 십자가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이 원망과 증오 섞인 표현을 합니다.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죽이고자 하는 결심), 내 살의를 위해서도 신은 있어야만 해.”

이 표현을 책에 인용한 송봉모 교수님은 이 표현을 ‘가장 강한 부정은 가장 강한 긍정을 전제하는 것이다’로 설명합니다. 곧 마음 속 깊이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타나고 있지 않은 것뿐입니다. 어쩌면 마음껏 당신을 원망하라고 나타나시지 않으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이런 원망과 증오 섞인 고백을 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음과 같이 또 고백했다고 합니다.

“만일 그때 나에게 포악을 부리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분조차 안 계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살긴 살았겠지요. 사람 목숨이란 참으로 질기고 모진 것이니까요.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더 불쌍하게 살았으리라는 것만은 눈에 환히 보이는 듯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도리어 자기를 오늘의 자기로 만들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과 매한 가지로 박완서 소설가도 곧 순금이 되고 나서 3할의 타율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입니다. 10번 나와서 3번 안타를 치는 것을 계산하던 사람이 7번 아웃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7번의 실패의 소중함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때도 하나님은 함께 계셨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7번의 실패가 자신을 순금으로 만들어 간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7번의 실패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함께 계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축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순금이 된 욥은 과거와 현재를 보는 눈만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13, 14절 말씀입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욥은 고통 중에서 도리어 고통을 찬양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고통은 현재 자신을 순금처럼 만들뿐 아니라 미래 자신의 삶에 많은 축복을 안겨다 줄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욥의 삶이 어떻게 되죠? 욥기 42: 12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교우 여러분, 지난 6개월 어떤 분들은 7할의 실패를 보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8할의 실패를 어떤 분들은 9할의 실패를 그 보다 더 안 좋은 성적은 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순금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은 무척 자비로우심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순금이 되게 하셨고 앞으로도 우리를 위해 많은 일을 작정해 놓으셨습니다. 남은 6개월 욥의 신앙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제가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을 때입니다. 오랜만에 필라델피아 프로야구팀인 Phillies가 World Series에 올랐습니다. 물론 마지막 경기에서 져서 우승은 놓쳤습니다만, 한 게임이 끝난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이런 기사가 올라 온 것이 아직 기억에 납니다. 이 게임은 이긴 게임이었습니다.
“From Goat to Hero”
직역하면 “염소에서 영웅으로”인데 한 마디로 밑바닥에서 영웅이 된 한 선수를 가리켜서 한 표현이었습니다.

9회초까지 1점을 이기고 있었습니다. 9회초만 넘기면 이기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선수가 error를 범했습니다. 1점을 내 주고 만 것입니다. 연장전에 들어갔습니다. 에러를 범한 이 선수가 타석에 섰습니다. 관중은 원망 어린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안타를 쳤습니다. Walk off hit가 된 것입니다. 염소이었던 이 선수는 영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 때 에러를 하지 않았더라면 영웅이 될 수 있었을까요? 에러는 영웅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에러는 우리를 영웅이 되게 하는 필수 조건입니다. 이웃의 에러는 이웃으로 하여금 영웅이 되게 하는 필수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7, 8, 9할의 삶의 아픔 속에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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