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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들의 기쁨

날짜 : 2011.12.25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동방박사들의 기쁨
성경본문 : 마태복음 2장 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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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인간사 안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들을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정확한 연대는 알지 못하지만, 동로마 제국에서 있었던 일이니 아마 서기1,000년을 전후에서 있었던 일 같습니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 무서운 전염병이 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황제는 교황과 상의해서 국가적 회개 의식을 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도에 한 의사가 있었습니다. 의사는 전염병의 원인이 하수구에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시정 노력이 전혀 없이 잘못만 고백하는 것은 위선이므로 이번에는 종교 의식보다 위생 대책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에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들은 불경죄로 그에게 족쇄를 채웠습니다.
거의 천년이 흐른 184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스위스에 최초로 산부인과 병동이 설립되었습니다. 이그나지 세멜바이스 (Ignaz Semmelweis)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 병동에서 산모들이 10% 죽어 갔습니다. 반면 병원이 아닌 산파들의 병원은 사망율은 도리어 삼분의 일이었습니다. Semmelweis는 의사들에게 손씻기를 명령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망율이 1%가 되었습니다. 결국 큰 공헌을 했으니 노벨상과 같은 상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반면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도리어 돌았다고 해서 정신병동에 갇히게 됩니다. 정신병동에서 4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수십년 후 루이스 파스퇴르 (Louis Pasteur)가 전염병의 원인은 세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한 동료가 결투를 신청합니다.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의료원은 당황한 나머지 파스퇴르의 회원 자격을 박탈합니다. 물론 그 후 파스퇴르의 공헌이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제는 세계 곳곳에 파스퇴르를 기념하는 거리나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그러나 파스퇴르가 인정받기 전까지 많은 의료인들이 사회의 모순과 질시 가운데서 희생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의학계의 이야기입니다. 의학계는 그래도 현미경의 발명과 발전으로 이 모든 의혹들이 정리되어 갔습니다.

반면 우리 인간사는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회적 모순 가운데서 희생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아니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악이고 선인지 증명 가능한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됩니까? 그럴 때면 언제나 힘이 센 자들이 결국 의로운 자로 판결 받아 오곤 하는 것이 우리 인간사가 아닐까요?

이제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동방에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인간사가 얼마나 모순으로 가득 차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더 이상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풀수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벌써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한편 이 당시 세계적으로 나도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실 분이 오실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유대인들로 인해서 이러한 사상이 퍼졌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유대인도 한 몫 한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이 소문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이들은 이러한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몹시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점성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당시는 박사라고 하면 거의 만물박사였던 시대입니다. 요즘이나 박사들은 자기 전문분야만 아는 박사이지 불과 일 이백년 전까지만 해도 박사들은 만물박사였습니다.
레오날도 다빈치가 대표적인 만물박사인데 그의 직업은 화가, 조각가, 건축가, 음악가, 과학자, 수학자, 엔지니어, 발명가, 해부학자, 지질학자, 식물학자, 지도제작자이었습니다. (painter, sculptor, architect, musician, scientist, mathematician, engineer, inventor, anatomist, geologist, cartographer, botanist)
서기 1500년도 사람인 레오날도 다빈치가 이런 만물박사였는데, 하물며 2,000년전 동방박사들도 이 당시 최고의 지성을 소유한 만물박사임은 의심한 나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물박사인 이들은 온 인류를 위한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별들을 살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 전에 보지 못하던 한 별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별이 바로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었음을 즉시로 알았습니다. 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그런데 사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별이 나타난다고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보이지 않던 별이 나타나자 저 별이 유대인의 왕의 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들은 저 별이 유대인의 왕의 별이라는 확신을 가졌을까요?
사실 저들은 유대인이 아니었고 또한 아무리 저들이 성경을 구약을 믿었다고 해도 구약에 별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 세상학문에 깊이를 더해 갈수록 결국은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전에 저희 교회 여름 수양회에 오셨던 이연길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종종 기억납니다. “모든 학문은 깊이 들어가면 다 만나게 되어 있다.”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학문을 만들 수 있도록 세상을 창조하신 이는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곧 양심적으로 세상학문에 전념하면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비록 성경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어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됩니다. 보게 됩니다. 문제는 조금 알고 그것으로 인해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만물박사가 되면 하나님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됩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기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몰랐던 점을 생각해 볼 때 성경에 대한 지식은 별로 깊지 않았을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양심적인 학자들이었습니다. 돌아가는 인간사로 인해서 깊은 고민을 하는 박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인류의 구원은 인간사 밖에서부터 올수밖에 없음을 너무나 절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사모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새로운 별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이들의 마음의 눈을 띄게 하셨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의 별이라는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냥 오지 않았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들고 왔습니다. 주석가들에 의하면, 황금은 왕을 상징합니다. 유향은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 내지 예배를 상징합니다. 몰약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치료제입니다. 또 하나는 죽은 후 몸에 바르는 약입니다. 죽음으로서 참 치유자가 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몰약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세 가지 예물을 드림을 통해서 세상 온갖 학문과 지혜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로부터 왔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죄로 인해 엉망이 된 이 세상을 오직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아기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전 인류의 왕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는 어느 종교의 교주가 아니라 과학과 문화를 총괄하는 모든 영역의 하나님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 말씀에는 또 다른 왕이 소개되어집니다. 헤롯왕입니다. 헤롯왕이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3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헤롯왕은 자기가 유대인의 왕인데 새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을줄 압니다. 사실 헤롯왕은 참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할례는 받았지만 에돔사람이었습니다. 에돔 사람은 성경이 금하는 족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니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헤롯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통해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성경말씀을 전해주고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이 헤롯왕이 왜 이런 말을 했습니까? 결국은 시기로 인해서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처음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왜 하수구가 문제라고 말하는 의사를 족쇄로 채웠나요? 왜 손씻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의사를 정신병동에 가두었나요? 교만과 시기가 아닙니까?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나 중세기나 근대기나 아니 지금 현대 사회도 교만과 시기가 왕노릇하고 있지 않을까요?
동방박사들은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온 세계는 교만과 시기로 통치하는 왕이 다스리고 있음을 알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사랑과 공의로 통치하는 왕이 나타나야 함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왕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과 시기의 대명사 헤롯왕궁을 떠납니다. 헤롯왕궁을 떠나자 다시 별이 나타났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들은 온 세계의 구원자를 만나 뵐 것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그곳에 가서 아기를 봅니다. 온 세상의 모든 지식이 이 아기 안에서 완성됨을 봅니다. 하늘과 땅과 과거와 미래가 모두 이 아기를 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아기의 가슴 안에 온 인류를 향한 사랑이 가득 넘치고 있음을 봅니다.
그들은 말없이 값비싼 예물을 드리고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더 이상 하늘의 별 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공간이 그 별빛으로 가득차 있음을 느낍니다. 모든 시간이 바로 별빛의 장식품이 됨을 느낍니다. 그들은 안심하고 떠나갑니다.
언젠가 교만과 시기가 사라지고 참 평화의 세계가 이 아기로 인해서 곧 임할 생각을 하며 기쁨으로 떠나갑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도 동방박사들이 본 별을 따라서 이곳 까지 왔습니다. 아기예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기예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우리들의 손에 황금이 들려져 있지 않더라도, 아기 예수가 온 인류의 왕임을 노래한다면 바로 우리는 황금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기예수를 통해서만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의 고백을 한다면 우리는 유향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기 예수만이 우리를 고칠 수 있고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실 분이라고 확신한다면 우리는 몰약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과 정성을 다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린다면 아기예수는 우리를 위하여 기쁘게 왕이 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아름다운 향기로운 산 제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세상을 밝히는 작은 장식품이 되어 갈 것입니다. 곧 우리들의 삶을 별과 같이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께 경배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더 이상 별은 반짝이지 않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밟는 길이 별의 자취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순투성이의 세상을 향해서 별이 되어서 신나게 걸어 간 것입니다. 그러니 성탄예배를 드리고 이 자리를 떠날 때 우리들의 발걸음도 동방박사들의 발걸음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
교우 여러분, 동방박사들처럼 기쁨의 발걸음을 소유한채 세상으로 향하여 나가십시다. 온 인류의 구원자가 탄생하셨음을 우리들의 발걸음으로 보여주십시다. 모순투성이의 세상 한 복판을 향하여 신나게 걸어들어 가십시다. 우리는 새로운 별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이해인수녀가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반기는 오늘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천사들과 함께 우리 모두 함께 기뻐하는 별이 됩니다.
빛나게 거룩하게 고요하게
따뜻하게 겸손하게 의롭게
당신을 따르는 별이 됩니다.”

모순투성이의 세상은 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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