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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가정

날짜 : 2011.11.13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의로운 가정
성경본문 : 마태복음 1장 18-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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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자가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와 내 아내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아들과 아들의 아내 곧 내 며느리를 축복하소서.
우리 넷만, 이상은 없습니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사실 이 짧은 기도 안에 우리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집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의 전 영역은 바로 우리 가족, 특히 직계 가족만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기도와 걱정의 대부분이 여기에 머무르지 않습니까? 내 가족. 우리 넷.
오늘 본문 말씀은 너무나 잘 아시는 말씀입니다. 주로 성탄절에 읽혀지고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부부청년부 헌신예배를 맞이하여 이 말씀을 본문 말씀으로 정했습니다. 막 가정을 이룬 부부청년부 교우님들을 위해서 귀한 메세지가 담긴 적합한 말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먼저 18절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우리 주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약혼을 하였는데 결혼 전에 이미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가 되었지만 잉태된 것은 잉태된 것입니다. 그 말은 점점 마리아의 배가 불러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의 배가 불러 오고 있는 것을 누가 알아챘을까요? 약혼자 요셉만 알아챘을까요? 그럴리 없습니다. 가족을 비롯해서 주위 사람들이 좀 낌새를 챈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요셉에게도 들려 왔을 것입니다. 그 때 요셉이 어떻게 처신합니까? 19절 말씀입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마리아를 무척 사랑했나 봅니다. 마리아를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불륜을 범했으니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에게 마리아를 보내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자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이제 두 사람이, 곧 태어날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백년 해로를 하게 되길 바랬던 것 같습니다.
이 요셉의 모습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먼저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의로운 사람이었다라고 표현했겠습니까? 아마도 이 당시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자기의 약혼녀가 임신을 한 경우는 온 동네방네 선전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깨끗한 사람임을 증명하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여인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눈을 감아 준 것입니다. 한 인간의 삶의 소중함을 인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부정을 저질렀지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다른 여인과 결혼할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당연히 다른 여인과 결혼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꾸릴 생각을 한 것입니다.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로 인해 며느리나 사위를 볼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마리아는 완전희 남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남이지만 마리아도 인생의 최고의 길을 가는 여인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의로운 면입니다
요셉은 아마도 ‘우리 넷’의 범주를 넘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넷’만 행복하길 원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요셉은 이 당시 평범한 사람들처럼 약혼녀를 정죄했을 것입니다. 부정한 여인으로 온 세상에 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가족 밖에 사람들도 축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우리 넷’밖의 사람이 되었지만 마리아가 새로운 삶을 살도록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소개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우리 넷 그리고 이웃’을 생각하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의로운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20 절을 보니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이렇게 저렇게 고심을 한 것입니다. 그 때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말씀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은 순간 꿈 속에서지만 어리벙벙했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계속 꿈에서 주의 사자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셉은 꿈속에서 자기가 이 세상을 구원할 자의 아버지가 된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니 자기 가정은 구원자를 돌보는 키우는 가정이 된다는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많은 가정에서 자녀들이 좀 부모들 눈에 똑똑해 보이면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더 극성이지만 자녀내지 손주들을 천재라고 말들을 하곤 합니다. 자녀들을 천재라고 하는 경우는 종종 보았는데 자녀들이 세상을 구원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가정은 아주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요셉도 꿈속이지만 자못 놀랬을 것입니다. 구원자가 자기 집에서 태어난다는 말씀에 안 놀랠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놀래게 하고 주의 사자가 떠날 수도 있었지만 한 마디를 더 남깁니다. 22, 23절 말씀입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약 7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하여 이미 구원자는 처녀에게서 나온다고 예언이 되어 있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주의 사자가 자기의 말을 하였는데 이제는 이미 기록된 말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자기가 꿈에서 들은 이야기를 누가 믿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본인 자신도 헷갈리기가 일쑤일테니 아니 언젠가는 본인도 믿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일이 이미 예정되어 있고 그 사실을 성경 말씀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말씀으로 도장을 딱 받자마자 잠에서 깨었습니다. 24, 25절 말씀입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아버지라면 이런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만일 요셉이 ‘우리 넷’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요셉은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는 주의 사자의 말씀을 듣고 파랗게 질려서 소리 지르면서 잠에서 깨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소원은 푸른 초원 위에 아름다운 집을 짓고 ‘우리 넷’이 옹기종기 사는 것인데 자기의 가정에 구원자가 태어난다니 좋을리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넷’을 넘어 이웃을 생각하는 의로운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으로 점 찍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정을 통해 만인을 구원하는 구세주를 보내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오늘 청년부부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사랑하는 청년부부 회원여러분, ‘우리 넷’만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지 마십시다. ‘우리 넷’의 범주를 넘어 이웃을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시대에 쉬운 일은 아니죠.
지난 두 주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두 주일을 지냈는데 두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었습니다. 첫 주는 저의 모교회인 영락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두 번째 주일은 최근 예배 형식에서 많은 분들이 추천을 하고 있는 어느 교회를 참석하였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귀국하였는데, 바로 목요일이 한국의 수능시험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두 교회 다 목요일 특별 기도회를 가진다고 광고가 나와 있었습니다. 내용인즉슨 교우님들의 자녀들이 수능고사를 보는 시간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하는 특별 기도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두 번째 주일에 참석한 교회는 상당히 인텔리들이 모이기로 소문난 교회였습니다. 우리 교회 내지 우리 교회 보다 조금 더 인텔리전트하면 했지 못하지 않은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도 목요수능 특별기도회를 모인다고 광고가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는 약과입니다. 수능특별 100일 기도회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느분께 왜 요즘 교회까지도 이 지경이 되었냐고 물으니 그분의 변명 중 하나는 목요 수능기도회는 꼭 필요한데 그 이유는 목사님들이 설교를 통해 아이들을 더 이상 들볶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자는 말씀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분도 동의하는 것은 100일 특별 수능 새벽기도는 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분의 자녀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이 대화를 주일에 나누었는데, 주일을 지난 그 다음날 월요일입니다. 이 날은 수능 3일전입니다. 저와 절친한 교수님이 기왕 한국에 왔으니 당신 클래스에 와서 이민신학에 대해서 강의를 해 달라고 해서 대학교에 갔었습니다. 첫 강좌가 끝나고 두 번째 강좌가 시작하기 전에 두 시간 여유가 있다고 근처에 등산겸 산책을 나가자고 해서 나갔습니다. 절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절에 무슨 글이 써 있었겠습니까? “자녀들의 수능을 위한 100일 기도회.” 100일 기도회는 교회나 사찰이나 전혀 구분이 없었습니다. 왜 이럴까요?
‘우리 넷.’
’우리 넷’은 크리스챤들이나 불자들이나 구분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넷’만 생각하는 가족을 통하여 온 인류를 위한 귀한 삶을 사는 인물들이 태어날까요?
그렇다고 가족은 등한히 하고 이웃만 생각하라는 것은 더욱 의로운 삶은 아닐줄 압니다. ‘우리 넷’을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 안에서 멋진 삶을 사는 자들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넷’의 삶을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이웃을 향해서 사랑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까요? 기왕 아이들 공부 이야기가 나왔으니 과외공부를 소재로 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요?
“부부가 자녀들 과외 공부 관계로 싸움을 했습니다. 소리가 커지고 끝내는 남편이 고집을 피웠습니다. 아내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아내는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의 말에 일체 대답을 안 했습니다.
“당신 정말 말을 안 할 거야?”
“…..”
그래도 대답이 없습니다.
“나 회사 가요.”
그래도 아내는 말이 없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모른 체 했습니다. 저녁에 회사에서 돌아와도 아내의 화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여보, 나 왔어요.”
그래도 아내는 대답이 없습니다.
“당신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
남편이 실없이 웃어도 아내는 웃기는커녕 팩 토라지고 맙니다. 남편은 방 안에 있는 책상 서랍을 열고 무엇인가 찾기 시작했습니다. 옷장문을 열고는 또 계속 찾습니다. 응접실로 가서도 진열장 서랍을 열고 또 찾습니다.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남편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무엇인가 찾습니다.
“무엇 찾는 거예요?” 내게 말해야 찾아주잖아요?”
아내가 짜증을 내며 말했습니다. 그 때 남편이 말했습니다.
“아 찾았다!”
아내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무언데요?”
남편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찾은 거지.”

아마 이 모습이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이지 않았을까요? ‘우리 넷’ 그리고 이웃을 생각하는 자들은 이런 훈훈한 삶의 주인공들이 될 것입니다. 아니 가정 안에 이런 여유가 있을 때 이웃을 찾아가는 삶을 살게 될줄 압니다.
이처럼 이웃을 찾아 간 사람이 있습니다. 부요하게 사는 더그(Doug)와 매티(Mattie) 부부가 있습니다. 이들은 포츈 메거진(Fortune magazine)이 선정한 500대 기술 기업의 영업을 담당하는 부사장 가족이었습니다. 이들은 매 주 마지못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입양 아들 나산이 무거운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습니다. 지역 신문사들이 찾아 와서 취재하기 바쁩니다. 큰 수치를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체포된지 얼마 후 어느 부부가 이 가정을 찾아가 위로했습니다. 매티는 끝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자신들의 공동체에 초대했습니다. 그 공동체를 통해서 더그와 매티는 큰 위로를 받습니다.
체포된지 처음 몇 달 동안 두 부부는 아들을 보고 싶으면 새벽 2시 30분에 교도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오전 7시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때 접수 창구가 문을 엽니다. 그렇지 않으면 면회소가 없어서 아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공동체 모임에 있는 한 분이 자원해서 도와주었습니다. 두 부부가 아침 7시에 도착할 때까지 밤새 로비에서 줄을 서주었습니다. 그 후 그들은 로마서 공부반에서 공부를 하던 중 주님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믿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아들 나산도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교도소 안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공동체 안에 있는 한 의로운 사람으로 인해 온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은 우리 넷을 넘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밤 2시에 줄을 서주는 사랑은 세 영혼을 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 사람의 일이었을까요? 아내가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밖에 나가서 밤새 서 있을 수 있었을까요? 한 의로운 가정이 한 가정을 살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가정은 어떻게 의로운 가정이 되었을까요? 그들은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가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는 거져 받는 은혜를 체험한 가정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위해서 거져 사랑을 베풀 수 있었습니다. 의로운 가정이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의로운 가정을 이루십시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계속 펼쳐 가실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이요한 시인의 ‘부부의 교훈’이라는 시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되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아득한 불빛 하나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가물 가물 걸어갑니다.
꺼질까?
또 꺼질까?
그러나 비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
어느새 불빛 따라 또 하나의 불빛이 따라 갑니다.
불빛이 불빛을 부르며 사랑의 불빛들이 걸어갑니다.

교우 여러분, 부부청년 회원 여러분, 멋진 가정을 이루어 이웃과 더불어 아름다운 불빛을 발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의 가정을 따라 사랑의 불빛 행렬에 참여하십시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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