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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군대” 사무엘상 22:1-5 (12/27/2020)

 

빈센트 반 고흐의 여러 유명한 작품 중에 Almond Blossom(아몬드 꽃)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몬드 꽃이 활짝 피인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경위가 있습니다. 1890년 1월에 사랑하는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습니다. 사실 동생 테오가 형의 생활비를 전적으로 담당해 줘서 고흐는 그나마 그만큼 작품 활동을 할수 있었습니다. 살아 생전에는 한 점 밖에 작품을 팔지 못했으니 동생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생활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하는 테오가 아들을 낳은 후 자기 아들의 이름을 형의 이름 곧 빈센트라고 짓고는 연락이 온 것입니다.

물론 빈센트는 아이의 아버지 이름을 붙이면 된다고 사양을 합니다. 그러나 동생 테오는 형을 사랑하고 존경하기에 형의 이름을 붙입니다. 이에 감동을 받고 형 빈센트는 불후의 명작을 남깁니다. 태어난 조카를 생각하면서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침실에 걸어 놓게 합니다.

 

한편 이 그림을 보면 특이한 점이 눈에 보입니다. 아직 나무잎은 나지 않았는데 꽃만 활짝 피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아몬드 나무의 특징입니다. 거의 모든 나무는 잎이 난 후 꽃이 피는데 아몬드는 추운 날씨에 꽃을 피웁니다. 곧 아몬드 꽃은 연중 제일 먼저 피는 꽃입니다. 후에 잎이 돋기 시작합니다.

아마 빈센트는 자기의 조카가 추운 겨울을 지나 제일 일찍 피는 아몬드 꽃과 같은 존재가 되라는 염원을 안고 이 그림을 그린 것 같습니다.

 

오늘 송년예배를 드립니다.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저의 시계는 올해는 3월에 멈춘 느낌입니다만 오늘 올해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네요.

지난 3월에 막 봄꽃들이 피어나오려고 할 때에 코로나 한파가 닥쳐 왔습니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이 한파로 고생을 하고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곳 중에 하나가 교회입니다. 비관적으로 생각할수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받는다면 아몬드 꽃이 겨울에 꽃이 피어나듯이 우리 교회도 예기치 않은 추위 안에서도 꽃을 피우게 되지 않을까요? 코로나 겨울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이 때 하나님께서는 송년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에게 어떤 말씀으로 소망을 주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광야에 숨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얼뜻 읽으면 다윗도 삶의 한 겨울에 있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아둘람 굴로 도망을 갔는데 온 가족이 찾아 왔습니다. 온 가족도 함께 피난 온 것입니다.

르호봇 이야기를 통해서 다윗에 대해서 다섯 차례로 나뉘어서 말씀드렸었습니다. 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다시 말씀드리면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서 40년간 다스립니다. 곧 70세에 하늘나라로 간 셈입니다. 아주 최고의 삶을 살았죠.

그런데 40년간 왕으로 다스렸지만 왕이 되기 전 10년간을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곧 20살에 사울왕에 쫓기기 시작해서 10년간 쫓기다가 30살에 왕이 된 것입니다. 20살에서 30살 까지 도망자 생활을 한다는 것 쉬운 일일까요?

그것도 그냥 도망자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쫓아 죽이려하는 자는 사울왕이었습니다. 사울왕은 수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오곤 한 것입니다. 다윗은 도망을 다니다가 아둘람 굴에 들어 오게 된 것입니다.

 

아둘람 굴에 들어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가족들도 내려 온 것입니다. 가족들도 위험하니 도망 내려 온 것이죠. 그런데 가족만 도망 온 것이 아닙니다. 2절 말씀입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오늘 설교 제목을 ‘다윗의 군대’로 정했는데 이들이 다윗의 군대가 됩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로 구성된 군대입니다. 한 마디로 모두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자들입니다.

 

한편 정확히 시간은 알수는 없는데 쫓기는 10년 중 초반기에 다윗은 아둘람 굴로 피한 것으로 봐서 이들은 못해도 8, 9년은 아니 거의 10년 함께 다윗과 동거동락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이 긴 겨울을 자기의 군대와 어떻게 지내게 될까요? 3절 말씀을 보면 아둘람 굴에서 함께 지내다가 모압 땅으로 피합니다. 그런데 5절 말씀입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다윗은 아마 모압땅 요새에 더 숨어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갓이 와서 유대땅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합니다. 자기가 존경하는 선지자인데 분명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여 유대땅으로 들어갑니다. 사자굴로 다시 들어간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자굴로 다시 보내시고 계실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윗은 사자굴로 다시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고 하나님께서는 판단하신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나머지 10년의 광야의 삶을 채운 후 왕이 되게 하시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둘람 굴에서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 400명의 오합지졸 군대가 갑자기 사자굴로 뛰어들어갈수 있는 정예부대가 될수 있었을까요?

자세히는 알수 없지만 아둘람 굴에서 지은 다윗의 노래를 통해서 아둘람 굴에서 있었던 놀라운 일들을 우리는 추측할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르호봇 이야기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다윗은 10년 동안의 도망자의 기간 중에 최소 7편의 시편을 지었습니다. 그중 아둘람 굴에서는 두 편을 지었습니다. 그러니 이 아둘람 굴이 다윗의 삶에 끼친 영향은 보통 큰 것이 아닐줄 압니다. 57편과 142편을 지었습니다. 특히 57편이 잘 알려져 있고 복음송가 가사로도 유명한 시편입니다.

두 시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비관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먼저 142편 1-4절까지 봉독해 드립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

처음에는 크게 비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큰 확신 가운데 노래합니다.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이 시편을 통해 알수 있는 것은 아둘람 굴에서 다윗은 400명의 오합지졸들과 함께 비관의 노래를 부릅니다. 특히 4절 말씀이 가슴에 들어 옵니다.

“오른 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400명을 보니 한심한 것입니다. 아무도 도움이 될만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마지막에는 큰 확신에 찬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까요?

 

‘비관의 힘’입니다. 아니 하나님 앞에서 비관의 힘입니다. 다윗은 아둘람 굴에서 하나님 앞에서 비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비관할 때 신비한 일이 생깁니다. 놀라운 확신의 노래로 변하게 됩니다.

 

도날드 맥컬로우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때로 비관은 전적으로 적절하고 온당한 반응이다.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체스터턴은 ‘비관이라고 언제나 실없이 부유하는(둥둥 떠있는) 것은 아니다. 비관은 때로 용감한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비관은 때로 쾌할한 것이다’라고 썼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유명한 시편 57편입니다. 57편은 두 문단으로 나뉘어집니다. 이는 후렴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5절과 마지막 11절이 후렴입니다. 첫 문단에서 당하고 있는 고통을 이야기한 후 후렴으로 마칩니다. 첫 문단은 비관에 더 촛점을 두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문단이 6절부터 시작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그리고는 후렴입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57편 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귀절이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입니다. 이는 새로운 역사의 여명이 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소개해드린 윤동주의 ‘애기의 새벽’이라는 시가 다시 생각이 나네요.

 

우리 집에는 닭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 달라 울어서
새벽이 된다

우리 집에는 시계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 달라 울어서
새벽이 된다

다윗은 400명의 오합지졸과 함께 이 두 시편을 부르고 또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비록 추운 겨울이지만 자기들의 노래로 언젠가 새벽이 올 것을 아니 봄이 올 것을 확신하며 노래를 부르면서 위대한 다윗의 부대가 되어 간 것입니다.

이들이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는 갓 선지자에게 다윗을 다시 유대 전쟁터로 내 보내시고 계신 것입니다.

2020년도는 우리 모두에게 긴 겨울이었습니다. 아직도 겨울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때로는 비관하십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삶속에 하나님 앞에서 비관할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으십니다. 비관이 자기가 숨쉴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느낄 때 어느덧 노래로 변합니다. 새벽을 부르는 아기의 노래로 변합니다. 우리는 어느덧 다윗의 군대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새로운 확신과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다윗의 군대를 유대땅으로 들여 보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2021년도로 내 보내십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케 하시려고…. 우리는 2020년 동안 그리스도의 멋진 군대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코로나의 혹한 가운데서도 최근에 봄이 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백신이 생산이 되기 시작했고 의료진들을 비롯해서 접종이 시작되었습니다. 11개월만이라는 역사상 최고로 빠른 시간에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백신을 성공케 한 사람은 헝거리에서 온 과학자임이 밝혀졌습니다. Katali Kariko박사입니다. 처음에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Temple대학으로 postdoc으로 옵니다. 그 후 UPenn으로 옮기고 교수가 됩니다. mRNA를 통한 치료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면서 patent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 녀에게도 겨울이 찾아 왔습니다. 부교수까지 올랐지만 연구실적이 부족해서 다시 조교수로 내려 앉습니다. 저는 이처럼 내려 앉았던 교수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patent는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갑니다.

결국은 patent를 소유한 회사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 회사가 바로 화이자와 함께 이번에 백신을 개발한 BioNTech입니다. 사실 Moderna도 Kariko박사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백신을 개발한 것입니다. Kariko박사는 이민자와 다름 없는 분입니다.

 

얼마전 저희 가족 카톡방에 터키에서 독일로 이민 온 가정의 자녀가 백신을 개발한 주인공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찾아 봤더니 그 사람도 같은 계통의 연구자였는데 터키 출신이면서 독일에서 회사를 설립한 것입니다. 그 회사 이름이 바로 BioNTech. Kariko박사는 이 회사의 부사장으로 후에 영입된 것입니다. 실제로 개발한 분은 Kariko박사….

그래서 제가 집안 카톡에 ‘이민자 만세’라고 써 보냈습니다.

 

이민자들이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운 것입니다. 봄이 오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감사한 것은 Kariko박사는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아마 다윗처럼 추운 겨울에도 굽히지 않고 때로는 비관할 때도 있었지만 새벽을 깨울수 있다는 확신 가운데 연구를 계속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우리는 Kariko박사와 같이 백신을 개발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는 처소에서 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코로나라는 아둘람 굴속에서 훈련을 받은 그리스도의 군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비관하였습니다. 그러나 비관은 놀라운 새벽을 깨우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우두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무덤 권세를 이기시고 온 세상에 새벽을 깨우신 분이십니다. 이 주님께서 이제 우리를 2021년도로 보내시고 계십니다. 새벽을 깨우시기 위하여….

 

아기가 울 때 새벽이 오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군대가 있는 곳에는 역사의 새벽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아둘람 굴속에서 고백합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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