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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누가복음 23:32-28 (03/24/2024)

중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뭄이 들어서 물이 몹시 귀한 때에 농촌에서는 물 싸움을 할 때였습니다. 한 성도가 밤새도록 수고해서 논에 물을 대어놓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 잤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논을 살펴보았더니 이웃 논 임자가 논둑을 터서 물을 다 자기 논으로 빼앗아갔습니다. 당장 달려가서 그 사람의 멱살을 붙잡고 싸우고 싶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꾹 참고, 다시 밤을 새워서 논에다 물을 대고 들어와 잤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논을 살펴보았더니 그 이웃 논 임자가 또 논둑을 터서 물을 훔쳐갔습니다. 그 사람은 몹시 화가 나서 당장 달려가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꾹 참고 목사님에게 달려가서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잠시 생각하시더니,

“당신은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지 말고 어느 것이 서로 사는 길인가를 생각하십시오. 이번에는 물을 한 번 더 빼앗긴 셈 치고 그 사람의 논에 물을 대어주고 당신 논에 물을 대십시오”라고 말씀해주었습니다.

그 신자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이번에는 그 원수 같은 사람의 논에 물을 대주고 자기 논에 물을 대어놓고 집에 와 잤습니다. 그랬더니 아침 일찍이 그 고약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찾아와서 “예수님 믿으면 그렇게 착한 사람이 됩니까? 나는 당신이 달려와서 싸우자고 할 줄 알았는데 제 논에 물을 대주다니요. 저도 예수님 믿고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도저히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것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게 된 시작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늘 종려·고난 주일로 지킵니다. 주님께서 3년 간의 공생애를 마치시면서 드디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세번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첫 두 번의 예루살렘 순례길은 다른 평민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을 줄 압니다. 제자들 사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시면서 두 해의 순례의 길을 가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세번째 순례의 길은 사뭇 달랐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뒤로 하고 앞장을 서십니다. 예루살렘으로 진격하는 모습으로 나서십니다. 마가복음 10: 32절 상반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주님은 큰 결단을 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후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는 제자들에게 나귀 새끼를 장만케 하시고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이 때 많은 무리들이 몰려 나와 소리를 지릅니다. 누가복음 19: 38,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그런데 이 무리들은 예수님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자들에게 맥없이 붙잡히자 돌변합니다. 예수님은 이 당시 최고 종교재판소인 산헤드린 공회에 서고, 이어서 빌라도 법정에 서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석방코자 하지만 무리들은 도리어 소리지릅니다.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드디어 그들의 소리가 이깁니다.  예수님은 강도 바라바 대신에 십자가에 못박힙니다. 주님은 강도 바라바 대신에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사람들을 십자가에서 내려다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번 설교 준비를 하면서 아주 놀라운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0년간 담임목회자로 종려 고난 주일 설교를 해 왔는데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도 죄송하고 물론 교우님들께도 죄송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주님께서 처음으로 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구약을 전부 훑어 보았습니다. 물론 요즘은 인터넷이 있어서 훨씬 편하게 찾아 볼수 있긴 합니다.

구약에도 죄 사함의 주제는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시편에 죄 사함의 주제로 많은 시를 다윗을 비롯해서 지었는데 모두 자신의 죄 사함을 위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이런 기도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대표적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소돔에 사는 조카 롯을 위해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아룁니다. 창세기 18: 32절,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은 마지막으로 의인 10명으로 소돔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나마 실패합니다. 결코 아브라함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드리지 않았습니다.

 

한편 죄 사함의 고백이 많은 시편을 살펴 보면, 원수를 용서해 달라는 대신 도리어 원수를 혼내 달라는 기도뿐입니다. 말씀드린대로 다윗도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죄의 용서는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만 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윗의 기도를 살펴 보면, 51: 1, 2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다윗이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눈물로 회개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는 시입니다.

 

반면 다윗은 원수의 죄를 위해서 기도했을까요? 바로 다음 시편인 52편은 자기를 쫓아오는 사울을 생각하며 지은 시입니다. 특히 사울왕에게 고자질하는 도엑을 생각하며 지은 시입니다. 시 52:5절,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이런 시를 읽으면 원수를 미워해도 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들 줄 압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원수에 대한 저주를 하고 있는데 이를 하나님 앞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부하들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습니다. 이를 아름다운 곡조에 맞추어서 하나님께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입니다. 결코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 앞에 아뢰옵니다.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로서 그는 이웃을 사랑한 것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요…. 이것이 구약의 성인들이 원수를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아직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 위대한 고백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주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는 주님께서 처음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기도를 하신 후 누가 이 기도를 따라하게 되죠?

사울과 그 일행에게 돌에 맞아 순교당한 스데반이 이 고백을 합니다. 사도행전 7: 59, 60절,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주님께서 이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주님의 기도를 이어 받았습니다. 잘 아시지만 스데반의 기도의 첫 열매가 누구이죠? 바로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섰던 당시 이름은 사울, 후에는 바울이 됩니다.

 

그러면 왜 주님만이 이 위대한 기도를 처음 하실수 있으셨을까요? 왜 구약의 성인들은 할수 없었을까요?

지난주에도 언급해 드렸지만, 요즘 마가복음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얼마전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이야기를 나눈 줄 압니다. 주님께서 어느 집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네명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옵니다. 너무 사람들이 꽉 차서 들어 갈 수 없게 되자 네명은 중풍병자를 지붕을 뚫고 내려 보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복수입니다. 아마 네명을 포함하여 말씀하시는 줄 압니다.)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놀라서 수군거립니다.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실은 그 누구도 구약의 어떤 예언자도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믿던 안 믿던 또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죄 사함은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말씀으로 당신이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 계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께서 이제는 스스로 어린 양이 되셔서 붙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어린 양으로서 기도드리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한편 이 길은 아무리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죄 사함의 특권을 완성시키시기 위해 몸소 값을 치루셔야 하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 42,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더하였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는 로마 군병들 손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서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신 목적을 이 고백으로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물론 주님께서 이 고백을 하시지 않으셔도 이미 주님은 어린 양의 소명을 완성시키셨기에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는 길은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이 고백을 하신 두 가지 다른 이유가 있을 줄 압니다. 하나는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이가 십자가에서 그 값을 치루시며 드리는 기도이니, 안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아들의 기도를 들으실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일 줄 압니다.

또 하나는 이제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함일줄 압니다.

 

그러니 놀라운 것은, 이 고백을 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들에게 이웃을 위하여 이 고백을 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첫번째 수혜자가 바로 말씀드렸던 스데반인 것입니다.

이 특권을 누리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역사가 매일 매일 펼쳐지는 것입니다. 처음 말씀드린 논둑에 희생적으로 물을 대 주는 지혜까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갑니다.

 

쭈앙이라는 베트남 신부가 나쯔앙이라는 도시의 한 성당을 섬겼는데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다섯명의 간수가 쭈앙 주교를 감시하게 했습니다. 두 사람씩 조를 나눠서 감시하였습니다.

처음에 관리들은 두 주씩 임무 교대를 하게 했습니다. 곧 다섯 명이 두 주를 감시하면 두 주 후에는 새로운 다섯 명이 책임을 맡게 하였습니다. 이유는 쭈앙 주교로부터 나쁜 영향, 곧 예수 향기에 넘어갈까 봐….

쭈앙 주교는 스스로 자신에게 이런 생각을 주곤 하였다고 합니다.

“너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으니 그들을 주님이 너를 사랑하듯이 사랑하자.”

주교의 영향이 너무 커서 금방 간수들은 주교를 친구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죄수가 아니라…. 결국 관리들은 간수들에게 이런 결정을 말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교대 근무를 시키지 않기로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주교가 너희를 모두 버려 놓을테니….”

다섯 명만 변화받으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한편 쭈앙 주교는 1988년에 석방되었습니다. 3년 후 정부는 주교를 아예 출국시킵니다. 더 이상 베트남으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합니다. 베트남에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신앙에 물들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로 가게 되고 교황이 그를 추기경으로 추대하고 교회를 섬기다가 선종하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이웃을, 아니 원수를 사랑하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늘 주님의 음성이 그의 삶을 통해 가득 메아리치지 않았을까요?

“주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교우 여러분,

온 세상이 어두운 이야기로 가득차 있어도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고백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고백은 주님을 믿는 자들을 통해서 지금도 온 세상 방방 곡곡에서 울려 퍼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1890년 이탈리아 어느 마을에서 Maria Goretti가 태어납니다. 어릴 때 한 집에 두 가정이 사는 곳에서 생활합니다. 함께 사는 가정에 8살 위인 Alessandro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Alessandro는 나쁜 마음을 품습니다. 이에 Maria는 소리칩니다.

“It is a sin! 하나님은 이를 원하시지 않아!”

그 후 마리아는 Alessandro의 신앙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바른 신앙인이 되게 해 달라고….

 

어느 날 마리아가 반항하자 홧김에 칼을 휘둘러서 거의 죽게 만듭니다.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는 중, 고통 중에서 마리아는 외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를 용서합니다. 언젠가 하늘에서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그 다음 날 11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갑니다.

 

한편 Alessandro는 30년 징역형을 받습니다. 감옥 생활을 한지 6년만에 꿈에 마리아가 나타납니다. 마리아로부터 백합을 받습니다. 백합을 받는 순간 불꽃이 일면서 재로 변합니다.

그후 그는 과거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27년만에 석방이 된 후 마리아의 어머니를 찾아 가 용서를 구합니다. 당연히 어머니는 용서를 하고 1937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두 분이 함께 무릎을 꿇고 성만찬에 참여합니다.

마리아의 중보의 기도는 6년만에 응답이 되었고 27년만에 마리아의 어머니와 Alessandro는 화해를 한 것입니다. 당연히 둘은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마리아가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종려 고난 주일을 맞이하여 예배드리는 특권을 누리는 것도 바로 주님의 십자가상의 고백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 은혜를 갚는 길은 주님의 이 음성을 우리들의 삶을 통해 온 세상이 듣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2천년 전에 십자가상에서 외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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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Title Writer 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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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 “나는 생명의 떡이라” 요한복음 6:22-35 (04/14/2024) webmaster 2024.04.15
353 “마지막 아담: 살려 주는 영” 고린도전서 15:42-46 (03/31/2024) webmaster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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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서 4:5-11 (03/17/2024) webmaster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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