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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옷을 입은지라” 요나서 3:1-10 (02/18/2024)

어느 교수님이 대학원생 클래스에서 다음과 같은 실습을 시켰다고 합니다. 먼저 자신을 서술하는 30개의 글귀를 적으라고 하였습니다.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I am a man. I am a husband. I am a father. I am African American. 나는 노예의 자손. 나는 대학원생. 나는 친구. 나는 웃기기를 좋아하는 사람…..”

다음으로는 30가지를 가장 중요한 것부터 차례로 순서를 매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제일 마지막 것 부터 하나씩 지우라고 합니다. 하나씩 지우며 자신의 모습을 느끼라고 합니다. 드디어 다 지워졌습니다.

 

이 때 교수님은 질문합니다.

“Who are you?”

십분 동안 이 질문과 함께 묵상합니다.

 

그 때의 심정을 한 학생은 토로합니다.

“나를 기술하는 이 말들이 없는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은 공포스러웠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없는 나를 생각한다는 것은….”

 

그리고는 교수님은 이제는 거꾸러 가장 중요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부터 하나씩 다시 적으라고 합니다. 다시 자신의 identity를 되찾게 합니다.

 

저도 한번 해 보았는데 아주 소중한 체험을 했습니다. 특히 저는 가장 중요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 부터 채웠을 때 특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래봬도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30번째 저를 서술한 것이 전직 군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직 의사가 29번째. 28번째까지만 말씀드립니다. 당뇨 환자…. 물론 심하지는 않습니다. 심한 분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지만 저희 생활 패턴을 바꿔 놓았기에 28번째로 넣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다가 하나씩 채워 갈 때 너무도 좋았습니다. 비록 당뇨 환자라도 점점 생명을 되찾아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사순절 기간 꼭 한 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도 저를 기술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을 때 아주 이상한 느낌을 가졌었습니다.

 

오늘 사순절 첫째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지난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앞으로 주일을 뺀 40일간을 사순절로 지킵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지키는 이유는 주님께서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시험을 받으시고, 또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였던 역사를 생각하며 40일간 자신의 identity를 먼저 내려 놓고 주 안에서 새로운 identity를 찾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이 기간 세 가지를 권장합니다. 회개의 기도, 절제 내지 금식, 구제.

 

그러면 이 세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그래도 순서가 있지 않을까요? 무엇이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할까요?

 

재미있는 조사 결과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부자, 워런 버펫을 잘 아실 줄 압니다. 올해 1월 기준으로 재산이 $122 billio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 나이는 93세입니다. 아마도 젊은이들에게 질문한 것 같습니다. ‘워런 버펫과 삶을 바꾸고 싶은 사람 있냐고….’

결과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확천금을 받고 삶을 일찍 마치는 것보다는 회개할 것 하고 삶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보여주는 조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회개 없이 하는 절제는 도리어 교만하게 만들 것이고 회개 없이 하는 구제는 가난한 자를 더욱 멸시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이 세 가지 덕목 중에 제일 우선되는 것은 회개인 것입니다.

 

오늘도 요나서 강해를 이어갑니다. 지난주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는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identity를 잃고 물고기 뱃속에 갇혀서 요나는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회개를 통해서 다시 자신의 identity를 회복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2장 9절,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회개의 마침은 결단으로 이어집니다. 요나는 결단을 하고 서원을 갚겠다고 고백합니다. 무슨 일이든 앞으로는 순종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이것이 참 회개입니다. 회개의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육지에 토해 내게 하십니다. 여기까지가 지난주까지의 요나 이야기입니다.

 

이제 두번째로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진정 회개를 하였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3장 2절,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신학자들은 니느웨를 요즘의 이라크의 모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중해에서 현재의 모술까지 회개하는 마음으로 걸어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니느웨에 도착합니다. 4절 말씀을 보면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칩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드디어 요나의 회개는 이제 완성된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한 서원을 행하였습니다. 이제 요나는 하나님께 약속한 모든 것을 마친 것입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5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요나의 눈 앞에서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갑자기 그 큰 니느웨 성읍이 하얀 베옷으로 뒤덮였습니다. 요나의 회개는 니느웨의 회개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니느웨는 이 당시 가장 혹독한 테러리스트 국가였습니다.

아마 이들도 늘 죄책감에 젖어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요나는 자신의 회개를 완성했습니다.  한편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아니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6절에 보면 니느웨가 베옷을 입은 자들로 가득찼다는 소식을 듣고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습니다. 니느웨 왕까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7절에 보면,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서 선포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이뿐이 아닙니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옷을 입을 것이요.”

짐승들까지 베옷을 입히라고 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죠?

10절,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요나의 회개였습니다.

 

작년에 소천받으신 뉴욕의 팀 켈러 목사님께서 많은 책을 저술하셨는데, 그 중 요나서에 대해서도 훌륭한 책을 펴내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한국의 평양 대부흥 운동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 것을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요약해 드리면, 1907년 1월에 평양 말씀 사경회에서 놀라운 부흥이 시작된 것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회개를 통해서 부흥이 시작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회개가 일본 사람들을 향한 증오심이었다고 켈러 목사님은 설명합니다.

학자들마나 조금 다르겠지만 외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인들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회개할 때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은 한국의 신앙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심에 대한 교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의 야만성에 비해서 한국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의 신앙심으로 인해 교만해 있었는데 이를 회개 할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가정이 회복되고 예배가 뜨거워졌고 그 결과 놀라운 부흥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한국 교회의 부흥은 회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회개로 시작된 평양의 대부흥 운동이 오늘의 한국의 기독교를 이루어 나갔는데, 니느웨의 회개는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얼마전 다음 동영상을 통해 요나의 회개는 오늘에도 놀라운 일을 펼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C 채널에서 만들었는데 이란에 있는 성지들을 찾아간 장면입니다. 특히 이란에는 동방박사들의 무덤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는 바로 앗시리아인들이 세운 교회입니다.

물론 니느웨는 현재 이라크의 모술에 위치했지만 이 때 회개한 사람들로 인해 기독교가 남아 있게 되었고, 바로 동방박사들의 무덤은 현재 이란의 우르미아라는 곳에 있는데, 이 우르미아에 앗시리아인들이 동방박사들을 기념하여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곧 요나로 인한 니느웨인들의 회개가 동방박사들에게 이어졌고 이제는 이란 안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대로 신앙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는 지금 하늘 나라에서 니느웨의 회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자기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회개하게 하신 하나님께 끝없는 찬양을 드리고 있을줄 압니다.

 

이처럼 우리가 회개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사순절 기간 놀라운 일의 주인공이 되십시다. 회개하는 자들이 바로 놀라운 일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질문하실줄 압니다. ‘40일간 매일 “내 죄로소이다. 내 죄로소이다.” 고백만 하라는 말씀인가요?’

 

요즘 구역과 소그룹에서 느헤미야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도 어찌 보면 회개로 인해 일어난 놀라운 일이 기록된 책입니다.

느헤미야는 바사 곧 현재 페르시야에 거하면서 왕의 술 관원까지 되었습니다. 이 당시 술 관원은 높은 공무원이었습니다. 이 때 조국, 특히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금식과 기도는 회개로 이어집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느 1:6)

 

곧 느헤미야는 자신과 조상의 죄까지 회개합니다. 장장 4개월 가량…. 그 후에 왕의 윤허를 얻어 조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불러 왔습니다. 이처럼 회개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죄뿐 아니라 조상의 죄까지 회개한 것입니다.

 

곧 회개는 각자의 죄를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조상의 죄도 회개해야 합니다.

한편 만일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어떨까요? 이웃의 죄를 위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면 말입니다.

 

요즘 저희 교회에 출석하시는 호주에서 오신 교수님이 계십니다. 호주에서는 Native Australian이라는 말이 없다고 합니다. 호주 원주민들을 First Australian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후에 영국에서 온 백인들은 Second Australian, 그 다음에 온 아시아인들은 Third Australian.

반면 미국에서는 원주민들을 Native American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백인들은 많은 인종차별을 자행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예를 들지 않아도 다 잘 아십니다. 이 이슈와 연관된 주제를 작년 심포지움에서 다뤘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백인들을 위해 대신 회개의 기도를 올리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미국 땅에 살게 하신 것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립니다. 저희 교단에서 총회장으로 섬기셨던 Palestine 출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어릴 때 살았는데, 늘 마을에서 이동을 할 때는 이스라엘 정부의 허가증을 받았어야 했다고 합니다. 후에 미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감사절 저녁식사에 초대를 해 주었습니다. 첫 번째 든 생각은, “허가증이 필요하겠네.”

 

요즘도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지내고 있고, 요즘도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계십니다. 사순절은 우리들의 죄뿐 아니라 조상의 죄 아니 이웃의 죄까지 베옷을 뒤집어 쓰는 절기입니다. 우리들의 회개는 놀라운 일이 시작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사순절 기간 우리들의 회개는 하나님께서 그냥 놓아 두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의 회개를 통해 새로운 연쇄 반응을 일으키십니다. 우리 자신의 죄, 조상의 죄, 이웃의 죄를 회개하십시다. 주님께서 귀담아 들으시고 역사하십니다.

 

사순절 기간 우리들의 눈물의 회개는 놀라운 역사로 이어질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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