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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마태복음 5:1-12 (04/17/2022)

저희 교회와 인연이 깊은 뉴져지 찬양교회 허봉기 목사님이 최근의 자신의 저서를 보내오셨습니다. 요즘 팔복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서 그런지, 문득 다음의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목은 ‘모자라도 행복했다.’

 

“텍사스 소도시에서 작은 교회를 목회할 때다. 예배 반주를 하던 자매가 남편이 학위를 마치자 교회를 떠났다. 능숙하지 않은 고등학생이 그 일을 맡았다. 미리 연습했는데도 예배 중에 힘들게 반주를 하다가 결국은 중단하고 울었다. 광고 시간에 내가 말했다.

“초롱아, 울지 마라. 그래도 네가 우리 중에서 피아노를 가장 잘 치니까 네가 반주하는 거다. 나도 설교를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우리 중에서는 내가 가장 잘하니 내가 설교하는거고.” 이렇게 저렇게 모자라는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부활절 설교시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루터교에서는 부활절 설교를 농담으로 시작한다고…. 허 목사님의 글은 농담기가 넘치기도 하지만 내용도 팔복의 맥락과 맞아서 읽자마자 오늘 설교 서두용인 것을 금방 느꼈습니다.

주님께는 죄송하지만 허 목사님 글을 읽고 생각난 것은 팔복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담는다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모자라도 행복했다.’

 

왜 모자라도 행복할까요? 부활의 주님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부활주일에 팔복의 마지막 말씀을 나누게 되어서 아주 의미가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10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네번째 팔복의 말씀을 나눌 때 말씀드렸습니다. ‘의’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뜻합니다. 곧 의인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의로운 일은 하나님께서 바르다고 생각하는 일을 뜻 합니다. 곧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박해를 받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받는 축복입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그런데 이 축복은 언젠가 나눴던 것 같습니다. 바로 첫번째 팔복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누리는 복이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이 누리는 복이나 같습니다.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면 이 두 팔복이 말하는 천국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첫번째 팔복 설교 말씀시 나누었습니다. 첫번째 팔복에서 말씀하시는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삶 안에 천국이 임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것과 같은 축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곧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삶은 천국의 밭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씨앗만 뿌려지면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땅 위에 삶에서부터….

 

반면 오늘의 말씀인 여덟번째 팔복은 이 땅 보다는 하늘 나라의 축복에 더 강점을 둔다고 봅니다. 그 이유가 12절 말씀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이는 당연히 하늘 나라 천국의 삶에서 받을 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팔복을 우선 정리할수 있겠습니다. 팔복은 이 땅의 천국의 축복으로 시작해서 하늘 나라의 천국의 축복으로 끝이 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부활주일에 마지막 팔복의 말씀을 나누는 것은 우연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한편 첫번째 팔복의 축복 곧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서의 천국의 삶을 허봉기 목사님이 잘 표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모자라도 행복했다.”

그러나 하늘 나라 천국의 삶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행복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상이 큼이라.”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 그러면 하늘 나라의 천국의 삶은 “풍성해서 행복합니다,”가 아닌가 생각케 되었습니다. 큰 상을 받았으니….

우리들의 이 땅에서의 삶은 “모자라도 행복했다”입니다. 반면 천국에서의 삶은 “풍성해서 행복합니다”가 될줄 압니다.

 

사실 궁금한 생각을 안고 혹시 허 목사님은 천국에서의 삶은 어떻게 표현하시고 계시나, 글 중에 나오지 않을까 목차를 찾아 보았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었습니다. 순간 드는 생각은 “하늘의 천국은 가 보지 못 하셨으니….”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 목사님도 언젠가 하늘 나라 가서 고백하실줄 압니다.

“풍성해서 행복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축복을 받을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죠? 우리가 당한 박해일까요? 키엘케골은 부당하게 박해를 받은 사람은 온 세상에서 한 분 뿐이 없다고 말합니다. 곧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박해를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단지 믿는 자들은 예수님 옆에 있는 두 강도 중 착한 강도일뿐이라고 말합니다.

한 강도는 조롱조로 말하죠.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한편 착한 강도는 말합니다. 누가복음 23: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이 고백 하나를 들으시고 주님께서 착한 강도를 아니 우리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43절,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하신 후 삼일만에 주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 당에서는 우리는 아직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모자라도 행복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풍성해서 행복합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축복의 삶이 어떻게 신비스럽게 연결이 될까요? Finster라는 목사님이 계신데 은퇴하신 후 물건들을 고치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성화를 그리라는…. 목사님은 놀라서 자기는 전공 화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고집을 누가 당하겠습니까? 3에이커의 넓은 땅에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파라다이스 가든을 꾸밉니다. 자연과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을 성화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파라다이스에 들어가면 고장난 시계 보석 대리석 도자기 자전거 신발 워싱 머신 등으로 정원 곳곳을 꾸며 놓습니다.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써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버린 물건들을 주어서 밤낮으로 조립을 했습니다. 비에 씻겨 내리고 태양에 말리고 해서 수많은 물건들이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이 땅에서 하찮았던 시간 버리고 싶었던 시간 곧 우리들이 주님의 의를 위해 살다가 박해를 받던 시간들, 이 삶의 어려운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천국에서 놀라운 작품이 되어 가는 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주어질 큰 상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의 박해의 시간들이 천국에서 쓰임을 받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먼저 박해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당하는 고통의 시간들을 모아서 멋진 예술 작품을 천국에 만들어 놓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모자라도 행복했던 순간 순간들이 하늘 나라에서는 거대한 순간들의 작품이 되어서 진열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며 풍성해서 행복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축복의 시작은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들의 부족함을 당신의 풍성함으로 채워주시기 원하십니다.

“모자라서 행복했습니다.”

“풍성해서 행복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두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역사책은 옥성득 교수님이 지은 ‘첫 사건으로 본 초대한국교회사’입니다. 1887년 10월 16일 최초의 한국 개신교인 여자 세례식이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그 날의 일을 당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최초로 세례 받은 한국 여성: 10월 16일 일요일에 나는 29세의 젊은 부인인 최 씨의 아내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녀는 질문에 분명하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거의 틀림없이 이 나라에서 개신교 선교사에 의해 세례 받은 최초의 여성이다. 나는 우리 감리회가 안방 안으로 진출하는 것이 무척 기쁘다. 말씀을 받은 다른 여성들도 있다. 이 첫 열매로 인해 여호와께 감사를 드린다.”

 

이 여인이 자신이 최초 개신교 여성 세례자로 역사에 기록된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아펜젤러가 이렇게 기록한 것도 영광인데 하늘 나라에 기록된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한편 어느 역사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1887년 전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 그 나타나심을 먼저 본 자는 또한 여인이더니, 조선 교회가 시작될 때에도 주를 먼저 깨달은 자는 또한 여인이라. 이는 어찌 거대한 일이 아니리오.”

 

이 땅에서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위해서 한 모든 일들은 거대한 일들입니다. 이를 우리는 하늘 나라에 가면 밝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부활의 주님과 더불어 살면서 고백합니다.

“모자라도 행복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또한 부활의 주님으로 인해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풍성해서 행복합니다.”

 

우리가 팔복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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