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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하나님” 룻기 1: 15-18 (05/08/2022)

많은 분들이 아마 초등학교 때 만났을 시 한편을 먼저 소개해 드립니다. 강소천 시인의 ‘닭’입니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 번 쳐다보고.

 

저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저술가가 당신의 책에 이 동시를 소개하면서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엄마닭과 병아리들이 함께 그려진 그림과 함께 이 시가 소개되어졌다고 합니다.

아울러 저자는 말하기를 강소천 시인이 300 여 편의 시를 지었는데 이 동시 ‘닭’을 지은 후 ‘이 시 한 편만으로 나는 눈을 감아도 좋다’ 고백하셨다고 합니다.

 

글쎄 저자는 왜 강소천 시인이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는지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다음과 같은 당신의 소감을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요점만 말씀드리면, 이 시는 36개의 글자로 쓰여진 간단한 시입니다. 처음에는 훨씬 많은 글자로 표현되었으리라 추측을 합니다. 탈고할 때마다 군더더기를 지우고 또 지우다 보니 36글자가 되었습니다. 닭의 모습을 표현하기에 너무도 파워풀한 시가 된 것입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파워풀한 말로 이 시에 대한 소감을 말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도 하나씩 덜어 내기의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배웠다.”

 

강소천 시인은 닭의 모습을 쓴 후 덜어 내고 덜어 내다가 36개의 글자로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최고의 시라고 기뻐한 것입니다. 더 이상 덜어 낼 것이 없는….

 

강소천 시인의 시와 이 시를 가지고 글을 쓰신 분의 글을 종합해 보면서 저는 이런 결론을 내려 보았습니다.

시인에게 인생을 36개의 글자로 표현하라고 하면 바로 이런 시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반면 시인에게 세 글자로 표현하라고 하면 어떻게 표현하셨을까요?

‘어머니.’

제 보기에는 시인은 ‘닭’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시의 제목은 어떻게 보면 ‘닭’이 아니라 ‘어머니’라고 해도 좋을줄 압니다. 시인은 닭의 모습을 통해 인생은 바로 ‘어머니’를 부르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와 같은 지혜로 힘들지만 멋지게 산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 분의 삶을 함께 나누며 우리들의 삶을 가장 간단히 표현하는 글자가 무엇인지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부터 말씀드립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곧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민족이 정복한 후 아직 사울왕과 이어서 다윗 왕국이 세워지지 않은 때입니다. 두 아들을 둔 한 가정이 흉년을 피해서 모압 지방으로 이민 갔습니다.

사실 이 때는 이미 모세오경이 쓰여진 후인데 신명기 23장에 보면 모압인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 오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모압인들과는 가급적 상종을 하지 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흉년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이민을 간 것입니다.

얼마 후 큰 비극이 닥칩니다. 먼저 남편이 세상을 떠납니다. 한편 두 아들이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는데 모압 여인들과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 기쁨도 잠시 두 아들이 차례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납니다.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왔지만 남편과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 대신 두 며느리만 남았습니다. 곧 세 남자와 함께 모압으로 왔지만 이제는 두 며느리가 세 남자를 대신 하게 된 것입니다.

때마침 고향 땅에 흉년이 풀렸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소위 말하는 역이민을 시도합니다. 같이 떠나온 세 남자는 모압 땅에 묻고 두 젊은 모압 며느리와 함께….

그런데 막상 유다 땅으로 돌아가다가 착한 나오미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두 며느리에게 각기 자기의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합니다. 한편 착한 두 며느리는 모두 같이 따라 가겠다고 우깁니다. 나오미가 더 강하게 각자의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니 맏며느리는 나오미의 말씀에 순종하고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 갑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룻은 나오미를 떠나지 않습니다. 룻이 고백합니다. 16절,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뿐 아닙니다. 17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이 말을 들은 나오미는 포기하고 룻과 함께 고향 땅으로 향합니다.

 

그러면 나오미가 룻의 어떤 표현을 보고 함께 같이 가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가 가능하지만 저는 이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의 하나님.’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그러면 룻의 어머니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죠?

사실 나오미는 늘 어떤 죄책감 내지 수취감에 사로 잡혀 있었을지 모릅니다. 먼저 흉년이 들어 고향 땅을 떠났습니다. 그것도 유대인들이 그렇게 경멸하는 모압 땅으로, 물론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으시는 모압인이 사는 곳으로….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남편을 잃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속된 표현을 한다면 “기왕 베린 몸” 하면서 모세오경에 총회에 들어 오지 못하게 한 모압여인들을 며느리로 맞이 합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고향 땅에 사는 유대민족의 딸들을 삼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어쩔수 없이 이방여인의 시어머니가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남편도 잃었으니….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두 아들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니 나오미는 죄책감과 수치감에 온통 휩싸여 있지 않았을까요? 이 모든 것을 룻은 옆에서 보았고 아니 그 아픔의 현장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나오미는 저주받은 여인입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보통 며느리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시어머니 곁을 떠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첫째 며느리도 대단합니다. 처음에는 안 떠나려고 했으니….

그렇다면 룻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떠나라고 강하게 권하는 시어머니에게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죠? 나오미의 삶을 실패의 순간 순간을 그저 옆에서 남의 일인양 지켜 넘어가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마디로 나오미를 실패자로 만드는데 하나도 막으시지 않으셨습니다. 방관하셨습니다. 내버려 두셨습니다. 나오미의 하나님은 이러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 본 룻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가 당하는 고난을 그냥 지켜만 보신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어머니 처럼 저주의 여인 실패의 여인이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셔도 좋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 다문화 가정이 많아지고 있는 사실 잘 아실줄 압니다. 어느 베트남 여성은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문화적 차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자마자 시어머니는 한국 풍습대로 미역국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끓였고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는 며칠 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생선이나 고기를 끓여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베트남 결혼이민자들은 미역 특유의 냄새 때문에 미역국을 잘 못 먹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잘 먹지 않는 잉어나 닭고기를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한국에서는 임신을 했을 때 닭고기를 먹으면 아기가 닭살이 된다고 해서 잘 먹지 않지만 베트남에서는 아기 난 집에 손님들이 매일 매일 닭고기나 계란을 사온다고 합니다.

 

룻이 이런 것을 몰랐을까요? 이미 시어머니와 모압에 살면서 많은 문제들을 체험했을줄 압니다. 그런데 이제는 유대 땅에 가서 살아야 합니다. 문화적인 충격도 산 넘어 산임을 잘 알았을줄 압니다. 그러나 룻은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나니.”

 

룻은 어떻게 이런 위대한 고백의 주인공이 될수 있었을까요? 저는 강소천 시인의 ‘닭’의 모습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보고 싶습니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 번 쳐다보고.

 

닭은 아니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물을 머금고 하늘을 쳐다 봅니다. 푸른 하늘을 바라 봅니다. 또 한번 쳐다 봅니다. 이번에는 어느덧 구름이 푸른 하늘을 가립니다. 그러나 다시 물 한 모금 머금고 하늘을 쳐다 봅니다. 구름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이 슬며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늘이 제 아무리 구름으로 검어도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늘을 쳐다 봅니다. 언젠가 구름은 사라질 것을 믿으며….

이처럼 끝없이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룻은 나오미에게 본 것이 아닐까요? 첫째 며느리는 실패를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오미를 떠났습니다. 룻은 계속되는 실패 가운데서도 하늘을 바라 보고 또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그 결과 룻은 어떻게 되죠? 예수님의 조상의 족보에 버젓이 들어가게 됩니다. 정확히는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4:21, 22절,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보아스가 룻의 남편이 되었습니다.

 

실패자 나오미의 모습에서 참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조상이 되어간 것입니다. 인류 구원 역사의 일익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전 NCKPC총회 특별 강연시 한인 2세인 제인 홍 박사님께서 초창기 한인교회사에서 눈에 띄는 장로교인 세 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두 분은 남자 목사님이신데 이 두 분에 대해서는 간단히 소개하셨고 제일 길게 소개해 주신 분은 평신도인 Mary Paik Lee 여사님이십니다. 집사, 권사, 장로의 직분 없이 평생을 평신도로 섬기신 것 같습니다.

메리 여사님 가족은 1905년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일하러 온 한인들 그룹에 끼어서 미국 생활을 시작합니다. 후에 칼리포니아로 이주하고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세운 파차파 캠프에서 4, 5년간 생활합니다. 어머니의 건강 때문에 Claremont로 이사가 아버지가 건물관리인으로 섬기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1920년도 한참 인종차별이 심할 때 모진 고생을 하면서 삽니다. 그래도 나성에 있는 한인 장로교회에 꼬박 꼬박 헌금을 보내고 한국에도 보내면서 애국자로서 하루 하루 살아 갑니다.

한편으로는 애국자이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받는 인종차별에 대해서 분연히 목소리를 낸 정의의 여인이 되어 갑니다. 백인 교회에 차별을 받은 메리 여사는 후에 흑인 교회를 다니게 됩니다. 그러면서 흑인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시간 그 분에 대해 다 소개해 드릴수는 없고 실은 이처럼 그 분에 대해서 요즘 학자들이 발표를 하게 된 계기는 그 어려웠던 삶에 대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습니다. 초기 미국 한인들의 생활을 한눈에 볼수 있는 책이기에 요즘 그 분의 책이 역사학자들에게는 소중한 자료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메리 백 리 여사에 대해서 오늘 어머니 주일을 맞이하여 소개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메리 백여사가 이처럼 초기 한인 역사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기까지 그 분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역할을 무시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메리 여사는 유명한 장로교 선교사님이신 마펫 목사님에게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의미는 메리 여사가 태어나기 전에 온 가족이 이미 장로 교인이 된 것입니다.

특히 할머니는 마펫 목사님에서 성경을 배운 후 이 말씀은 이웃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열망에 사로 잡힙니다. 동네 여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아울러 성경을 가르칩니다. 급기야 여학교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결국 평양에서 작은 여학교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경찰서에서 할아버지를 체포하려고 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평양에 남고 메리 여사 부모님과 형제들만 인천을 통해서 하와이로 도망 아닌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도 도망을 갈수 있었지만 할머니는 당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놓고 떠날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고 메리 여사의 부모님만 자녀를 데리고 하와이행 배를 타게 된 것입니다.

이 때 할머니의 딸 곧 자기의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오셨습니다.”

이 말 뒤에는 앞으로도 인도하시리라는 확신이 숨어 있는 고백이었습니다.

 

이런 할머니와 어머니를 둔 메리 여사는 미국에서의 험난한 삶을 끝까지 승리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냄으로서 기독교 역사에 아울러 한인 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하나님을 당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드리며 미국의 역경의 한 순간 순간을 감사함으로 승리한 인생을 산 것입니다. 룻처럼….

 

말씀을 거둡니다.

지난주일 설교시 ‘어머니 교회’에 대해서 언급해 드렸는데, 오래 전 ‘어머니 교회’라는 설교집을 발간하였었습니다. 마침 그 때가 저희 어머니께서 하늘 나라 가신 직후였습니다. 그 책의 머리말을 다음의 글로 대신하였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소천하시기 전날 밤 저는 가장 아름다운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하늘을 날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호수가 보였습니다. 몇 개의 호수가 하나로 연결되어 매우 큰 호수를 이룬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호수 덕분에 살고 있대…….”

저는 꿈에서 깨었습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새벽 5시 경이었습니다.

그 후 어머니의 여읜 고통이 엄습할 때마다 저는 이 호수를 생각하곤 합니다. 어머니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났고, 또한 생수를 체험하였다는 생각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어머니는 호수였습니다. 어머니의 삶은 여러 가지 역경과 고난으로 구멍이 많이 뚫려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기도로 그 구멍마다 아름다운 물로 채우셨습니다. 어느덧 구멍들이 연결되어 큰 호수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물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사실 저희 아버님도 훌륭한 삶을 사셨는데 저희 아버님은 당신의 자서전을 집필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님은 집필하시지는 못 하셨습니다. 구멍마다 물로 채우시느라 집필하실 여건이 허락되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많은 어머니들은 이름 없이 역사 속에 왔다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실패자의 길을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많은 어머니들은 인류 역사를 위하여 실패자의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남기지 않은채….

이러한 어머니 아니 이러한 어머니들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 인해서 역사는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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