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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종교개혁” 시편 137:1-9 (10/30/2022)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신부님이 계십니다. 동아시아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십니다.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라틴어를 잘 구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법연수원 3년 과정은 라틴어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10년간 로마에서 유학을 하셨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어느 시험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이 묻습니다. 물론 라틴어로….

“자네 한국 사람인가?”

“네.”

“꺼져 버려.”

 

교수님은 법학전문대학원의 원장이셨는데 보자 마자 소리친 것입니다. 사실 천재적인 석학으로 평소 존경하던 분인데 그렇게 흥분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시험을 못 보게 하며 꺼지라는 것입니다. 이 시험을 통과해야 종합시험을 볼수 있는데 앞이 깜깜해 졌다고 합니다.

 

때는 2002년 6월이었습니다. 이 때 한국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축구팬들은 잘 아실줄 압니다. 월드컵 축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날 막강한 이탤리가 한국에게 고배를 마셨습니다.

어떡합니까? 급한대로 교수님께 사정합니다.

“교수님, 잠깐만요. 축구 때문에 마음이 상하신 것 잘 압니다. 저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교수님은 계속 자기를 노려 보고 계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축구는 축구이고 시험은 시험입니다. 어떻게 축구 때문에 시험을 못 봅니까?” 어쩔수 없었던듯 교수님은,

“와서 앉아라.”

 

그런데 이 모든 대화는 라틴어로 이어진 것입니다. 제가 라틴어라고 자꾸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종교 개혁 주일로 지키는데 종교개혁과 라틴어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루터가 윗텐베르그 교회에 95개 조항을 붙이면서 종교 개혁이 시작되는데 이 당시 교회에서 사용되었던 언어는 라틴어였습니다. 어떤 지역에 있던 관계가 없습니다. 모든 교회는 라틴어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 당시 독일인들 중 라틴어를 아는 사람들은 5%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95%는 신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채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당시 성경을 라틴어로 읽지 않으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한편 주기도문을 영어로 외워서 7명이 사형을 당했습니다.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던 위클리프는 죽은 후에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다시 화형에 처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왜 라틴어로 예배를 드려야만 했을까요? 쉽게 추측이 가능합니다.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로마의 종교로 채택합니다.

그후 히에로니무스라는 유명한 성인이 등장하는데 그의 가장 큰 업적은 391년부터 406년까지 계속된 성경의 라틴어 번역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성경이 로마 교회의 성경이 됩니다.

 

잘 아실줄 압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 곧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신구약 성경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명실공히 카톨릭 교회에서는 가장 성스러운 성경이 된 것입니다. 결국 카톨릭 교회는 모두 라틴어로 예배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로마 제국의 힘입니다. 그 힘이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 깊게 들어 와서 로마인들이 사용하는 라틴어로 예배를 드렸고 성경도 라틴어 성경만 읽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성경을 읽으면 사형!

 

결국 마틴 루터는 단순히 로마 교황과 싸운 것이 아니라 세상의 군주들과 싸운 것입니다. 세상의 거대한 힘과 싸운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한글로 영어로 마음껏 성경을 읽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면 더 이상 종교 개혁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을까요? 세상의 거대한 힘은 오늘도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마틴 루터가 시작한 일은 오늘도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한동일 학생이 천재 교수 앞에서 부르르 떨면서 시험을 보게 해달라는 그 장면은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살면서 오늘의 종교개혁은 과연 어떤 것일지 남은 시간 오늘도 시편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시인은 같이 잡혀온 동족들과 함께 바벨론 강가에서 울고 있습니다. 민족의 악기 수금을 버드나무에 건채…. 이로서 알수 있는 것은 오늘의 시는 다윗의 시는 아닙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시인의 시입니다.

한편 울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바벨론 사람들이 시온의 노래를 하나 부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당시 바벨론은 모든 나라의 신들을 인정했습니다. 곧 여러 신을 인정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에는 각자의 노래가 있음을 잘 알았습니다. 사실 노래 자랑을 시키는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 입장에는 자기 나라의 문화 축제를 하는 셈입니다. 모든 민족의 노래가 이제는 바벨론의 노래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여기에 어떻게 반응하죠? 4절,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어떻게 보면 종교개혁 당시 독일의 상황과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자기 나라 말로 고향의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반면 종교개혁 당시는 자기 나라 말을 사용치 못하게 했습니다. 경건한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을 읽을 때….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같습니다. 바벨론 사람들 앞에서 이스라엘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유일신 하나님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는 것입니다. 도리어 힘의 나라 바벨론을 섬기는 것입니다.

 

반면 로마교황청은 자기들의 힘으로 모든 나라가 라틴어로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수도 없고 성경을 읽을수도 없고…. 결국 교황청과 로마제국의 영향권을 벗어날수 없게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노래는 모두 여호와 앞에서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성전에서 아니면 멀리서 성전을 생각하며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이들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신이라는 것을…. 그런데 바벨론 사람들이 차례로 각자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 노래가 나오겠습니까? 이에 고백합니다. 6절,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예루살렘을 기억하며 찬양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지만 당신들 앞에서는 못 부르겠다는 것입니다.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려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니 너희가 아무리 힘이 세도 내 혀는 주관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인의 고백은 마틴 루터의 보름스 국회에서의 고백을 생각나게 합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시인과 마틴 루터는 같은 운명에 처해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 모두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종교개혁자인 시인은 마지막으로 노래 합니다. 8, 9절,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원수를 갚아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원수를 갚는 자들에게 복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이 할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하나님께 원수를 갚아 달라는 것이고 그 방편으로 원수를 갚는 자들에게 복을 내려 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심하다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을까 의구심도 생길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요. 바벨론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것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애도 이스라엘인들에게는 바벨론 사람들 앞에서 노래자랑으로 노래를 부르는 순간 하나님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처럼 처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기도를 드림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루터도 이런 비슷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보름스 국회 앞에서 마지막으로 외칩니다.

“”Here I stand, I cannot do otherwise, God help me. Amen.”

“내가 여기 섰나이다. 다른 아무 것도 할수 없습니다. 나를 도우소서. 아멘.”

 

시인이나 루터는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그러면 루터는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 번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루터는 보름스 국회로부터 추방령을 받고 쫓겨 나가다가 작센의 제후 프리드리히의 보호로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게 됩니다. 그 성안에서 11주만에 신약성서의 독일어 번역을 완성합니다. 학자들은 당시 그의 신약성서 번역은 독일 문학사와 특히 현대 독일어 발전에 주춧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당시 신학자들도 독일어 사용을 부끄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과감하게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그것도 시장에서 사용하는 독일어로…, 이것이 현대 독일어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루터는 언어의 천재였습니다. 쉽게 라틴어를 배웠습니다. 라틴어를 모르는 독일인들을 위해서 성서 번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루터는 교황청과 싸우기를 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종교개혁의 시작은 독일 평민들을 사랑함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평민들로 하여금 자기의 언어로 하나님과 소통하게 하길 원한 것입니다. 그 결과 세상 권력과 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시인도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을 이웃들을 위해 하지 않았을까요? 바벨론의 권력자들 아래 시달리는 동포들을 위해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것은 그리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희 교회 60년사에 보면 저희가 사는 미국의 역사를 조금은 느낄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저희 교회가 창립 당시 저희 교회 보다 먼저 있었던 한인 교회들은 거의 모두 감리교였습니다. 이유는 당시 미연합장로교는 1959년까지 다음과 같은 선교정책을 고수하였습니다.

“외국인으로 미국에 와서 자기들의 말로 예배드리는 것을 허락할 수 없고, 누구를 막론하고 장로교회당에서는 영어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와 유사하지 않습니까? 다행히 1959년에 이 정책이 바뀌어서 저희 교회가 1985년 미국 장로교에 소속할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제는 더 이상 미국 내 특히 미국 교회내 정말로 종교개혁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결론을 지을수 있습니다. 종교의 권위로 약한 자들의 아픔의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악입니다. 이에 반해서 약한 자의 아픔의 소리에 동참하며 함께 아파하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이 때 약한 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하나님과 소통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언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종교의 권위 가운데 약한 자로 지냈던 그룹이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이었습니다.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흑인 노예를 정당화했습니다. 그 중 아주 교묘한 정책을 내세운 신학자가 있습니다. 프린스톤 신학교에 Archibald Alexander 교수입니다. 40년을 신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흑인 차별은 잘 못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결론은 흑인들을 자기들이 온 곳으로 되돌려 보내자는 것입니다. 자기들과 같은 색깔의 사람들 사이로…. 그들은 영어를 잘 하게 되었어도 그들의 노래는 힘센 자들에게 억압 되었던 것입니다. 검정색 피부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그런데 이들 보다 더 억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입니다. 원주민들은 돌려 보낼 곳도 없습니다. 그러니 알렉산더 교수의 정책은 정말로 악한 정책입니다.

 

한편 억울한 원주민들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Edgar Villanuva라는 원주민이 쓴 책을 얼마전에 소개받아 읽어 보았습니다.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분의 멘토가 어릴 때 청소년 수련회와 비슷한 캠프에 참석했었는데 수련회를 마치고 캠프를 떠나려 하는데 한 어르신이 청소년들과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원주민들의 교육 방법이라고 합니다. 어르신이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이…. 떠나려고 하는데 어르신이 말합니다.

“유롭인들이 이 땅에 들어 온 것이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그들이 자기들의 가르침을 잊어버린거야.”

유롭인들은 자기들의 선조로 부터 받은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손들에게 참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포악해졌다는 것입니다. 유롭인들도 다시 자기들의 가르침으로 돌아 간다면 그들도 달라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자신의 책 제일 마지막에 소개를 하면서 유롭인들도 한 형제 자매임을 강조합니다.

참 종교개혁은 가르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들 편이라는 것을…. 약한 자들과 소통하시길 원하십니다. 약한 자들과 소통하는 자들을 통해 강한 자들은 말씀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21세기 종교개혁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약한 자들의 노래를 듣고 계십니다. 함께 그 노래를 들으십시다. 그들의 언어로 함께 따라 부르십시다.

아울러 우리들의 노래도 힘차게 부르십시다. 하나님께서 듣고 계십니다. 우리도 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노래로 강한 자들이 말씀을 되찾습니다. 루터의 노래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Edgar Villanuva의 원주민 이름이 있는데 그 뜻은 ‘leading bird’(앞서는 새)라고 합니다. 기러기들이 V자로 나는데 제일 앞에 서서 온갖 공기의 압력을 한 몸에 받고 가는 새를 말합니다. 사실 그는 요즘 약한 자들을 위해서 leading bird가 되어서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틴루터 처럼….

 

그러고 보니 얼마전 하늘 나라 가신 이어령 교수님의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시가 생각납니다. 시의 일부를 소개해 드립니다.

 

갈등과 무질서로 더 이상 이 사회가 찟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소리를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 자리를 바꿔가며 대열을 이끌어간다는

저 신비하고 오묘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힘의 세상은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한 자가 되어 약한 자들과 함께 약한 자의 언어로 약한 자의 노래를 부르십시다. Leading bird가 되십시다. 하나님은 약한 자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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