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안내
주보
주보 모음
설교 영상
설교 원고
찬양
실시간 예배
2015년 이전 설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 시편 50:1-15, 23 (11/20/2022)

언젠가 소개해 드렸습니다. 현재 한동대 교수로 수고하시는 이지선 교수님이 계십니다. 대학생 시절 차 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고 거의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입니다. 요즘은 한국에서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많은 분들에게 존경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어릴 때부터 늘 일기를 써 오셨는데 최근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집 정리를 하다가 대학생 시절 물론 차 사고를 당하기 전에 쓴 일기를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다시 읽으니 새로운 느낌으로 과거를 접하게 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이미 일기 내용 중에 제일 많이 나오는 분이 엄마였다고 합니다. 사실 차 사고 후 엄마의 도움이 절실한 가운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사고전이나 사고후나 언제나 자기의 삶에 가장 많이 영향을 주고 가까운 분이었음을 새롭게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친구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고 전이나 후나 늘 엄마의 영향을 받아 왔고 또 받고 있다고…. 친구가 하는 말,

“미래일기였네.”

 

오늘 추수감사주일이자 창립 69주년 기념 예배로 드립니다. 감사하게도 지난 주일 부부청년부 헌신예배시 강사 목사님께서 저희 교회 60년사를 보시고 여러가지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실은 목사님은 역사학자라서 제가 저희 교회 60년사를 드렸습니다. 강사님께서 지난 역사 안에 일어난 이야기들을 언급하신 이유는 바로 이 역사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일뿐 아니라 미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언급하신줄로 압니다.

사실 저도 지난주 말씀을 듣고 금주 설교 준비를 하면서 또다시 재확신케 되었습니다. 과거 역사를 재해석할 때 그 해석은 바로 미래에 재현된다고 봅니다. 아니 과거를 소중히 여길 때 소중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면 과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1절,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어느 주석가는 해 돋는 데서 지는 데까지를 동에서 서 곧 지리적인 면도 있지만 시간적인 면도 있다고 해석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곧 시인은 시간과 공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부르셨습니다. 시인은 ‘부르셨다’는 표현을 통해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로 창조되었음을 은연 중 표현하고 있다고 봅니다.

2절을 보면 시온에서 사랑의 빛으로 온 세상에 비추고 계심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냥 빛만 비추시는 것이 아닙니다. 3절,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이 하나님이 인간 세상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시간과 공간 안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시는 것은 좋은 데 어떤 모습으로 오시죠? 삼키는 불과 광풍으로 찾아 오신다는 것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이렇게 오실바에는 안 오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이 때 말씀하십니다. 5절,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큰 두려움 가운데 있는데 당신의 성도들을 모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성도들을 정의합니다.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들….’

 

이제 이스라엘 민족들은 한숨을 놓았을 것입니다. 큰 광풍 가운데서 크신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움 가운데 기다리고 있는데 제사로 언약한 자들이 당신의 성도라고 하시면서 그 성도들을 모으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제사를 늘 드렸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입니다. 이제 제사를 성실하게 드렸던 백성들이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나와 섰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8절,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백성들은 한 대 얻어 맞는 기분입니다. 제물을 잘 드린 것을 자랑하는 마음으로 나와 섰는데 그 것으로 책망은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1절,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숨은 뜻은 무엇입니까? 원래 모든 제물로 바친 것들은 당신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주신 것으로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결코 칭찬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치지 않으면 책망거리는 되는 것이고요….

 

이로서 알수 있는 것은 당신의 것을 바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것을 바치고 있는 백성들에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당신의 것이 아닌 것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의 것이 아닐까요? 동에서부터 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인데 무엇으로 바쳐야 할까요? 14, 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 곧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칭찬과 격려는 하시지만 물론 책망도 하시죠. 그러나 ‘감사’하실수 없습니다. 곧 하나님은 결코 전지전능하시지 못합니다. 한 가지 하시지 못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감사’입니다. 이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어느 유대교 랍비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들짐승과 새들을 아담에게 데리고 온 장면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아담은 모든 생명을 보고 무엇인가 말을 하는데 이 말이 곧 이름이 됩니다. 랍비는 해석하기를 아담은 모든 생명을 보고 경탄했다고 말합니다. 아담의 경탄이 바로 생물들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창조는 아담의 경탄으로 인해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영성가들은 말합니다. 경탄이 곧 감사의 시작이라고…. 곧 경탄과 함께 흘러나오는 감사는 인간의 특권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아담과 하와가 잘 못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 왔습니다. 죄로 인해서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 하나 늘었습니다.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동식물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렇지만 창조시부터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경탄어린 감사입니다.

 

그런데 죄를 짓기 전에는 쉽게 경탄했고 쉽게 감사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 온 이후 경탄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 감사를 잃어 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서는 감사를 명령하실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온 세상이 감사의 노래가 필요한데 스스로 하는 감사를 잃어 버렸으니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환난 날에 당신을 부를 때 건져 주실 것이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최고의 축복인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접해 보았습니다.

“감사는 영성 생활로 나아가는 제1 악장입니다.”

그 저자는 어느 영성 수련회에서 영성가의 말씀을 듣고 크게 공감을 하고 그의 책에 적어 놓은 것입니다. 그 분은 음악애호가였는지 다음과 같이 글을 이어갑니다.

“대개 작곡가들은 제1악장에서 서로 대조되는 두 가지 주제를 소개하고, 그 주제들 사이에 긴장감을 조성시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감사를 드리고 싶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과 실패를 겪는 순간도 있습니다. …… 그래서 어쩌면 ‘제1악장’에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것들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긴장을 해소하는 과정이 포함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들은 모두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뇌 등 두 가지 요소가 아름답게 조화가 되어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매한 가지 아닐까요? 어떤 이야기를 소유했던 감사의 요소가 들어 갈 때 최고의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임을 시인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시 저희 교회 60주년 역사책으로 돌아가서,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꼭 한 권씩 사무실에 문의해서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만, 그 책을 완성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많은 시간을 내서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국의 큰 교회에서는 모두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서 발간한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인건비는 하나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큰 작업이 가능했을까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희 교회 역사를 뒤돌아 보셨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마음이 없었으면 도저히 그 큰 작업을 인건비도 받지 않고 마칠수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희 교회 60년사는 감사로 제1악장이 시작된 웅장한 교향곡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우리 교회의 미래일기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 교회는 지금 제2악장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2의 희년을 향해서…. 그런데 이미 저희 교회는 감사의 영성으로 제1악장을 마쳤습니다. 계속해서 제2악장도 감사의 영성 가운데서 진행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음악 작품들은 대개 4악장으로 마치지만 저의 인간적인 바램은 저희 교회는 10악장 20악장 주님 오실 때까지 끝없이 펼쳐지길 바랍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1악장에도 그랬지만 때로는 어려운 일도 올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운 일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소재가 될 것입니다. 이미 소중한 1악장을 잘 마쳤기 때문입니다. 아니 1악장처럼 어떤 악장도 감사의 마음으로 받는다면 말입니다.

 

이제 감사의 마음으로 제2의 희년을 향해 가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런데 이 감사를 온전히 옳게 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0: 21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이뿐 아니라 주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시 떡과 포도주를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못하시는 감사를 그리고 죄인들이 할수 없었던 감사를 주님이신 아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의 감사가 동에서부터 서에 이르기 까지 넘치고 있습니다.

주님은 감사하심으로 인류를 위한 미래 일기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온 세상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과 더불어 감사하는 자들만이 이 놀라운 축복의 세계를 만날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감사하심으로써 인류를 위한 미래일기를 쓰셨기에 앞으로 저희 교회가 10악장 20악장으로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경탄과 감사로 온전한 제사를 드린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감사의 멜로디를 들으며 우리의 목소리로 주님의 멜로디에 화음을 더하는 것뿐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말씀을 거둡니다.

스펄젼 목사님의 감사에 대한 유명한 말씀을 소개해드립니다.

“별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주님의 은혜 빛을 주신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This entry was posted in 설교 원고. Bookmark the permalink.
No. Title Writer Date
306 “다윗과 아기 예수” 시편 22:1-31 (12/18/2022) webmaster 2022.12.19
305 “시인의 기다림” 시편 42:1-5 (11/27/2022) webmaster 2022.11.28
304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 시편 50:1-15, 23 (11/20/2022) webmaster 2022.11.21
303 “무엇으로 보답할까” 시편 116:1-19(11/06/2022) webmaster 2022.11.07
302 “21세기의 종교개혁” 시편 137:1-9 (10/30/2022) webmaster 2022.10.31
301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 시편 110:1-7 (10/23/2022) webmaster 2022.10.24
300 “약속, 고난, 승리” 시편 34:1-22 (10/09/2022) webmaster 2022.10.12
299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고린도후서 8:1-15 (10/02/2022) webmaster 2022.10.05
298 “종의 형체를 가지사…” 빌립보서 2: 6-11 (09/18/2022) webmaster 2022.09.19
297 “아침의 기도” 시편 8:1-12 (09/11/2022) webmaster 2022.09.12
< Prev ... 1 2 3 4 5 6 7 8 9 10 36 ... Next > 


The Korean Church of Boston (PCUSA) 32 Harvard St. Brookline, MA 02445
교회 : (617) 739 - 2663, (617) 277 - 8097 / Fax : (617) 739 - 1366 / 담임 목사 : 이영길 목사 (781) 467 - 0002
  Powered by The Korean Church of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