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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날짜 : 2014.07.06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성경본문 : 에스더 4:1-17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40706.wmv

큰 성공을 거둔 한 사업가가 심한 정체성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청해 보았으나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히말라야 산맥 속 가장 접근하기 힘든 아주 신비로운 곳에 살고 있다는 성스럽고 경이로운 한 스승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그를 찾아 갑니다.
그는 백 살이 넘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스승은 자신을 찾기 위해 고생한 이야기를 듣고 특별히 그에게 도움을 베풀 것을 승낙했습니다.
“자, 나의 아들아.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겠느냐?”
“저는 삶의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이에 스승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말했습니다.
“삶은 끝없는 강이다.”
“끝없는 강이라고요? 저는 온갖 고생을 마다 않고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고작 한다는 말이 삶이 끝없는 강이라고요?”
이 말을 들은 스승은 충격과 흥분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리고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럼 인생이 강이 아니란 말이냐?”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끝없는 강…? 끝없는 강이라고 하면 사람마다 다르게 그 의미가 다가오리라 생각됩니다. 탐험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멋진 탐험의 대상으로 느껴지시줄 압니다. 반면 인생의 많은 문제로 씨름하시는 분들에게는 해답이 없는 인생의 한 모습을 다시금 느끼시게 될줄 압니다. 이 글의 저자는 후자의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미국의 작가 거투르드 스타인의 글을 인용합니다.
“해답은 없다. 지금까지도 해답이 없었고 앞으로도 해답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다.”
곧 저자는 생각하기를 인생은 해답이 없이 흐르는 강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저에게 인생을 새롭게 보게 하였습니다. 인생을 사는 두 가지 모습이 있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한 그룹은 인생은 해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 다른 그룹은 인생에는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저자가 이런 글을 썼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삶에서는 해답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기에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해답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해답이 있음을 믿고 그렇게 행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 모르드개에서 그 모습을 찾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주전 586년에 멸망하여 70년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고 518년에 해방됩니다.
반면 바벨론이 멸망하면서 페르시아 왕국이 생기는데 성경에서는 바사왕국으로 나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바벨론이 멸망하고 뒤를 이은 바사왕국 시대입니다. 바벨론에서 해방되었지만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살던 곳에 살았는데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모르드개와 에스더입니다.
대충 연대를 계산해보면, 모르드개는 아마 이민 4세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민 4세대인 모르드개는 꿈이 있던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야망이 넘쳤던 사람입니다. 그에게 사촌여동생이 있었는데 에스더입니다. 사촌 여동생이 예뻤던 모양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잘 교육시켜서 왕궁에 넣는데 성공을 하여 왕후가 되게 합니다. 마침 왕후가 폐위되고 새로운 왕후를 찾고 있던 때였습니다.
모르드개의 작전이 맞아 떨어져 에스더는 대 페르시야 왕국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때를 같이하여 왕은 하만이라는 신하를 왕국의 제2인자로 등극시킵니다. 그런데 하만이 제2인자가 되자 마자 모든 사람에게 자기에게 절을 하라고 명령합니다.
한편 모르드개는 웬일인지 절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사촌 동생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다고 거만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드개는 자기는 유대인이라서 절을 할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에 하만이 모르드개를 포함한 전 유다인들을 죽이게 하는 왕의 명령을 받아 냅니다. 유다인들은 큰 민족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 말씀 전까지의 내용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모르드개가 대성통곡하고 있는 것을 왕궁에 있는 에스더가 알게 됩니다. 에스더가 내시 하닥에게 그 이유를 알아 보라고 하니 모르드개가 자초지종을 말한 후에 에스더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합니다. 8절 하반절입니다.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그러나 에스더는 왕에게 불리움을 받지 않은지 30일이 지났다고 하면서 불리움을 받지도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다가는 자칫 목숨을 잃는다고 말합니다. 이에 모르드개가 유명한 말을 합니다. 13, 14절 말씀입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이 몇 마디 말 안에 모르드개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먼저 그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그는 미래에 대한 놀라운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에스더 네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구원 받게 되어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문제에는 해답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인생은 해답이 없이 끝없이 흐르는 강이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구석 구석에 놀라운 해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가 지니고 있었던 미래관이었습니다.
두번째 모르드개의 모습이 나옵니다. 다음의 고백에서 잘 밝혀집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개는 현재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의 해답이 바로 자기가 키운 ‘너’에게 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사촌 관계입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딸 같은 사촌동생이었습니다. 한 세대 차이가 있는 관계입니다.
모르드개는 때로 문제의 해답은 바로 후대에서 찾을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한 것입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한편 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16절 말씀입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모르드개가 이 말을 듣고 금식을 했겠습니까? 안 했겠습니까? 당연히 했겠죠. 그는 아주 쉽게 금식했을줄 압니다.
왜냐하면 그는 후대를 통하여 유대인들의 해답이 주어질 것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육도 철저히 시켰을 것입니다. 아울러 후대를 위하여 많은 기도를 하였으며 에스더를 왕궁에 보내 놓고는 종종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어 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금식하며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당연히 금식하며 기도했겠죠. 그동안 에스더를 위해서 뿌린 기도와 정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결국 유다인들은 에스더로 인하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해답이 없이 흐르는 강이 아닙니다. 곳곳에 해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한민족의 해답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해답이 될 것입니다. 인류의 해답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모르드개의 확신입니다.
교우 여러분, 함께 이런 확신을 가지십시다. 모르드개의 확신을 가지십시다.

다음과 같은 중국 속담이 있습니다.
“일년의 풍요를 원하면 곡식을 심어라. 10년의 풍요를 원하면 나무를 심어라. 100년의 풍요를 원하면 사람을 심어라.”
사람을 심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확신 가운데 후대를 통해서 민족의 문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격려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요?

지난번 NCKPC총회 강사로 전에 저희 교회 제직수련회에 오셨던 이학준 교수님이 오셨습니다. 전에 저희 교회에 오셔서 하신 말씀을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아시아인들이 사회에 적응하는 통계를 보여주셨습니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중에서 아시안들이 제일 낮았습니다. 가장 공부는 많이 하지만 가장 사회 진출도가 낮은 인종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아시아인 중에서도 죄송하지만 저희 한국인들이 또 가장 낮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학교 교육을 등한히 해서 그럴리는 없겠죠. 가장 공부를 많이 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으니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모르드개의 교육이 부족해서가 아닐까요? 문제를 피해가는 교육만 시켰지 해답이 되라는 교육을 시키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모르드개의 확신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아시다시피 제가 두 주 전에 열린 미국 장로교 한인 교회 전국 총회 총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선출된 후 제가 제안한 첫 사역이 있습니다. 사실 지난 총회시 이학준 교수님을 통하여 많은 도전을 받았는데 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청중은 대개가 목사님들이고 총대로 오신 장로님들이었습니다.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도 너무 유익한 강의였지만 아쉬웠던 것은 이런 강의는 2세 교역자들에게 더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타까왔던 것은 이처럼 좋은 교육을 우리가 아직 2세 교역자들에게 제공하지 못했음을 절감했습니다. 사람을 심는 일에 미흡했던 저희들의 모습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2세들 안에 해답이 있음을 이런 세미나를 통하여 더욱 강하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임원들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세미나를 2세 교역자들을 위해 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만장일치로 저의 제안이 받아드려졌습니다.

제가 총회장이 되자마자 이런 제안을 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총회에 재일 기독교 부총회장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는 제3대 재일교포이십니다. 최근에 부쩍 일본이 우경화 되고 있는 사실 잘 아실줄 압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독도 문제가 크게 야기되고 있는데 그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아베 총리 때문에…? 한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될리가 있겠습니까?
부총회장님 말씀은 2011년에 있었던 쑤나미로 인해 생긴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합니다.
국가의 총체적 위기 가운데서 타민족이 scapegoat가 되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일들은 일본에만 국한될까요? 지난주 USATODAY 기사에 보면, 현재 KKK 가 자꾸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곳곳에서 삐라(flyer)를 뿌리면서 KKK 입단을 종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일본이든 미국이든 인간의 역사는 계속해서 문제로 휩싸입니다. 이럴 때마다 이민자들이나 외국인들이 바로 scapegoat가 되어 갑니다. 에스더도 scapegoat가 될뻔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도리어 해답이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르드개 때문에…. 후세대 안에 해답이 있음을 믿고 교육시킨 모르드개 덕분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자녀가 scapegoat가 되게 하시렵니까 아니면 해답이 되게 하시렵니까?

광고 시간에 프랑스에서 선교하는 중고등부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들이 과연 무엇을 할까 염려하는 마음도 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 한 민족의 미래, 미국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위한 해답이 아닐까요?
우리가 그렇게 확신한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어두운 이야기를 피하고 밝은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Norman Borlaug라는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있습니다. Borlaug는 곡식의 합성을 성공시켜서 작은 농토에 많은 양의 곡식을 수확하게 하는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가 평화상을 받은 이유는 그의 공헌 때문에 농토를 줄여서 다시 삼림으로 바꿀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green movement에 큰 공헌을 한 것입니다.
한 때 인구 폭발로 인해서 농산물의 위기가 올 것을 예상했지만 Borlaug로 인해서 해답이 생긴 것입니다.
앞으로도 인류의 험한 강물에는 이 보다 더 어려운 문제들이 종종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해답을 주는 인물들이 나타날 것이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들의 자녀들 가운데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드개처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우리들의 자녀들을 확신 가운데서 교육한다면….
교우 여러분,
주 안에서 자라나는 우리들의 자녀들 안에 인류의 해답이 있습니다. 그에 합당하게 행하십시다. 모르드개의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되게 하십시다.
모르드개는 고백합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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