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4.06.09
예배명 : 성령강림주일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찢겨진 하늘
성경본문 : 마 28장16-20, 막 1장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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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시인 이태백은 젊은 시절 훌륭한 스승을 찾아 입산하여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중도에 그만 싫증이 나서 아무 말 없이 산을 내려왔습니다. 계곡의 어느 시냇가에 이르렀을 때 그는 한 노파를 보았습니다. 노파는 바위 위에다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었습니다. 이태백이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뭘 하고 계신 건가요?”
“도끼를 갈아서 바늘로 만들려고 하네.”
“아니, 도끼를 간다고 바늘이 되겠습니까?”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될 수 있지.”
이 말을 들은 이태백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 공부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사자성어 ‘마부작침’(磨斧作針)이 나오는데 곧 ‘도끼를 갈아서 바늘로 만든다’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마’는 가는 행위를 뜻하고, ‘부’는 도끼, ‘작’은 만드는 행위, ‘침’은 바늘을 뜻하죠. 그래서 ‘도끼를 갈아서 바늘로 만든다’의 사자성어가 되었습니다.
이태백은 후에 ‘시선’이라고 불리워집니다. ‘시선’은 시적 감각이 신의 세계에 들어 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일줄 압니다. 얼마나 시가 절로 흘러 나왔는지, 현재 약 1100 여 수의 시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태백을 시선이 되게 한 것은 바로 노파의 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도에 그만두지 않으면 도끼를 바늘로 만들수 있다는….
교우 여러분,
우리도 마부작침의 이 놀라운 사실을 생각하고 실천할 때 이태백 못지 않은 삶의 자취를 남기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이태백처럼 시선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태백보다 더 놀라운 인물이 되길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지상 명령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첫번째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말씀은 바로 우리를 향한 지상명령입니다. 다시 한번 18, 19절을 봉독해 드립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부작침과 지상명령을 비교해 볼까요? 어느 것이 더 쉬워 보입니까? 사실 도끼를 바늘로 만드는 것 무척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데 불가능해 보이진 않죠. 수년간 수 십년간 바위에 갈면 바늘이 될줄 압니다.
반면 지상명령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지상명령을 들었을까요? 이 때 상황을 잠시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부활의 주님을 40일간 여기저기서 만났었습니다. 그들은 40일간 자기들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매일 다져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느 산으로 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모였을 것입니다. 이를 확정시켜주는 말씀이 사도행전 1:6절에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이 여쭙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곧 40일간 부활하신 주님을 수차례 만나면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 곧 부활의 주님께서 로마군을 무찔러 주실 것을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뵐 때마다 주님께서 자기들의 꿈을 이루어주시려고 이제는 더이상 죽을수 없는 존재 곧 불사조가 되었다고 믿은 것입니다.제자들은 부활의 주님께서 일을 벌이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너희가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일을 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로 가서…. 전 세계로 가는 것까지는 그래도 좋습니다. 엄청난 말씀을 계속하십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생각해 보십시다. 이 때 이스라엘인들의 위상은 세계속에서 어떤 위치였겠습니까? 가장 쉬운 예로 일제시대 때 한국인들과 비슷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자들은 아마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로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구요? 우리 코가 석자인데요….”
이보다는 도끼로 바늘을 만드는 것이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태연하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정말 너무 하십니다. 이스라엘 땅도 한 발자국 나가 보지 못한 제자들에게 왜 이런 엄청난 명령을 하실까요?
아니 이런 엄청난 명령을 하시려면 3년 동안 제자 훈련을 하실 때 이스라엘 밖으로도 나가 보셨어야죠.
복음서의 기록에 의하면 딱 한번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스라엘 북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작은 마을을 가 본 것이 단기 선교를 간 처음이자 마지막 훈련이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북쪽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희 교회가 올해 단기 선교단을 도미니카 공화국과 프랑스에 파송하는데 이와는 비교도 안 되게 초라한 선교팀입니다.
이렇게 해외 경험이 거의 전무한 이들에게 어떻게 주님은 이런 엄청난 명령을 하실수 있으셨을까요? 우리가 아는 주님은 결코 무리한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님을 우리가 잘 아는데 말입니다.
저는 오늘 두번째 본문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보았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시는데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10절 말씀입니다.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헬라어로는 ‘갈라진다’는 것은 ‘스키조’인데, 정신분열증을 schizophrenia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신이 갈라진 현상 내지 찢어진 현상의 병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늘이 ‘스키조’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스키조’, 곧 하늘이 찢어진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지성소와 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 진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똑같은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갈라지는 것과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은 같은 뜻을 가진 것입니다.
한편 찢어졌기 때문에 다시 봉해질수가 없습니다. 문은 열리면 닫을수 있습니다. 하늘문이 열린 것이 아니라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닫을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곧 하늘은 완전히 열리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닫을수 없을 정도로 찢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일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올라오시면서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몸소 당신이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당신의 세례를 통하여 찢어진 하늘을 보신 것입니다. 찢어진 하늘 사이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 10절을 다시 봉독해 드리면,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제자들은 외국에 한번도 나가 보지 못한 촌뜨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자들에게 온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실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외국에는 나가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환히 뚫린 하늘을 볼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록 제자들이 외국어도 잘 모르고 외국에 한 발도 내디딘적이 없어도 이 엄청난 일을 맡기실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자마다 하늘의 찢어짐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찢어진 하늘 사이로 성령의 강림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다. 외국에 다니는 경험이 있는 자들이 더 큰 일을 하겠습니까? 하늘의 세계를 오고 가는 자들이 더 큰 일을 하겠습니까?
주님은 찢어진 하늘을 통하여 성령의 강림이 일어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사도행전 1:8절에 주님의 멋진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을 물 붓듯 받는 자들은 놀라운 일을 하게 됩니다. 비록 한번도 외국에 나가 보지 못했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늘의 세계를 오고 가는 자가 되었기에 그들은 온 민족을 제자 삼는 특권을 부여 받게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태백 보다 훨씬 큰 일을 할수 있습니다. 이태백은 도끼가 바늘이 되게 하는 노파를 통해 놀라운 지혜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늘이 찢어진 것을 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찢어진 사이로 내려오시는 성령을 사모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태백과는 비교도 안 되는 우리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성령 강림주일로 지킵니다. 2000년전 오늘 찢어진 하늘 사이로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에게 내렸습니다. 그 후 하늘이 다시 닫혀졌나요? 하늘은 찢어졌기 때문에 닫혀질수가 없습니다. 하늘 문이 있었다 하더라도 문이 열린 것이 아니라 문이 찢어진 것입니다. 보수할수 없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찢어진채 하늘은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즘도 해외로는 마음껏 다니지 못해도 우리는 하늘의 세계는 언제든지 맛 볼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하늘의 능력을 소유할수 있습니다. 찢어진 하늘 사이로 성령이 강림하시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성령의 강림을 체험한 사람들은 놀라운 일을 할수 있습니다. 모든 민족을 감히 제자로 삼을수가 있습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 삼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재미있는 TV프로그램을 YouTube로 보았습니다. SBS에서 방영하는 ‘생활의 달인’에서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달인의 이야기가 소개되어졌습니다. 그 달인은 스스로 ‘옥탐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집사람이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이 프로그램을 먼저 본 후 산책을 하면서 저에게 소개를 해 주었습니다. 집사람으로부터 옥탐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많은 생각에 잠겨 들어 갔습니다.
한 마디로, 잃어버린 고양이를 이렇게 잘 찾아주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것을 원하시고 계시지 않으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수없이 많은데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달인을 기다리고 계시지 않으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도 호기심이 나서 YouTube로 보았습니다. 고양이를 찾아 주면 주인은 정말로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실 때 저렇게 기뻐하시지 않을까 새롭게 생각하게 합니다.
하여튼 옥탐정은 잃어버린 고양이 때문에 우는 많은 주인들의 영웅이 되어 있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현재 나이 40인데 자기도 고양이를 잃어 버린 경험이 있어서 고양이를 찾아 주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분은 특별한 청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50미터 거리에 있는 항아리에 숨어 있는 고양이 소리도 감지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하루 아침에 달인이 되었을까요? 끊임없이 잃어버린 고양이를 사랑하며 찾고 헤메었기에 이러한 달인이 되지 않았을까요?
이 분은 자신의 잃어버린 고양이로 인하여 가슴이 찢어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 경험이 모든 잃어버린 고양이를 사랑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이 달인의 이야기를 통해 큰 교훈을 받았습니다. 2000 년간 하늘이 찢어져 있어도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이 없기에 아직도 모든 민족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케 되었습니다.
하늘은 찢어져 있지만 우리의 마음이 이웃을 향하여 찢어져 있지 않기에 우리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사실 옥탐정은 잃어버린 고양이들을 향해 마음이 찢어져 있기에 그는 50미터 밖에 있는 고양이의 움직임까지 알아냅니다.
교우 여러분
옥탐정의 레이다는 50미터 밖에 있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내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들의 레이다에 걸려 있는 잃어버린 영혼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들의 마음이 찢겨져 있지 않기에 우리들의 레이다에는 어느 잃어버린 영혼도 잡히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실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몸을 찢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이 땅에서 받으신 세례입니다. 주님의 세례를 통하여 하늘도 찢기셨습니다.
성령을 사모하며 찢겨진 하늘을 바라보십시다. 우리들의 마음도 어느덧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 찢겨져 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함 가운데 모든 민족을 향하여 나가십시다. 가깝게는 보스톤, 아리조나, 멀리는 프랑스,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힘들 때마다 찢겨진 하늘 위를 바라보십시다. 하늘에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찢으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인도에서 선교하던 고든 맥스웰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는데, 영어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힌두어와 영어를 하는 사람을 찾았는데, 힌두교 수도승밖에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수도승을 찾아가 힌디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수도승이 가르쳐 줄 수 없다면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왜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합니까?”
“이 지역에서 당신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믿는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데 당신에게 힌디어를 가르치면 힌두인들이 모두 예수를 믿게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맥스웰 선교사님은 인도인들을 향해 마음이 찢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성령의 능력으로 잃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수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도 맥스웰 선교사와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늘이 찢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찢겨진 하늘을 바라 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잃어버린 영혼들로 향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우 여러분,
성령충만을 사모하십시다.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