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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한복음 20:19-23 (04/28/2019)

 

Terri라는 소녀가 농장을 하는 삼촌인 Uncle Joe댁을 방문했습니다. 삼촌은 아주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촌은 절대로 웃거나 얼굴에 미소를 띄우지 않았고 언제나 슬픈 그리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long face를 갖고 있었습니다.

오후에 테리는 삼촌과 함께 늙은 노새에게 밥을 주러 외양간에 갔습니다. 금방 노새도 long face를 갖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물통에 밥을 주려는데 노새가 코를 킁킁거리며 불쾌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테리는 삼촌을 보면서 말합니다.

“이 늙은 노새가 아주 슬퍼 보이고 고집이 세 보이네요. 아마 노새도 기독교인인가 보죠.”

 

오늘 부활후 첫째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한동안 부활후 첫째 주일을 Black Sunday로 부르곤 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말도 없어진 것 같습니다만…. 오늘을 Black Sunday로 불렀던 이유는 부활주일에는 온통 교회가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가 다음주는 원상복귀하기 때문입니다.

 곧 바로 그 다음 주일은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데, 출석수가 확 떨어지고 하얀 옷을 입지 않고 오기 때문에 Black Sunday로 불렀던 것입니다.  

사실 이번 사순절 묵상집에 이와 관련된 글을 쓰신 교우분이 있습니다. 다시 요약해 드리면, 30년전에 이곳으로 이민 와서 집 가까운 미국 교회를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는 EC교인들 곧 Easter Christmas교인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이번 그 교우님의 글로 알게 되었는데, EC교인들이 이 때 1년치 헌금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1년 재정을 EC교인들의 헌금으로 충당해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우님의 마지막 말이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는 그 EC교인도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미국 교회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는 그나마 있던 EC교인도 없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얼마전 이곳 목회자 모임에서 나눴습니다. 그런데 3년전까지 메인주에서 목회하시던 목사님께서 당신의 경험을 나눠주셨습니다.

아직도 메인주는 EC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헌금으로 1년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목회자들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얼마 후에는 메인주에도 EC교인이 없어질 것을 내다 보았습니다. 따라서 Black Sunday도 없어지겠죠. 이미 보스톤 지역에 EC교인들이 사라진 것처럼….

 

물론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우리 한인 교회와는 거리가 멉니다. 어쩌면 우리 한인 교회는 Black Sunday보다는 늙은 노새 이야기가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는 있습니다. 주님은 Black Sunday이야기나 늙은 노새의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무척 마음이 아프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픈 마음을 안고 오늘 Black Sunday에 우리를 찾아 오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장면을 재연하시지 않으실까요? 19절 말씀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사실 지난주 부활주일에는 본문 말씀을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있었던 이야기를 소재로 설교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주 말씀과 오늘 말씀에는 시간적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주일 부활의 멧세지의 배경은 새벽이었습니다. 곧 부활하신 날 새벽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새벽에 여인들과 베드로가 outrun한 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반면 오늘 말씀은 바로 부활하신 날 저녁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전에 보면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만났다고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물론 베드로와 요한도 빈 무덤을 보고 돌아 왔습니다. 두 제자들은 긴가민가 했을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인들은 주님께서 부활한 것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믿지 못하고 도리어 long face가 되어서 한 집에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표현이 재밌습니다.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이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다. 혹시나 하고 유대인들이 쫓아 와서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하면서 잡으러 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문을 꼭 닫고 있었습니다. 문을 그냥 닫았겠습니까? 요즘 처럼 피아노가 있다면 피아노 같은 무거운 것들로 문들을 단단히 막아 두었을 것입니다. 곧 바깥에서도 못 들어 오지만 안에서도 나가지도 못합니다.

곧 그들은 스스로 무덤을 만들고 들어와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온 천지를 활기차게 걷기도 하시고 날아 다니시기도 하는데, 이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그 안에 갖혀 있었던 것입니다. Long face가 되어서….

 

그런데 주님은 두려운 가운데 있는 제자들 한 가운데 서서 평강을 선포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당신의 무덤을 박차고 나오신 주님께서 이번에는 제자들의 무덤에 슬며시 들어 가신 것입니다. 그들이 모인 곳 한 가운데 서서 평강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소유하신 그 평강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굳게 닫힌 그들의 집에 들어오실뿐아니라. 굳게 닫힌 그들의 마음문을 평강으로 두드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20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여인들의 말도 베드로의 고백도 믿지 않았던 이들이 주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그제야 믿고 기뻐합니다. 그제야 long face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 가운데 서서 평강을 선포하시는 모습만으로도 크게 기뻐해야 하는데, 제자들은 손과 옆구리를 본 후에야 기뻐합니다.

물론 산신령과 같은 이야기가 많이 나돌던 때라 과연 주님인지 의심했을줄 압니다. 그러나 손과 옆구리를 보고 기뻐한 더 큰 이유가 있을줄 압니다.

사실 손과 옆구리는 십자가의 흔적입니다. 곧 십자가의 능력이 무덤 권세를 이긴 것을 몸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만든 무덤 속에 숨어 있었던 이유는 주님께서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달리셨고 이제는 그 주님의 시체마저 사라졌으니 자기들을 잡으로 올까 봐 큰 두려움 가운데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수치의 십자가는 바로 무덤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이었음을…. 그리고 그 능력이 지금은 눈 앞에서 재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부활하셨을뿐 아니라 자기들의 무덤까지 뚫고 들어 오신 것입니다. 자기들의 마음의 무덤까지 침입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감당할 어떤 무덤도 존재하지 않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능력에 매료되어 기뻐하는 이들을 향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한 이들을 주님은 보내십니다.

 

그러나 그냥 보내시지는 않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성령과 함께 보내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실 때 장면을 보면 도움이 될줄 압니다. 창세기 2: 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우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셨는데, 이와 비슷합니다. 주님께서는 숨을 내쉬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곧 성령을 허락하십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위대한 인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친히 성령을 제자들에게 불어 넣으셔서 제2의 위대한 인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어디에서…? 제자들이 두려워 떨며 숨어 있던 어두운 무덤속에서…. 소위 말하는 Black Sunday라는 무덤속에서….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수 있겠습니다. 부활주일 새벽에는 주님께서 당신의 무덤을 깨뜨리셨습니다. 저녁에는 제자들의 무덤을 깨뜨리셨습니다. 제자들의 무덤이 깨어짐과 더불어 제2의 인류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제2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이 바로 Black Sunday 곧 오늘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늘 Black Sunday를 맞아 예배드리는 우리도 제자들과 똑 같은 축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지난 주일에는 좀 마음이 반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자들처럼 전부터 갖고 있던 두려움이라는 무덤에 다시 갇혀 있지는 않은가요?

그러나 부활주일 무덤 권세를 이기시고 나오신 주님께서 오늘 Black Sunday를 맞아 각자가 만든 무덤 속에 갇혀 있는 우리를 찾아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우리를 우리들 각자의 무덤 밖으로 내 보내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게 하십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런데 어디로 보내시나요?

 

짐 심발라라는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큰 교회를 목회하셨는데 3부 예배를 마치고 지칠대로 지쳐서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강단에 걸터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50대쯤 보이는 허름한 옷을 입고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습니다. 그 교회에는 돈을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남자도 돈을 구걸하러 온 사람으로 생각했숩니다.

그래서 손짓을 하면서 가까이 오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오는데 그만 악취가 진동함을 느꼈습니다. 똥 오줌, 땀, 뒷골목, 술냄새를 함께 섞어서 만들어낼 정도로 심한 악취가 났습니다. 사실 그 전날 건물 옆 주차장에서 잤는데 바로 자기 오줌 위에서 잠을 자고 교회 음악 소리를 듣고 교회에 왔던 것입니다.

늘 교회에서 하던 것 처럼 5불을 주려고 남자를 불렀습니다. 남자는 5불을 내민 목사님의 손을 밀어내면서 자기는 돈이 필요해서 온 것이 아니고 당신이 말하는 예수님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짐 심발라 목사님은 깜짝 놀랍니다. 정말 예수님이 필요한 자는 그 남자가 아니라 자신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부디 저를 용서하소서. 싸구려 설교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순간 하나님의 사랑의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는 서로 깨안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 악취를 사랑하지 않으면 목사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온 세상에는 이런 악취가 가득차다고 말씀하십니다.

순간 악취는 그동안 맡았던 것보다 도 가장 향기로운 향수 냄새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그 남자는 주님을 영접하고 교회 건물 청소부로 섬기게 됩니다.

 

이 목사님은 이 때 놀라운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 세상은 썩은 악취가 나는 세상인 것을….

평강의 주님은 바로 이런 악취가 나는 세상으로 제자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을 아니 우리들을 Black Sunday라는 무덤을 나와 세상에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23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죄의 무덤 안에 갇힌 자들을 해방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담도 부러워하는 가장 위대한 역사를 만드는 일인 것입니다. 아담이 만든 무덤을 부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무덤을 부수죠? 아니 어떻게 우리가 이웃의 죄를 사할수 있죠? 물론 여기에서 카톨릭의 고해성사가 나온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모두 신부가 되어야 할까요?

신부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죄를 사할수 있는 길이 열려저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가려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의 죄를 들쳐 내는 것이 아니고 가려줄 때 도리어 주님의 보혈의 능력이 임합니다. 이웃의 죄가 사함을 받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가려 주는 이들이 많은 교회를 통해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계속 펼쳐집니다. 아니 제2의 창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에 오늘 Black Sunday를 맞아 주님은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지난 부활주일은 기쁜 날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비극적인 날이었습니다. Sri Lanka에서 부활주일 아침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는 두 로만 가톨릭 교회와 한 개신교회가 폭파당했습니다. 그리고 몇 호텔도….

Sri Lanka 인구의 약 7%가 기독교인입니다. 물론 다른 종교에 비해 적은 수이지만 정말로 귀한 분들입니다.

불교가 70%, 힌두교가 12%, 이슬람이 10% 그다음으로 기독교가 7%입니다. 이번에 약 150명의 기독교인이 희생을 당한 것 같습니다. 나머지가 외국인을 포함해서 약 100명이 됩니다. 250명 희생자 중에 외국인들을 빼면 거의 기독교인들이 되는 셈입니다.

 

오늘 세 교회 교우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요? 정말 Black Sunday가 아닐까요? 사실 로만 가톨릭 주교는 오늘 예배를 취소하였다고 합니다. 각자 집에서 예배드리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합니다. 각자 집에서 두려움 가운데 예배드리는 이들에게 주님은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이들을 통해 실로 놀라운 역사가 시작될 것을 확신합니다. Sri Lanka를 넘어 그들의 역사는 전 세계로 넘쳐나게 되지 않을까요?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습니다. 그러나 이런 확신을 갖고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늘 Black Sunday에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Sri Lanka를 위해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Sri Lanka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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