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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길을 가는 자마다…” 시편 128:1-6 (06/21/2020)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어릴 때 첫 미술 시간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이 알라스카 개 종류인 husky의 모양을 그린 종이를 주더니 그 모양을 따라 까만 크레용으로 outline을 그리게 했습니다. Outline을 더 짙게 색칠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안에는 원하는 아무 색깔로 그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매번 미술시간이 되면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선에서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항상 선 안에만 색깔을 칠해야 합니다.

피터슨 목사님은 처음에는 잘 따라서 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차 재미가 없어졌고, 결국 점점 미술에 흥미를 잃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커서 보니 모든 미술 시간이 자기가 한 것과 똑 같지는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종이와 물감만 나누어주고는 학생들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선생님들도 있음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피터슨 목사님은 창작력이 뛰어난 모양입니다. 그래서 주어진 모양에 색깔만 칠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미술을 잘 못해서 아마도 그 방법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을 더 좋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 생활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려 놓으신 outline을 따라 검정색 색칠을 하고는 안에는 우리가 원하는 색깔을 그려 넣는 것인가요? 아니면 주어진 물감을 가지고 우리 마음대로 그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여호와의 길을 걷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길을 걷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첫번째 미술 선생님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길을 걷는 자들이니 하나님께서 그려 주신 길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행복합니다.

 

그런데 왜 ‘그의 길을 걷는 자’라는 표현을 했는지 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사실 유명한 시편 1편에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라는 표현을 했지 ‘악인 혹은 의인의 길을 걷는다’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편에는 오늘 본문에만 걷는다는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이 시편은 어느 때 사용하는 시편인가를 알면 도움이 됩니다. 시편 제일 위에 써있는 표제어를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번역에는 좀 다르게 ‘순례자의 노래’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의 남자들은 1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 성전에 순례를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신명기 16: 16절을 보면,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더 실감이 날줄 압니다. 각 가정의 남자 곧 가장이 집안 일은 아내와 자녀들에게 맡겨 놓고 먼 길을 걸어 온 것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일년에 세 번…. 그런데 일 년에 세 번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무교절과 칠칠절은 50일 차이입니다.

어느 가장이 무교절을 지킨 후 다시 50일만에 칠칠절 곧 오순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 왔다고 생각하십시다. 올라가는 내내 집안일이 걱정이 됩니다. 빨리 마치고 집으로 가서 밀린 일을 해야 합니다. 머리가 복잡합니다.

이제 드디어 올라왔습니다. 제사를 다 드렸습니다. 이 때 제사장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번에도 힘든 결단을 하고 집을 박차고 나와서 말씀대로 예루살렘까지 왔는데, 온 보람을 느낍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걸었던 모든 시간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걷기도 했지만 이는 바로 하나님의 길을 걷기도 한 것입니다. 두 가지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속 제사장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2절 말씀입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사실 이번에 순례의 길을 나서기 전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아니 이번뿐이 아니라 매번 망설여집니다. 눈 앞에 해야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가장인 자기가 없으면 해결이 안 될 일들입니다. 지금 손을 대지 않으면 그동안 했던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례의 길을 떠났기에 그동안 했던 모든 수고의 값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수고한 것을 하나도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순례자는 이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듣고 무척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해는 흉년이 들었을지라도 결코 헛된 수고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3절 말씀입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사실 집을 나설 때는 아내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오가는 길 보름은 걸리는데 보름 동안 어떻게 잘 지내려나. 아이들은 말썽을 안 부리려나…. 그런데 제사장이 선포합니다. 순례를 마치고 오면 아내로 인해서 집은 더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 날 것이고 아이들의 모습에는 미래를 향한 신선한 새싹의 향기를 맛보게 될 것임을….

물론 자기의 손을 기다리는 많은 일들이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의 더욱 아름다워진 모습을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과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합니다. 다시 제사장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사실 가장으로써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내가 최고로 복된 삶을 살고 자녀들이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열심히 일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이것이 가정이 잘 되는 길입니다.

 

가정을 영어로 family라고 하는데 라틴어 familia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이 familia는 famulus에서 왔는데, famulus의 뜻은 놀랍게도 ‘시종’ ‘하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남자들을 일 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에 올라가라고 하셨는데 가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죄송하지만 시종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 팬데믹 때문에 모든 행사가 취소되었지만 남 선교회 헌신 예배는 그래도 일찍 날짜를 잡아 둬서 치룰수 있었습니다. 시종들이니 위로를 주시기 위해서 그래도 헌신 예배는 치루게 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광고 시간에 드린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특순을 부르는 남선교회 회원들의 뒷 모습 곧 등을 보니 마음이 착찹하다고….

특순을 하는 남선교회 회원들의 등을 보니 금방 느낌이 왔었습니다. 뭔가 수고한대로 가족을 봉양하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기 위해서 동분서주 하시는 모습이 그냥 등에 다 들어 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은 제 등을 보고 착잡한 생각 가지실수도 있겠습니다.

 

이 착잡한 생각을 지금 이스라엘의 절기를 인도하는 제사장들도 가졌을 것입니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남자들의 뒷 모습을 보면서…. 그래서 제사장들은 또 선포합니다. 5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가족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찾아 온 가장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그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복은 시온에서부터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왜?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에…? 아니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하나님은 시온으로 순례의 길을 떠난 자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집으로 향하는 가장은 다음 절기에도 다시 시온을 향해 순례의 길을 올 것을 결심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합니다. 넘치는 축복을 안고….  이 때 제사장은 계속 선포합니다. 5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이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더 받은 축복이 없는줄 알았는데 갑자기 반전이 됩니다. 그동안 예루살렘으로 온 순례는 자기 가족을 위한 축복만 있는줄 알았는데 자기의 순례가 예루살렘을 번영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입니다. 가족도 잘 되고 신앙 공동체도 잘 되고….

졸지에 단순히 가정을 위한 거룩한 시종일뿐 아니라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자가 된 것입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교회의 기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장은 자기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감합니다. 이런 흥분 가운데 있는데 마지막 선포를 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 자들의 가정이 든든히 설 것이고 그들이 속한 나라에 평강이 임할 것을 선포합니다.

곧 순례의 길에 오르는 가장은 가문을 든든히 할뿐 아니라 자기 가문이 속한 나라를 든든히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넘어서…. 가장의 발걸음은 언제나 가정을 넘어 교회 공동체로 그리고 민족 공동체로 아니 인류 공동체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가장은 나비처럼 훨훨 날으며 집을 향합니다.

 

미국에서는 오늘을 아버지 날로 지킵니다.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라야 한다고 우리가 미국에 사니 미국 풍습을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시편 말씀을 보면 아버지 날도 지키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들이 힘든 세상에서 시간을 쪼개어 구약식으로 하면 순례의 길을 다녀 와야 하고 오늘 우리식대로 하면 힘든 가운데도 주님의 일을 해야는데 가족과 친지들의 응원이 아주 소중하리라 생각됩니다.

아버지의 삶이 가족에 축복을 가져 오고 교회 공동체와 나아가서 사회에 큰 기둥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순례의 길을 다녀 오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려 놓으신 선에 까만 크레용 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까만 크레용칠을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멋지게 채워 넣으십니다.

우리들 손에는 까만 크레용이 들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까만 크레용으로 두껍게 칠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멋진 무지개 색깔로 우리들의 가정을 교회를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십니다.

 

까만 크레용을 손에 든 모든 아버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Team Hoyt Stock Pictures, Royalty-free Photos & Images

많은 분들이 한 두번쯤은 보셨을줄 압니다.

Team Hoyt라고 부르는데 아들 Rick은 태어날 때 문제가 생겨서 뇌성마비가 됩니다. 그러나 콤퓨터를 사용해서 자신의 뜻을 전할수 있게 되고 후에는 아버지에게 함께 charity run(이웃 돕기 달리기)에 동참하자고 제안합니다. 아버지가 자기가 탄 휠체어를 밀면서 뛰어 달라는 것입니다.

40세가 되기 까지 한번도 장거리를 달려 보지 않았던 아버지는 아들의 청을 들어 운동을 시작합니다. 차츰 차츰 단계를 높여서 드디어 보스톤 마라톤에도 출전 허가를 받습니다. 그 후 수십차례 마라톤에 참가를 합니다.

Dick Hoyt

나중에는 삼종경기로 마라톤, 수영, 자전거에도 참여를 합니다. 수영은 아들을 보트에 싣고 자기가 수영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나이 40넘어서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후에도 이들은 여러가지 자선모금을 위한 달리기도 합니다. 한번은 서부에서 동부까지 cross country달리기도 마쳤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들은 BU를 졸업을 하고 BC에서 일도 하게 됩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없었다면 저는 할 수 없었어요.”

“아들아, 네가 없었다면 나는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수고는 가정을 넘어서 많은 이웃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울러 그는 충실한 신자였습니다. 목회자의 충고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귀한 촉복을 나누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한편 아버지는 후에 심장질환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아들을 위해 달렸기에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들로 인해서 아버지도 건강히 멋진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순례의 길을 잘 마친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도 교회도 전 세계도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물론 본인도….

 

우리 모두에게도 각자의 순례의 길이 주어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십자가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 길을 묵묵히 가십시다. 하나님께서 촉복하실 것입니다. 우리 가족을 교회를, 사회를…. 그리고 우리 자신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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