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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제를 드리며…” 시편 107:23-29 (11/22/2020)

월트 휫트만의 시 하나를 먼저 소개해드립니다. 첫 연만 소개합니다.

 

오 함장님! 우리 함장님!(Oh Captain! My Captain!)

– 월트 휘트먼 –

오 함장님! 우리 함장님! 끔찍한 항해가 끝났습니다.

배는 온갖 황폐를 견뎌냈고, 우리는 추구하던 목표를 성취했습니다.

항구가 가까워지며 종소리가 들려요, 사람들이 모두 환희에 차 있어요.

그들이 안정된 용골을, 굳세고 용감한 배를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데 오, 가슴이! 가슴이! 가슴이!

오, 흐르는 이 붉은 핏방울,

우리 함장님이 죽어 싸늘하게 식은 몸으로

갑판에 누워 있다니.

 

월트 휘트만이 아브라함 링컨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쓴 시입니다. 목표한 항구에 거의 다 왔는데 함장은 마지막 승리를 맛보지 못하고 죽어 있음을 시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휘트만은 아직 링컨이 해야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 보기에는 휘트먼은 두 가지 마음으로 이 시를 썼다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국가라는 운명의 배를 멋지게 항해시켜 온 최고의 함장 링컨에 대해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또 하나는 링컨을 이어 또 다시 위대한 함장이 나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서려져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링컨처럼 훌륭한 함장이 되어서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멋지게 남은 항해를 계속 이어갈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이 기록된 시편 107편은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인생을 다섯 가지의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중 오늘 본문 말씀에는 네 번째 관점으로 쓰여진 부분인데 시인은 인생을 항해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항해는 어떻게 시작을 하죠? 23절 말씀입니다.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항해는 적극적인 액숀이라는 것입니다. 바다에 배를 띄움으로 시작합니다. 인생도 매한가지입니다. 적극적으로 인생의 배를 띄우는 자들이 참 인생을 살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인생의 배를 띄우면 어떻게 되죠? 2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항해를 시작하면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니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난 영국의 청교도들이 떠오릅니다. 사실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이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까? 아마 이들도 분명히 오늘 이 본문말씀을 가슴에 품고 대서양을 건너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1620년 9월 29일 101명의 청교도들이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이 말씀을 품고…. 항해 중에 하나님께서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행하실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기이한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2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시인은 전혀 우리가 예상치 못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광풍으로 고생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6, 27절은 배멀미가 날 정도로 험한 항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 청교도들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항해를 시작하면 광풍이 올 것을 배멀미로 고생할 것을 이것은 상식이었고 아니 상식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몸을 던졌습니다. 왜?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8절 이하 말씀을 보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결국 이들은 원하는 항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청교도들도 원하는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광풍 가운데 있습니까? 언젠가 아름다운 항구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험한 항해를 시작해 원하는 항구에 도착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항해를 시작하지 못하나요…?

아니 어떤 사람은 목적지로 가기까지 풍랑과 배멀미가 올 것을 알면서도 항해를 시작하고 어떤 사람들은 풍랑과 배멀미가 두려워 항해를 시작하지 못할까요?

 

오늘 시편 말씀 첫절이 우리에게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7:1)

말씀드린대로 시인은 인생을 다섯 가지 관점에서 살피고 있는데 모든 것의 시작은 ‘감사’에 있음을 시 서두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들은 다섯 가지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 축복 중 하나가 항해를 시작하는 축복입니다.

 

한편 오늘 본문 말씀 전 곧 세번째 주제는 병에서 치유 받는 것에 대해서 나누고 있는데 끝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이 말씀 다음으로 오늘 본문 말씀으로 이어지는데,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감사하는 자들은 액숀을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병에서 낫고 감사제를 잘 드리는 사람은 더 이상 침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항해에 도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들이 액숀을 잘 취하는 이유는 한자어 ‘感謝’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를 분해하면 ‘감’은 느낄 감(感)이고 ‘사’는 화살을 쏜다는 사입니다.

곧 마음에 느낀 것을 말의 화살로 쏘는 것을 뜻합니다. 마음에 있는 것으로 끝난다면 액숀으로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액숀으로 연결되는 첫 번째 관문은 말로 쏘는 것입니다. 말로 액숀을 취한 사람들은 행함의 액숀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감사하는 사람들은 감사제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제를 영어로 하면 Thanksgiving sacrifice입니다. 곧 감사의 제물 혹은 헌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몸과 물질로 드리는 행함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런 감사제를 드리는 사람은 멋진 항해를 시작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위대한 여정을 시작할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삶으로 감사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브라함 링컨이 위대한 항해를 시작할수 있었던 이유가 이해가 됩니다. 그도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하면 두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당연히 흑인 노예 해방입니다. 이로 인해 1865년에 암살 당하게 됩니다. 한편 또 생각나는 것은 ‘추수감사절’입니다. 1863년에 링컨은 11월 4번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식으로 공포합니다.

사실 죠지 워싱톤 대통령이 시작하여 추수 감사절을 지켜 왔지만 국가와 종교의 분리 원칙에 의해 개별적으로 지켜 왔지 국가 공휴일로는 지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링컨이 정식으로 공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국가 공휴일로 만들지 못합니다. 감사의 사람이니 해낸 것입니다.

그후 남북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되고 대통령에 재선도 됩니다. 그러나 곧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그가 정한 추수감사절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고 100년후 흑백차별이 없어지면서 같은 화장실을 사용할수 있게 되었고 흑인도 투표권이 주어지고 아울러 대통령도 될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아브라함의 남북전쟁 가운데서 드리는 ‘감사’였습니다.

 

감사의 마음이 그를 역사의 소용돌이에 뛰어들게 하였고 결국 위대한 미국 역사의 한 함장이 되게 한 것입니다. 한편 그가 시작한 항해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 않을까요…? 새로운 함장들로 인해서….

 

그러니 감사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지금도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들을 통해서 위대한 항해를 지속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고 이 위대한 항해에 우리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오늘 저희는 추수감사주일이자 창립 67주년 기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얼마전 작고하신 역사학자이신 고 백린 장로님께서 저희 교회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시는 말씀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는 세 가지 중요한 시점이 있는데, 첫번째가 교회 창립이고 두번째가 PCUSA교단 가입이고 세번째가 ECC건축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건축 후 10년이 지났습니다. 오늘까지 저희 교회가 잘 발전해 오고 있는 것은 두 가지라고 저는 보고 싶습니다. 첫번째는 물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없이는 우리는 하루도 존재할수 없습니다.

두번째는 감사로부터 흘러 나오는 교우님들의 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저희는 풍랑이 두려워서 건축을 시작도 못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들은 풍랑을 넘어 도착하게 되는 아름다운 미래의 항구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제를 드리며 주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제2의 희년이라는 멋진 항구를 바라 보며 힘차게 나아가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건축 이야기를 한번 더 드립니다. 3년간의 긴 여정이었는데 지금까지 아쉬운 분이 계십니다. 제가 르호봇 이야기에서 간판을 만드신 김갑정 장로님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김 장로님은 귀도 안 좋으신데 늘 토요 아침 기도회에 나오시곤 하셨습니다. 아침 기도회가 끝나면 친교실에 함께 가시는데 늘 창밖을 통해서 진행되는 건축현장을 내려다 보시곤 하셨습니다.

1년 짜리가 3년이 걸리면서 장로님께서는 완공을 못 보시고 하늘 나라에 가셨습니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지만 제 마음에 늘 남아 있는 것은, 매주 토요일 건축 현장을 보시면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잘 진행이 되네.”

실은 번번히 멈추곤 했었습니다. 오일탱크가 새서 멈추기도 했고 이웃 집 때문에 멈추기도 했고 추운 날씨로 멈추기도 했고…. 그래도 한결 같이,

“잘 진행이 되네.”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사는 분들의 항해는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미래에 도착할 항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항구가 보이지 않을 때 감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다.

그러므로 67주년을 맞이하여 함께 제2의 희년의 항구를 바라보며 감사의 고백을 하십시다.

“잘 진행이 되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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