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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장막을 넓혀라” 이사야 54:1-10 (01/17/2021)

 

제가 자주 산책하는 데담 타운에 멋진 석조 건물이 있습니다. 콘도입니다. 그 옆을 지나면서 한때 다른 용도의 건물이 콘도로 변한 것임을 쉽게 알수 있는 건물입니다. 수년 동안을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얼마전 우연히 건물 옆에 있는 싸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천천히 읽어 보니 1816년에 감옥소로 지어진 건물이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200년이 지나서 2003년에 고급 콘도로 바뀌어진 건물이었습니다.

건물 옆에 보니 두 감방문이 전시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였습니다. 데담으로 이사 간지 10년만에 그 건물의 역사를 알게 된 것입니다.

 

사실 콘도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거기에 싸인과 감방문들이 전시 되어 있는데 저는 종종 정원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첵엎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싸인을 보지도 않았고 감방문도 눈여겨 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한번이라도 눈여겨 보았더라면 그 건물의 역사를 벌써 알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 옆을 지나면서 그 건물 안에 갇혔던 수 많은 사람들도 상상해 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모습이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제 모습이요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스마트 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을 알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그러나 바로 가까운 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사는 자들이 아닐까요? 물론 앞으로 일어날 미래일은 두말할 나위 없고요. 감옥이 콘도가 될줄을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미래일을 예측할수 없는가요?

 

이러한 우리들에게 2021년도라는 최고의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벌써 3번째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지나간 두주반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남은 1년 어떻게 우리는 이 귀한 선물을 맞이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신학자들은 오늘 본문 말씀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쳐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이 말씀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마 이들은 예레미야가 오래 전에 예언했던 말씀 곧 70년만에 귀환할 것이라는 말씀을 알고 있었을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오늘이 될까 내일이 될까 귀환을 기대하면서 지내고 있었을줄 압니다. 그런데 잉태하지 못하면 출산하지 못한 자들에게 노래하라고 합니다.

금방 수긍했을줄 압니다. 이제 귀환할텐데 잉태하지 못한 것이 축복입니다. 잉태한 채 아니면 방금 아이를 낳고 귀환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새 교우반 때 언제나 말씀을 드립니다만, 저는 6/25전쟁이 막 끝나려는 때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쌍둥이로…. 그런데 그 때 마침 저희 아버지는 미국 유학중이셨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버님 없이 쌍둥이로 그것도 동생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어머니께 부담을 드렸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찡합니다.

이런 때는 안 태어나는 것이 효자입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지금 어머니는 하늘나라에 계시고 저는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하여튼 유다백성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곧 해방이 되어서 귀환할텐데 잉태치 못한 자가 복이 있지….”

 

그런데 곧바로 이어지는 말씀은,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전혀 뜻 밖에 말씀입니다. 뭐가 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 귀환해야 하는데 그러면 자녀는 없을수록 좋지…, 남편도 없는 여인이 자식을 낳으면 어떻게 귀환한단 말입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일단 계속 귀담아 듣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장막터를 넓히라고 말씀하십니다. 장막터를 넓히라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장막터를 넓힐 때입니까? 차라리 마차를 준비해서 귀환할 때 손쉽게 이동할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이를 ‘동상이몽’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 같습니다. 유다백성은 귀환할 생각에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장막터를 넓히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장막터를 넓혀 봤자 결국 언젠가는 바벨론 나라 것이 되는데 무슨 뜻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말뚝을 박아 봤자 바벨론 영토입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하면서 계속 귀를 기울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놀라운 반전입니다. 유다 백성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지금 있는 바벨론에서부터 전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황폐한 성읍들조차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왜 장막을 넓히라고 하시고 왜 잉태하지 못한 자들 보고 노래를 부르라고 하시는지를….

 

유다 백성을 통해서 온 세상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하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장막터가 넓혀져야 합니다. 많은 자녀들이 필요한데 많은 자녀들이 훌륭하게 자라게 하려면 실컷 뛰어 놀면서 배워야 하는 넓은 장소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넓은 장소가 넓어지고 넓어져서 전 세계를 장막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왜 잉태치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자들에게 노래하라고 하셨는지….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잉태치 못하다가 특별한 자녀를 낳습니다. 이삭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 중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다면 당연히 이삭의 탄생입니다. 이삭의 탄생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의 탄생도 있을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탄생은 불가능한 여건에서 이루어진 기적의 사건입니다. 약속받은지 25년만에 100세가 다 되어서 이루어진 기적 중에 기적의 사건인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다시금 재연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깊은 뜻으로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삭과 같은 택함 받은 자들이 수 없이 많이 태어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앞으로 이러한 특별한 자녀들이 많이 태어나고 이 자녀들을 통하여 전 세계가 아름답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한편 이 말씀을 듣고 유대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멘” 했을까요? 아마 주저 주저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말씀들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4, 5절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요약하면, ‘너희가 이런 위대한 자녀들을 낳을 자격이 없는 것 잘 안다. 그러나 나는 너의 남편이다. 그러니 나를 닮은 자녀들이 낳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것처럼 너희도 낳을수 있다. 그러니 장막을 넓혀라.’

 

물론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 생활을 하면서 자신감을 다 잃어 버렸던 것입니다. 자기들은 아브라함이 아닌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시려고 계속 말씀하십니다. 9절 말씀입니다.

“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노아의 홍수 이후에 더 이상 홍수로 벌하시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어기셨나요? 놀랍게도 지금까지 그 약속은 지키시고 계십니다. 물론 바벨론 포로 때까지도 당연히 지키셨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자연세계를 봐라. 내가 더 이상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지 않느냐? 이처럼 내가 너희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겠다.”

 

곧 하나님께서는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두 가지 약속이 이루어진 이야기를 가지고 새로운 약속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노아와의 약속과 조상과의 약속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노아와의 약속을 말씀하시면서 자연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연 세계가 홍수에 쓸려가지 않았듯이 결코 당신의 약속은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노아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아브라함의 약속을 갱신하고 계신 것입니다. 노아의 약속을 지키시듯이 아브라함의 약속을 너희들을 통해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막터를 넓혀라.”

 

그런데 실은 지금 포로들에게 베풀고 있는 약속은 조상과의 약속보다 더 위대한 약속입니다. 조상들에게는 가나안 땅을 허락하였지만 이제는 온 세계를 허락하시는 약속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어느 분이 음악가전 회사 광고 공모전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올려서 수상하였다고 합니다.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

베토벤이 작곡했을 때 태어나고

번스타인이 지휘했을 때 태어나고

당신이 들을 때 태어납니다.”

 

저는 조금 각색해 보았습니다.

“약속은 세 번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을 때 태어나고

우리가 약속을 이행했을 때 태어나고

후에 열매로 태어납니다.”

 

이 중에 우리에게 맡겨진 부분이 무엇입니까? 이행하는 것이 아닙니까?

 

올해 우리들에게 맡기신 부분이 무엇이겠습니까?

“장막터를 넓혀라.”

이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나요? 올해 저희 교회 표어입니다. 이사야 48:6절 말씀,

“이 모든 것을 보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모든 것을 보기 위하여 우리는 장막터를 넓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홍수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자연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주신 약속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의 반복이 아닙니다. 발전된 약속입니다.

장막터를 넓히는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놀라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장막터를 넓히십시다.

 

이어령 교수님이 다음과 같은 글을 쓰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낙원이라고 해서 ‘파라다이스’라는 말을 쓰는데 이 용어는 원래 이집트어로서 에덴 동산 같은 낙원이 아니라 황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황야이기 때문에 거기에 나무를 심을 수 있고 꽃을 가꿀 수 있고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지 에덴동산처럼 처음부터 완성된 동산이라면 아무것도 할 게 없습니다. 그것은 낙원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거칠고 황량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상력 속에서 꽃과 나무들이 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장막터를 넓힌다는 것은 황야와 같은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 일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에 동참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얼마전 토요일 저녁에 보스톤 노회와 북 NE노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모여 찬양의 밤을 가졌습니다. 감사한 것은 저희 교회 중고등부가 찬양을 담당했습니다.

지난 당회 때 교육부 장로님께 어떠했냐고 여쭤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너무 적게 참석해서요.” 라고 하시면서 더 이상 말씀을 잇지 못했습니다.

 

저도 좀 섭섭했지만 금방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이것이 이 지역 현실입니다. 아마도 저희 교회가 곧 한인 교회가 주도를 했기에 더 적게 참석했을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나 저는 장막터를 넓히는 위대한 시간이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우리 자녀들은 이행했으며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히게 할 것입니다. 어떻게 맺힐지는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앞에 장막을 넓히는 새해를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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