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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이사야 55:6-13 (01/24/2021)

언젠가 한국에 전현직 대기업 홍보책임자 모임에서 경제인 2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경영인의 최고 어록을 선정하는 설문조사였습니다.

1, 2, 3위를 순서를 바꿔 말씀드릴텐데 그 중 어느 것이 1위를 차지했을 것인지 알아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정주영 회장의 “이봐, 해보기나 했어?”

어느 회장의 말이 1위를 차지했겠습니까? 제가 123위를 거꾸러 말씀드렸습니다. 곧 1위는 정주영 회장님의 “이봐, 해보기나 했어?” 자신 없어 하며 우물쭈물하는 직원들에게 말한 것이 경제계에는 유명한 말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봐, 책임자 해보기나 했어?”

 

2020년을 마치면서 웹스터 영어 사전 회사에서는 지난해 곧 2020년을 대표하는 말을 선정했습니다. ‘팬데믹.’

한편 Collins라는 사전회사에서는 ‘Lockdown.’

 

자, 그러면 올해를 마치면서 어떤 단어나 말이 올해의 단어나 어록이 되면 좋겠습니까? 아마 단어로는 6월까지는 ‘백신’이 1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만, 올해를 마칠 때는 백신 보다 더 멋진 단어나 어록을 기대해 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올해를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을줄 압니다.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올해의 최고의 단어나 어록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 계속 이사야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신학자들은 오늘 본문 말씀 곧 55장까지가 이제 바벨론 포로를 마치고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하려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정주영 회장이 한국 경제계에 남긴 말이 “이봐, 해보기나 했어?” 였다면, 이제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 길을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 말씀이 아닐까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이 말씀은 귀향길을 위해서도 하신 말씀이지만 이 말씀대로 산 후 고향에 가서도 늘 이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살게 하시려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이제 막 광야길을 지나 고향으로 가야하는데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가 모세를 통해 준 모든 율법을 기억하고 잘 행하라.” 말씀했으면 얼마나 몸과 마음이 굳어졌겠습니까? 전에도 못했던 것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여유로와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가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이고 언젠가 가까이 계신 때일까요?

 

사실 이 말씀은 거의 2,500년 전에 하신 말씀인데 지금 저희가 거의 3천년이 지나서 이 말씀을 대하면 과연 언제일까 궁금한 생각이 들지만, 우리가 바벨론 포로로 있다가 금방 고향을 향하여 떠난다고 바꿔 생각해 보십시다. 이 때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까이 계실 때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은 험한 광야길에 함께 계시겠다는 뜻으로 받아드리지 않겠습니까?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당연히 그러실줄 압니다. 곧 이제 떠나는 광야 길이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요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실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기대에 가득차게 됩니다. 기대에 가득찬 이들에게 다음으로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7절 말씀입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갑자기 내용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기대하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으십니다. 한 마디로 “너희는 악하다. 악한 자신의 모습을 보아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광야의 여정 가운데서 삶 깊숙히 박혀 있는 죄악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죤 칼빈의 기독교 강요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개신교 특히 장로교의 신학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책인데, 제일 첫 장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나 자신을 알수 없고 나 자신을 모르고 하나님을 알수 없다. 이 둘은 묘하게 엮여져 있다.”

하나님을 찾는 작업은 동시에 나의 모습을 찾는 작업이고 나의 모습을 찾는 작업은 하나님을 찾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광야 길로 막 떠나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와 같은 논조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광야 길에서 나를 찾아라. 한편 너의 죄악된 모습을 발견하지 않고서는 나를 찾을수 없다.”

하나님의 위대함을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동시에 우리들의 악함을 맛 보아야 합니다. 이 둘은 묘하게 엮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회개 없이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맛보지 못합니다. 이는 계속되는 신앙 생활의 과정인 것입니다. 아니 광야의 삶의 과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특히 광야 길에서 발견해야 할 죄악된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8절 말씀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자기들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을 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죄의 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르호봇 이야기중 요시야 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바벨론 포로시 이스라엘에게 주신 선물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경, 회당, 랍비.

요시야가 건물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했는데 이 율법책을 기본으로 해서 바벨론 포로시 율법책이 잘 정리됩니다. 랍비들의 해석도 붙여져서 잘 만들어지게 됩니다. 아울러 바벨론 포로시 회당에서 랍비들이 말씀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상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가깝게 접할수 있었던 시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곧 이들은 말씀을 그 어느 조상들 보다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겼을 것입니다. 이 것이 발전해서 자기들은 하나님의 생각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셔야 한다는 생각까지 가슴 속 깊게 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쪽집게 처럼 끄집어 내십니다. 9절 말씀입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차이가 나도 보통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곧 하나님은 악인의 특징을 쪽집게처럼 꼬집고 계십니다. 악인의 특징은 바로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비슷하다고 아니 하나님의 생각을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의인의 특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곧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알아 가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을 알아 가는 자들은 알면 알수록 하나님에 대한 모르는 것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의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듯이….

 

사실 영어로 결심하다 ‘decide’의 어원은 라틴어로 짤라내다 ‘decidere’라고 합니다. 의인들은 쉽게 결심하는 자들입니다. 짤라내는 자들입니다. 무엇을?

우리의 생각을 늘 괴롭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못지 않게 우리도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생각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라면 내 생각처럼 하시겠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이런 생각을 짤라냅니다. 결심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다고…. 한편 하나님의 생각은 다름을 믿고 아니 결심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10, 11절 말씀입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한 마디로 눈 딱 감고 하나님의 생각이 높다고 믿는 믿음 내지 결심은 순간적으로 하늘의 비가 되어서 선물로 내려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싹이 나고 그 열매를 맺게 되고 수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험한 광야길을 지나 고향으로 가야 하는데 만일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다르다고 믿고 결심하고 결심한 마음으로 길을 떠난다면 그 험한 광야길에 놀랍게도 하늘의 비가 내려 와서 그 광야 길을 옥토로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된다구요? 12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축제의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치니 이런 최고의 축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뿐 아닙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세상에 가시나무가 잣나무로 변하고 찔레가 화석류로 변하는 것 누가 생각이라도 해 보았겠습니까? 그런데 높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한편 어떻게 높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게 되죠?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들 생각보다 하늘이 높음처럼 높다고 결심할 때 이런 놀라운 비는 하늘에서 내려서 땅에 최고의 작품을 창조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죄인들의 특성은 가시나무에서 가시나무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찔레에서 찔레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가시나무에서 잣나무가 나온다는 것은 죽었다 깨도 믿지 않습니다. 물론 이들이 정상입니다. 땅에서는…. 그러나 이들은 하늘과 땅의 차이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반면 의인들은 가시나무 안에 잣나무 씨가 내재해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결심합니다. 가시나무가 잣나무로 변하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광야에서 한채 고향에 도착한다면 고향에도 잣나무와 화석류로 가득차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이 것을 경험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으실까요?

“이 모든 것을 보라.”

 

이 표어를 가슴에 안고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올해도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모두가 힘들게 지내오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2021이라는 광야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가시나무가 여기 저기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이 그 때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이고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신 때이고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한편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허락하실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시나무 대신에 잣나무를 나게 하며 찔레 대신에 화석류를 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이루신 후 우리에게 말씀하실 분이십니다.

“이 모든 것을 보라.”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들의 생각과 다릅니다. 우리가 세상 경험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말씀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신앙의 연륜이 깊어가면 깊어 갈수록….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이를 결단하십시다. 결심하십시다.

 

교우 여러분,

일년 내내 우리 한번 해 봅시다.

 

정주영 회장님이 우리들에게 주는 귀한 선물을 다시금 나눕니다.

“이봐, 책임자 해 보기나 했어.”

 

말씀을 거둡니다.

서울 영락교회 장로님이시며 한 때 대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신 후 신일 고등학교 교장으로 수고하셨던 장윤철 장로님이 계십니다.

1950년도 경 예일 대학교에 유학하셨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으셨는데 예일대학교 부속 병원에 다음과 같은 요지의 편지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본인은 원래 시력이 좋지 않아 눈 수술도 받고 사시도 교정받고 싶습니다. 현재는 수술비용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제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 취직을 해서 수술비용을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회신이 왔다고 합니다.

“Your eyes are priceless. Therefore the cost of surgery is priceless.”

(당신의 눈은 값을 매길수 없을 정도로 귀합니다. 그러므로 수술비도 값도 매길수 없기에 무료입니다.)

Priceless의 의미는 값을 매길수 없이 소중하다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러기에 무료라는 뜻이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아마 장로님은 하나님을 의지해서 이런 편지를,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수 없는 편지를 보내신 것이 아닐까요?

장로님은 하나님을 찾은 후 확신 가운데서 이런 편지를 쓰셨을줄 압니다.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사랑의 비가 하늘로부터 내려 온 것입니다. 찔레에서 화석류가 난 것입니다.

 

올해 여러분들의 삶 속에 두 단어 내지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봐, 해 보기나 했어.”

“Priceless.”

 

연말까지 이 두 가지가 여러분의 어록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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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Title Writer 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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