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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보라IV: 기쁨” 룻 4:13-17 (03/21/2021)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 중에는 결혼을 앞둔 여성들에게 이색적인 행사를 하는 부족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참가 여성들이 각각 옥수수밭에 한 고랑씩을 맡아 그 고랑에서 제일 크고 좋은 옥수수를 따는 여성이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사에는 특이한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밭을 돌다가 한 번 지나친 옥수수나무는 다시 돌아볼 수도 없고, 그 나무에 달린 옥수수를 딸 수도 없습니다.

오직 앞만 보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옥수수 하나만을 따야 합니다. 그리고 한 번 땄으면, 도중에 더 좋아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해도 다신 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행사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극히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세 명의 여성이 이 행사에 참여하였고 여성들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행사가 시작되자 신중히 옥수수를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옥수수밭에서 나온 여성들은 풀이 잔뜩 죽은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 있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녀들의 손에는 작고 형편없는 옥수수가 한 개씩 들려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상상에 맡깁니다.

 

아프리카인들의 지혜를 엿볼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색적인 행사를 하는 이유는 실제로 결혼생활을 위한 것보다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깊게 생각하게 하기 위함일줄 압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이런 행사가 필요할까요? 그런데 제 보기에는 필요 없다고 봅니다. 이런 행사 보다 더 훨씬 소중한 이야기를 이미 우리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오늘본문 말씀인 룻기입니다.

 

우선 룻기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해 드립니다.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가나안 땅에 살던 한 가정이 흉년으로 인해 어쩔수 없이 모압 지방으로 이민 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압 지방은 이방땅으로 이스라엘인들과는 거의 원수와 가까운 모압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래도 어쩔수 없이 모압 땅으로 가서 이민자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아내인 나오미는 속으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져서 이런 이방 땅에 와서 살아야 하나…. 그것도 모압 땅에서…. 남편탓인가 아니면 내 탓인가…?”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세상을 떠납니다. 당연히 이 곳으로 이민 온 것이 잘 못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강하게 듭니다. 남편을 잃은 아픔과 함께…. 그래도 다행한 것은 이미 두 아들이 장성했습니다. 장성한 두 아들은 모압여인들과 결혼을 합니다. 모압인들은 이스라엘인들보다 마음이 넓었나 봅니다. 타국인인 이스라엘인과 결혼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나마 나오미는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데 위로도 잠시 어느 날 한 아들이 죽습니다. 이 때 나오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한 마디로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줄 압니다. 이방땅에서 남편을 잃은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박완서 작가가 아들을 잃은 후 5년이 지나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첫 부분만 소개해 드립니다.

“아들을 잃자 따라 죽고 싶었다. 정말 살고 싶지 않았고, 죽을 방법도 도처에 널려 있었다. 아파트에 사니까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기만 해도 실패 없이 죽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무서워서 못 했다.”

 

아마 나오미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어느날 또 다시 나머지 아들도 하나님께서 데려가십니다. 나오미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이건 정말 너무 하십니다.”

남편과 첫째 아들 둘째 아들 모두 잃었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하루 하루 사는게 사는게 아닌 듯 지내고 있는데, 이 때 소식이 들려 오기를 이제는 고향 땅에 기근이 사라지고 먹고 살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두번째 선택을 합니다. 이번에는 왔던 길을 거꾸러 두 며느리 중 둘째인 룻만을 데리고 고향으로 떠납니다. 그런데 이는 선택했다고 볼수가 없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무조건 돌아 갈수 밖에 없는 길이었습니다.

 

미국을 가로지르는 어머니 길(Mother Rd)이 있습니다.

Mother Road Ride/Rally - TravelKatz, LLC

시카고에서 시작해서 MissouriKansasOklahomaTexasNew Mexico,  Arizona 캘리포니아까지 이르는  2,448 miles에 달하는 길입니다. 중부지방에 대기근이 생겼을 때 이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주할 때 생긴 길입니다.

 

글쎄 왜 ‘어머니 길’이라고 붙였는지 알 길은 없지만 한 가지 추측할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잃고 떠날수 밖에 없었고 가는 길이 위험해서 언제 어떤 일을 만날지 몰랐던 길 결국은 많은 어머니들이 눈물을 흘리며 갔어야 했고 또 후에 돌아 왔어야 했던 길이기에 ‘어머니 길’이라고 붙인 것 같습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실은 바로 나오미의 길과 같아서 이렇게 붙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어머니의 길을 따라 고향으로 며느리와 함께 가는 나오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계속 “너무하십니다. 너무 하십니다.” 생각하면서 돌아 왔을까요?

 

한편 박완서 작가의 글을 보면 우리가 알수 없는 놀라운 경험을 했을 가능성도 추측해 봅니다. 박완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것인가.”

“오늘 살 줄만 알고 내일 죽을 줄 모르는 인간의 한계성이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한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도리어 생명의 강렬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하물며 남편과 함께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안 그랬을까요?

 

한편 고향에 도착한 나오미는 자기를 맞이하는 고향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20,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쓰다)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나오미의 뜻은 ‘기쁨’입니다. 더 이상 자기를 ‘기쁨’으로 부르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마라’(‘씀)이라고 불러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삶을 쓰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해도 해도 너무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나오미는 세번째 선택을 합니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생명의 강렬함을 더욱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며느리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모험을 치룹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남편 집에 유력한 사람인 보아스에게 시집 보내는데 성공합니다. 두 아들을 잃은 것이 도리어 룻을 보아스에게 시집 보내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드디어 평생 하는 일마다 잘 안 되었는데 일생일대의 최고의 성공을 맛봅니다.

세번째 선택은 더 큰 경사로 이어집니다. 룻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에 고향 친구들이 축하를 합니다. 4: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친구들의 축하 멧세지에 나오미의 기쁨은 더해갔을 것입니다. 친구들은 이 아이가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나오미는 왜 자기가 그토록 오랜 동안 고생했는지를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요? 친구들의 축하 멧세지처럼 놀라운 아들이 태어나기 위하여 그동안 어머니의 길을 갔어야 했음을 마음속 깊이 생각하게 되었을줄 압니다. 16절,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나오미는 이 아이의 양육자가 됩니다. 아기를 키우면서 이제는 외치지 않았을까요?

“기가 막히신 하나님…!”

전에는 늘 “너무하시는 하나님!” 이제는 아기를 안을 때마다 “기가 막히신 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하시는 하나님”에서 “말도 안 되게 기가 막히신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기가막힌 하나님의 축복이 어떻게 이루어지죠? 17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이 아이의 손자가 바로 다윗이 됩니다. 나오미는 다윗의 고조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나오미의 이야기는 민족의 이야기가 되어 갑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생각이 들 때마다 기가막히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의지하게 하는 택한 민족의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Mark Twain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The most important days of your life are the day you are born and the day you find out why.”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날은 태어난 날이고 또한 태어난 이유를 깨닫는 날이다.)

 

나오미는 오벳을 안고 친구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기가 태어난 이유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꼭 필요한 인물의 조상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자기가 아니었더라면 오벳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다윗도….

물론 오벳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모압 지방으로 어머니 길을 따라 갔어야 했습니다. 어머니 길을 따라 다시 고향으로 오면서 “해도 해도 너무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통의 노래를 불렀을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모든 것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자기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중요한 인물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이스라엘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쓰임받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노래는 바뀌어졌던 것입니다.

“기가 막히신 하나님.”

 

오늘 여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그동안도 어머니의 길을 걸어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머니의 길을 걸어 오시면서 때로는 나오미처럼 이런 말을 되뇌곤 하셨을줄 압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시는 하나님.”

나오미처럼 그렇게 고백하십시요.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그러나 나오미처럼 희망을 잃지 마십시요. 언젠가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기가 막히신 하나님.”

여러분의 헌신은 지금도 위대한 나라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오늘 또한 사순절 다섯째 주일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괴롭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압니다. 위대한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심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나라에서는 우리의 잘못된 선택 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사용되는 자료가 됩니다. 하물며 매일 매일의 헌신의 작은 삶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쓰임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때로는 우리가 선택을 잘 못했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 못된 선택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뒤바꾸지는 못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윗 왕국과 같은 위대한 나라를 세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2천년전에 오셨고 우리의 죄와 허물 곧 잘못된 선택들을 뒤바꾸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프랑스 왕정 시대 왕가 가정 교사를 지냈던 페늘롱 사제가 헌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다른 조건에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고 특정 조건에서만 섬기겠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섬기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순종에 조건을 달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에 대해 죽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아무런 제한도 두지 말고 당신 자신을 그냥 열어 두라. 하나님의 생명이 급류처럼 당신을 통해 흘러가게 하라. 당신이 걸어가는 길에서 무엇을 만날지 전혀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이 당신의 손을 붙잡고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자신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제압하게 하라.”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삶을 통해 급류처럼 흘러가게 하십시다. 우리는 놀라운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헌신의 삶입니다. 나오미의 삶입니다. 기쁨의 삶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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