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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보라V: 큰 대제사장” 히브리서 4:14-15, 5:7-10 (03/28/2021)

 

김동길 교수님의 어릴 때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아버님은 광산업에 종사하시다가 큰 빚을 지는 바람에 집안의 경제는 파탄이 났고 1년에도 수도 없이 이사를 다녔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혼자서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면서 여러 아이를 키우며 가르치기 위해 남의 삯빨래나 삯바느질로 겨우 생활을 이어나가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냉수 한 대접을 옆에 떠놓고 하얀 홑이불의 다림질을 하고 계셨습니다. 사실 이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스프레이 같은 분무 기구가 없었으므로 어머니들은 대접에 냉수를 떠다가 한 모금씩 입에 물고 특별한 기술로 홑이불 위에 뿜어내어 다림질을 함으로써 구김살이 깨끗이 펴지게 하곤 했습니다. 저도 저희 어머니가 이렇게 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호기심이 많았던 개구쟁이 김동길 소년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여 어머니에게 엉뚱한 요구 사항 한 마디를 던집니다.

“엄마, 여기 있는 물 한 그릇을 그 홑이불 위에 ‘확!’ 쏟고 싶은데요.”

“그렇게 쏟고 싶으냐?”

“그래요.”

“그럼, 네 맘대로 한번 쏟아보렴.”

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대접에 담긴 물을 하얀 홑이불에 속 시원하게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뒷감당은 어머니께서 하셨겠죠.

 

이 이야기를 약 40년전에 어느 TV방송에 나오셔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왜 하셨겠습니까? 당신이 오늘의 당신이 된 이유는 호탕하신 어머니 덕분이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요?

 

물론 잘 아실줄 압니다. 김동길 교수님의 누이가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님이시라는 것을…. 한 때 가정의 생활이 구차한 것을 보고 주위에서는 김옥길 소녀를 평양의 기생양성학교로 보내라고 권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자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평양에 있는 고등여학교에 보냈습니다. 훗날 문교부 장관까지 역임하게 된 것입니다.

 

한 어머니로 인해서 자녀들이 또한 자녀들의 제자들이 한국 사회를 굳세게 세워가게 하지 않았는가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종려 고난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종려 고난 주일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온 인류 역사를 위해서 어머니와 같은 분이 찾아 오셨음을 기억하며 새로운 소망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하기 위함입니다. 그 분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 오셨을까요? 4: 14절,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는 승천하신 큰 대제사장이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말씀합니다.

한편 승천하셨다는 것은 이 땅에 내려 오셨던 것을 전제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야 곧 하나님의 아들은 왕이요 예언자요 제사장의 모습으로 오셨는데 그중에 제일 어머니와 같은 모습은 제사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냥 제사장이 아니라 대제사장 아니 큰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대제사장이 어떤 분인줄 잘 아는데서 시작하지 않을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큰 대제사장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4: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안고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똑 같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 차이가 있다면 주님은 죄는 없으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연약한 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필립핀의 슈바이쳐라고 불리워지는 박누가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물론 3년전 하나님 품에 안기신 분이십니다.

외과의사로서 거의 30년을 선교지에서 몸을 바치신 분이십니다. 특히 의사가 없는 필리핀 두메산골을 찾아 다니면서 환자들을 고쳐 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박 선교사님은 수많은 질병을 달고 사셨다고 합니다.

열대지역이니 1종전염병마다 다 걸리셨습니다. 장티프스, 콜레라, 이질, 뎅기열, 췌장염, 담석, 당뇨…. 이뿐 아니라 췌장암도 걸리셨고 다행히 일찍 발견해 완치가 되었지만 위암도 걸리셨습니다. 14년만에 위암이 재발해서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려면 건강해야 하는데 자꾸 온갖 병을 주시니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로 물으셨다고 합니다.

“건강해야 더 잘 돌볼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차가운 응답은…,

“너는 의료도구도 별로 없고 청진기 하나로 진찰하고 있으니, 네가 아파 봐야 잘 진료할수 있지 않겠니….”

그런데 바로 이 모습이 주님의 모습이지 않을까요? 죄는 없으시지만 죄로 인해 생기는 모든 질병과 고통을 몸소 연약한 몸으로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큰 대제사장이신 것입니다.

 

실은 박누가 선교사님은 의료장비는 부족해도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의사가 되어 가셨습니다. 비결은 본인 스스로 모든 질병을 아파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오고가는 모든 사람들의 질병과 죄로 인한 고통을 겪으시기 위하여 연약한 자로 오신 것입니다. 연약한 자로서 모든 인간의 약함에 동참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큰 대제사장 되신 주님께서는 연약함을 어떻게 감당하셨을까요? 5:7절 말씀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박누가 선교사님은 눈물로 기도드렸습니다. 먼저는 자기의 병으로 인해 기도드렸습니다. 아울러 자기의 병을 위해 드리는 기도는 이웃을 위한 놀라운 치유의 힘으로 나타나곤 한 것입니다.

 

한편 주님도 눈물로 기도드렸습니다. 주님은 먼저 자기 자신의 죽음에서 건져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결과 주님의 기도는 모든 인류를 위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서 구원받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곧 주님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수 있었을까요? 주님의 기도로 주님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으니 말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하나님의 주님을 향한 뜻은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이 무엇이었죠?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었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주님은 죽음에서 건져달라고 기도드렸다고 했는데 실은 죽으셨습니다. 죽음의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들으심을 얻었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죽으신 것입니다. 무슨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여기서 겟세마네 기도가 생각납니다. 마가복음 14: 36,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주님은 죽음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응답은 ‘NO’였습니다. 죽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No’에 불순종할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순종하셨습니다.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원하지 않는 그 길을 순종하며 가셨습니다. 그 결과는, 9, 10절 말씀입니다.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역설적으로 주님도 구원받으셨고 또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결국 주님은 순종함을 통해서 큰 대제사장이 되어 가신 것입니다. 승천할수 있는 몸으로 다시 사신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동물들을 죽이면서 죄의 삯을 치루는 예식을 거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당신의 몸을 동물들 대신에 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근원이 되는 큰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핏줄로가 아니라 순종함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한 마디로 성공하신 것입니다.

 

‘성공’? ‘성공’이란 단어가 맞나요? 물론 주님께서 오셔서 목적하신 바를 이루셨으니 성공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공’이란 말보다 다른 무엇이 없을까요? 무덤에 들어가신 것을 보고 ‘성공하셨다’ 표현하기가 좀 어색하지 않나요?

 

지난 주일 묵상집에는 제가 작년에 설교한 내용이 인용이 되었었습니다. 제가 헨리 나우웬의 글을 인용했었는데 지난주 다시 보면서 저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었습니다.

“성공은 힘과 통제력과 존경할 만한 태도에서 나온다. 성공한 사람은 창조적 에너지를 지니고 있고, 그 에너지를 발휘하고 통제할 능력을 갖고 극대화할 수 있다. 따라서 보상과 명성이 크게 뒤따른다. 그러나 열매는 연약함에서 나오고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는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 속에서 잉태된 열매이며, 공동체는 서로 상처를 보듬는 가운데 생겨난 열매이고, 친밀함은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자라난 열매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열매 맺는 삶이라는 것을 서로서로 일깨워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주님은 성공하신 분이 아니고 열매를 맺으신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저는 저나름대로 성공과 열매를 이렇게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성공은 원하고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열매는 ‘NO’라는 응답을 받습니다. 그런데 후에 놀랍게 응답되어집니다. 박누가 선교사님은 병치레를 멈춰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주님은 ‘NO’로 응답하셨습니다. 놀라운 선교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오늘 종려 고난주일로 지킵니다. 주님은 오늘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성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해서…. 큰 대제사장이 되셔서 당신께 순종하는 자들로 하여금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입성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받은 ‘NO’라는 응답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NO’라는 응답 앞에 순종함을 배우셨는데 하물며 우리들은 어떨까요…?

 

남은 한 해 ‘YES’의 응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NO’로 응답하실 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상상할수 없는 열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주 월요일에는 이 지역 어느 언론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틀란타 사건으로 인해서 동양인들의 반응을 알기 위한다고 하면서 간단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저는 아시안들을 써포트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했고 마지막으로는 우리도 이 곳에서 사는 삶의 모습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 마디로 성공위주의 삶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 때 우리 아시안들이 어느 민족으로부터도 존경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시안들 중에 성공 사례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비해서 열매는 맺는 모델 케이스는 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두 분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김동길 교수님의 어머니, 박누가 선교사님, 모두 성공한 분들이 아니고 열매를 맺으신 분들입니다.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분들입니다.

미국에 사는 아시안 중에 이런 열매 맺는 자들이 물론 곳곳에 숨어 계실줄 압니다. 아니 올 한해 우리 자신이 이런 열매 맺는 자들이 되어 가십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마지막으로 역시 한국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사시는 한 분을 더 소개해 드립니다. 다음에는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사신 분을 소개하게 되길 바랍니다.

 

한국의 대학로에 특별한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아가페 드림 교회인데 정여임 목사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대학로에서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우며 고생하는 청년들을 모아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교회당 없이 극장을 돌아다니며 청년들에게 밥을 먹이고 예배를 드렸는데 마땅히 식사할 공간이 없어 건물 옥상에서 밥을 나눠 먹곤 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기적적으로 젊은이들을 위해 영적 물질적 공급자가 되어서 많은 젊은이들을 세우는 목회를 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정 목사님께서 목회자가 되는 과정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정 목사님은 고등학교 때 세례를 받은 후 질병을 얻고 교회를 떠나 오랜 방황의 시절을 보냅니다. 한 때 불교에도 입문해 대학생 불교연합회에서 활동도 합니다. 그런 방황 가운데 결혼 생활에서도 아픔을 겪었고 하나뿐인 딸마저 지독한 피부병을 앓았습니다. 결국 생활을 위해 어느 공장에 일꾼으로 들어가는데 그 공장은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공장이었습니다. 이에 다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후 10년간 평신도로 지냈던 정 목사님은 자신의 사업을 정리한 뒤 교회를 위해 기도하다가 신장을 기증해야겠다는 마음을 갇게 됩니다. 물론 신장을 받은 사람이 정 목사님이 평신도로 섬기는 교회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신장 기증을 받은 사람은 가난한 청년이었고 누나는 무당이었던 사람입니다. 주님은 작은 ‘no’로 응답하셨습니다. 신장 기증은 허락하셨지만 돈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여튼 신장 기증을 하면 얼마의 돈을 받는다고 합니다. 사실 본인의 건강 회복을 위해 주는 돈인데 그 돈까지 가난한 청년가족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 돈을 받자 그의 신장을 기증받은 불신자 청년과 무당이었던 그 청년의 누나가 눈물을 흘리며 기독교로 전향을 합니다. 그리고 무당의 길을 접고 음식점을 열고 열심히 사는 신자가 되어 갔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담임목사님의 권유로 신학을 하게 되고 아가페 드림 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입니다.

 

신장을 기증하는 고난의 길을 통해 온 인류를 위해 고난의 길을 가신 큰 대제사장을 더욱 깊게 만나게 되고 놀랍게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는 성공한 자가 아니라 열매맺는 삶의 주인공이 되신 것입니다.

 

이번 일주간 우리를 위해 순종의 길을 가시는 주님을 깊게 만나십시다. 주님은 연약한 가운데 죽음에 이르는 고난 가운데서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큰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온 인류를 위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닮은 제사장이 되십시다. 팬데믹 가운데서 이러한 제사장들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세워지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함께 외치십시다.

“이 모든 것을 보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아들이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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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Title Writer Date
246 “주기도문 VI: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마태복음 6: 5-13a (05/30/21) webmaster 2021.06.03
245 “주기도문V: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태복음 6:5-12 (05/23/21) webmaster 2021.05.27
244 “주기도문IV: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태복음 6:5-11(05/16/21) webmaster 2021.05.27
243 “주기도문III: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5-10 (05/02/2021) webmaster 2021.05.04
242 “주기도문II: 나라가 임하옵시며.” 마태복음 6:5-10a (04/25/2021) webmaster 2021.04.27
241 “주기도문I: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마태복음 6:5-10 (04/18/2021) webmaster 2021.04.19
240 “이 모든 것을 보라VI: 부활의 사람들” 빌립보서 3:7-12 (04/04/2021) webmaster 2021.04.06
239 “이 모든 것을 보라V: 큰 대제사장” 히브리서 4:14-15, 5:7-10 (03/28/2021) webmaster 2021.03.29
238 “이 모든 것을 보라IV: 기쁨” 룻 4:13-17 (03/21/2021) webmaster 2021.03.22
237 “이 모든 일을 보라III: 오네시모” 빌레몬서 1:8-22 (03/07/2021) webmaster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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